충무로에서 이윤기 감독이라 함은 여자들의 마음을 참 섬세하게 잘 그려내는 남자 감독으로 통한다. 이윤기 감독의 전작을 보면 , , 까지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좀처럼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여자 캐릭터들을 느긋하게 따라가게 만드는 독특한 연출이 돋보인다. 따져 보면 일반 대중영화의 느낌은 아닌 작가주의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다. 작품성과 그 섬세한 연출력은 각종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지만 관객의 흥행성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번 는 이윤기 감독이 관객과의 소통을 위하여 조금 더 노력한 작품처럼 보인다. 에서 이미 칸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전도연과 충무로의 불루칩인 하정우가 주연을 맡으면서 일반 관객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는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소설 단편집이 원작이다. 이윤기 감독은 이 원작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아우라를 뿜어낸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아침, 초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희수(전도연)는 경마장에 들어선다. 두리번 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희수는 결국 찾고 있던 병운(하정우)을 발견한다. 아는 듯한 두 사람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반갑지 않은 듯, 희수는 병운을 보자마자 "돈 갚아"라는 한 마디를 던진다.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돈 350만원을 1년전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받기 위해 다시 찾아온 희수로 부터 시작된다. 1년전엔 연인사이, 하지만 1년만에 같이 보내는 단 하루는 채권자와 채무자일 뿐이다.
희수의 돈을 갚기 위해 병운은 자신의 아는 여자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 돈을 빌린다. 여자 관계가 화려한 병운의 '돌려막기'에 기가 막히는 희수지만 병운을 차에 태우고 돈을 받으러, 아니 돈을 꾸러 다니기 시작한다. 사실 희수는 서른을 훌쩍 넘긴 백조 노처녀이다. 애인도, 직장도 없다. 불현듯 병운에게 1년전 꿔준 350만원이 생각나 그 돈을 꼭 받겠다고 결심한다. 병운 역시 1년 사이에 결혼을 했고, 두 달만에 이혼했다.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하고 빚까지 져서 이제는 여행가방을 들고 다니며 돌아다니는 떠돌이 신세다. 한때 기수가 꿈이였던 병운은 경마장에서 돈을 받겠다고 찾아온 희수를 만나게 된다.
병운을 귀여워하는 성공한 50대 여성사업가, 병운을 오빠라 부르는 호스티스, 병운에게 늘 고마워 하는 애 딸린 이혼녀 등. 그의 여자들은 병운에게 성의껏 돈을 빌려주고 떼인 돈을 받기 위해 함께 찾아온 희수를 동정하거나, 조롱하거나, 비난까지 한다. 한때 밝고 자상한데다 잘생기기까지한 병운을 좋아했던 희수지만 그 여자들이 이해가 안된다. 병운 주위의 여자들은 왜 남의 일에 이렇게 다들 군소리 안하고 도와주는걸까? 영화에서는 끝까지 그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병운의 "난 진지하지는 않지만 진심이 아닌적은 없다"는 대사 처럼 그의 철부지 같은 모습속에 진지함을 느낀 여자들인 셈이다.
이 영화는 이윤기 감독의 전작과는 다른 점들이 많다. 전작에서는 카메라가 주인공을 조용히 관찰하며 여자 주인공들의 심리적 묘사를 조용히 따라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희수와 병운 두 사람을 관찰하는 제3자의 시선으로 설정했고, 여자 중심의 전작과는 달리 남자의 비중을 섞어 배치했다. 또한 비중있는 주연과 어느정도 얼굴이 알려진 조연들을 써가며 자신들의 전작에서 느껴진 낯설음을 많이 줄였다. 게다가 이윤기 감독의 전작을 1편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를 볼때 '이 영화가 이윤기 감독 영화 맞아?' 할정도로 대사량이 많아졌다. 늘 등장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클로즈업이나 디테일한 관찰로 표현을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병운과 희수의 대사를 통해 조금 더 쉽게 감독의 의도를 관객에게 전한다.
까칠한 희수는 책임감 없는 무대책스런 병운에게 "돈이 없다고 하면 때려주고 가려고 했다"는 말을 하며 애초부터 돈을 받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음을 말한다. 하지만 병운은 적극적으로 희수를 데리고 다니며 돈을 갚기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병운의 여자들이 돈을 갚아주는 모습에 희수도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사실 더 좋은 조건의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병운을 버렸던 희수는 결국 그 남자가 실직자가 되자 헤어지게 되고, 희수와 헤어진 뒤 결혼을 했지만 자신의 사업 실패를 아내에게 버림받은 병운의 관계는 어딘가 모르게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이윤기 감독은 이 영화로 무슨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헤어진 두 남녀가 돈때문에 만났지만 다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가까워지는 상황을 말하려고 했을까? 그건 아닌거 같다. 아마도 돈을 꾸러 다니는 병운을 통해 그의 뻔뻔함이 희수눈에는 이상하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병운의 주변 여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은 정작 병운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만으로 행복해져서 힘이 생기잖아"라는 대사만이 진실일꺼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든 상대에게 닥친 상황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물론 감독의 의도와 이 글을 쓰는 나의 이해도는 틀릴수 있지만 관객에게 여운을 남기며 생각하게 만드려 했다던 이윤기 감독의 의도는 적중했다. 두 사람의 결론은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를 보고 나서 분명하게 느낀 것은 의 부담감을 적지않게 표출했던 전도연의 연기는 힘을 빼어 가볍게 연기를 했고 전도연의 연기력에 전혀 뒤지지 않는 하정우의 연기력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게 만든다. 어찌 보면 전작의 캐릭터가 오버랩 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분명 인간의 본질이 다른 캐릭터 이며 이 영화에서의 병운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기에 가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지만 이해는 안되지만 고정관념들만 있는 이 세상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병운이 있기에 이 영화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이윤기 감독은 이번 영화로 관객과의 소통을 조금 더 가깝게.. 다시 말해서, 조금더 대중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전작의 고독과 일상이라는 형식은 어느정도 남아있지만 많은 재치있는 대사들을 통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변화는 크게 작용한다. 결론이 있고 강한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 상업영화를 기대한다면 변화된 이윤기 감독의 영화라고 하더라도 관객은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며 흥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렇지만 하정우의 능청 연기와 독특한 소재를 통한 일상의 즐거움을 찾길 원한다면 는 미소를 띄우며 나올 수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멋진 하루> 이윤기 감독의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 보이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