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출발선

김성민200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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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교회 소책자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주제어가 달리기여서 어떻게 써야하나 좀 고민했었습니다. 

 

 

 

삶의 출발선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위인전들을 읽으며 의아한 점이 있었다. 한국의 위인이든 세계의 위인이든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9;찢어지게 가난한&#-9; 힘든 어린 시절을 겪는다는 점이었다. 책 살 돈이 없어서 어쩌고 끼니 떼울 음식이 없어서 저쩌고~ 딱 봐도 &#-9;와! 힘들었겠다!&#-9; 싶을 정도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나와있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9;아~ 위인이 되려면 가난하게 태어나야 하는 구나~&#-9;라는 얼토당토않은 결론을 내리고 주위에 형편이 많이 어려운 친구들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부러움의 기준이 정반대가 되었다. 대학 친구 한 명의 말 "나는 재벌 2세들이 정말 부러워. 내가 죽을 힘 다해 공부하고 평생 고생해서 이루고자 노력하는, 그렇지만 꼭 이룰 수 있다고 장담하지도 못하는 그 모든 것들을 이미 너무도 완벽히 가지고 태어나잖아? 왜 나의 출발선은 그들과 다른 거지?" 하긴 꼭 재벌 2세가 아니더라도 비교하고 부러워할만한 대상들은 주위에 얼마든지 있을 것 같다. 훨씬 더 멋진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든지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든지.


100m 달리기에서는 모든 사람이 출발선을 동일하게 맞추고 시작도 동시에 한다. 그러나 42km짜리 마라톤만 되도 선두에 비해 수십~수백m 뒤늦게 출발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라톤에서는 아무도 출발선을 가지고 문제삼지 않는다. 2시간을 훨씬 넘게 뛰어야 하는 그 과정중에 얼마든지 출발선의 불리함은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100년을 지속해야 하는 인생이라는 달리기 시합에서 출발선 논쟁은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물론 삶의 무게 때문에 평생 그 차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달리기를 마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차이를 극복하고 추월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낸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 빈민가 출신으로 전 세계 커피시장을 평정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 등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이거다. 인생이라는 달리기 시합은 나 혼자만의 시합이지 남들과 경쟁하는 시합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출발선은 의미가 없다. 어디서 출발하든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느냐 못사느냐 그것만이 의미가 있다. 빈민가출신 중 하워드 슐츠처럼 큰 돈을 번 사람은 0.01%에 불과할 텐데, 그럼 하워드 슐츠가 되지 못한 나머지 99.99%의 삶은 무의미하고 실패한 삶일까? 아니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생 서로 경쟁하며 비교하며 살라고 창조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분명 우리 각자에게 맞는 보석같이 빛나는 삶을 마련해두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보석은 하나도 서로 같지 않은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며 자극을 얻고 교훈을 새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과 같이 되기 위해서 또는 그 사람을 추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나만의 삶을 멋지게 완성하기 위해서여야 하지 않을까?


&#-9;어떻게 하면 내 삶을 멋지게 완성할 수 있을까?&#-9; 이 고민에 몰두하다보면 남과 다른 출발선 따위 떠올릴 여유가 없다.

김성민 (주)아이웰콘텐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