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의 독백

최홍규200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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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나면, 몸이 파래진다.

 

여기서 파란색은 바다의 파란색이 아니라, 산의 파란색이다.

 

본래 화가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열받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빨개져야 할텐데,

 

무슨 화학약품을 잘못 썼나보다. 파래진다......

 

파란색은 사실 맘에는 안든다. 좀 창피하다.

 

머리스타일도 터벅머리가 되어버려서, 꼭 머리를 안감은 것 같다.

 

평소에는 엘라스틴만 쓰는데 말이다.

 

그런가 하면, 몸이 하도 커져서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이

 

다 찢어지곤 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래도 속옷은 좋은 스판재질을 써서

 

겉옷은 다 찢어져도 아주 창피하지는 않을거라고 말하며,

 

키득거리곤 한다.

 

 

 

내가 화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나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최소한 나를 생포하려면, 군사용 무기 수십대가 동원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급적 사람들은 나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들을 한다.

 

 

나는 정의를 위해서만 화를 낸다.

 

나에게 해를 입히고, 인류를 헤치려는 세력들에게

 

무력을 행사하며, 그들에게 나의 파괴력을 과시한다.

 

난 그들을 억누르기위해, 그들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며,

 

그 아래 세력들의 목숨을 뺏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사실, 내가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띄고,

 

직립보행을 하며,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간'들은 아무리 화가나도, 아무리 상대가 무력을 쓴다해도,

 

무력으로 대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뭔가 많이 배우고, 교양이라는 것을 많이쌓은 인간일 수록

 

그건 더욱 자명한 일이다.

 

 

 

사람들은 인간대 인간의 이름으로 설득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어떠한 사안발생시 상대방의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며,

 

무력으로 인간과 세상을 굴복시키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는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 같다.

 

 

 

나의 고민이 이러해서,

 

나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어느 과학자와 술자리를 가졌다.

 

나의 고민을 듣고 그 과학자는 대답했다.

 

 

 

" 사실, 말이 좋아. 네가 정의의 사도이지.

 

  네가 좀 성질이 더럽지......

 

  기분 안내키면 화부터 내고 변신하니까.....

 

  그런데 사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너에게 쉽게 못하지.

 

  네가 혹시라도 화나면 또 무섭거든. 막 때려 부쉴거고......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맞는 말이었다.

 

솔직한 사람들의 마음을 내 앞에 앉아 있는 과학자의 입을 통해

 

들어보니, 더욱 더 신빙성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술에 취한 나의 몸은 빨개지기보다,

 

파래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