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방 후에도 필자의 마음은 태양이 남기고 가는 붉은 노을처럼, 그 무언가에 물들어가고 있다. 지금부터 그 무언가를 풀어내 보고자 한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반전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 반전이라 하면 '뒤집는다'라는 단순한 풀이가 가능하다. 보통의 반전은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하지만, 이번 김인영 작가의 [태양의 여자]는 그야말로, 심리전쟁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망설임이 없을 정도였다(물론, 중-후반부에 집중되었지만). 심리 반전을 통한 극의 전개로 말미암아 많은 시청자는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필자는 예외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 김한숙(신도영의 본명)이 만들어내는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쉽사리 보이지 않는 작은 호수에 발 담그고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윤사월(이하나 분)은 홍은섭(강지섭 분)으로부터 신도영(김지수 분)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월의 분노는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지영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끝까지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도영의 뒷모습에 더 큰 분노를 느꼈던 거다. 이에 많은 시청자는 신도영의 뻔뻔함과 뉘우침 없는 가식적인 모습에 대한 질책과 비난을 수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사월의 복수는 당연하며 그보다는 복수의 방법과 강렬함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막상, 윤사월의 차분하면서도 맹렬한 복수가 펼쳐지자 시청자의 반응은 의외의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통쾌하다' '당해도 싸다' '인과응보다'라는 반응이 대세를 이룰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신도영을 동정하는 쪽으로 급속히 쏠렸던 거다. 처음엔 신도영을 '악녀'라고 단정 짓고 그에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던 시청자조차도 차츰, 도영의 눈물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던 거다. 어린 동생을 버린 신도영의 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큰 죄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신도영이 너무 불쌍하네요... 라는 반응을 보고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죄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도영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솟아나는 것은 바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감싸 안으려는 숨겨진 본능이 아닐까?' 적어도 필자는 그렇다. 신도영을 '악녀'라 단정 짓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만약, 말한다면... 그 순간, 회색연필 역시 이미 '악남'이며,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고 만다. 그러니 어찌! 어린 한숙이와 한배를 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너무 많은 장면과 대사로 필자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도영의 마지막 눈빛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퍼즐처럼 일사불란하게 정리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지금도 두 자매의 애틋한 마지막 뒷모습에 이어지는 노랫소리가 잔잔히 밀려오는 듯하다. 단순한 사랑이야기도, 그렇다고 전혀 이해하지 못할 복수이야기도 아니었다. 인간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서 흘린, 두 자매의 한(恨). 뜨거운 태양마저 녹여버릴 듯, 그 숨 막혔던 두 자매의 한(恨)을 가슴에 담아두고서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영일 안 데려오는 건데. 도영일 보면,
마음 한 구석이 늘 불편했어요. 걘, 내가 애를 못 낳는 여자라는 걸
비춰주는 거울 같았어요."
다 들어버린 한숙이... 백점 맞은 시험지를 찢어버리고,
가슴 속 뜨거운 설움을 터뜨린다.
--입양과 파양. 민감한 문제를 다루다 보니, 여느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뜨거운 설전이 오갔다. 인제야 대한민국은 국내 입양이 국외 입양을 앞질렀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 이유는 모두 잘 알다시피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여유로워진 경제적 여건. 둘째는 혈연관계에 대한 무한집착에서 차츰차츰 벗어남과 동시에 입양에 대한 건전한 사고의 형성이 사회적으로 꾸준히 정착되어가고 있음이다. 그러나 여기서 꼭 짚어봐야 할 것은, 수치상의 국내 입양률의 증가에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저는 안 된다는 거다.
"나가란다고 나가니? 더 맞고 싶어? 얼른 들어가자."
바라보는 도영의 친모. 그때라도 늦지 않았었는데...
"왜 저를 고르셨어요? 80명이 같이 살았어요. 그 많은 애들 중에...
왜 하필, 저를 골라오셨어요?"
--입양 부모의 성품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절실히 필요하다. [태양의 여자]에서 보여준 김한숙의 입양은 그야말로 대실패였다.
--비극적인 두 자매의 운명을 만든 결정적 요인은 입양 그 자체가 아니라 입양 후, 최정희(정애리 분) 교수와 신수호(강인덕 분) 고문의 입양한 한숙에 대한 태도이다. 또한, 안타까움에 속이 타들어갔던 장면도 생생하다. 너무도 절박한 현실 앞에서 자식을 보육원에 맡기는 부모의 심정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에서 보여준 신도영 친모의 모습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숙이가 입양 된 집에서 상처받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품으로 한숙이를 다시 데려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친모는 이렇게 밝힌다. 가난한 자신과 함께 사는 것보다 부유하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이 더 낳을 것 같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커버린 한숙이의 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친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햇볕을 받으며 자라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과 조건은 없다는 것을. 윤사월의 인생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친 판단이었다. 부디, 다시는 이런 착각으로 어린아이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입양이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거다. 사랑과 신뢰로써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의 일원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얼마나 신중하고 또 신중히 결정해야 하겠는가. 최 교수 부부의 입양이 실패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충동적인 결정 때문이다. 신수호 고문은 입양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도 파고들어 보면 사회적 책임감에서 입양을 생각한 것이 아닌, 자신의 아내가 10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여 심한 심적 고통을 겪는 것이 안타까워 선택한 입양이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최 교수다. 보육원에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긴 최 교수는 보육원장이 소개해준 은섭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우연히 홀로 창문 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한숙이를 발견하게 되고, 운명(?)적인 끌림으로 한숙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최 교수 부부를 보자 울먹이이다 버럭! 최 교수 품에 안겨버리는 한숙이었다. 입양이 내키지 않았던 최정희 교수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뒤집어놓은 결정적 계기가 된 거다. 준비되지 않은 입양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한숙이는 그때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스스로 택하지 않은 운명의 굴레 속으로 들어간 한숙이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최 교수 부부와 훗날 태어난 지영이의 인생에도 커다란 상처를 남기게 된 것을 볼 때마다 이 장면이 떠올랐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준비되지 않은 입양이 불러오는 상처다.
--입양 부모의 사회적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 상처 주는 입양의 상당 부분을 처음부터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입양 부모의 입양 동기, 경제력, 이웃의 견해 등과 아울러 무엇보다 입양 부모의 인품이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입양하였다 하더라도 사후, 몇 년 동안의 살펴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입양 전과 입양 후의 사람 심리 변화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테니까! 또한, 사회복지 분야에서 상당한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곰탕집에서 홀로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는 윤사월.
'가족'이라는 단어가 그녀에겐 얼마나 생소하고 그리웠을까!
"오빠, 나 어떡하지? 내가 원하던 일 했는데... 나 왜 미칠 것 같지?
마음 아퍼. 기분 나뻐! 힘들어 죽겠어!!"
--윤사월. 그녀의 삶에 대한 조명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보육원에서 자라나 스스로 학업을 마치고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녀. 무엇보다 그녀의 긍정적 사고와 당찬 행동에 필자의 마음도 끌린 것은 사실이다. 그 이면에 감추어진 아픔과 외로움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사월의 지난날의 아픈 세월. 그리고 자신을 지켜줄 이는 자신밖에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되었을 강하고 거센 행동들. 많은 시청자의 불만에 필자도 충분히 공감한다. "왜, 윤사월의 아픔은 그려주지 않고 신도영의 상처와 외로움에만 극의 흐름을 쏟아 붓는가!"라는. 필자는 김인영 작가의 선택이자 고유 권한이라고 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인물의 선택은 당연히 작가의 몫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모든 시청자를 만족하게 해주는 드라마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각본 없는 스포츠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보았지 않았는가!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의 짜릿한 우승의 순간을. 그 순간, 그 어떤 이도 대한민국 야구팀 소속 여러 작가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리라 굳게 믿는다.
--[태양의 여자] 주인공은 눈에 보이기에는 윤사월과 신도영 두 사람이다. 하지만, 가슴이 느끼는 주인공은 신도영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 주변 인물들은 모두 육체만 커버린 어린 한숙이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과 슬픔,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가장 깊이 자리한 외로움을 형상화 시켜주는 자극제이자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하지만, 사월의 아픔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가슴 미어지게 하던 사월과 친부, 신수호 고문과의 만남. 그리고 최정희 교수와 사월의 전화선을 타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시청자의 눈물샘을 여지없이 터뜨렸다. 사월의 가여운 운명은 어쩌면 도영의 운명에 종속되었던 것은 아닐까? 두 자매의 슬픈 운명은 결국, 하나의 물줄기를 타고 그렇게 함께 조용히 흘러왔으리라.
[태양의 여자]를 보내면서-1
--종방 후에도 필자의 마음은 태양이 남기고 가는 붉은 노을처럼, 그 무언가에 물들어가고 있다. 지금부터 그 무언가를 풀어내 보고자 한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반전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 반전이라 하면 '뒤집는다'라는 단순한 풀이가 가능하다. 보통의 반전은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하지만, 이번 김인영 작가의 [태양의 여자]는 그야말로, 심리전쟁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망설임이 없을 정도였다(물론, 중-후반부에 집중되었지만). 심리 반전을 통한 극의 전개로 말미암아 많은 시청자는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필자는 예외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 김한숙(신도영의 본명)이 만들어내는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쉽사리 보이지 않는 작은 호수에 발 담그고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윤사월(이하나 분)은 홍은섭(강지섭 분)으로부터 신도영(김지수 분)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월의 분노는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지영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끝까지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도영의 뒷모습에 더 큰 분노를 느꼈던 거다. 이에 많은 시청자는 신도영의 뻔뻔함과 뉘우침 없는 가식적인 모습에 대한 질책과 비난을 수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사월의 복수는 당연하며 그보다는 복수의 방법과 강렬함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막상, 윤사월의 차분하면서도 맹렬한 복수가 펼쳐지자 시청자의 반응은 의외의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통쾌하다' '당해도 싸다' '인과응보다'라는 반응이 대세를 이룰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신도영을 동정하는 쪽으로 급속히 쏠렸던 거다. 처음엔 신도영을 '악녀'라고 단정 짓고 그에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던 시청자조차도 차츰, 도영의 눈물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던 거다. 어린 동생을 버린 신도영의 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큰 죄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신도영이 너무 불쌍하네요... 라는 반응을 보고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죄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도영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솟아나는 것은 바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감싸 안으려는 숨겨진 본능이 아닐까?' 적어도 필자는 그렇다. 신도영을 '악녀'라 단정 짓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만약, 말한다면... 그 순간, 회색연필 역시 이미 '악남'이며,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고 만다. 그러니 어찌! 어린 한숙이와 한배를 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너무 많은 장면과 대사로 필자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도영의 마지막 눈빛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퍼즐처럼 일사불란하게 정리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지금도 두 자매의 애틋한 마지막 뒷모습에 이어지는 노랫소리가 잔잔히 밀려오는 듯하다. 단순한 사랑이야기도, 그렇다고 전혀 이해하지 못할 복수이야기도 아니었다. 인간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서 흘린, 두 자매의 한(恨). 뜨거운 태양마저 녹여버릴 듯, 그 숨 막혔던 두 자매의 한(恨)을 가슴에 담아두고서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영일 안 데려오는 건데. 도영일 보면,
마음 한 구석이 늘 불편했어요. 걘, 내가 애를 못 낳는 여자라는 걸
비춰주는 거울 같았어요."
다 들어버린 한숙이... 백점 맞은 시험지를 찢어버리고,
가슴 속 뜨거운 설움을 터뜨린다.
--입양과 파양. 민감한 문제를 다루다 보니, 여느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뜨거운 설전이 오갔다. 인제야 대한민국은 국내 입양이 국외 입양을 앞질렀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 이유는 모두 잘 알다시피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여유로워진 경제적 여건. 둘째는 혈연관계에 대한 무한집착에서 차츰차츰 벗어남과 동시에 입양에 대한 건전한 사고의 형성이 사회적으로 꾸준히 정착되어가고 있음이다. 그러나 여기서 꼭 짚어봐야 할 것은, 수치상의 국내 입양률의 증가에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저는 안 된다는 거다.
"나가란다고 나가니? 더 맞고 싶어? 얼른 들어가자."
바라보는 도영의 친모. 그때라도 늦지 않았었는데...
"왜 저를 고르셨어요? 80명이 같이 살았어요. 그 많은 애들 중에...
왜 하필, 저를 골라오셨어요?"
--입양 부모의 성품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절실히 필요하다. [태양의 여자]에서 보여준 김한숙의 입양은 그야말로 대실패였다.
--비극적인 두 자매의 운명을 만든 결정적 요인은 입양 그 자체가 아니라 입양 후, 최정희(정애리 분) 교수와 신수호(강인덕 분) 고문의 입양한 한숙에 대한 태도이다. 또한, 안타까움에 속이 타들어갔던 장면도 생생하다. 너무도 절박한 현실 앞에서 자식을 보육원에 맡기는 부모의 심정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에서 보여준 신도영 친모의 모습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숙이가 입양 된 집에서 상처받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품으로 한숙이를 다시 데려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친모는 이렇게 밝힌다. 가난한 자신과 함께 사는 것보다 부유하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이 더 낳을 것 같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커버린 한숙이의 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친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햇볕을 받으며 자라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과 조건은 없다는 것을. 윤사월의 인생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친 판단이었다. 부디, 다시는 이런 착각으로 어린아이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입양이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거다. 사랑과 신뢰로써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의 일원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얼마나 신중하고 또 신중히 결정해야 하겠는가. 최 교수 부부의 입양이 실패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충동적인 결정 때문이다. 신수호 고문은 입양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도 파고들어 보면 사회적 책임감에서 입양을 생각한 것이 아닌, 자신의 아내가 10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여 심한 심적 고통을 겪는 것이 안타까워 선택한 입양이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최 교수다. 보육원에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긴 최 교수는 보육원장이 소개해준 은섭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우연히 홀로 창문 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한숙이를 발견하게 되고, 운명(?)적인 끌림으로 한숙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최 교수 부부를 보자 울먹이이다 버럭! 최 교수 품에 안겨버리는 한숙이었다. 입양이 내키지 않았던 최정희 교수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뒤집어놓은 결정적 계기가 된 거다. 준비되지 않은 입양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한숙이는 그때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스스로 택하지 않은 운명의 굴레 속으로 들어간 한숙이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최 교수 부부와 훗날 태어난 지영이의 인생에도 커다란 상처를 남기게 된 것을 볼 때마다 이 장면이 떠올랐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준비되지 않은 입양이 불러오는 상처다.
--입양 부모의 사회적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 상처 주는 입양의 상당 부분을 처음부터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입양 부모의 입양 동기, 경제력, 이웃의 견해 등과 아울러 무엇보다 입양 부모의 인품이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입양하였다 하더라도 사후, 몇 년 동안의 살펴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입양 전과 입양 후의 사람 심리 변화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테니까! 또한, 사회복지 분야에서 상당한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곰탕집에서 홀로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는 윤사월.
'가족'이라는 단어가 그녀에겐 얼마나 생소하고 그리웠을까!
"오빠, 나 어떡하지? 내가 원하던 일 했는데... 나 왜 미칠 것 같지?
마음 아퍼. 기분 나뻐! 힘들어 죽겠어!!"
--윤사월. 그녀의 삶에 대한 조명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보육원에서 자라나 스스로 학업을 마치고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녀. 무엇보다 그녀의 긍정적 사고와 당찬 행동에 필자의 마음도 끌린 것은 사실이다. 그 이면에 감추어진 아픔과 외로움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사월의 지난날의 아픈 세월. 그리고 자신을 지켜줄 이는 자신밖에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되었을 강하고 거센 행동들. 많은 시청자의 불만에 필자도 충분히 공감한다. "왜, 윤사월의 아픔은 그려주지 않고 신도영의 상처와 외로움에만 극의 흐름을 쏟아 붓는가!"라는. 필자는 김인영 작가의 선택이자 고유 권한이라고 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인물의 선택은 당연히 작가의 몫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모든 시청자를 만족하게 해주는 드라마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각본 없는 스포츠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보았지 않았는가!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의 짜릿한 우승의 순간을. 그 순간, 그 어떤 이도 대한민국 야구팀 소속 여러 작가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리라 굳게 믿는다.
--[태양의 여자] 주인공은 눈에 보이기에는 윤사월과 신도영 두 사람이다. 하지만, 가슴이 느끼는 주인공은 신도영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 주변 인물들은 모두 육체만 커버린 어린 한숙이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과 슬픔,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가장 깊이 자리한 외로움을 형상화 시켜주는 자극제이자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하지만, 사월의 아픔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가슴 미어지게 하던 사월과 친부, 신수호 고문과의 만남. 그리고 최정희 교수와 사월의 전화선을 타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시청자의 눈물샘을 여지없이 터뜨렸다. 사월의 가여운 운명은 어쩌면 도영의 운명에 종속되었던 것은 아닐까? 두 자매의 슬픈 운명은 결국, 하나의 물줄기를 타고 그렇게 함께 조용히 흘러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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