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C 할아버지

전다해200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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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넬 할랜드 샌더스는 1890년 9월9일에 태어났다.


그의 나이 65세가 되던해부터 그는 활발하게 치킨 프렌차이징을 시작했다.
이제는 그의 치킨 프렌차이징이 세계에서 몇안되는 큰외식산업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커넬 샌더스는 패스트푸드 서비스업계의 선구자로서 기업가정신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커넬이 6살 때 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했어야만 했고, 어린 커넬은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가 7살이 되던 해에는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가 10살 되던해, 농장 근처에서 월 $2 (약 2,300원)을 받으며 일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커넬이 12살때, 그의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그는 핸리빌 (Henryville, Indiana)에서 떠나 그린우드 (Greenwood, Indiana)로 떠났다. 그 후 그는 몇몇개의 직업을 가지며 그의 젊은시절을 보냈고, 결국 철도소방원이 되었다. 그는 법도 배웠으며, 보험외판도 했으며, 오하이오강의 유람선에서도 일했으며, 타이어도 팔았고, 주유소(편의점이 딸린)도 경영을 했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 코빈(Corbin, Kentucky)에서 배고픈 여행객들이 주유소에 들렀을 때 요리를 해주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식탁에서 여행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것이었다.

점점더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자, 그가 운영하던 주유소 건너편에 142명이 앉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9년이상의 기간동안 11가지 맛좋은 양념을 완벽하게 완성시켰으며, 그 비법은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

샌더스의 유명세는 점점 더 성장했다. 주지사 루비 라푼 (Ruby Laffoon)은 그의 켄터키주의 대표적인 요리로 그의 치킨을 승화시킨 것을 기려 그를 켄터키주의 명예 대령 (Colonel: 커넬)으로 칭하였다. (영국에서 나라에 위대한 공을 세운사람에게 백작이나 공작의 칭호를 내리는 것과 비슷한 제도임). 그리고, 1939년도에 그의 첫번째 레스토랑이 던칸 하인즈 "Adventures in Good Eating" (맛있는 음식점등을 소개하는 잡지)지에 실리게 되었다.

1950년대 초, 새로운 고속도로가 Corbin을 가로질러 가게 되었다. 그의 사업을 접어야 함을 안 후, 그는 그의 사업을 경매에 넘겼다. 사회보장기금 $105로 그의 생활을 근근히 이어 가게 되었다.

 

그의 튀김 닭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그는 1952년 치킨 프렌차이징 시스템을 시작했다. 그는 차를 타고 다니며 여러도시를 돌며 그의 치킨을 레스토랑의 요리사와 직원들에게 맛 보였다.
그의 치킨맛을 좋아하는듯 하면, 단순히 악수만으로 계약을 성사시켜 닭 1마리당 5cent (약 57원)정도의 로열티를 요구하게 되었다. 1964년경, 그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여600개이상의 매장을 프렌차이즈로 만들었다. 1980년도에 켄터키주지사가 된 존 브라운에게 그의 프렌차이즈 회사를 2백만달러에 팔았다. 커넬의 KFC를 대변하는 인물로 계속적으로 남게 되었다. 1976년도에는 커넬이 전세계에서 2번째로 인정받는 유명인으로 조사되었다. 새로운 주인아래에서의 KFC는 좀더 빨리 성장하게 되었다. 1966년도에 주식을 공개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9년도에는 NYSE (뉴욕주식거래장)에 상장 되었다.

1971년도에 회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매장이 3,500개이상으로 전세계적으로 퍼져있을 때, 휴브레인사(Heublein사)에서 2억 8천 5백만 달러(3,277억원)에 인수하였다. KFC는 R.J.Reynolds사의 보조를 받게 되었으며, 1982년도에 Heublein사는 RJR Nabisco에 의해 인수 되었다. 1986년도에 RJR Nabisco사에 소속된 KFC는 Pepsi 에게 약 8억 4천만달러(9,660억원)에 인수 되었다. 1997년 1월, 펩시사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몇 개의 레스토랑을 개인 회사로 분배시켰다 (KFC, Pizza Hut, Taco Bell). Tricon (Triple Concept)이란 세계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 시스템을 소유한 회사가 인수 하였다.

KFC, Pizza Hut, Taco Bell을 포함하여 약30,000개 이상의 매장을 전세계 100여개국에 소유하고 있다. 커넬이 1980년에 백혈병으로 사망직전 까지, 최소한 400,000Km이상을 여행하며 그가 세운 KFC 왕국을 여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은 그가 65세 때 받았던 105달러의 사회보장지급금으로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과 105달러




나이 마흔 하나의 중년인 허란 선더스는 미국 켄터키주의 코빈이란 조그만 마을 입구 도로변에 조그만 음식점을 내고 그곳을 지나는 길손에게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 팔아왔습니다. 그는 수십년 동안 자기만의 비법을 동원해 통닭 구이를 한 결과 한 번 그 식당에 들려 맛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맛있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이 66세가 되었을 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운영하고 있던 조그만 레스토랑에서 10킬로 쯤 떨어진 곳에 고속도로가 새로 나자 그의 식당을 찾는 손님이 아무도 없게 되어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앞 길이 막막했습니다. 저축해 놓은 돈도 없었고 학력이라고는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 뿐이어서 늙은 아내와 여생을 꾸려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105달러의 실업보험금이 수표로 우송되어 왔습니다.

그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그 수표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늙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앞으로 이 돈을 절약해서 여생을 보내던가, 아니면 이것을 밑천으로 뭔가를 해 보던가, 어찌했으면 좋겠소?"

"글쎄요, 제가 뭘 알아야죠."

그의 아내도 사실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으나, 뾰족한 해답이 나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며칠 동안 궁리를 한 끝에 105달러에 자신의 운명을 걸기로 했습니다.
그는 낡은 자동차에 그가 비법을 동원해 만든 맛있는 통닭 구이를 싣고 이것을 사 줄 식당을 찾기 위해 미국 남부를 수 없이 헤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맛 좋은 프라이드 치킨을 팔아 주겠다는 식당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나이 칠순을 넘겨서 전 세계적으로 연간 매상고가 몇십억 달러가 넘는 대사업으로 일구어 나갔습니다.

인정 많은 얼굴에 검정테 안경을 낀 백발의 노인이 미소를 짓고 있는 상표.

 

바로 전 세계의 닭고기 산업에 대혁명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프랜차이즈 닭고기 판매점의 원조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시초였습니다.
 

"결국 실패란, 다음에 보다 크고 좋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합니다. 나는 내 경험으로 이런 것을 배웠습니다. 누구든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 본다면, 온갖 고민 속에서 희망에의 밝은 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