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2월, 그는 일본과의 어업협정에 관심조차 없었다. 3,000여 척의 어선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어민들은 슬퍼했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다음날 어선들을 북한에 보내자 했다. 같은 해 3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해서 슬퍼했다. 하지만 그는 기계를 뜯어다 북한에 설치해주자 했다. 99년9월, 그는 타임지에 말했다. "식사 때 음식이 남으면 북한 동포들의 얼굴이 떠올라 몹시 괴롭다. 충분히 돕고 싶지만 국민여론이 부정적이어서 애를 먹고 있다".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일자리를 죽이며 경제를 파괴했다. 취로사업이라는 기상천외의 복지사업을 만들어 상대적 소수의 부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다 상대적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 이른바 공공근로자들에게 돈을 배급해 주었다. 들에 가서 일하면 하루에 2만3천원을 받고, 산에 가서 일하면 3만7천원을 받았다. 술 마시고 낮잠 자는 사람들에게 공돈을 준 것이다. 놀면서 돈을 받는데 누가 밭일을 하고 공장 일을 하겠는가? 근로의식을 죽인 것이다. 그가 쓰러진 중소기업의 기계들을 뜯어다 북한에 설치하자고 하자 한전이 그의 뜻을 따랐다. 연간 5조의 적자를 내면서도 북한이 그 기계들을 돌려야 한다며 5,000억 원을 들여 발전소를 지어주고, 송전선을 세워, 남한 전기를 보내겠다 했다. 2000년10월. 60만톤의 식량을 북에 날치기식으로 보냈다. 3,120억 원어치였다.
98년4월부터 그의 임기 중에 여섯 차례에 걸쳐 104만톤의 비료가 갔다. 4,660억 원어치였다. 2001년10월, 전국 보건소에 있는 결핵 백신을 한 병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다가 북한에 주었다. 30만 명분이었다. 그리고 보건소에는 입단속을 시켰다. 2000년, 러시아 대통령에 편지를 보냈다. 러시아에서 받을 14억7천만 달러를 받지 않을 테니, 러시아도 북한에서 받을 50억 달러를 받지 말아달라는 제안이었다. 정부가 사용한 남북 협력기금이 매년 5,000억 이상이었다. 최초 2년간만 해도 1조864억 원이 집행됐다.
현대에 이어 다른 재벌들도 닦달하여 북한에 투자 명목으로 퍼준 돈이 5,960억 원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북한에 간 돈은 2조5,500억 원이다. 금강산 사업은 사업이 아니라 적장에게 군자금을 대주기 위한 위장사업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임기 중 금강산을 통해 10억 달러 이상이 갔다. 여기에 더해 몰래 준 돈도 있다. 얼마의 돈이 갔는지 누구도 모른다. 단지 미국이 그 중 5억 달러를 찾아냈을 뿐이다. 적장은 이를 가지고 남침용 무기를 구매했다고 미국이 발표했다.
금강산 사업은 김정일에 돈을 대주기 위한 사업이었다. 한 사람이 하루 입산하는 데 100달러를 바치기로 계약을 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관광객이 있으나 없으나 무조건 연간 50만 명이 간 것으로 쳐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에 걸쳐 '존재하지도 않는 금강산 독점사업권'을 명분으로 하여 9억4,200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 그 돈을 주고 우리 관광객들은 어떤 관광을 했는가? 바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제재를 받고, 카메라도 빼앗기고, 민영미 여인처럼 1주일씩이나 감금되어 문초를 받았다. "한국"과 "대한"은 북한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이유로 한국일보 기자는 "한국"이라는 낱말 때문에 H일보라는 명찰을, 대한매일은 "대한"이라는 낱말 때문에 D일보라는 명찰을 달아야 했다. 관광이 아니라 굴욕이었다.
관광객이 없어도 북한에는 자동적으로 매년 3억7백만 달러가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관광객이 없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주면 비난이 쏟아진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국민 총동원령이었다. 학생도 집단적으로 보내고 노인들도 공짜로 보냈다. 금강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등극하는 반면 설악산과 한라산은 초라하게 허물리고 말았다. 산을 가진 우리 지역경제가 망가진 것이다. 북한 땅이 성지가 되고, 북한정권이 상전으로 탈바꿈했다.
북한은 이 엄청난 돈을 가지고 무얼 했는가?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신예전투기 50대를 구입했다. 스커드 미사일을 500기에서 600기로 늘렸다. 휴전선 대포를 25% 증강했다. 전차와 화학무기도 전방으로 추진했다. 휴전선에 전진 배치된 군사력을 65%에서 70%로 늘렸다. 10년 이래 최대 규모의 훈련도 했다. 이런 기막힌 정보는 미국이 알려주었고 우리 정부는 쉬쉬했다. 정부가 북한에 남침용 군자금을 대준 것이다.
북한은 또 우리가 퍼준 돈으로 북한강 상류와 임진강 상류에 8개의 댐을 건설했다.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총 100㎞의 "지하수로"를 만들어 우리에게 흘러와야 할 물을 머나 먼 원산 앞 바다로 빼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강 상류에 유입되는 수량이 5분의 1 정도로 줄었다. 최근에는 임진강 상류인 황강에 5개의 댐을 만들어 그 물을 개성공단으로 돌리고 있다. 이로 인해 경기 북부는 심한 식수난과 홍수에 고통을 받고 있다.
2001년 6월, 북한 상선들이 제주해협을 유린했다. 대통령이 UN사 자동교전규칙을 박탈하여 우리 해군의 손발을 묶었다. 그래서 북한 선박 한 척에 우리 함정 6척이 31시간이나 따라다니며 제발 좀 나가달라고 애걸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에게 무해통항권을 인정해 주자했고, 바다의 휴전선인 북방한계선이 너무 넓으니 일부를 북한에 양보하려 하다가 저항에 부딪쳤다. 1999년6월15일 발발한 연평해전은 우리 해군의 화려한 완승으로 끝났다. 그런데 전투에서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 장군들은 곧바로 천대를 받아 군에서 나갔다. 설욕전을 벼르던 북측은 3년 뒤인 2002년6월29일 서해교전을 일으켰다.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일방적인 참패였다. 대통령은 국가를 지키다 장열하게 생명을 바친 용사들을 괄시했고 바로 그날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임동원과 함께 일본으로 월드컵 구경을 나갔다.
북한 함정은 구식이고 우리 함정은 신형이다. 북한 함정에 장착된 총포에는 자이로 시스템이 없어 배가 파도에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총 끝이 요동을 친다. 하지만 우리 함정에 장착된 총포는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총 끝이 목표를 꽉 물고 있다. 이러한 "자이로 조준시스템"은 2001년 12월, 북한 괴선박을 몇 초 이내에 침몰시킨 일본 순시선에도 있었다. 우리 해군 총포의 위력은 이런 순시선이 문제가 아니게 크다. 우리에겐 더 정교한 미사일도 많다. 우리 함정은 북한 함정보다 10노트 이상 더 빠르다. 싸우면 북한 함정은 적수가 되지 않는다.
6.29에서 참패한 것은 김대중이 지휘관의 소관사항인 야전작전권을 박탈한 데서 기인했다. 김대중은 "절대로 먼저 쏘지 말라", "쏘려면 청와대에 보고부터 하라"는 기막힌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 더해 군수뇌는 매우 이상한 "교전규칙"을 만들었다. 그 교전규칙이 어떤 것인지를 음미해보면 당시의 군수뇌는 한국군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적의 포구에 가슴을 정면으로 대주고 처분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당시 제정됐던 아래의 교전규칙은 기존의 UN사교전규칙을 뒤엎은 것이었다.
첫째, 소총 유효사거린인 450m에서 경고방송을 하라는 것이다. 6.29에서 북한이 발사한 85 미리 포의 명중 사거리는 8km나 된다, 450m 앞에까지 다가가서 경고방송을 하라는 것은 아예 얼굴을 갖다 대주라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200m에서 시위기동을 하라는 것이다. 아예 맞아 죽으라는 것이다.
세 번째 규칙은 450m에서 차단기동을 하라는 것이다. 적함은 선수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 함정은 기다랗게 늘어진 옆구리를 보이며 적의 앞을 가로질러 가라는 것이다. 심장을 적의 총부리에 내주고 한동안 옆걸음을 해서 통과하라는 것이다. 북한의 처분만 바라라는 명령이다.
6.29당시, 바로 이 제3단계 수칙을 수행하다가 우리 해군은 비참하게 테러를 당한 것이다. 교전규칙은 처음부터 맞아죽으라고 만든 것이었다. 2002.6.30일자 조선일보 3면에 필자는 이런 글을 썼다. “북 경비정이 갑자기 85mm 함포로 불을 뿜었다. 고속정 2척에 타고 있던 장병들은 즉각 총원 전투배치 상태로 돌입했다. 모든 장병들이 화해와 평화만 믿고 전투배치조차 하지 않은 채 접근했던 것이다. 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저들은 우리 장병을 속이기 위해 6.27일과 28일에도 왔다가 포구를 우리 경비정에 조준하고는 씨익 웃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29일에도 포구를 경비정에 조준했다. 장병들은 이번에도 의례히 씨익 웃고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긴장을 풀었을 것이다. 이런 속임수로 저들은 일방적으로 테러를 가한 것이다”
바다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장열하게 전사한 6명의 전사자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부터 마치 역적이나 되는 것처럼 괄시를 받다가 사건 6년만인 2008년6월29일에야 비로소 국가추모일로 지정됐다.
2000년 6.15일, 김대중은 모든 국민에 말했다. "앞으로 전쟁은 없다". 2002년 4.3-4.6일, 임동원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북한에 가서 5시간동안 김정일과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의심하지 말자,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 2002.5.24일, 김동신 국방장관이 주적개념을 땅에 묻겠다고 선언했다. 적을 의심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 세 사람이 국민과 군에게 의심을 풀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을 적이라 부르지 말라한 것이다. 적을 의심해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적을 의심하지 말라 명령하면 그가 바로 의심받아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는 국보법을 철폐하여 좌익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해 주려 했다. 반미. 반일 감정을 선동하여 쇄국주의와 주체사상을 식목했다. 주한미군과 주월한국군을 살인집단으로 매도했다. 용공세력을 비호하고 용공주의자들을 요직에 중용했다. 국가보안법에 걸려 8년간 옥살이를 했던 전직 국회의원이 버젓이 국회에 다니며 무기구매에 간여했다.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받아 옥에 갇혀있던 사람을 끄집어내서 장관을 시켰다. 노동당 창당 55주년 기념행사에 가서 축사를 읽고, 파주에 있는 인민군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한 사람들이 부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고, 대학총장을 했다.
그의 분신, 임동원은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판결난 범민련을 대북 연락창구로 이용했다. 평양에서 열린 적화통일 행사에 311명의 방문단을 날치기식으로 보냈다. 그 중 100여명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 그래서 그는 2000년 9월3일, 국회에서 탄핵을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과 1주일 만인 9.11일에 직제에도 없는 장관급 자리를 청와대에 만들어 놓고, 그를 앉혔다. 그는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의심스러운 행동을 계속했다.
2001년8월부터 전교조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념교육을 시키기 위해 불법 교육지침서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을 내놓고 가르쳤다. 책에는 '인민군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통일사회'가 그림으로 영상화돼 있다. 북한은 불쌍한 우리 동포이고, 우리의 주적은 미국과 미국을 추종하는 냉전세력이며 이들 냉전기득권세력은 우리의 적이라고 가르치라 했다. 개인의 삶에 불편을 주는 국가안보는 부정돼야 한다고 가르치라 했다.
4.3 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경찰관 17명을 불태워 죽인 동의대 사건 등 반정부 데모 사건들은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키는 반면, 정작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가 싸운 정부군을 박대하고 멸시했다. 당시의 군경은 국가폭력배로 규정했고, 군경과 그 가족들을 무참하게 살육한 사람들을 민주화 열사로 규정했다. 어제의 충신이 역적이 되고 어제의 역적이 충신이 된 것이다, 이는 국가가 망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01년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그는 6.25를 '실패한 통일 노력'이라고 말했다. 한국전 역시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뜻이다. 국가의 정통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반면 북한 정권에 새로운 정통성을 부여하려 했다.
9.11 테러 이후 북한은 미국의 주적으로 떠올라 있다. 북한은 세계에서 테러기술과 테러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불법무기 소지자가 됐다. 미국은 세계 각국을 향해 미국편에 서든지 테러 편에 서든지 태도를 확실히 하라 했다. 그런데 김대중은 주저 없이 북한 편에 섰다. 2001년 4월3일부터 3박4일간 임동원 특사가 평양을 다녀왔다. 갈 때에는 대량살상무기로 인한 미북간의 전쟁을 막으러 간다고 했지만 돌아온 그는 전혀 다른 것을 내놓았다. 쌀 50만톤, 비료 30만톤을 주겠다 했다. 경원선과 동해선을 개통하여 철의 실크로드로 연결하는 "철로연결"이 평양방문의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전쟁을 막으러 간 것이 아니라 전쟁을 열려고 간 것으로 보였다.
실크로드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2002.4.8일자 도쿄 신문은 러시아철도 기술연구소가 북한 철도의 안전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도했다. 두만강에서 원산. 평강을 잇는 동해안철도 700km의 전 구간이 위험한 상태이며 터널 130군데, 교량 742군데의 보수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원선은 어떤가? 철로지반이 약해 7대의 화차만 다닌다. 전기가 불충분하여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남한에서 1시간에 가는 거리를 3-4일간 간다. 대통령이 그토록 선전했던 실크로드는 어디에도 없다.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결국 남침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상천외의 생각으로 150조의 공적자금을 만들어냈다. 또 다른 200여조의 국가채무를 졌다, 100여조의 연기금을 마구 풀어헤쳤다. 그는 이런 돈을 풀어 가장 먼저 금융기관을 국유화했다. 은행에 빚을 진 600여 개의 대기업, 중견기업들을 국유화했다. 기존의 공기업이 405개, 중앙정부가 108개, 지방정부가 297개를 가지고 있었다. 이 1,000여 개의 대형 기업들이 한 순간에 정부 소유가 됐다. 국영공화국이 된 것이다. 여기에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정치꾼들이 나가 연봉을 170%까지 올리고, 수당을 올리고, 판공비를 수백 프로씩 올리고, 하청업체 및 조폭들과 야합히여 돈을 털어 갔다. 그리고 또 다시 공자금을 넣어야 기업이 산다며 떼를 썼다. 공자금을 통제하는 부서도 없다. 풀어헤친 공자금은 추종세력에게 알아서 챙겨가라고 내놓은 돈으로 보였다. 전기료를 단 한번에 2배나 올렸고, 농촌 심야전기 시설비를 4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대폭 올렸다. 그리고 그 돈으로 북한에 전기를 준다고 했다.
기업들이 은행에 담보로 잡혔던 토지와 건물도 정부가 차지했다. 정부는 자산관리공사라는 대형 브로커 기구를 만들었다. 1,600명이나 된다. 이 브로커 기구가 망해가는 기업의 토지와 건물을 헐값으로 인수하여 급매물로 외국에 내놓았다. 골드만삭스, 론스타. 리만브라더스, 싱가포르투자청 등 해외 브로커 업체들에 고물가격으로 마구 팔아치웠다. 그들은 웬 떡이냐 싶어 이들을 사서 곧바로 다른 외국기업들에 되팔았다. 더러는 3배, 더러는 5배의 가격으로 횡재를 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외국 브로커 업체들이 자기 돈은 10-30%만 대고, 나머지는 국내 은행에서 빌려 가지고 샀다는 사실이다. 돈을 빌려줘 가면서 외국인들에게 폭리를 준 꼴이다. 왜 이런 짓을 했겠는가? 정권에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의도의 60배에 해당하는 금싸라기 땅이 외국인 소유가 됐다. 2000년12월27일자 매일경제신문은 "웬만한 빌딩 치고 외국인 손에 넘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이면계약의 존재에 대해서도 밝혔다. 강남에서 가장 큰 건물인 "현대 I-타워", 서울시청 옆에 있는 "파이낸셜센터", "벽산빌딩", "아시아나항공", "힐튼호텔", SK 증권, 동양증권, 쌍용증권, 고려증권, 대우증권, 여의도 KTB 빌딩, 은석빌딩, 한효빌딩, 대한방적 빌딩, 금호그룹 신사옥, 광주은행 사옥, "시티타워", "현대중공업빌딩" 등, 서울에서 가장 큰 건물들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팔아넘긴 돈은 두 동강으로 나뉘어 졌다. 공식계약서에 표시된 돈은 은행으로 들어갔고, 이면계약서에 들어 있는 돈은 저들의 주머니로 갔을 것이다. 공식계약서에 잡힌 돈은 외환보유고로 잡혔다. 정부는 툭하면 외환보유고가 늘어났다고 자랑을 했다. 하지만 그 외환보유고는 바로 이렇게 헐값에 팔아넘긴 잔돈이었다. 이면계약서에 쓰여 진 검은 돈이 얼마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걸고 기업을 요리했다. 빅딜이라는 생소한 낱말로 국민을 혼란시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을 마음에 드는 기업에 합쳐 주었다. 워크아웃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을 망하게 하거나, 빼앗았다. 빼앗은 기업은 추종세력에 나누어주었다. 기업의 살생부까지 만들어 가면서 겁을 주었다. 기업의 운명을 거머쥔 실세들에, 알아서 돈을 바치라는 신호였다. 기업은 앞을 다투며 저들에게 상납을 하면서 저들과 선이 닿는 연줄을 구해서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다.
불순한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김정일을 우상화시켰다. 청와대 비서가 김정일을 찬양했다. 월간조선 2000년 9월호에는 청와대 여비서가 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 "벌써부터 우리 장관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을 뵙게 되었으니 저처럼 크나큰 영광을 지닌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2000년 8.11일, 대통령이 46개 언론사 사장들을 김정일에 보냈다. 그들은 국빈대접을 받으며 행복해 했다. 김정일의 술자리 매너에 반했다. 더러는 귀국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김정일을 찬양하고 다녔다. 그들은 상호비방 중지를 내용으로 하는 '남북언론합의문'을 교환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보도를 저들의 입맛에 맞추어 주었다. 그때 김정일은 참으로 무서운 말을 했다. "통일은 내가 맘먹을 탓이다", "내 힘은 군력에서 나온다".
그래도 언론사 사장들은 그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일 이미지를 통 큰 호걸로 부각시켜 주었다. 그래서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9.7%나 된다고 했다. 초등학생의 90%가 김정일을 김대중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라 했다. 부인들 사회에도 김정일 오빠부대가 생겼었다. 남북정상이 만난 직후에 김정일이 지시한 공문 내용이다. "나의 통일관은 무력통일관이다", "인민군대는 반미, 반일, 반괴뢰 구호를 더 높이 들고 계급의 총창을 보다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원쑤들과 한 번은 싸워서 결판을 내야 한다"
절라도인간들의 우상 김대중. 그넘은 반역자였다
1999년2월, 그는 일본과의 어업협정에 관심조차 없었다. 3,000여 척의 어선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어민들은 슬퍼했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다음날 어선들을 북한에 보내자 했다. 같은 해 3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해서 슬퍼했다. 하지만 그는 기계를 뜯어다 북한에 설치해주자 했다. 99년9월, 그는 타임지에 말했다. "식사 때 음식이 남으면 북한 동포들의 얼굴이 떠올라 몹시 괴롭다. 충분히 돕고 싶지만 국민여론이 부정적이어서 애를 먹고 있다".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일자리를 죽이며 경제를 파괴했다. 취로사업이라는 기상천외의 복지사업을 만들어 상대적 소수의 부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다 상대적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 이른바 공공근로자들에게 돈을 배급해 주었다. 들에 가서 일하면 하루에 2만3천원을 받고, 산에 가서 일하면 3만7천원을 받았다. 술 마시고 낮잠 자는 사람들에게 공돈을 준 것이다. 놀면서 돈을 받는데 누가 밭일을 하고 공장 일을 하겠는가? 근로의식을 죽인 것이다. 그가 쓰러진 중소기업의 기계들을 뜯어다 북한에 설치하자고 하자 한전이 그의 뜻을 따랐다. 연간 5조의 적자를 내면서도 북한이 그 기계들을 돌려야 한다며 5,000억 원을 들여 발전소를 지어주고, 송전선을 세워, 남한 전기를 보내겠다 했다. 2000년10월. 60만톤의 식량을 북에 날치기식으로 보냈다. 3,120억 원어치였다.
98년4월부터 그의 임기 중에 여섯 차례에 걸쳐 104만톤의 비료가 갔다. 4,660억 원어치였다. 2001년10월, 전국 보건소에 있는 결핵 백신을 한 병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다가 북한에 주었다. 30만 명분이었다. 그리고 보건소에는 입단속을 시켰다. 2000년, 러시아 대통령에 편지를 보냈다. 러시아에서 받을 14억7천만 달러를 받지 않을 테니, 러시아도 북한에서 받을 50억 달러를 받지 말아달라는 제안이었다. 정부가 사용한 남북 협력기금이 매년 5,000억 이상이었다. 최초 2년간만 해도 1조864억 원이 집행됐다.
현대에 이어 다른 재벌들도 닦달하여 북한에 투자 명목으로 퍼준 돈이 5,960억 원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북한에 간 돈은 2조5,500억 원이다. 금강산 사업은 사업이 아니라 적장에게 군자금을 대주기 위한 위장사업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임기 중 금강산을 통해 10억 달러 이상이 갔다. 여기에 더해 몰래 준 돈도 있다. 얼마의 돈이 갔는지 누구도 모른다. 단지 미국이 그 중 5억 달러를 찾아냈을 뿐이다. 적장은 이를 가지고 남침용 무기를 구매했다고 미국이 발표했다.
금강산 사업은 김정일에 돈을 대주기 위한 사업이었다. 한 사람이 하루 입산하는 데 100달러를 바치기로 계약을 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관광객이 있으나 없으나 무조건 연간 50만 명이 간 것으로 쳐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에 걸쳐 '존재하지도 않는 금강산 독점사업권'을 명분으로 하여 9억4,200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 그 돈을 주고 우리 관광객들은 어떤 관광을 했는가? 바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제재를 받고, 카메라도 빼앗기고, 민영미 여인처럼 1주일씩이나 감금되어 문초를 받았다. "한국"과 "대한"은 북한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이유로 한국일보 기자는 "한국"이라는 낱말 때문에 H일보라는 명찰을, 대한매일은 "대한"이라는 낱말 때문에 D일보라는 명찰을 달아야 했다. 관광이 아니라 굴욕이었다.
관광객이 없어도 북한에는 자동적으로 매년 3억7백만 달러가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관광객이 없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주면 비난이 쏟아진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국민 총동원령이었다. 학생도 집단적으로 보내고 노인들도 공짜로 보냈다. 금강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등극하는 반면 설악산과 한라산은 초라하게 허물리고 말았다. 산을 가진 우리 지역경제가 망가진 것이다. 북한 땅이 성지가 되고, 북한정권이 상전으로 탈바꿈했다.
북한은 이 엄청난 돈을 가지고 무얼 했는가?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신예전투기 50대를 구입했다. 스커드 미사일을 500기에서 600기로 늘렸다. 휴전선 대포를 25% 증강했다. 전차와 화학무기도 전방으로 추진했다. 휴전선에 전진 배치된 군사력을 65%에서 70%로 늘렸다. 10년 이래 최대 규모의 훈련도 했다. 이런 기막힌 정보는 미국이 알려주었고 우리 정부는 쉬쉬했다. 정부가 북한에 남침용 군자금을 대준 것이다.
북한은 또 우리가 퍼준 돈으로 북한강 상류와 임진강 상류에 8개의 댐을 건설했다.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총 100㎞의 "지하수로"를 만들어 우리에게 흘러와야 할 물을 머나 먼 원산 앞 바다로 빼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강 상류에 유입되는 수량이 5분의 1 정도로 줄었다. 최근에는 임진강 상류인 황강에 5개의 댐을 만들어 그 물을 개성공단으로 돌리고 있다. 이로 인해 경기 북부는 심한 식수난과 홍수에 고통을 받고 있다.
2001년 6월, 북한 상선들이 제주해협을 유린했다. 대통령이 UN사 자동교전규칙을 박탈하여 우리 해군의 손발을 묶었다. 그래서 북한 선박 한 척에 우리 함정 6척이 31시간이나 따라다니며 제발 좀 나가달라고 애걸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에게 무해통항권을 인정해 주자했고, 바다의 휴전선인 북방한계선이 너무 넓으니 일부를 북한에 양보하려 하다가 저항에 부딪쳤다. 1999년6월15일 발발한 연평해전은 우리 해군의 화려한 완승으로 끝났다. 그런데 전투에서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 장군들은 곧바로 천대를 받아 군에서 나갔다. 설욕전을 벼르던 북측은 3년 뒤인 2002년6월29일 서해교전을 일으켰다.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일방적인 참패였다. 대통령은 국가를 지키다 장열하게 생명을 바친 용사들을 괄시했고 바로 그날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임동원과 함께 일본으로 월드컵 구경을 나갔다.
북한 함정은 구식이고 우리 함정은 신형이다. 북한 함정에 장착된 총포에는 자이로 시스템이 없어 배가 파도에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총 끝이 요동을 친다. 하지만 우리 함정에 장착된 총포는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총 끝이 목표를 꽉 물고 있다. 이러한 "자이로 조준시스템"은 2001년 12월, 북한 괴선박을 몇 초 이내에 침몰시킨 일본 순시선에도 있었다. 우리 해군 총포의 위력은 이런 순시선이 문제가 아니게 크다. 우리에겐 더 정교한 미사일도 많다. 우리 함정은 북한 함정보다 10노트 이상 더 빠르다. 싸우면 북한 함정은 적수가 되지 않는다.
6.29에서 참패한 것은 김대중이 지휘관의 소관사항인 야전작전권을 박탈한 데서 기인했다. 김대중은 "절대로 먼저 쏘지 말라", "쏘려면 청와대에 보고부터 하라"는 기막힌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 더해 군수뇌는 매우 이상한 "교전규칙"을 만들었다. 그 교전규칙이 어떤 것인지를 음미해보면 당시의 군수뇌는 한국군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적의 포구에 가슴을 정면으로 대주고 처분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당시 제정됐던 아래의 교전규칙은 기존의 UN사교전규칙을 뒤엎은 것이었다.
첫째, 소총 유효사거린인 450m에서 경고방송을 하라는 것이다. 6.29에서 북한이 발사한 85 미리 포의 명중 사거리는 8km나 된다, 450m 앞에까지 다가가서 경고방송을 하라는 것은 아예 얼굴을 갖다 대주라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200m에서 시위기동을 하라는 것이다. 아예 맞아 죽으라는 것이다.
세 번째 규칙은 450m에서 차단기동을 하라는 것이다. 적함은 선수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 함정은 기다랗게 늘어진 옆구리를 보이며 적의 앞을 가로질러 가라는 것이다. 심장을 적의 총부리에 내주고 한동안 옆걸음을 해서 통과하라는 것이다. 북한의 처분만 바라라는 명령이다.
6.29당시, 바로 이 제3단계 수칙을 수행하다가 우리 해군은 비참하게 테러를 당한 것이다. 교전규칙은 처음부터 맞아죽으라고 만든 것이었다. 2002.6.30일자 조선일보 3면에 필자는 이런 글을 썼다. “북 경비정이 갑자기 85mm 함포로 불을 뿜었다. 고속정 2척에 타고 있던 장병들은 즉각 총원 전투배치 상태로 돌입했다. 모든 장병들이 화해와 평화만 믿고 전투배치조차 하지 않은 채 접근했던 것이다. 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저들은 우리 장병을 속이기 위해 6.27일과 28일에도 왔다가 포구를 우리 경비정에 조준하고는 씨익 웃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29일에도 포구를 경비정에 조준했다. 장병들은 이번에도 의례히 씨익 웃고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긴장을 풀었을 것이다. 이런 속임수로 저들은 일방적으로 테러를 가한 것이다”
바다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장열하게 전사한 6명의 전사자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부터 마치 역적이나 되는 것처럼 괄시를 받다가 사건 6년만인 2008년6월29일에야 비로소 국가추모일로 지정됐다.
2000년 6.15일, 김대중은 모든 국민에 말했다. "앞으로 전쟁은 없다". 2002년 4.3-4.6일, 임동원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북한에 가서 5시간동안 김정일과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의심하지 말자,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 2002.5.24일, 김동신 국방장관이 주적개념을 땅에 묻겠다고 선언했다. 적을 의심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 세 사람이 국민과 군에게 의심을 풀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을 적이라 부르지 말라한 것이다. 적을 의심해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적을 의심하지 말라 명령하면 그가 바로 의심받아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는 국보법을 철폐하여 좌익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해 주려 했다. 반미. 반일 감정을 선동하여 쇄국주의와 주체사상을 식목했다. 주한미군과 주월한국군을 살인집단으로 매도했다. 용공세력을 비호하고 용공주의자들을 요직에 중용했다. 국가보안법에 걸려 8년간 옥살이를 했던 전직 국회의원이 버젓이 국회에 다니며 무기구매에 간여했다.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받아 옥에 갇혀있던 사람을 끄집어내서 장관을 시켰다. 노동당 창당 55주년 기념행사에 가서 축사를 읽고, 파주에 있는 인민군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한 사람들이 부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고, 대학총장을 했다.
그의 분신, 임동원은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판결난 범민련을 대북 연락창구로 이용했다. 평양에서 열린 적화통일 행사에 311명의 방문단을 날치기식으로 보냈다. 그 중 100여명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 그래서 그는 2000년 9월3일, 국회에서 탄핵을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과 1주일 만인 9.11일에 직제에도 없는 장관급 자리를 청와대에 만들어 놓고, 그를 앉혔다. 그는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의심스러운 행동을 계속했다.
2001년8월부터 전교조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념교육을 시키기 위해 불법 교육지침서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을 내놓고 가르쳤다. 책에는 '인민군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통일사회'가 그림으로 영상화돼 있다. 북한은 불쌍한 우리 동포이고, 우리의 주적은 미국과 미국을 추종하는 냉전세력이며 이들 냉전기득권세력은 우리의 적이라고 가르치라 했다. 개인의 삶에 불편을 주는 국가안보는 부정돼야 한다고 가르치라 했다.
4.3 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경찰관 17명을 불태워 죽인 동의대 사건 등 반정부 데모 사건들은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키는 반면, 정작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가 싸운 정부군을 박대하고 멸시했다. 당시의 군경은 국가폭력배로 규정했고, 군경과 그 가족들을 무참하게 살육한 사람들을 민주화 열사로 규정했다. 어제의 충신이 역적이 되고 어제의 역적이 충신이 된 것이다, 이는 국가가 망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01년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그는 6.25를 '실패한 통일 노력'이라고 말했다. 한국전 역시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뜻이다. 국가의 정통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반면 북한 정권에 새로운 정통성을 부여하려 했다.
9.11 테러 이후 북한은 미국의 주적으로 떠올라 있다. 북한은 세계에서 테러기술과 테러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불법무기 소지자가 됐다. 미국은 세계 각국을 향해 미국편에 서든지 테러 편에 서든지 태도를 확실히 하라 했다. 그런데 김대중은 주저 없이 북한 편에 섰다. 2001년 4월3일부터 3박4일간 임동원 특사가 평양을 다녀왔다. 갈 때에는 대량살상무기로 인한 미북간의 전쟁을 막으러 간다고 했지만 돌아온 그는 전혀 다른 것을 내놓았다. 쌀 50만톤, 비료 30만톤을 주겠다 했다. 경원선과 동해선을 개통하여 철의 실크로드로 연결하는 "철로연결"이 평양방문의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전쟁을 막으러 간 것이 아니라 전쟁을 열려고 간 것으로 보였다.
실크로드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2002.4.8일자 도쿄 신문은 러시아철도 기술연구소가 북한 철도의 안전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도했다. 두만강에서 원산. 평강을 잇는 동해안철도 700km의 전 구간이 위험한 상태이며 터널 130군데, 교량 742군데의 보수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원선은 어떤가? 철로지반이 약해 7대의 화차만 다닌다. 전기가 불충분하여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남한에서 1시간에 가는 거리를 3-4일간 간다. 대통령이 그토록 선전했던 실크로드는 어디에도 없다.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결국 남침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상천외의 생각으로 150조의 공적자금을 만들어냈다. 또 다른 200여조의 국가채무를 졌다, 100여조의 연기금을 마구 풀어헤쳤다. 그는 이런 돈을 풀어 가장 먼저 금융기관을 국유화했다. 은행에 빚을 진 600여 개의 대기업, 중견기업들을 국유화했다. 기존의 공기업이 405개, 중앙정부가 108개, 지방정부가 297개를 가지고 있었다. 이 1,000여 개의 대형 기업들이 한 순간에 정부 소유가 됐다. 국영공화국이 된 것이다. 여기에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정치꾼들이 나가 연봉을 170%까지 올리고, 수당을 올리고, 판공비를 수백 프로씩 올리고, 하청업체 및 조폭들과 야합히여 돈을 털어 갔다. 그리고 또 다시 공자금을 넣어야 기업이 산다며 떼를 썼다. 공자금을 통제하는 부서도 없다. 풀어헤친 공자금은 추종세력에게 알아서 챙겨가라고 내놓은 돈으로 보였다. 전기료를 단 한번에 2배나 올렸고, 농촌 심야전기 시설비를 4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대폭 올렸다. 그리고 그 돈으로 북한에 전기를 준다고 했다.
기업들이 은행에 담보로 잡혔던 토지와 건물도 정부가 차지했다. 정부는 자산관리공사라는 대형 브로커 기구를 만들었다. 1,600명이나 된다. 이 브로커 기구가 망해가는 기업의 토지와 건물을 헐값으로 인수하여 급매물로 외국에 내놓았다. 골드만삭스, 론스타. 리만브라더스, 싱가포르투자청 등 해외 브로커 업체들에 고물가격으로 마구 팔아치웠다. 그들은 웬 떡이냐 싶어 이들을 사서 곧바로 다른 외국기업들에 되팔았다. 더러는 3배, 더러는 5배의 가격으로 횡재를 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외국 브로커 업체들이 자기 돈은 10-30%만 대고, 나머지는 국내 은행에서 빌려 가지고 샀다는 사실이다. 돈을 빌려줘 가면서 외국인들에게 폭리를 준 꼴이다. 왜 이런 짓을 했겠는가? 정권에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의도의 60배에 해당하는 금싸라기 땅이 외국인 소유가 됐다. 2000년12월27일자 매일경제신문은 "웬만한 빌딩 치고 외국인 손에 넘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이면계약의 존재에 대해서도 밝혔다. 강남에서 가장 큰 건물인 "현대 I-타워", 서울시청 옆에 있는 "파이낸셜센터", "벽산빌딩", "아시아나항공", "힐튼호텔", SK 증권, 동양증권, 쌍용증권, 고려증권, 대우증권, 여의도 KTB 빌딩, 은석빌딩, 한효빌딩, 대한방적 빌딩, 금호그룹 신사옥, 광주은행 사옥, "시티타워", "현대중공업빌딩" 등, 서울에서 가장 큰 건물들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팔아넘긴 돈은 두 동강으로 나뉘어 졌다. 공식계약서에 표시된 돈은 은행으로 들어갔고, 이면계약서에 들어 있는 돈은 저들의 주머니로 갔을 것이다. 공식계약서에 잡힌 돈은 외환보유고로 잡혔다. 정부는 툭하면 외환보유고가 늘어났다고 자랑을 했다. 하지만 그 외환보유고는 바로 이렇게 헐값에 팔아넘긴 잔돈이었다. 이면계약서에 쓰여 진 검은 돈이 얼마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걸고 기업을 요리했다. 빅딜이라는 생소한 낱말로 국민을 혼란시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을 마음에 드는 기업에 합쳐 주었다. 워크아웃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을 망하게 하거나, 빼앗았다. 빼앗은 기업은 추종세력에 나누어주었다. 기업의 살생부까지 만들어 가면서 겁을 주었다. 기업의 운명을 거머쥔 실세들에, 알아서 돈을 바치라는 신호였다. 기업은 앞을 다투며 저들에게 상납을 하면서 저들과 선이 닿는 연줄을 구해서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다.
불순한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김정일을 우상화시켰다. 청와대 비서가 김정일을 찬양했다. 월간조선 2000년 9월호에는 청와대 여비서가 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 "벌써부터 우리 장관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을 뵙게 되었으니 저처럼 크나큰 영광을 지닌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2000년 8.11일, 대통령이 46개 언론사 사장들을 김정일에 보냈다. 그들은 국빈대접을 받으며 행복해 했다. 김정일의 술자리 매너에 반했다. 더러는 귀국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김정일을 찬양하고 다녔다. 그들은 상호비방 중지를 내용으로 하는 '남북언론합의문'을 교환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보도를 저들의 입맛에 맞추어 주었다. 그때 김정일은 참으로 무서운 말을 했다. "통일은 내가 맘먹을 탓이다", "내 힘은 군력에서 나온다".
그래도 언론사 사장들은 그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일 이미지를 통 큰 호걸로 부각시켜 주었다. 그래서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9.7%나 된다고 했다. 초등학생의 90%가 김정일을 김대중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라 했다. 부인들 사회에도 김정일 오빠부대가 생겼었다. 남북정상이 만난 직후에 김정일이 지시한 공문 내용이다. "나의 통일관은 무력통일관이다", "인민군대는 반미, 반일, 반괴뢰 구호를 더 높이 들고 계급의 총창을 보다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원쑤들과 한 번은 싸워서 결판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