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 my eyes :: 1.한 남자가 친구와 만났다.한참을 심호흡을 하더니, 심각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그러자 친구가 묻는다.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본 거냐고,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이름, 나이, 직업, 똑똑하고, 예쁘고, 재미있고, 등등등. 그리고 나서 친구에게 묻는다. 너는 만나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러자 친구역시 대답한다. 약간 다르다. 서로 상대방의 머릿속을 점점 차지하는데 그래서 둘다 비상줄을 당겨버렸다고.(사실 아직도 이 말이 무슨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2.그 말을 듣고난 남자는 여자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식료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모습,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들어올리는 모습,(절대 구원을 요청하지 않는다)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노래를 열심히 불러대면서 깔깔대는 모습, 그녀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공상에 잠겨있는 모습에서 대화를 지속해야 할 의무감, 등등의 압박으로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지만, 그녀는 실제로 아무생각도 하지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순간까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남자는 고민한다. 자신의 옆에서 걷거나, 깔깔대거나, 마주앉아 재잘대는 이 여자와나의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한 아름다운 연인"이라는 이름 사이에서 실제로 일치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3. 남자는 자신의 친한 친구들에게 달려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쉴새없이 늘어놓았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재미있고, 그렇게 유쾌할수가 없었던 그 시간들을 다시 리플레이 하고 있다가 분위기를 파악했을때,친구들의 반응은 이미 시큰둥했다.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들이란, 플롯은 없고 액션조차도 거의 없는 이야기. 그리고 그 없는 액션 사이에 멀뚱멀뚱 서 있거나 혹은 앉아있거나, 걷거나 하는 두 사람의 동선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남자는 순간, 느꼈다.사랑은 외로운 것이라고. 자신이 친구들 앞에 지지부진 늘어놓은 그 이야기들은 그녀가 있을때에야 비로소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4.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으면,남자보다는 어쩌면 남자의 친구가 한 대답이 정답일수도 있다. 자신과 만나는 사람에게서 본 것이란, 남이 듣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다른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남자가 그녀에게서 본 순간의 이미지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어버리면 그만인것이다. 5. 하지만 그것은 때론 위험하다.그녀안에 있는 것들이 그 남자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라면? 예를 들어, 내가 오아시스를 그토록 갈구할때, 오아시스는 내 눈에 나타난다. 갈증이 물의 환각을 낳는 것이다. 내 눈에는 젖줄과도 같은 물이 나를 맞이한다. 조금 더 걸어갔을 때, 나는 다시 무엇인가를 본다.약간은 말라버린 야자나무와, 뜨거워 죽겠는 모래언덕더미를. 그 사이의 괴리감이 사람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면? 6. 하지만, 그 괴리감까지 계산하면서 사람을 만나왔다면,인류는 진작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본 것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좋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메마르지 않을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7. 동양사상에서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만 믿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그것은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할 때의 이야기이고. 결국, 그 사람에게서 '본 것' 이란, 신중하게 표현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느낌' 이기 때문에그게 느낌과 일치한다면 경계하지 말고 표면으로 끌고 올라오는 것이 오히려 현명할 것이라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콩깍지라는 개념은, 그래서 어떤면에서는 상통하고 어떤면에서는 지극히 대립한다. 8. 당신은 어떤 콩깍지를 끼고 어떤 피그말리온 효과를 노리는가-느낌으로 보았다면, 맞다고 믿자. 가끔은,그게 행복하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의 11장.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를 재구성* 070211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 in my eyes ::
1.
한 남자가 친구와 만났다.
한참을 심호흡을 하더니, 심각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묻는다.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본 거냐고,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
이름, 나이, 직업, 똑똑하고, 예쁘고, 재미있고, 등등등.
그리고 나서 친구에게 묻는다.
너는 만나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러자 친구역시 대답한다. 약간 다르다.
서로 상대방의 머릿속을 점점 차지하는데
그래서 둘다 비상줄을 당겨버렸다고.
(사실 아직도 이 말이 무슨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2.
그 말을 듣고난 남자는 여자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식료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모습,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들어올리는 모습,
(절대 구원을 요청하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노래를 열심히 불러대면서 깔깔대는 모습,
그녀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공상에 잠겨있는 모습에서
대화를 지속해야 할 의무감, 등등의 압박으로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지만,
그녀는 실제로 아무생각도 하지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순간까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남자는 고민한다.
자신의 옆에서 걷거나, 깔깔대거나, 마주앉아 재잘대는 이 여자와
나의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한 아름다운 연인"이라는
이름 사이에서 실제로 일치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3.
남자는 자신의 친한 친구들에게 달려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쉴새없이 늘어놓았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재미있고, 그렇게 유쾌할수가 없었던
그 시간들을 다시 리플레이 하고 있다가 분위기를 파악했을때,
친구들의 반응은 이미 시큰둥했다.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들이란,
플롯은 없고 액션조차도 거의 없는 이야기.
그리고 그 없는 액션 사이에
멀뚱멀뚱 서 있거나 혹은 앉아있거나, 걷거나 하는
두 사람의 동선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남자는 순간, 느꼈다.
사랑은 외로운 것이라고.
자신이 친구들 앞에 지지부진 늘어놓은 그 이야기들은
그녀가 있을때에야 비로소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4.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으면,
남자보다는 어쩌면 남자의 친구가 한 대답이 정답일수도 있다.
자신과 만나는 사람에게서 본 것이란,
남이 듣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다른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남자가 그녀에게서 본 순간의 이미지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어버리면 그만인것이다.
5.
하지만 그것은 때론 위험하다.
그녀안에 있는 것들이 그 남자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라면?
예를 들어, 내가 오아시스를 그토록 갈구할때,
오아시스는 내 눈에 나타난다.
갈증이 물의 환각을 낳는 것이다.
내 눈에는 젖줄과도 같은 물이 나를 맞이한다.
조금 더 걸어갔을 때, 나는 다시 무엇인가를 본다.
약간은 말라버린 야자나무와, 뜨거워 죽겠는 모래언덕더미를.
그 사이의 괴리감이 사람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면?
6.
하지만,
그 괴리감까지 계산하면서 사람을 만나왔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본 것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좋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메마르지 않을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7.
동양사상에서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만 믿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할 때의 이야기이고.
결국, 그 사람에게서 '본 것' 이란,
신중하게 표현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느낌' 이기 때문에
그게 느낌과 일치한다면 경계하지 말고
표면으로 끌고 올라오는 것이 오히려 현명할 것이라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콩깍지라는 개념은,
그래서 어떤면에서는 상통하고 어떤면에서는 지극히 대립한다.
8.
당신은 어떤 콩깍지를 끼고 어떤 피그말리온 효과를 노리는가-
느낌으로 보았다면, 맞다고 믿자.
가끔은,
그게 행복하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의 11장.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를 재구성*
07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