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셋.

조성길200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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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을 잃은 빈 깍지의 탁류속에 뭍혀있다.

다리를 잃고서 울부짖는 촌부의 한탄처럼 어둠은 그 조각으로

넓은 성을 세우고 있다.

거북스런 트림을 하는 것처럼 야비한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깍지 위인지도 모른다.

이 심연한 적막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희 뿌였게 파고드는 허전함도 병약한 육신과 함께

진 자리를 마련하고 잇을 때

갑자기 찾아온 이 귀찮은 침묵.

손을 위로하고 크나 큰 외유를 요구해 보지만 아직도 그 자리엔 뿌리내린 내 육신만 있을 뿐이다.

소음은 어느새 먼 길을 떠난 듯하다.

간격을 두고 마주치는 저 광폭한 시게추의 율동만이 비 웃을

뿐이다.

정선 할수 있을 때 그 지킴을 위한 눈가림이 있어야 한다.

아, 어디론가 떠나 버린 미련속의 사람들을 끄집어 낸다.

덧 없음을 만들고 간 지인도 있다.

무게차에 밀려 흔적조차 없이 산화해 버린 어둔 기억속의 지인들..

작으마한 륙색하나에 미련이란 어리석은 메모를 가득 담고서

돌아 올수 없는 종착역을 향해 떠나 갔다.

핏발이 선 눈에는 서기어린 이슬 방울이라도 있었는지.

꿈을 벅음은 들 꽃이라도 되었을 성 싶은 기억들....

시인의 입담에나 오르내릴 이름들이 지워지고 있다.

새벽이 쫒겨가듯이 하나 둘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무지함이 좋았던 시절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었을까.

힘이겨워 악을 쓰며 기어가는 지금의 생활에서

간혹은 끄집어 내는 슬픈이야기 였을까.

 

타성에 젖어 버린 뒤의 모습이 예에 서 있을 다름이다.

벅차오르는 감정의 피안을 위한 여백을 준비하는가.

생각은 소유권자의 쓴 미소뒤로 숨어 버리고 만다.

동안의 처절한 통곡일수 있다.

세티즘의 광대 망상적 혼미인지도 모른다.

이미 퇴색해 버린 자신의 욕망이나 성취욕이란 미망아래

부던히도 연출해 내던 과시가 아니였는지.

몽매한 부도덕성이 희열을 찾고 있다.

언제나 제 자리를 지켜가면서 휘저어놓은 것처럼

망루위로 제 육신을 걸어 놓는다.

마치 건어물을 말리기라도 하듯이.....

제 멋대로 외견을 뒤 바꾸어 놓고선 희~낙~하는 꼴이다.

얼마만큼의 희열을 추구하고 있는 걸까.

자신의 육신의 값을 남용하면서 까지 가치운운 하는 것인지.

피할수 없는 숙명이란 명제에 주눅이 든다.

 

꽃은 시들었고 향기조차 없다.

메마른 가지위에는 근간의 물욕을 보이듯이

분진이 망을 치고 있다.

가시 철망이 드리워진 이 동지의 혐오가 가득하다.

두눈이 멀고 두 귀가 막혀 있다.

거친 얼굴위로 풍상에 지친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밭은 기침을 하고 있는 동안 모든 각질은 떨어져 가고

흐르는 유수에 목을 내 밀고선 통곡한다.

막혀버린 스산한 흐느낌으로 비하하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긴 시간을 쏟아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마냥 물 세탁을 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영혼을 세탁하고 육신마져도.....

하지만 인습의 끈은 그것을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뒤에서 뒤로 가는 것이므로.....

지금은 무엇을 준비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