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프랑소와 오종(Francois Ozon), 엽기발랄함을 버리고 과감히 로맨스에 도전하다

정주영200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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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프랑소와 오종(Francois Ozon), 엽기발랄함을 버리고 과감히 로맨스에 도전하다


 

프랑소와 오종(Francois Ozon). 그의 영화들은 '오종스럽다'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여지껏 선보인 작품 중 한꺼풀 벗겨 보아야 그 속이 들여다 보이는 영화들도 있고 비교적 쉽게 읽히는 작품들도 있는데, 비틀린 시선으로 '관계'에 대해 조망하며 그것을 그만의 독특한 재기로 버무린 솜씨로 프랑스가 뒤를 팍팍 밀어주는 그런 감독으로 주목을 받았고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서울에서 처음 프랑소와 오종 특별전이 열렸을 때 필자는 거의 하이퍼텍 나다에 가서 살았다. 이후 당시 아트선재센터에 있던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한 번 더 그의 작품들이 선보였었고, 메가박스유럽영화제를 통해 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후에 국내 개봉되었지만. 비교적 근작들이라 할 수 있는 와 도 이 영화제를 통해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두 작품만 빼고 필자는 국내에 소개된 오종의 작품들을 DVD로 소장하고 있는데, 어느날 을 다시 보니 극장에서 볼 때의 느낌은 덜하였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익숙한 영화인데 마치 새로운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였고 또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개봉할 도 그런 영화다. 그냥 보면 전혀 오종스럽지 않아 밋밋하게 보이는 이 영화는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로 흘러간다. 관계나 계급에 관한 성찰(의 결혼 혹은 부부관계, 의 소년이 겪는 일 등), 중년의 회한(), 청년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인생(), 살인사건을 두고 밝혀지는 한 집안의 비밀(?) 혹은 가부장제 가족관의 해체(, ), 이유없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도덕성이라고는 전혀없는 악마스러운 여인(), 동화를 비꼬아 10대의 일탈로 만든 등, 그리고 성정체성의 문제를 발랄하고 상큼하게 그린 단편 까지. 뒤에 제작된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그가 그런 테마를 보여주는 방식은 무척 독특한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영화를 '오종스럽다' 라고 부른다.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최근의 작품들은 그런 '오종스러움'을 벗어나 감독 자신도 나이가 들고 인생을 보는 눈이 생겼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그만의 작품을 적당히 표현할 언사는 아직까지는 '오종스럽다' 라는 말 밖에 없다. 

 

은 한 번 보면 전혀 오종스럽지 않은데 보고나서 곱씹어보면 오종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엔젤(로몰라 개리)는 성장소설에서 흔히 보는 다락방 소녀 같다. 파라다이스 저택에 사는 것을 꿈꾸며 어머니가 장사를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엔젤은 일찍 죽은 아버지가 귀족 혈통이었다는 상상을 한다. 학교 작문시간에도 제대로 점수를 받지도 못하는 그녀는 자신의 방에 틀어앉아 글을 쓴다. 순전히 상상력에만 의존한 글들이 한 출판사 편집장 테오(샘 닐)의 눈에 들게 되고 다락방 소녀 같았던 처지는 일순간에 변한다. 그녀의 소설은 파격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엔젤은 마침 비어있던 파라다이스 저택을 소유하게 되고 화가 에스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도 한다. 그녀의 천재성에 감복해 비서를 자청하는 이(노라)도 나타난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 혹은 로맨스 영화의 줄거리 같다.   

 

그러나 자신이 늘 꿈꾸어 왔던 것을 소설에다 옮기고 그것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을 때는, 그리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감독은 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편집장 테오의 아내(샬롯 램플링)는 엔젤을 '천박함을 가지고 여기까지 올라온 게 대단하다' 며 냉소 아닌 냉소를 보낸다. 후에 남편이 되는 에스메도 한 파티에서 엔젤의 취향을 비웃지 않았던가. 편집장의 아내야 그렇다 쳐도 에스메가 엔젤의 남편이 된 것은 왜일까? 에스메(Esme) 라는 이름은 여성형으로 '에머랄드'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그는 어두운 색채로 그림을 그리는데, 그가 그린 엔젤의 초상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놀리라는 시골마을 출신과 자신의 신분이 싫었던 엔젤은 어머니의 죽음 후 망설임없이 자신의 출생에는 아는 바 없으나 아마도 아버지는 귀족 혈통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죽은 어머니도 그것을 밝히지 않은 채 떠났다고 했다. 그런 점은 엔젤이 자신의 과거나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기 직전에 처한 상황을 싫어하고 또 감추려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에스메는 훗날 남편이 되지만 그녀의 어두운 면을 알고 있으며, 또 그것을 대변하는 인물로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은 신분상승의 장애가 되는 과거를 덮어버리려는 의지로도 읽힌다.

 

에스메가 죽었을 때 그녀가 깨달은 것은 그는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밝히기 싫었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한 부분은 잃은 그녀는 서서히 죽어가고 에스메만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한다. 엔젤의 소설 속 묘사는 그녀의 삶에서 현실이 되었지만 다락방의 소녀가 세상에 나와서 경험한 그것은 소설의 재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상력은 그녀를 베스트 셀러 작가로 만들어 줬지만, 그녀의 현실을 반영한 소설은 환대받지 못한다. 엔젤은 자원입대하여 전쟁터로 나간 에스메를 그리워 하며 반전 메세지를 담은 작품을 발표하지만 편집장 테오는 전쟁을 직시하는 것보다 그것을 잊게 하는 소설을 쓰는 게 더 좋다고 설득한다. 오종은 엔젤의 삶을 보여주며 이 영화를 로맨스로 포장했지만, 현실은 로맨스가 아니며 그저 로맨스물이라는 것은 현실의 참담함을 잊기 위해 존재하는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장으로 나가는 에스메가 여동생 노라에게 '여린 여자이니 잘 돌봐주라' 며 엔젤을 맡긴 것도 그는 이미 현실은 소설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락방 소녀가 갓 발을 내디딘 현실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영화에서는 에스메를 잃은 슬픔에 죽어가는 엔젤을 보여주지만, 소녀의 상상력을 구현한 장소로 기능하는 파라다이스 저택에도 현실과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는 순간 진짜 세상에 재현할 수 있었던 상상의 세계도 무너지고 만다. 오종 감독은 소설은 소설일뿐 현실과는 엄연히 다름을 로맨스의 틀을 빌어 얘기하고 소녀에게 죽음을 안긴다. 은 전혀 오종스럽지 않게 보이지만 한꺼풀 벗겨야 오종스러움이 드러나는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