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수아]이쁘기만 한데, 자꾸 못 생겼다고 해

정주영200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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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워닝!- 영화의 일부 내용 중 결정적인 것이 이 글에 있습니다.    [열세살,수아]이쁘기만 한데, 자꾸 못 생겼다고 해


 

이 작품을 주인공 수아(이세영)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님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일반시사로 본 이 영화가 '12세 관람가' 라고는 하나 12세에게는 정서적으로 와 닿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는데 바쁘다 보니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없는 요즈음 수아 또래의 아이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수아가 겪는 성장통(?) 좀 특이하다. 늘 성장통의 문제가 가족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수아는 모든 게 싫고 의지할 데라고는 자신의 친엄마라고 믿는 가수 윤설영(김윤아)  밖에 없다. 죽은 아빠로부터 '엄마는 윤설영' 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식당 일 때문에 바빠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못 오는 엄마(추상미), 또래 양아치(?)들의 갈굼 등도 수아에게 지금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고 가수 윤설영이 친엄마라고 믿게 하는 데 일조한다. 사실, 그 발단은 2년 전부터였다. 유달리 수아를 아꼈던 아빠의 상이 끝나자마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을 차려내는 엄마가 '내일부터 학교 가라' 고 말할 때부터 소녀의 마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연정을 품은 고물 가게 주인 아저씨도 싫고, 또 재혼하면 자신을 버릴 것만 같은 수아는 그럴수록 내면의 세계에 빠져들고 가수 윤설영의 인터뷰 및 공연 녹화 테이프를 보면서 그녀가 한 말이 모두 자기에게 한 것처럼만 느껴진다. 그녀는 수아가 친엄마라고 믿고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유달리 말 수도 없고 방과 후 자신의 보폭 수를 세며 몇 걸음 걸으면 어디에 도달하는지를 무덤덤하게 확인하는 게 일과인 수아는 원래는 말없고 낯가리는 듯한 13세 소녀는 아니었을 것이다. 가 한 소녀의 과거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수아가 이렇게 된 데에는 주변 환경의 탓이 크지 않을까. 자신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소녀는 어디로 가야만 할까. 엄마 영주에게 자기의 내면의 소리가 들리냐고 물었다가 뚱딴지 같은 소리 말고 밥이나 먹으라는 말 한 마디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로 한 발짝 다가가야만 하는 한 소녀의 마음을 서서이 닫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냥 그저 아는 애랑 잠시 친하게 지냈다가 한 순간의 오해로 친구의 질투를 사기도 하고, 상급학교 일진 티를 내는 불량소녀와 어울려 잠시 못된 짓도 해보는 수아. 엄마는 이런 딸이 걱정스럽지만 고민이 많을 때니 놔두면 알아서 나아질 거라고 하는 고물상 아저씨의 말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지만 혼자서 헤쳐 나가야만 하는 것임을 무심히 드러낸다. 5월에 개봉했던 에서는 이와는 달리 한 손을 못 쓰는 아들 동규를 위해 아버지가 인생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그 가르침 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장애를 가졌든 아니든간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제목 그대로 자전거가 인생을 비유하는 를 떠올린 이유는 정서가 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두 영화 모두 수아와 동규가 마주하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설렌다거나 부푼 가슴 등 따위로 묘사하지 않는 점도 비슷하다. 성장통과 편견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비교적 담담하게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도 그렇고. 그 와중에 한 켠 한 켠 감정들이 쌓여 가는 것도 그렇고. 

 

를 읽는 코드는 노란 색과 프리지아 꽃이다. 가수 윤설영의 팬클럽 이름도 프리지아고, 고물상 아저씨의 도움으로 엄마가 열게 되는 버스 분식점 영분식의 바탕도 노랑이다. 낙관, 질투, 배반, 즐거움, 이성 등을 나타내는 색 노랑은 가장 모순된 색이기도 하다. 프리지아의 꽃말처럼 순진하고 천진난만했을 것 같은 한 소녀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런 감정들을 한꺼번에 경험하게 된다. 성장통을 겪되 어디로 가아먄 하는지를 모르는 어린 인생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서울이라는 공간이다. 기차를 타고 가수 윤설영의 데뷔 10주년 공연을 보기 위해 상경한 수아는 서울역까지는 왔지만 그 뒤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마침 서울로 축구 시합 원정을 온 초등학교 동창의 도움으로 공연장소까지는 갔지만 '매진' 이라는 푯말을 보고 한 소녀의 희망은-친엄마 윤설영을 만날 수 있다는 소녀의 상상!- 꺾여가는 듯하다. 비를 맞으며 콘서트 끝나기를 기다려 고이 간직했던 아빠의 사진 뒤에 친엄마의 사인을 받으려는 수아. 그런데, 윤설영에게 수아는 그저 팬 중 한 명일 뿐이다. 자신을 봐주지도 않고 그저 황급히 지나가는 친엄마를 보며 한 소녀는 자기 인생에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했던 것마저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을 맛보게 된다. 소녀가 착각한 그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죽은 수아의 아빠가 엄마를 윤설영이라고 불렀단다. 버스 분식점 영분식이 개업하는 날, 수아는 그 말을 고물상 아저씨로부터 듣게 된다. 엄마가 너무 노래를 잘 해서 아빠가 엄마를 윤설영이라고 불렀다는 걸. 의심의 한꺼풀이 벗겨지는 순간 수아의 꿈에는 노란 버스를 타고 푸른 초원을 지나는 자신이 보인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고 느낀 순간 꿈에서 깬 수아.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리고 그 공간에 무엇을 채워넣어야 한다는 것을 막연하게 깨닫는 한 소녀는 자신의 앞날을 조금이나마 긍정하게 된다. 

 

방과 후 걸음 수를 세며 집으로 오던 수아는 떡볶이 집 아줌마의 포장마차가 닫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곗돈 들고 도망간 떡볶이 집 아줌마 때문에 엄마의 식당까지 저당 잡히게 되고 고물상 아저씨가 마련해 준 컨테이너에서 수아 모녀는 살게 된다. 성장통이라는 것이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과 마주하는 것이라면 수아가 떡볶이 가게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 순간은 상실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사를 가게 되는 것은 당연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거고 말이다. 자신만의 세계와 주변의 변화가 달갑지 않은 소녀가 겪는 일들이 꼭 사춘기여서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열 세살 부터 숫자 뒤에 틴(-teen) 이 붙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장통이라는 점에서는 온주완이 고등학교 수영선수로 분했던 을 떠올려 본다. 여기서는 고등학생에게 버거운 삶의 무게를 지운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홀로 부양할 처지에 있는 한 고등학생. 그의 하루하루는 힘겹기만 하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아 태어난 것을 후회할 지경에 이른다. 어머니의 병원비도 만만치 않아 편의점까지 터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도 에게는 희망의 한 줄기 빛이나마 있지 않은가. 13살 소녀에게  처럼 암울한 현실에 혼자 놓여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겪게 한다면 그건 너무 비참하기 그지 없을 것이고 윤리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다만.

 

위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다음의 영화들을 와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다들 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은 이 시대-영화가 나온지는 좀 되었지만-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영화다. 일본영화이긴 하나 우리의 형편도 이와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하는게 이 땅의 모든 제도나 행정이 미국 아니면 일본 것을 본따거나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제도가 강제하는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느 나라를 가건 마찬가지다.

 

에서는 양아치 친구가 나온다. 잠시나마 수아와 함께했던 친구. 학교 안 가고 친구 삥 뜯는 길로 전향했다는 것은 그 아이가 막돼먹어서가 아니라 환경 탓이 크다. 뒤에서는 욕하면서 앞에서는 상사에게 굽신거리는 직장인들, 그러니까 위계질서에 의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랄까, 갓 중학생이 된 친구가 그것을 몸으로 체현해 주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하긴, 아이들도 알 건 다 알고, 할 건 다 한다. 우리들이 돌아보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그렇게 변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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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그룹 아라시가 주연으로 나오는 에는 '인생은 단 한 번도 그대를 속인 적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누도 잇신의 이 작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암울한 청춘들의 삶, 그리고 깨달음이 함께 하는 작품이다. 영화에 나오는 전체 시구와 에서 수아 아빠가 손수 써내려간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와 비교해 보자. 그러고 보니 이 두 영화가 같은 날, 같은 극장(스폰지하우스)에서 개봉한다. 참 묘하지 않은가.

 

 

삶      -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