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매우 유명한 것으로, 앤디 워홀과 친구들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진이다.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 그리고 척 클라인이다. 그런데, 이 곳은 뉴욕 어디쯤에서 찍은 것일까 궁금하기 그지 없다.
영화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포스터만 보고 깜짝 놀란 것은 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 역을 맡은 시에나 밀러 때문이었다. 위 사진 말고도 실제 에디를 찍은 사진들을 검색해 보면 시에나의 외모가 에디와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미드팬이라면 위 인물이 낯설지 않을 텐데, 6단계만 거치면 누구나 케빈 베이컨에게 이른다는 그 케빈 베이컨의 부인이요, 형사물 의 주인공이기도 한 키라 세즈윅이다. 에디 세즈윅과는 자매지간은 아니고 사촌간이라고 한다. 어떤가? 비슷한 것 같나?
앤디 워홀의 명언 중 '앞으로 우리 모두는 15분간 유명해질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아마 에디는 그 말을 믿었나 보다. 에서의 에디 세즈윅은 앤디 워홀만 바라보다가 이용당하고 망가지는 불쌍한 아가씨다. 그녀는 워홀의 기억 속에 15분간만 존재하는 인물이 된 것은 아닐까?
좀 오래된 일이지만. 앤디 워홀전이 호암갤러리에서 열렸었다. 필자야 미술사를 전공할 때니 당연히 관심있게 관람했고 작년 여름 뉴욕에 있을 때도 몇몇 미술관에서 워홀의 작품을 보긴 했었다.
앤디 워홀과 필자가 사진을 찍은지는 참 오래된 일이긴 하다. 아...농담이다. 뉴욕 마담 투소 박물관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밀랍인형 옆에서 같이 심각 모드로 사진 한 장 찍었다. 앤디 워홀은 은발로 유명한데, 이게 가발이란다. 그는 11살 이전에 세 번이나 신경쇠약에 걸렸으며 그 결과 머리는 다 빠지고 피부는 희어지고, 그리고 눈은 일부러 의도한 건지 신경쇠약의 결과인지 모르겠으나 핑크빛이 돌았다고 한다. 본명은 앤드류 워홀라. 그의 모습은 부자연스럽기 그지 없는데, 일부러 의도한 것이라고도 하고 특히 어릴 적의 신경쇠약 때문에 샤이 증후군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매력으로 탈바꿈시킨, 가장과 치장의 대명사가 바로 앤디 워홀이다. 이마고에서 나온 을 보면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매혹시켰는지가 잘 나와 있다.
뉴욕에 있을 때 모든 박물관 및 미술관을 다니려고 노력했는데, 팝 아트 계열 보다는 추상계열의 그림들을 관심있게 봤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난 팝 아트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위 대중을 위한 예술을 한다고 하면서도 작품을 팔아 부와 명성을 누린 것은 작가들이니 말이다. 대중을 위한 예술은 결국 개인의 돈벌이였던 거다. 앤디 워홀을 볼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존재하는데 모든 것이 돈으로 귀착되는 미국 사회의 속성을 안다면 앤디를 비난할 수 없다는 점, 그는 어딘가 과대평가된 면이 있는 아티스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대단한 작가라기 보다는 그저 당대의 이슈 메이커였을뿐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어쨌든 뉴욕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가 보았지만 워홀의 작품은 그다지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MOMA, 휘트니, 구겐하임 등 현대미술의 집합소인 곳의 가이드북만 보더라도 그저 한 페이지만을 장식하고 있었다. 심지어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같다. 아마 그가 묻힌 피츠버그에 워홀 뮤지엄에 가면 그의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으리라. 페기의 경우 60년대 수집을 중단하긴 했어도 그녀의 안목이라면 워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역시 오래된 일이긴 하나 호암갤러리에서 구겐하임 미술관 전을 열었을 때도 워홀의 작품을 본 것 같지가 않다. 같지가 않은 게 아니라 기억에 없다.
이 앤디의 뮤즈였던 이디스 세즈윅-에디는 그녀의 애칭이다-의 생애를 다루고 있으나 아무래도 워홀에게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올해로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재벌기업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에서 대중예술을 한답시고 떼돈을 벌어간 아티스트의 전시회도 열고 하는 것이다. 에디-정확히는 이디라고 발음해야 맞다-가 미국의 영향력 있는 명문가 집안이며 조상 중 한 명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물이라는 것 등이 만났을 당시에는 가난한 예술가 워홀의 이목을 끌었을 게 틀림없다. 뉴욕의 똘아이들의 집합소 팩토리에 에디 세즈윅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워홀은 말한다. "내 영화에 출연해 주실래요?"라고. 워홀의 처음 보는 누구에게나 건네는 인사가 그것이었다고 하는데, 에디는 이것을 진담으로 알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명성과 이후의 몰락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에디 세즈윅의 얼굴만 담긴 포스터 보다는 워홀과 같이 있는 포스터가 더 와닿는다. 앤디 없는 에디는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거지?
몇 년 전에 나왔던 모마의 150개의 작품을 엄선한 도록과 작년에 구입한 350개의 작품이 엄선된 도록에는 워홀의 위 그림이 공통적으로 실려 있다. 실제로 모마에 갔을 때에도 워홀의 작품을 그렇게 많이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위 작품들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도록에 나와 있는 워홀의 작품이다.
위의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 도록에 수록된 워홀의 작품이다.
워홀이 디자인한 이 유명한 바나나 그림은 다음 인물과 관련 있다.
1967년의 벨벳 언더그라운드. 에서 에디 세즈윅 이후 워홀이 빠져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니코다. 저 바나나 그림은 벨벳 언더그라운드 앨범 자켓이다.
67년 이후 파리로 건너온 니코는 아방 가르드 감독 필립 가렐의 뮤즈이자 페르소나가 된다. 그 스토리는 지금 한창 필름포럼에서 상영 중인 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고 한다. 필립 가렐의 2001년도 작품이다. 나에게도 익숙치 않은 감독인지라 그저 그의 아들 얘기만을 할 수 없어 미안하다. 베르나도 베르툴루치의 엔 필립 가렐의 아들 루이스 가렐이 나온다. 에바 그린과 이란성 쌍둥이로 나왔던 남자 배우가 바로 루이스 가렐이다.
워홀이 니코에게 빠져 에디를 버렸지만, 니코와의 관계도 그렇게 오래 가진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샤이 증후군을 이용한 여성편력이 대단한 건지, 애초에 사랑 따윈 없고 그저 작품활동을 위해 이용되는 오브제로 그의 뮤즈들이 취급되었던 것인지....
쉽게 접할 수 있는 물품들과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이미지들, 그는 그것을 통해 어떤 위선 혹은 기만을 드러내려고 했다고 에디는 말한다. 영화는 병원에 입원한 에디가 앤디와의 일을 되돌아 보는 것으로 시작하며, 그녀는 그의 작업에 이런 평을 내린다. 화가의 꿈을 안고 뉴욕에 왔지만 우연한 계기로 팩토리 걸이 되고 모델 일을 하게 되면서 유명세를 얻지만 그것이 에디의 꿈을 점점 좀먹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술가는 예술가를 알아본다는 사실 이전에 여전히 앤디를 잊지 못해 그의 작품에 후한 평가를 쳐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현재 을 상영 중인 종로 스폰지 하우스 로비에는 이렇게 워홀의 팩토리를 재현해 놓았다. 이와 함께 파이돈에서 나온 워홀의 작품 전집을 하나 놓았는데, 오고가는 관객들이 조심조심 관심있게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들을 보며 뭐랄까 사물만 있어 좀 비어 보이는 듯한 공간에 그것을 채워주는 오브제로서 기능하는 사람들은 저 책을 들여다보는 관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위 사진들은 워홀의 팩토리가 있었다고 하는 건물을 찍은 거다. 내가 직접 찍은 건 아니고 팩토리의 위치를 검색해 보니 건물 사진이 뜨더라. 주소는 뉴욕 맨하탄 미드타운 19E 32 and 22E 33 Park and Madison 이다. 두 곳에 있었다는 것인지 그저 위치를 추정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뉘앙스가 ~~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로 봐서는 추정된다는 느낌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게 팩토리의 실체가 되겠다.
영화인이라면, 앤디와 에디의 관계 보다는 워홀이 찍었던 실험영화들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건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그저 일상만을 찍어대거나 스토리라고는 전혀 없는 영화를 찍는 그의 방식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현재, 그리고 그 속의 일상들을 담으려는 시도라고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감독의 발칙한 상상만이 존재할 뿐. 그래고 그의 영화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한다. 그의 필름들은 모마나 링컨센터에 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볼 수 있을까?
워홀의 영화에 파리지앵들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예술의 중심 파리, 그 곳은 무엇을 하든지 다 용서가 되는 똘아이들의 천국이요, 관용을 내세워 문화대국임을 뽐내려는 프랑스인들의 자존심덕에 이후 워홀은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에디가 있었다. 이내 버려지긴 하지만.
을 쭉 따라가다 보면 작가에게는 애인도 하나의 대상일 뿐이라는 씁쓸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똘아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일원이 기꺼이 되어 주었던 에디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래서 보고나면 앤디 워홀=나쁜 놈이 되고 만다. 자고로 예술가들은 다 잡놈들인 것이다. 우리가 음악시간에 배웠던 고전음악 작곡가들 중 여성편력이 만만찮은 인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성병으로 고생한 인물들만 해도 한 트럭분이다. 예전부터 이랬는데 오죽하겠는가. 1967년이면 히피들이 나올 때고 반전시위가 밥 딜런-영화 속에서는 빌-을 비롯한 몇몇 지성인들이 주축이 되어 열리고 뭐 그럴 때 아닌가? 1년 뒤면 68혁명, 우드스탁 뭐 이런 것도 나올 때이고. 하지만, 에서의 앤디와 에디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비껴가거나 아예 그것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속해 있는 것만 같다. 샤이 증후군을 매력으로 승화시킨 워홀의 마법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면 참으로 할 말 없다. 워홀 때문에 화려하게 꽃피웠다가 지고 말았던 가녀린 영혼, 에디 세즈윅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정말 그녀는 자신이 망가져갈 줄 알면서도 기꺼이 워홀의 뮤즈가 되어주었던 것일까.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누구나 똑같이 다음과 같은 느낌을 가질 거라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말이다. 영어로 그 느낌을 20자평으로 남긴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Andy Warhol, Asshole" 이라고. 그렇게 보이도록 앤디 워홀 역을 연기한 가이 피어스는 정말 그의 현시 같았다. 시에나 밀러는 에디 세즈윅이랑 너무 똑같아서 달리 할 말은 없고 말이다.
[팩토리걸]Andy Warhol, Asshole!
위의 사진은 매우 유명한 것으로, 앤디 워홀과 친구들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진이다.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 그리고 척 클라인이다. 그런데, 이 곳은 뉴욕 어디쯤에서 찍은 것일까 궁금하기 그지 없다.
영화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포스터만 보고 깜짝 놀란 것은 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 역을 맡은 시에나 밀러 때문이었다. 위 사진 말고도 실제 에디를 찍은 사진들을 검색해 보면 시에나의 외모가 에디와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미드팬이라면 위 인물이 낯설지 않을 텐데, 6단계만 거치면 누구나 케빈 베이컨에게 이른다는 그 케빈 베이컨의 부인이요, 형사물 의 주인공이기도 한 키라 세즈윅이다. 에디 세즈윅과는 자매지간은 아니고 사촌간이라고 한다. 어떤가? 비슷한 것 같나?
앤디 워홀의 명언 중 '앞으로 우리 모두는 15분간 유명해질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아마 에디는 그 말을 믿었나 보다. 에서의 에디 세즈윅은 앤디 워홀만 바라보다가 이용당하고 망가지는 불쌍한 아가씨다. 그녀는 워홀의 기억 속에 15분간만 존재하는 인물이 된 것은 아닐까?
좀 오래된 일이지만. 앤디 워홀전이 호암갤러리에서 열렸었다. 필자야 미술사를 전공할 때니 당연히 관심있게 관람했고 작년 여름 뉴욕에 있을 때도 몇몇 미술관에서 워홀의 작품을 보긴 했었다.
앤디 워홀과 필자가 사진을 찍은지는 참 오래된 일이긴 하다. 아...농담이다. 뉴욕 마담 투소 박물관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밀랍인형 옆에서 같이 심각 모드로 사진 한 장 찍었다. 앤디 워홀은 은발로 유명한데, 이게 가발이란다. 그는 11살 이전에 세 번이나 신경쇠약에 걸렸으며 그 결과 머리는 다 빠지고 피부는 희어지고, 그리고 눈은 일부러 의도한 건지 신경쇠약의 결과인지 모르겠으나 핑크빛이 돌았다고 한다. 본명은 앤드류 워홀라. 그의 모습은 부자연스럽기 그지 없는데, 일부러 의도한 것이라고도 하고 특히 어릴 적의 신경쇠약 때문에 샤이 증후군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매력으로 탈바꿈시킨, 가장과 치장의 대명사가 바로 앤디 워홀이다. 이마고에서 나온 을 보면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매혹시켰는지가 잘 나와 있다.
뉴욕에 있을 때 모든 박물관 및 미술관을 다니려고 노력했는데, 팝 아트 계열 보다는 추상계열의 그림들을 관심있게 봤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난 팝 아트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위 대중을 위한 예술을 한다고 하면서도 작품을 팔아 부와 명성을 누린 것은 작가들이니 말이다. 대중을 위한 예술은 결국 개인의 돈벌이였던 거다. 앤디 워홀을 볼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존재하는데 모든 것이 돈으로 귀착되는 미국 사회의 속성을 안다면 앤디를 비난할 수 없다는 점, 그는 어딘가 과대평가된 면이 있는 아티스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대단한 작가라기 보다는 그저 당대의 이슈 메이커였을뿐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어쨌든 뉴욕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가 보았지만 워홀의 작품은 그다지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MOMA, 휘트니, 구겐하임 등 현대미술의 집합소인 곳의 가이드북만 보더라도 그저 한 페이지만을 장식하고 있었다. 심지어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같다. 아마 그가 묻힌 피츠버그에 워홀 뮤지엄에 가면 그의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으리라. 페기의 경우 60년대 수집을 중단하긴 했어도 그녀의 안목이라면 워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역시 오래된 일이긴 하나 호암갤러리에서 구겐하임 미술관 전을 열었을 때도 워홀의 작품을 본 것 같지가 않다. 같지가 않은 게 아니라 기억에 없다.
이 앤디의 뮤즈였던 이디스 세즈윅-에디는 그녀의 애칭이다-의 생애를 다루고 있으나 아무래도 워홀에게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올해로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재벌기업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에서 대중예술을 한답시고 떼돈을 벌어간 아티스트의 전시회도 열고 하는 것이다. 에디-정확히는 이디라고 발음해야 맞다-가 미국의 영향력 있는 명문가 집안이며 조상 중 한 명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물이라는 것 등이 만났을 당시에는 가난한 예술가 워홀의 이목을 끌었을 게 틀림없다. 뉴욕의 똘아이들의 집합소 팩토리에 에디 세즈윅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워홀은 말한다. "내 영화에 출연해 주실래요?"라고. 워홀의 처음 보는 누구에게나 건네는 인사가 그것이었다고 하는데, 에디는 이것을 진담으로 알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명성과 이후의 몰락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에디 세즈윅의 얼굴만 담긴 포스터 보다는 워홀과 같이 있는 포스터가 더 와닿는다. 앤디 없는 에디는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거지?
몇 년 전에 나왔던 모마의 150개의 작품을 엄선한 도록과 작년에 구입한 350개의 작품이 엄선된 도록에는 워홀의 위 그림이 공통적으로 실려 있다. 실제로 모마에 갔을 때에도 워홀의 작품을 그렇게 많이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위 작품들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도록에 나와 있는 워홀의 작품이다.
위의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 도록에 수록된 워홀의 작품이다.
워홀이 디자인한 이 유명한 바나나 그림은 다음 인물과 관련 있다.
1967년의 벨벳 언더그라운드. 에서 에디 세즈윅 이후 워홀이 빠져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니코다. 저 바나나 그림은 벨벳 언더그라운드 앨범 자켓이다.
67년 이후 파리로 건너온 니코는 아방 가르드 감독 필립 가렐의 뮤즈이자 페르소나가 된다. 그 스토리는 지금 한창 필름포럼에서 상영 중인 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고 한다. 필립 가렐의 2001년도 작품이다. 나에게도 익숙치 않은 감독인지라 그저 그의 아들 얘기만을 할 수 없어 미안하다. 베르나도 베르툴루치의 엔 필립 가렐의 아들 루이스 가렐이 나온다. 에바 그린과 이란성 쌍둥이로 나왔던 남자 배우가 바로 루이스 가렐이다.
워홀이 니코에게 빠져 에디를 버렸지만, 니코와의 관계도 그렇게 오래 가진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샤이 증후군을 이용한 여성편력이 대단한 건지, 애초에 사랑 따윈 없고 그저 작품활동을 위해 이용되는 오브제로 그의 뮤즈들이 취급되었던 것인지....
쉽게 접할 수 있는 물품들과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이미지들, 그는 그것을 통해 어떤 위선 혹은 기만을 드러내려고 했다고 에디는 말한다. 영화는 병원에 입원한 에디가 앤디와의 일을 되돌아 보는 것으로 시작하며, 그녀는 그의 작업에 이런 평을 내린다. 화가의 꿈을 안고 뉴욕에 왔지만 우연한 계기로 팩토리 걸이 되고 모델 일을 하게 되면서 유명세를 얻지만 그것이 에디의 꿈을 점점 좀먹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술가는 예술가를 알아본다는 사실 이전에 여전히 앤디를 잊지 못해 그의 작품에 후한 평가를 쳐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현재 을 상영 중인 종로 스폰지 하우스 로비에는 이렇게 워홀의 팩토리를 재현해 놓았다. 이와 함께 파이돈에서 나온 워홀의 작품 전집을 하나 놓았는데, 오고가는 관객들이 조심조심 관심있게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들을 보며 뭐랄까 사물만 있어 좀 비어 보이는 듯한 공간에 그것을 채워주는 오브제로서 기능하는 사람들은 저 책을 들여다보는 관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위 사진들은 워홀의 팩토리가 있었다고 하는 건물을 찍은 거다. 내가 직접 찍은 건 아니고 팩토리의 위치를 검색해 보니 건물 사진이 뜨더라. 주소는 뉴욕 맨하탄 미드타운 19E 32 and 22E 33 Park and Madison 이다. 두 곳에 있었다는 것인지 그저 위치를 추정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뉘앙스가 ~~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로 봐서는 추정된다는 느낌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게 팩토리의 실체가 되겠다.
영화인이라면, 앤디와 에디의 관계 보다는 워홀이 찍었던 실험영화들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건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그저 일상만을 찍어대거나 스토리라고는 전혀 없는 영화를 찍는 그의 방식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현재, 그리고 그 속의 일상들을 담으려는 시도라고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감독의 발칙한 상상만이 존재할 뿐. 그래고 그의 영화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한다. 그의 필름들은 모마나 링컨센터에 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볼 수 있을까?
워홀의 영화에 파리지앵들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예술의 중심 파리, 그 곳은 무엇을 하든지 다 용서가 되는 똘아이들의 천국이요, 관용을 내세워 문화대국임을 뽐내려는 프랑스인들의 자존심덕에 이후 워홀은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에디가 있었다. 이내 버려지긴 하지만.
을 쭉 따라가다 보면 작가에게는 애인도 하나의 대상일 뿐이라는 씁쓸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똘아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일원이 기꺼이 되어 주었던 에디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래서 보고나면 앤디 워홀=나쁜 놈이 되고 만다. 자고로 예술가들은 다 잡놈들인 것이다. 우리가 음악시간에 배웠던 고전음악 작곡가들 중 여성편력이 만만찮은 인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성병으로 고생한 인물들만 해도 한 트럭분이다. 예전부터 이랬는데 오죽하겠는가. 1967년이면 히피들이 나올 때고 반전시위가 밥 딜런-영화 속에서는 빌-을 비롯한 몇몇 지성인들이 주축이 되어 열리고 뭐 그럴 때 아닌가? 1년 뒤면 68혁명, 우드스탁 뭐 이런 것도 나올 때이고. 하지만, 에서의 앤디와 에디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비껴가거나 아예 그것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속해 있는 것만 같다. 샤이 증후군을 매력으로 승화시킨 워홀의 마법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면 참으로 할 말 없다. 워홀 때문에 화려하게 꽃피웠다가 지고 말았던 가녀린 영혼, 에디 세즈윅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정말 그녀는 자신이 망가져갈 줄 알면서도 기꺼이 워홀의 뮤즈가 되어주었던 것일까.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누구나 똑같이 다음과 같은 느낌을 가질 거라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말이다. 영어로 그 느낌을 20자평으로 남긴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Andy Warhol, Asshole" 이라고. 그렇게 보이도록 앤디 워홀 역을 연기한 가이 피어스는 정말 그의 현시 같았다. 시에나 밀러는 에디 세즈윅이랑 너무 똑같아서 달리 할 말은 없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