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년 10월 2일 목요일

최홍래200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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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10월 2일 목요일

 습관에 대한 나의 작은 조각....1

 

습관에대해 익히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 걸리지만,

습관을 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문득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에 느꼈다.

원래 내가 다니던 길은 그 길이 아녔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와 동선이 같길래 같이 다니기 시작한 길이다.

고작 수차례.

10번 남짓 왕복으로 걸었을 법한 그 길이,

초등학교 다닐 적 친구집으로 놀러가던 2~3년을 걷던 그 길을 덮었다.

고작 며칠인데.

 

'습관을 덮어 없애고 다른 습관을 채워넣는건 쉽구나....'

 

그러다 수가지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문득 스쳐간다.

 

웃을 일이 별로 없어 웃는게 어색한 나.

그렇다고 해서 고민거리도 별로 없어 한숨도 잘 쉬지 않는 나.

수염이 나질 않아 턱을 만져볼 필요가 없는 나.

술을 마실 때 건배 없인 술을 마시지 않는 나.

항상 요란시끌한 나라서 잘 시간에 잠을 설칠 일이 없던 나

 

이런것들은 또 다시 새로운 습관으로 뒤덮여 없어지고

대신 다른 습관들이 내 몸 구석구석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다.

이제 이런 나는 없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서로 사랑했었던 여자가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좀 하라고 했다.

.........팔불출....

시도 때도 없이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했다.

웃으면 하염없이 좋은사람처럼 보인다.

어느덧 인상을 찌푸리면서 웃어도 조금은 멋적어 보인다.

21년간의 습관을 단 1달만에... 아니 그 보다도 더 빨리 나를 바꾸었다.

그 여자가 나의 인상을 바꾸어놓았다.

헤어진게 벌써 3년이다.

서로 사랑했던 시간보다 헤어져있는 시간이 길고,

지금 이 순간도 1초씩, 1초씩.... 그녀와는 딴방향으로 걷고 있는 나는

멀어지고 있지만, 앞으론 더 길어질 것이지만,.

이 습관은 버리질 못한다.

버리고 싶지도 않다. 덮어씌우기도 싫다.

이건 그녀가 내게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이며, '사랑했었다'라는증거이자,

마지막 내게 남은 그녀의 향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더 이상 사랑하진 않지만, 간직하고 싶다.

 

이젠 한숨이 늘었다.

많이 웃지만 그만큼 한숨도 많이 쉰다.

깨어있는 시간동안 한숨과 웃음이 거의 정비례한다.

이건 시간이 가져다 덮어준 나의 새로운 습관이다.

답답한 일들도 많이 생겼으며, 어깨도 점점 무거워져 간다.

세상에 대고 비난을 한다. 난 세상에 등을 돌리고 있다.

내 자신에게 해야 할 채찍질을 남들에게 해댄다.

자기정당화한다. 이런 내가 싫어진다.

한숨을 쉰다.....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다 한숨을 쉰다.

내 앞길이 조금 막막하고 갈증이 난다. 그래서 한숨을 쉰다.

화를 삭힐 때에는 눈을 감고 가느다랗게 한숨을 쉰다.

미간이 찌푸려진 채로.....

이 세상과 대치중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시간이 가져다 뒤덮어 준

한숨이라는 습관은 이곳 저곳에서 고약한 역병마냥 퍼져간다...

더 이상 덮을 것도 바꿀 것도 없다.

하지만 습관이라서 익숙하다. 인식하지도 못한다....

 

이젠 어느덧 수염이 꽤 나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1년 전만해도. 아니, 반년전만 했어도

난 일주일에 수염을 한번 깍을까 말까했고,

군입대 전에는 한달에 한번 깍을까 말까했다.

이젠 나도 나이가 들었다.

세상을 등질때 즈음해서 이렇게 수염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내 턱수염은 이젠 기리는 속도가 눈에 띈다.

게다가 이젠 점점 그 수염이 잘 어울리려 한다.

하지만 여지없이 또 잘라 버린다.

성숙해갈 수록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어져 감에

나는 예전보다 이 세상의 때를 많이 묻혔으며,

이 시대의 치부를 두 눈으로 똑바로 뜨고 바라보고 있다.

예전엔 그 어느곳에서도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내 오른 손이 나의 턱을 감싸고 비벼본다.

조금 더 자란거 같다.

씻을 때 같이 면도를 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나에게 묻은 세상의 때를 지워버리는 것 같다.

가만 보고있자니, 세상의 때를 진짜 묻힌것 마냥 지저분해 보인다.

수염난 나를... 세상의 때를 묻히고 시대의 치부를 받아들이는

거부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이다...

 

술을 마실 때 건배를 하고 마셨다.

누구나 그랬다.

 

친구끼리는 우정을 과시하고 확인하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애정을 더 키우려,

동료끼리는 화합을 도모하려,

처음보는 사람끼리는 서로의 반가움을 표시하려,

동업자는 앞으로의 모든 일이 잘 성사되게끔 하려

...............

어느샌가 이런 것들이 부질없어져보였다.

건배를 하지 않아도 우정은 있으며,

이젠 나의 곁에 없다고 해도, 의리가 없는게 아니다.

솔직히 의리를 과시할 나이는 아니다.

그러기엔 서로 좀 벅차다, 이젠.

핑계든, 아니든... 그게 어쨋든 다들 이해한다.

그럴 나이가 됐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부여한다하는데 지쳤다.

사랑의 의미도, 우정의 의미도, 단결의 의미도...

의미를 상실했다.

'1은 1이다...'이런게 싫지만, 굳이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건배 없이 술을 마신다.

술을 따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마시고,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잔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가 한잔 마신다.

그렇게 나를 변화시켜가더라.

 

가끔은 불면증에 악을 쓴다.

피곤해도 잘 수가 없다.

나의 이 새로운 습관인 불면증은.

24세때부터 시작됐다.

불과 1년 전이고, 이제 곧 2년째가 된다.

불면증이란 습관을 만들어 준 것은

나 자신이다.

유일하게 스스로가 망각하고 있는 습관이다.

형태로 드러나고, 고통으로 느끼기 때문에 망각할래야 할 수 가 없다.

수 많은 생각.

그게 원인이기도 하다.

이젠. 동네골목대장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나대면서

실실거리고, 소리지르는게 싫어졌다.

사람은 점점 소심해지더라.

패기도, 열정도 시들어가려 하더라.

어렵사리 지킨다.

그러기 위해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피곤함을 이끌고서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어느 새 예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엔 지금의 내가 서 있었다.

'성숙'이라는 모습보다는 '타락'이란 모습으로.

 

2008년 10월 2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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