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일, 아침속보로 보도되었던 故 최진실씨의 사망을 알리는 뉴스화면 (화면출처: KBS)
10월이 시작된지 이틀째 지나던 날 오전,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두꺼운 민법(民法)교과서와 한창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난해한 이론과 학설의 다툼이 유난히 많은 이 과목을 정복하지 못하면 사법시험 합격이 요원한 일이기에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더라도 민법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목 중 과목이다.
그렇게 책을 세 시간여를 본 후 점심식사 약속이 있어 도서관을 떠나기 전에 무심코 인터넷 웹페이지를 열었더니 난데없이 도저히 뉴스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사가 굵은 글씨로 화면 한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은 것이 가끔 오보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명 연예인의 사망의 경우에는 거의 오보가 나는 일이 없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물끄러미 화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우스를 잡은 오른 손은 드래그도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계속 그 제목기사만 바라보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믿겨지지 않는 유명연예인의 자살소식
최진실 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만큼 Top 연예인이었다. 국민들 가운데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녀는 오랜 시간동안 Long-Run을 하면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톱스타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다. 물론 2000년대에 들어와서 그녀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사건과 그로 인한 좌절과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청자가 국민 다수였던 우리는 그녀를 상당히 오랫동안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TV를 거의 보질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최근 드라마에서 재기에 성공하면서 다시 인기를 올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10월이 다가왔고 그녀는 오늘 새벽 그렇게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내가 최진실을 처음 알았던 기억
80년대 후반이었던 지난 20 여년 전, 나는 초등학교를 한창 다니고 있던 세대이고 그렇다면 우리 동년배나 비슷한 연배들은 최진실의 청춘스타시절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아득한 기억을 반추해 보니 지금은 발간되지 않지만 '소년동아'라는 잡지에 연예인모델이 항상 등장하곤 했는데 항상 연말과 신년의 간판을 채운 사람이 바로 최진실이었다. 아주 어렴풋이 기억의 습작을 더 꺼내어 봤다. 최진실, 그녀의 10문 10답과 사는 이야기가 첫 페이지는 컬러로 나머지 페이지는 흑백으로 게재되면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리고 그렇게 20년이 지나갔고 최진실은 숯한 세월이 지나도 늙지도 않는 미모와 연기로 조금 멀찌감치에 있었지만 변함없이 TV에서 그리고 스포츠신문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별 중의 별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내게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작품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최진실 주연)' 그리고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최수종, 최진실 주연) 들이다. 특히 남자 교사와 여학생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던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는 컬러TV를 통해서 볼 수 있는 Video가 그나마 유일한 문화향유의 수단이던 우리네 어린시절에 꽤 오랫동안 인상을 남겼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90년대에 들어서 최진실은 드라마 '질투'에서 또 한번 우리의 가슴을 울렸고 이후 영화에 진출, 수많은 캐릭터와 패션들을 유행시킨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화려했던 그녀를 따라다녔던 외로움과 악성루머들 그리고 연예인
최진실은 내가 알기로 '상복'도 참으로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연말에 TV앞에서 연기대상을 지켜보던 시절 가장 마지막 타임에 최진실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실제 그녀는 신인여우상을 시작으로 여우주연상까지 누군가에게 한 번밖에 주어지기도 쉽지 않은 상들을 여러 번 수상하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비단 상복뿐이랴..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당시 획기적인 삼성세탁기 광고멘트를 통해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는 C.F 모델로도 그녀는 꽤 오랫동안 정상의 지위를 지켰고 그녀가 드라마에서 입고 나왔던 의상들은 드라마가 끝이 난 후 꽤 오랫동안 유행을 타면서 적지 않은 컬쳐메이커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지난 2000년 우리나라에서는 '세기의 결혼'이라는 단어를 아낌없이 써가면서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중이었던 조성민 전 야구선수와 그녀의 결혼을 보도하느라 심각한 전파, 지면의 낭비를 했던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시절 가장 높은 곳에 올라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행복하게만 보이던 결혼생활의 결과가 '협의이혼'이라는 굴레로 매듭지어지면서 동시에 터져나온 남편에게 맞은 최진실의 사진 한 장은 많은 사람들의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생전에 유난히 밝은 연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어필했던 故 최진실씨의 밝은 모습의 사진이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어린 시절 지독하게 가난했었던 과거사를 고백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마치 신데렐라처럼 브라운관을 통해 데뷔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그 후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출처: 故 최진실 씨 미니홈피)
그렇게 시간이 지나오면서 그녀는 매우 힘들어했다. 연예인이라서 사생활이 쉽사리 노출되었고 때마침 속도를 모르고 발달하는 대한민국 인터넷시스템과 문화가 도입되면서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 번 악성루머와 괴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 94년에 매니저의 살해로 인해 한 차례 가슴앓이를 했고 '이혼'이라는 악수를 두면서 찾아온 우울증과 Top 연예인으로서 지켜야 할 자존심들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그녀에게 시련의 순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TV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스스로 이겨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다시 TV에 비추어지면서 많은 Fan들은 그녀를 다시 응원했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드라마에서 아줌마 연기를 성공적으로 선보이면서 다시금 새로운 연기자의 위치에 성공적으로 컴백한 그녀를 광고사들은 그녀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자사 C.F에 그녀를 출연시키지 않았던가. 그렇게 그녀는 삶을 마감하기까지 바쁘게 활동했던 연기자였다.
그녀의 당찬 용기뒤에 찾아온 결정적 고통
대한민국에서 이혼女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략 자세히 얘기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일반인이 상당한 사회적 어려움과 주변의 시선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는데 하물며 연예인, 그 중에서도 가장 TOP의 위치에 있던 최진실 씨는 어땠겠는가. 사실 이혼을 한 후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그녀의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사실인데 어떻게 보면 그것은 오랫동안 쌓여 내려온 우리내 안타까운 관습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국민적 관심 속에서 올해 5월 그녀는 용기있는 선택을 하여 또 한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자녀들에 대한 친권행사의 방법으로서 '조'씨로 시작하는 아이들의 성씨(性氏)을 그녀의 성씨인 '최'씨로 법원에 변경신청한 것이었다. 개정된 가족법(친족상속법)체계에서 바꿀 수 있는 성씨변경을 그녀가 함으로써 사회에 또 한번 긍정적인 바람을 불어넣었고 법조계에서도 그녀의 용기에 주목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따뜻한 봄날은 그렇게 짧게 지나간 것이었을까? 유난히 무덥고 길었던 올해 여름이 지나가는 시기였던 지난 9월 개그우먼 정선희 씨의 남편이자 사채로 시달리다가 자살한 故 안재환 씨의 자살사건에 엉뚱하게 그녀가 연루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악성루머가 그녀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는데 핵심은 '故 안재환씨가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 25억 가량의 채무의 배후에 그녀가 있다.'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루머가 그것이었다. '의붓아버지가 그 사이에 있다.'는 등 악성루머와 덧글들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유포되기 시작했고 그녀는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는 말로 괴로움을 토로하기 이르렀다. (실제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녀는 죽기 전까지 이끌었던 소위 '최진실 사단'의 맏언니로써 정선희의 심적 회복과 모금을 통한 경제적 후원을 통해 꾸준히 정선희씨를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그 루머를 유포한 사람은 경찰에 의해 조사를 받고 사법처리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갖은 시련에도 때론 연기로 때론 인터뷰를 통해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그녀의 배우로서 그리고 연예인으로서의 20년간의 삶은 이러한 근거없는 괴소문과 처지 비관이 우울증과 겹쳐지면서 그녀는 일어설 수 없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오늘 새벽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가기 전에 술에 만취해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 일반인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 연예인이라는 직업과 아버지 없는 아이들에 대한 양육문제와 자신 스스로의 고민들을 이겨내기에는 너무나 그녀의 마음이 힘들었는지,, 그렇게 그녀는 몇 평 되지 않는 안방욕실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몸에는 알코올의 기운이 남았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녀의 나이 40세, 너무나 안타깝다. (정말 아줌마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되면 더 신랄하게 아줌마 연기를 할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했을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은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정준호씨와 마지막으로 출연했다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 그녀는 수많은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했고 촬영장에서만큼은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유난히 발랄하고 귀여운 연기를 많이 했던 젊은 시절의 그녀였는데,, 왜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연기했던 행복한 결말을 삶에서 이룰 수 없었던 것일까,,
그녀가 남긴 것들과 그릇된 인터넷 문화
법은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가치적으로 판단한다. 스스로 죽었으니 법적 평가를 내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죽음으로 인간의 권리는 종지부를 찍게 되고(법은 이를 '권리의 소멸'이라고 한다.)그 권리자가 남긴 재산은 유언이나 유서 등의 생전 소망대로 상속이 될 뿐이다. 아마도 자녀가 있으니 자녀에게 우선적으로 상속이 될 것이고 모친과 동생에게도 상속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가 국민이고 국민이 시청자였던 우리들에게 그녀는 무엇을 남겼을까. 우리들을 여러 번 울리고 웃겼던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저을 때 TV를 보면서 함께 고개를 젓고 그녀가 펄쩍펄쩍 뛸 때 같이 마음속으로 뛰었던 그녀의 연기들과 이미지들이 오랫동안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살이라는 것을 종교적으로는 부정적으로 판단하지만 여기에는 그에 대해서 논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녀가 생전에 남긴 것들이라 할 수 있고 실제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근거없는 소문과 루머에 오랫동안 시달리며 힘들어 했다. 한 번 괴소문이 생산되면 시공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로 파급되는 네티즌들의 그릇된 인터넷 문화는 이제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그러한 부정적인 인터넷 문화를 유저들인 네티즌 스스로 고치는 것은 거의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일부의 선플운동 보급자들과 댓글을 달지 않고 그저 마우스로만 인터넷을 즐기는 다수의 네티즌들이 있긴 하지만 부정적인 문화는 그들의 선의를 넘어 문화공간 자체를 구정물로 만들고 말기에 이에 대한 자정은 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고도화되며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명예와 명예훼손, 모욕과 근거없는 소문과 글들이 빗발치게 일어나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만큼 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아무리 '법은 최소한'이라는 법언(法言)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양반처럼 느긋하게 적용하기에는 우리네 인터넷 문화의 도가 위험수위를 넘은지 이미 여러 날이 되었다.
이제 고인으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될 故 최진실 씨의 장례패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뉴스게시판 아래에 있는 댓글들을 보라. 이미 뉴스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쏟아져 나오는 갖가지 컨텐츠들에 대한 토론이나 합법적 나눔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자정능력을 포함한 윤리성이 그에 따라주지 못함으로 인해 생겨나고 만 전형적인 '사회지체현상'이 지금 우리나라 인터넷문화를 도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사이버 모욕죄' 라는 꽤 기묘한 범죄를 신설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 '사이버 모욕죄'는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근거없는 글들이나 소식을 게재한 유저나 이를 방치한 간접매체(예를 들면 포털사이트)를 처벌하거나 과징금을 물리는 것으로 아직 이러한 범죄 구성요건을 명문화해서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 정부는 '인터넷 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 먼저 실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꾸준히 법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 '사이버 모욕죄'는 자칫 헌법상 규정하고 있는 가장 강력하게 보호되어야만 하는 권리인 [국민의 표현의 자유 - 제11조]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에 관하여 아직 내가 무어라 가치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이번 최진실 씨의 자살사건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부정적인 생각이 기울어가고 있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다. 아직 내가 법률가는 아니지만 미래의 법률가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만큼 나의 작은 가치판단도 훗날 법조인이 되었을 때 사회에 영향을 조금이라도 끼칠 수 있는 만큼 한 번 시간을 내어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젠 고통없는 세상에서 편안히 쉬기를,,
최진실씨의 죽음은 검찰에서도 이례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다루어 평소 경찰이 지휘하는 사건현장에 검사와 수사관을 파견해 조사를 신속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내가 글을 적고 있는 이 시간에는 부검을 시작해서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 국과수의 직원들이 잠을 못잔채 조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작년 2학기 때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에 재직하고 계시는 이정빈 교수님으로부터 법의학 수업을 수강했던 적이 있는데 국과수의 직원들은 정말 고충이 많다고 들었다. 특히나 연예인의 죽음과 관련해서 사회의 시선이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라 하는데 그들은 오늘 또 한 번의 날을 새지 않을까 싶다.) 4일에는 그녀도 완전히 이 세상과 결별하게 될 것이고,, 시간이 오랫동안 흐르고 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조금씩 지워져 가지 않을런지,,
이젠 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길 기도해보며 나 역시 그녀의 Fan이었기에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화려함 뒤에 유난히 비극이 많았던 女人, 故 최진실
2008년 10월 2일, 아침속보로 보도되었던 故 최진실씨의 사망을 알리는 뉴스화면 (화면출처: KBS)
10월이 시작된지 이틀째 지나던 날 오전,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두꺼운 민법(民法)교과서와 한창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난해한 이론과 학설의 다툼이 유난히 많은 이 과목을 정복하지 못하면 사법시험 합격이 요원한 일이기에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더라도 민법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목 중 과목이다.
그렇게 책을 세 시간여를 본 후 점심식사 약속이 있어 도서관을 떠나기 전에 무심코 인터넷 웹페이지를 열었더니 난데없이 도저히 뉴스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사가 굵은 글씨로 화면 한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은 것이 가끔 오보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명 연예인의 사망의 경우에는 거의 오보가 나는 일이 없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물끄러미 화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우스를 잡은 오른 손은 드래그도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계속 그 제목기사만 바라보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믿겨지지 않는 유명연예인의 자살소식
최진실 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만큼 Top 연예인이었다. 국민들 가운데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녀는 오랜 시간동안 Long-Run을 하면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톱스타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다. 물론 2000년대에 들어와서 그녀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사건과 그로 인한 좌절과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청자가 국민 다수였던 우리는 그녀를 상당히 오랫동안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TV를 거의 보질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최근 드라마에서 재기에 성공하면서 다시 인기를 올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10월이 다가왔고 그녀는 오늘 새벽 그렇게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내가 최진실을 처음 알았던 기억
80년대 후반이었던 지난 20 여년 전, 나는 초등학교를 한창 다니고 있던 세대이고 그렇다면 우리 동년배나 비슷한 연배들은 최진실의 청춘스타시절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아득한 기억을 반추해 보니 지금은 발간되지 않지만 '소년동아'라는 잡지에 연예인모델이 항상 등장하곤 했는데 항상 연말과 신년의 간판을 채운 사람이 바로 최진실이었다. 아주 어렴풋이 기억의 습작을 더 꺼내어 봤다. 최진실, 그녀의 10문 10답과 사는 이야기가 첫 페이지는 컬러로 나머지 페이지는 흑백으로 게재되면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리고 그렇게 20년이 지나갔고 최진실은 숯한 세월이 지나도 늙지도 않는 미모와 연기로 조금 멀찌감치에 있었지만 변함없이 TV에서 그리고 스포츠신문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별 중의 별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내게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작품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최진실 주연)' 그리고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최수종, 최진실 주연) 들이다. 특히 남자 교사와 여학생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던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는 컬러TV를 통해서 볼 수 있는 Video가 그나마 유일한 문화향유의 수단이던 우리네 어린시절에 꽤 오랫동안 인상을 남겼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90년대에 들어서 최진실은 드라마 '질투'에서 또 한번 우리의 가슴을 울렸고 이후 영화에 진출, 수많은 캐릭터와 패션들을 유행시킨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화려했던 그녀를 따라다녔던 외로움과 악성루머들 그리고 연예인
최진실은 내가 알기로 '상복'도 참으로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연말에 TV앞에서 연기대상을 지켜보던 시절 가장 마지막 타임에 최진실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실제 그녀는 신인여우상을 시작으로 여우주연상까지 누군가에게 한 번밖에 주어지기도 쉽지 않은 상들을 여러 번 수상하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비단 상복뿐이랴..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당시 획기적인 삼성세탁기 광고멘트를 통해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는 C.F 모델로도 그녀는 꽤 오랫동안 정상의 지위를 지켰고 그녀가 드라마에서 입고 나왔던 의상들은 드라마가 끝이 난 후 꽤 오랫동안 유행을 타면서 적지 않은 컬쳐메이커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지난 2000년 우리나라에서는 '세기의 결혼'이라는 단어를 아낌없이 써가면서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중이었던 조성민 전 야구선수와 그녀의 결혼을 보도하느라 심각한 전파, 지면의 낭비를 했던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시절 가장 높은 곳에 올라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행복하게만 보이던 결혼생활의 결과가 '협의이혼'이라는 굴레로 매듭지어지면서 동시에 터져나온 남편에게 맞은 최진실의 사진 한 장은 많은 사람들의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생전에 유난히 밝은 연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어필했던 故 최진실씨의 밝은 모습의 사진이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어린 시절 지독하게 가난했었던 과거사를 고백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마치 신데렐라처럼 브라운관을 통해 데뷔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그 후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출처: 故 최진실 씨 미니홈피)
그렇게 시간이 지나오면서 그녀는 매우 힘들어했다. 연예인이라서 사생활이 쉽사리 노출되었고 때마침 속도를 모르고 발달하는 대한민국 인터넷시스템과 문화가 도입되면서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 번 악성루머와 괴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 94년에 매니저의 살해로 인해 한 차례 가슴앓이를 했고 '이혼'이라는 악수를 두면서 찾아온 우울증과 Top 연예인으로서 지켜야 할 자존심들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그녀에게 시련의 순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TV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스스로 이겨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다시 TV에 비추어지면서 많은 Fan들은 그녀를 다시 응원했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드라마에서 아줌마 연기를 성공적으로 선보이면서 다시금 새로운 연기자의 위치에 성공적으로 컴백한 그녀를 광고사들은 그녀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자사 C.F에 그녀를 출연시키지 않았던가. 그렇게 그녀는 삶을 마감하기까지 바쁘게 활동했던 연기자였다.
그녀의 당찬 용기뒤에 찾아온 결정적 고통
대한민국에서 이혼女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략 자세히 얘기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일반인이 상당한 사회적 어려움과 주변의 시선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는데 하물며 연예인, 그 중에서도 가장 TOP의 위치에 있던 최진실 씨는 어땠겠는가. 사실 이혼을 한 후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그녀의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사실인데 어떻게 보면 그것은 오랫동안 쌓여 내려온 우리내 안타까운 관습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국민적 관심 속에서 올해 5월 그녀는 용기있는 선택을 하여 또 한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자녀들에 대한 친권행사의 방법으로서 '조'씨로 시작하는 아이들의 성씨(性氏)을 그녀의 성씨인 '최'씨로 법원에 변경신청한 것이었다. 개정된 가족법(친족상속법)체계에서 바꿀 수 있는 성씨변경을 그녀가 함으로써 사회에 또 한번 긍정적인 바람을 불어넣었고 법조계에서도 그녀의 용기에 주목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따뜻한 봄날은 그렇게 짧게 지나간 것이었을까? 유난히 무덥고 길었던 올해 여름이 지나가는 시기였던 지난 9월 개그우먼 정선희 씨의 남편이자 사채로 시달리다가 자살한 故 안재환 씨의 자살사건에 엉뚱하게 그녀가 연루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악성루머가 그녀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는데 핵심은 '故 안재환씨가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 25억 가량의 채무의 배후에 그녀가 있다.'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루머가 그것이었다. '의붓아버지가 그 사이에 있다.'는 등 악성루머와 덧글들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유포되기 시작했고 그녀는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는 말로 괴로움을 토로하기 이르렀다. (실제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녀는 죽기 전까지 이끌었던 소위 '최진실 사단'의 맏언니로써 정선희의 심적 회복과 모금을 통한 경제적 후원을 통해 꾸준히 정선희씨를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그 루머를 유포한 사람은 경찰에 의해 조사를 받고 사법처리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갖은 시련에도 때론 연기로 때론 인터뷰를 통해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그녀의 배우로서 그리고 연예인으로서의 20년간의 삶은 이러한 근거없는 괴소문과 처지 비관이 우울증과 겹쳐지면서 그녀는 일어설 수 없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오늘 새벽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가기 전에 술에 만취해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 일반인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 연예인이라는 직업과 아버지 없는 아이들에 대한 양육문제와 자신 스스로의 고민들을 이겨내기에는 너무나 그녀의 마음이 힘들었는지,, 그렇게 그녀는 몇 평 되지 않는 안방욕실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몸에는 알코올의 기운이 남았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녀의 나이 40세, 너무나 안타깝다. (정말 아줌마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되면 더 신랄하게 아줌마 연기를 할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했을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은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정준호씨와 마지막으로 출연했다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 그녀는 수많은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했고 촬영장에서만큼은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유난히 발랄하고 귀여운 연기를 많이 했던 젊은 시절의 그녀였는데,, 왜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연기했던 행복한 결말을 삶에서 이룰 수 없었던 것일까,,
그녀가 남긴 것들과 그릇된 인터넷 문화
법은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가치적으로 판단한다. 스스로 죽었으니 법적 평가를 내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죽음으로 인간의 권리는 종지부를 찍게 되고(법은 이를 '권리의 소멸'이라고 한다.)그 권리자가 남긴 재산은 유언이나 유서 등의 생전 소망대로 상속이 될 뿐이다. 아마도 자녀가 있으니 자녀에게 우선적으로 상속이 될 것이고 모친과 동생에게도 상속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가 국민이고 국민이 시청자였던 우리들에게 그녀는 무엇을 남겼을까. 우리들을 여러 번 울리고 웃겼던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저을 때 TV를 보면서 함께 고개를 젓고 그녀가 펄쩍펄쩍 뛸 때 같이 마음속으로 뛰었던 그녀의 연기들과 이미지들이 오랫동안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살이라는 것을 종교적으로는 부정적으로 판단하지만 여기에는 그에 대해서 논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녀가 생전에 남긴 것들이라 할 수 있고 실제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근거없는 소문과 루머에 오랫동안 시달리며 힘들어 했다. 한 번 괴소문이 생산되면 시공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로 파급되는 네티즌들의 그릇된 인터넷 문화는 이제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그러한 부정적인 인터넷 문화를 유저들인 네티즌 스스로 고치는 것은 거의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일부의 선플운동 보급자들과 댓글을 달지 않고 그저 마우스로만 인터넷을 즐기는 다수의 네티즌들이 있긴 하지만 부정적인 문화는 그들의 선의를 넘어 문화공간 자체를 구정물로 만들고 말기에 이에 대한 자정은 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고도화되며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명예와 명예훼손, 모욕과 근거없는 소문과 글들이 빗발치게 일어나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만큼 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아무리 '법은 최소한'이라는 법언(法言)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양반처럼 느긋하게 적용하기에는 우리네 인터넷 문화의 도가 위험수위를 넘은지 이미 여러 날이 되었다.
이제 고인으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될 故 최진실 씨의 장례패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뉴스게시판 아래에 있는 댓글들을 보라. 이미 뉴스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쏟아져 나오는 갖가지 컨텐츠들에 대한 토론이나 합법적 나눔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자정능력을 포함한 윤리성이 그에 따라주지 못함으로 인해 생겨나고 만 전형적인 '사회지체현상'이 지금 우리나라 인터넷문화를 도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사이버 모욕죄' 라는 꽤 기묘한 범죄를 신설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 '사이버 모욕죄'는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근거없는 글들이나 소식을 게재한 유저나 이를 방치한 간접매체(예를 들면 포털사이트)를 처벌하거나 과징금을 물리는 것으로 아직 이러한 범죄 구성요건을 명문화해서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 정부는 '인터넷 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 먼저 실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꾸준히 법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 '사이버 모욕죄'는 자칫 헌법상 규정하고 있는 가장 강력하게 보호되어야만 하는 권리인 [국민의 표현의 자유 - 제11조]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에 관하여 아직 내가 무어라 가치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이번 최진실 씨의 자살사건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부정적인 생각이 기울어가고 있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다. 아직 내가 법률가는 아니지만 미래의 법률가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만큼 나의 작은 가치판단도 훗날 법조인이 되었을 때 사회에 영향을 조금이라도 끼칠 수 있는 만큼 한 번 시간을 내어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젠 고통없는 세상에서 편안히 쉬기를,,
최진실씨의 죽음은 검찰에서도 이례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다루어 평소 경찰이 지휘하는 사건현장에 검사와 수사관을 파견해 조사를 신속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내가 글을 적고 있는 이 시간에는 부검을 시작해서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 국과수의 직원들이 잠을 못잔채 조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작년 2학기 때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에 재직하고 계시는 이정빈 교수님으로부터 법의학 수업을 수강했던 적이 있는데 국과수의 직원들은 정말 고충이 많다고 들었다. 특히나 연예인의 죽음과 관련해서 사회의 시선이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라 하는데 그들은 오늘 또 한 번의 날을 새지 않을까 싶다.) 4일에는 그녀도 완전히 이 세상과 결별하게 될 것이고,, 시간이 오랫동안 흐르고 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조금씩 지워져 가지 않을런지,,
이젠 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길 기도해보며 나 역시 그녀의 Fan이었기에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