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솎아보기]"최진실법" 논란, 편승하는 보수언론

이강율200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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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에선 구제금융법안 통과

 

"스타나 정치인의 자살은 매스컴을 통해 종종 원인이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어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동일시해 모방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4일자 한국일보 7면 머리기사 가운데 일부).

그래서일 것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4년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했다. 주요내용은 이렇다. △자살 보도에서 자살자와 그 유족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살자의 이름과 사진, 자살 장소 및 자살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지 않아야 한다.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자살동기를 판단하는 보도를 하거나, 자살동기를 단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자살을 영웅시 혹은 미화하거나 삶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오해하도록 보도해서는 안 된다. △자살 사건의 보도 여부, 보도 방식과 내용을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한국일보 9월11일자 칼럼 참고).

탤런트 최진실씨 자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지난 3일 최씨가 충동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사건의 충격 여진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신문들은 저 가이드라인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다음은 4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3일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맞는 첫 가을 대운동회였다. 아들은 '엄마와 함께 달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들은 운동회에 나오지 못했다. 엄마는 운동회 전날 목숨을 끊었다."

▲ 10월4일자 중앙일보 3면

 

중앙일보 3면 기사의 리드다. 이번 자살 보도에서도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는 반복되고 있다. 우선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경찰 발표 외에도 최씨 아들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최씨의 사촌이모 등의 진술을 통해 감정적 묘사를 이어갔다.

국민일보는 일기까지 뒤져보았노라고 고백한다. 국민일보는 4면 기사에서 "본보가 고 최진실씨가 남긴 다이어리에서 확인한 내용"이라며 '자기 한 몸조차 주체하기 힘든 주제에 남을 함부로 비방하지 마라. 내 입이 더럽다'는 표현을 거론한 뒤 "최씨가 며칠 전 쓴 이 일기는 인터넷 루머에 따른 분노와 심적 고통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어서 그의 자살 동기를 다시금 짐작하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10월4일자 국민일보 4면

 

경찰의 중간발표로 최씨의 자살 전 행적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지만, 우울증과 '사채설'로 자살의 원인을 단정짓는 태도도 두드러진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3면 기사에서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정보지의 짧은 루머 하나가 증권 투자와는 관계도 없는 톱스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했다.

이번 사건으로 정부·여당에서 사이버모욕죄 및 인터넷실명제 도입을 골자로 한 이른바 '최진실법'이 추진돼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신문 6면 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정병국·홍준표·나경원 의원 등은 '최진실법' 도입 의지를 천명하며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를 강조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지난 3일 인터넷 실명제 확대와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의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했으며, 법무부도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과 관련한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야당과 시민사회계에서는 '표현의 자유 훼손' 등을 거론하며 반대하고 있다. 신문쪽에서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이 법의 도입을 비판적 시각에서 다뤘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 에서 여당의 방침은 "그간 '인터넷 통제' 논란을 빚어온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최진실법'으로 포장해 추진하려는 것이어서 논란이 증폭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 10월4일자 경향신문 1면

 

한겨레도 1면 머리기사 에서 "야권과 학계·시민단체는 여론통제 강화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면서 "익명성을 전제로 악의적인 소문을 무차별적으로 퍼뜨리는 '댓글'의 부작용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하지만 '최진실법'은 건전한 비판과 감시를 가로막는 역기능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한 최영재 한림대 교수(언론학)의 말 등을 인용했다.

물론 정부의 주장에 적극 힘을 실어주는 신문도 있다. 국민일보는 사설 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참에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고 국회에서는 사이버모욕제 신설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사설 에서 "네티즌의 의식이 스스로 개선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최진실 법'을 만들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김종혁 사회 에디터 역시 칼럼 에서 사설과 발 맞춰 △사이버 모욕죄 신설 △인터넷 실명제 대폭 확대 △포털의 책임 대폭 강화 △인터넷 악플에 대한 교육을 '인터넷 그늘'을 없앨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했다. 그의 칼럼이 눈길을 끄는 것은 최진실씨에 대한 악플 공격을 촛불정국에서 자신이 겪었던 개인 경험과 연관짓고 있기 때문이다.

 

 

▲ 10월4일자 중앙일보 에디터 칼럼

 

"…한번 당해보면 그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지난 5월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나는 광우병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광우병 공포가 매우 과장됐다'고 주장했었다. 나름대로 양심껏 썼지만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민을 호도하는 미친 칼럼'(어떤 네티즌 댓글)이라고 공격했다. 이른바 진보진영 사이트들에 그 칼럼이 내걸리면서 온갖 저주와 비난 악플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동아일보도 비슷한 논리 전개를 보였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 에서 "이런 저질 인터넷 문화로 인해 유명 연예인들만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게 증오와 저주, 악의의 막말을 마구잡이로 퍼붓는 풍조가 만연했다. 촛불시위에서 초등학생들까지 전경과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도 운동권 일각의 극단적인 행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최씨의 사채설을 퍼뜨린 악플러와 촛불정국에서 보수언론을 비판한 누리꾼들을 동급으로 놓고 있는 셈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중앙일보처럼 '최진실법' 도입을 직접 주장하진 않았지만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 1면) 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정부·여당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기사를 실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신문은 지난 촛불정국에서 줄곧 사이버 공간에 대한 제재를 주장해왔던 공통점도 있다. '최진실법'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 정부여당과 보수신문들의 목소리 이면에 어떤 의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