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대한민국 아멘

조승연200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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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하다.

한국은 대체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을 싫어하거나,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아무 이유 없이

단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멸시와 조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막연히 그냥, 저 사람은

갖은 편법과 비리로 모은 돈만 아는 황금만능주의자겠거니 말하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깎아내리고 본다. 이게 과연 옳은 것일까?

 

에비뉴엘백화점에 남의 차를 몰고 쇼핑을 간 적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호화로운 백화점 중 하나라는 그곳에

친구의 국산 소형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한 주차안내원이 차와 나를 이리저리 살피고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여기 온 거 맞으세요? 롯데백화점은 더 가셔야 되는데요."

이런 차를 탄 사람은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인가?

직원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킨 건진 모르겠지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닐까.

선글라스를 끼고 큰 차를 타고 갔을 땐 나를 자주 봤다며

가식적으로 반가워하던 그 모습들이 떠올라 구역질이 났다.

 

상류층을 그토록 증오하기 때문에, 그들이 보는 신문에 나는 기사는

전부 그들에게 유용한 것 밖에는 없다.

부동산 투자 유망 지역 정보, 명품 열풍, 유학과 더불은 국립대의 법인화,

상속/증여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감면 및 유명무실화,

수입품 관세 대폭 인하, 국민의료보험 존속에 관한 논의,

수입의약품 선별 보조금 제도 폐지, 생산적 복지 정책으로의 전환,

......끝이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당신은 깨달아야 한다.

 

드라마가 재벌을 그리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단 하나의 그것도 예외 없이 모두

계단이 있는 집에 기사가 딸린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초호화판의 가정생활을 묘사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느 작가가 고백하길, 부자가 나오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아예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리하면 사람들은 부자를 겉으로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론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거나

그들의 삶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이런 모순이

 

 

 

부자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한국 문화 자체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초고속 경제 성장과 급진적 민주화를 겪은 우리 풍토에서

그동안 나쁜 부자의 경우를 수없이 봐온

우리 시민들이 저절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됐을 것이리라.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왜 한국에는 존경받는 부자가 단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노력한 건 정말 하나도 없는 걸까?

옛날 그 시절에 너무 얽매여선 안 된다.

부정 부패와 정경 유착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과도기의 시대는

자랑스런 386 선배들의 피흘리는 노력과 각고의 투쟁 끝에

이미 종말을 고하고 역사책의 한낱 종이가 된 지 오래다.

 

때로 우리 사회가 너무 종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적이란 신앙 생활에 열정적이란 뜻도 되지만, 내가 하려는 말은

하나의 믿음이나 이데올로기에 광적으로 달려든다는 얘기다.

왜 항상 마녀 사냥 문제가 나오고 왕따 현상이 심각한지

그 원인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미 FTA 반대 시위 격화 사태에 대한 총체적인 과정도 그렇다.

뜻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그 행사가

어찌하여 고급 용지 수십만 장에 인쇄된 피켓을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주도하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의 주도 세력인 친북 단체를 극화하여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자체가 한 사람 또는 이익 집단의 의도와 음모 아래에

휘말리고 끌려다닐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회라는 것이다.

국론이 이렇게 분열된 나라를 사실상 나는 본 바가 없다.

 

어리석은 대중을 선동하고 분노시켜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은 제3자에게 폭력을 가하게 하고

그 꼬리를 물어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성공하면

미리 준비해 둔 일방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미 시끄러운 사회에 질린 시민들은 끝을 보려 하고

그렇게 흐지부지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 아닌 해결이 되어버린다.

그에 더하여 설상가상으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3년 가까이 서울역 앞에서 시위한 KTX 여승무원들의 비참한 목소리가

철도공사와 정부에 의해 어떻게 묵사발이 됐는지 알고 있는가.

17년째 일본 대사관 앞에서 피눈물을 흘린 정신대 할머니들 중

얼마나 많은 분이 이미 삶과 작별을 고하셨는지 알고 있는가.

 

 

 

자신과 다르다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토론 문화,

자신과 다르다고 어릴 때부터 외국, 혼혈, 장애우들을 차별하도록

가정에서 교육받은 아이들,

현재 한국 1/2차 산업의 역군인 외국인 노동자와 그의 가족에게

국적 부여나 사증 발급은 커녕 본국 추방과 함께 벌금을 물려

번 돈조차 빼앗고 쫓아버리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우리가 뭐가 그렇게 잘나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걸까.

개구리가 올챙이 적 모른다는 속담은

우리 선조가 우리를 비꼬는 자승자박과도 다름없는 명언이다.

열린 마음을 갖고 너그럽게 포용할 줄 아는

박애와 관용의 정신이 절실하다.

이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