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없을 무)에서 유(있을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이디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임과 동시에 아이디어맨으로서도 첫손에 꼽힌다. 그는 '벽 앞에 서면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디어는 사실상 기업의 존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직후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부산 유엔군 묘지에 잔디를 입혀달라는 미8군의 엉뚱한 주문을 받았을 때, 정주영이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파란 보리싹으로 단장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잔디'에서 문득 '보리싹'을 떠올린다는 것은 콜럼버스의 달걀을 세우는 발상법과 일맥상통한다.
정주영식 발상법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데 그 비결이 숨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 현대건설은 방파제와 호안공사에 쓰일 콘크리트 구조물 스타비트를 국내에서 제작하여 현지로 공수하는 작전을 폈다. 당시 총 16만 개의 스타비트를 제작해야만 했다. 그런데 믹서트럭이 싣고 온 콘크리트를 1백 50톤 크레인 다섯 대로 스타비트 거푸집에 퍼붓는 과정 때문에 하루에 고작 2백 개 정도밖에 생산할 수가 없었다.
이때 그 과정을 지켜보던 정주영이 소리쳤다.
"아니, 저 믹서트럭의 콘크리트를 직접 거푸집에 쏟아 넣으면 될걸 왜 번거롭게 크레인을 사용하여 시간을 낭비하나?"
정주영의 말에 현장감독이 대답하였다.
"믹서트럭의 콘크리트 토출구(토할 토, 날 출, 입 구)가 거푸집보다 낮기 때문에 직접 쏟아 넣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빈대만도 못한 사람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예정 공기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겠나?"
정주영은 현장감독과 작업장 인부들을 싸잡아 면박한 뒤 당장 믹서트럭의 콘크리트 토출구를 스타비트 거푸집보다 높게 개조하라고 명령하였다.
믹서트럭의 경우 공장에서 나올 때부터 콘크리트 토출구의 높이가 고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은 그 토출구를 개조한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발상법으로 간단하게 크레인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번거롭기만 하던 한 과정이 생략되자 작업은 하루 생산량 2백 개에서 3백 50개로 늘어나게 되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예정 공기 안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음은 서산간척지 공사를 할 때의 일이다. 당시 현대건설은 A지구와 B지구로 나누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 B지구 공사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A지구의 경우 최종 물막이 공사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A지구의 방조제 길이는 총 6천 4백 미터였는데, 양쪽에서 방조제를 쌓아오던 중 가운데 2백 70미터를 남겨놓고 나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초속 8미터의 무서운 급류가 흐르고 있어서 승용차 만한 바윗덩어리를 던져 넣어도 금세 물살에 쓸려 내려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B지구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 때는 4.5톤 짜리 바위에 구멍을 뚫어 철사로 두세 개씩 묶은 후 바지선으로 운반하여 투하했었다. 그러나 A지구에서는 워낙 유속이 빠른 관계로 이러한 방법조차 통하지 않았다.
"철사로 돌망태를 엮어 15톤 트럭과 30톤 트럭으로 매일 돌을 실어다 쏟아 붓고 있는데도 소용이 없습니다."
현장 감독의 보고는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많은 돌망태를 쏟아 부어도 코끼리에게 비스킷을 먹이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현대식 장비를 총동원했지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당시 간척공사의 최종 물막이 공법은 흔히 케이블과 바지선 등 해상장비를 동원하여 물막이 구간의 바닥을 점차 높여 가는 점고식(차차 점, 높을 고, 법 식), 덤프트럭 등 육상장비를 이용하여 점차 좁혀가며 축조하는 점축식(차차 점, 쭈그러질 축, 법 식), 그리고 이 두 공법을 적절히 병행하는 병행식 등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A지구 최종 물막이 공사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방법이 다 무용지물이었다.
정주영은 고심하였다. 시간을 끌수록 돈과 인력만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거센 물살 때문에 해상장비로도 안 되고, 육상장비로도 안 된다? 그러면 그 초속 8미터의 거센 물살을 죽이는 방법을 쓰면 되지 않겠어?"
이러한 정주영의 생각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논리였다. 어떤 일이든 난관에 부딪치면 그 난관의 원인이 되는 것을 찾아 제거해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글쎄요. 그 물살을 어떤 방법으로 죽이느냐, 그게 문제겠죠."
공사 현장 책임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머리를 쓰라고. 머리는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니야. 이럴 때 쓰라고 붙어 있는 것이지. 거 왜 고철로 팔아먹으려고 사온 유조선 있지? 그걸 당장 서산 앞 바다로 끌고 와."
정주영은 큰 소리로 외쳤다.
마침 정주영은 해체해서 고철로 팔아먹기 위해 30억 원을 주고 스웨덴에서 사온 고철선 웨터베이호를 울산 앞 바다에 정박시켜 두고 있었다.
곧 길이 3백 32미터 짜리 폐유조선은 울산 앞 바다에서 서산 앞 바다로 옮겨졌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 또는 '유조선 공법'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최종 물막이 공법이 시작된 것이었다.
D데이인 1984 년 2월 25일 새벽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주영이 새로운 공법을 개발하여 물막이 공사 시범을 보인다는 소문이 나자 각종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기자들이 몰려와 현장취재를 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 4시에서 오후 5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폐유조선을 최종 물막이 현장으로 끌어오려 했으나 너무 물살이 세어서 실패하고 말았다. 오후 6시가 되었는데도 폐유조선은 저 멀리 바다 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직접 해보지."
정주영은 작은 배를 이용해 폐유조선으로 건너가 진두지휘를 하였다.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 가설 조명등 사이로 빗발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저녁 7시경, 필사적인 노력 끝에 물이 빠져나가는 썰물 때를 이용하여 가까스로 폐유조선을 접안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배 양쪽 끝에 20미터 정도의 틈이 생겨, 그 사이로 거친 급류가 급속하게 내해 쪽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작업은 철야로 진행되었고, 밤 11시경에 겨우 폐유조선의 꽁무니 쪽 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썰물 때의 노역을 비웃기라도 하듯 폐유조선은 저만큼 먼바다로 떠밀려가 있었다. 그때까지 폐유조선 탱크에 물이 차 있지 않아 완전히 침하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의 노력이 헛고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 예인선을 다시 불러!"
정주영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정주영의 유조선 공법'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공사의 성공으로 정주영은 2백 90억 원의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유조선 공법'은 미국의 "뉴스위크"지와 "타임"지에 소개되었으며, 그후 영국 런던 템즈 강 상류 방조제 공사를 맡은 세계적인 철구조물 회사에서 이 공법에 대한 문의를 해오기도 하였다. '정주영 공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유조선 공법이 세계적인 물막이 공사의 신공법으로 기록된 것이다.
'아이디어는 곧 돈이다'라는 명제를 정주영의 '유조선공법'에서 떠올릴 수 있다. 유조선 공법으로 무려 2백 90억 원의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화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화를 만드는 사람 정주영,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을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대이다. 그런 능력은 일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끊임없는 열정 앞에서는 어떤 철의 장벽도 견뎌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일에 대한 열정에는 인내심과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는 인내심,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이 신화적인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이 조조의 군사와 대적할 때, 제갈공명은 오나라 장군 주유와 함께 계략을 짰다. 제갈공명의 계략은 화공전이었는데 그를 시기한 주유는 한 가지 꾀를 냈다.
주유는 제갈공명에게 열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들어달라고 억지스런 부탁을 하였다. 열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든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사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들어내겠다고 장담하였다.
주유는 어이가 없었다. 제갈공명을 골려주려고 한 꾀인데,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가 싶어 속으로는 은근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유가 보기에 제갈공명은 죽기로 작정한 사람 같아 보였다. 주유는 제갈공명에게 군령장까지 쓰게 하여 만약 사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들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숙소로 돌아간 제갈공명은 태연하게 낮잠만 잤다. 그리고 약속 날짜가 되자 그는 배 스무 척과 군사 30명을 데리고 조조의 진지로 향했다. 이때 각각의 배에는 짚단이며 풀다발이 가득가득 실려 있었다.
한편 조조의 군사는 제갈공명의 배를 보자 일제히 화살을 퍼부었다. 화살을 짚단과 풀다발에 날아가 꽂혔다. 충분한 화살이 꽂혔다고 생각되자 제갈공명은 후퇴 명령을 내렸다.
주유가 군사를 시켜 스무 척의 배에 꽂힌 화살을 세어보니 10만 개를 채우고도 남았다.
정주영의 '유조선 공법'은 기상천외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제갈공명이 조조 군사로부터 하루아침에 10만 개의 화살을 얻어온 작전에 버금가는 일이다.
이러한 기발한 아이디어는 준비된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평소 생각을 집중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인 것이다. 정주영이나 제갈공명이나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일에 대한 집중력이 강하며, 마치 화살로 바위를 뚫는 듯한 그 강한 집중력이야말로 아이디어의 산실인 것이다.
복잡한 매듭을 푸는 방법은 오히려 단순할 수 있다. 복잡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복잡한 방식만 생각한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일일수록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아주 간단한 해결방법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단순한 매듭이 더욱 단단하게 묶여 있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 보지 않고 복잡함 자체에만 생각이 매달려 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아이디어는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데 숨어 있다.
* 전체는 단순화시켜 보고, 부분은 구체화시켜 보는 눈을 길러라! 전체와 부분의 관계 속에 아이디어는 숨어 있다.
벽 앞에 서면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벽 앞에 서면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무(없을 무)에서 유(있을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이디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임과 동시에 아이디어맨으로서도 첫손에 꼽힌다. 그는 '벽 앞에 서면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디어는 사실상 기업의 존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직후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부산 유엔군 묘지에 잔디를 입혀달라는 미8군의 엉뚱한 주문을 받았을 때, 정주영이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파란 보리싹으로 단장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잔디'에서 문득 '보리싹'을 떠올린다는 것은 콜럼버스의 달걀을 세우는 발상법과 일맥상통한다.
정주영식 발상법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데 그 비결이 숨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 현대건설은 방파제와 호안공사에 쓰일 콘크리트 구조물 스타비트를 국내에서 제작하여 현지로 공수하는 작전을 폈다. 당시 총 16만 개의 스타비트를 제작해야만 했다. 그런데 믹서트럭이 싣고 온 콘크리트를 1백 50톤 크레인 다섯 대로 스타비트 거푸집에 퍼붓는 과정 때문에 하루에 고작 2백 개 정도밖에 생산할 수가 없었다.
이때 그 과정을 지켜보던 정주영이 소리쳤다.
"아니, 저 믹서트럭의 콘크리트를 직접 거푸집에 쏟아 넣으면 될걸 왜 번거롭게 크레인을 사용하여 시간을 낭비하나?"
정주영의 말에 현장감독이 대답하였다.
"믹서트럭의 콘크리트 토출구(토할 토, 날 출, 입 구)가 거푸집보다 낮기 때문에 직접 쏟아 넣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빈대만도 못한 사람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예정 공기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겠나?"
정주영은 현장감독과 작업장 인부들을 싸잡아 면박한 뒤 당장 믹서트럭의 콘크리트 토출구를 스타비트 거푸집보다 높게 개조하라고 명령하였다.
믹서트럭의 경우 공장에서 나올 때부터 콘크리트 토출구의 높이가 고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은 그 토출구를 개조한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발상법으로 간단하게 크레인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번거롭기만 하던 한 과정이 생략되자 작업은 하루 생산량 2백 개에서 3백 50개로 늘어나게 되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예정 공기 안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음은 서산간척지 공사를 할 때의 일이다. 당시 현대건설은 A지구와 B지구로 나누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 B지구 공사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A지구의 경우 최종 물막이 공사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A지구의 방조제 길이는 총 6천 4백 미터였는데, 양쪽에서 방조제를 쌓아오던 중 가운데 2백 70미터를 남겨놓고 나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초속 8미터의 무서운 급류가 흐르고 있어서 승용차 만한 바윗덩어리를 던져 넣어도 금세 물살에 쓸려 내려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B지구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 때는 4.5톤 짜리 바위에 구멍을 뚫어 철사로 두세 개씩 묶은 후 바지선으로 운반하여 투하했었다. 그러나 A지구에서는 워낙 유속이 빠른 관계로 이러한 방법조차 통하지 않았다.
"철사로 돌망태를 엮어 15톤 트럭과 30톤 트럭으로 매일 돌을 실어다 쏟아 붓고 있는데도 소용이 없습니다."
현장 감독의 보고는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많은 돌망태를 쏟아 부어도 코끼리에게 비스킷을 먹이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현대식 장비를 총동원했지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당시 간척공사의 최종 물막이 공법은 흔히 케이블과 바지선 등 해상장비를 동원하여 물막이 구간의 바닥을 점차 높여 가는 점고식(차차 점, 높을 고, 법 식), 덤프트럭 등 육상장비를 이용하여 점차 좁혀가며 축조하는 점축식(차차 점, 쭈그러질 축, 법 식), 그리고 이 두 공법을 적절히 병행하는 병행식 등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A지구 최종 물막이 공사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방법이 다 무용지물이었다.
정주영은 고심하였다. 시간을 끌수록 돈과 인력만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거센 물살 때문에 해상장비로도 안 되고, 육상장비로도 안 된다? 그러면 그 초속 8미터의 거센 물살을 죽이는 방법을 쓰면 되지 않겠어?"
이러한 정주영의 생각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논리였다. 어떤 일이든 난관에 부딪치면 그 난관의 원인이 되는 것을 찾아 제거해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글쎄요. 그 물살을 어떤 방법으로 죽이느냐, 그게 문제겠죠."
공사 현장 책임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머리를 쓰라고. 머리는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니야. 이럴 때 쓰라고 붙어 있는 것이지. 거 왜 고철로 팔아먹으려고 사온 유조선 있지? 그걸 당장 서산 앞 바다로 끌고 와."
정주영은 큰 소리로 외쳤다.
마침 정주영은 해체해서 고철로 팔아먹기 위해 30억 원을 주고 스웨덴에서 사온 고철선 웨터베이호를 울산 앞 바다에 정박시켜 두고 있었다.
곧 길이 3백 32미터 짜리 폐유조선은 울산 앞 바다에서 서산 앞 바다로 옮겨졌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 또는 '유조선 공법'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최종 물막이 공법이 시작된 것이었다.
D데이인 1984 년 2월 25일 새벽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주영이 새로운 공법을 개발하여 물막이 공사 시범을 보인다는 소문이 나자 각종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기자들이 몰려와 현장취재를 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 4시에서 오후 5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폐유조선을 최종 물막이 현장으로 끌어오려 했으나 너무 물살이 세어서 실패하고 말았다. 오후 6시가 되었는데도 폐유조선은 저 멀리 바다 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직접 해보지."
정주영은 작은 배를 이용해 폐유조선으로 건너가 진두지휘를 하였다.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 가설 조명등 사이로 빗발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저녁 7시경, 필사적인 노력 끝에 물이 빠져나가는 썰물 때를 이용하여 가까스로 폐유조선을 접안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배 양쪽 끝에 20미터 정도의 틈이 생겨, 그 사이로 거친 급류가 급속하게 내해 쪽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작업은 철야로 진행되었고, 밤 11시경에 겨우 폐유조선의 꽁무니 쪽 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썰물 때의 노역을 비웃기라도 하듯 폐유조선은 저만큼 먼바다로 떠밀려가 있었다. 그때까지 폐유조선 탱크에 물이 차 있지 않아 완전히 침하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의 노력이 헛고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 예인선을 다시 불러!"
정주영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정주영의 유조선 공법'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공사의 성공으로 정주영은 2백 90억 원의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유조선 공법'은 미국의 "뉴스위크"지와 "타임"지에 소개되었으며, 그후 영국 런던 템즈 강 상류 방조제 공사를 맡은 세계적인 철구조물 회사에서 이 공법에 대한 문의를 해오기도 하였다. '정주영 공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유조선 공법이 세계적인 물막이 공사의 신공법으로 기록된 것이다.
'아이디어는 곧 돈이다'라는 명제를 정주영의 '유조선공법'에서 떠올릴 수 있다. 유조선 공법으로 무려 2백 90억 원의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화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화를 만드는 사람 정주영,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을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대이다. 그런 능력은 일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끊임없는 열정 앞에서는 어떤 철의 장벽도 견뎌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일에 대한 열정에는 인내심과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는 인내심,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이 신화적인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이 조조의 군사와 대적할 때, 제갈공명은 오나라 장군 주유와 함께 계략을 짰다. 제갈공명의 계략은 화공전이었는데 그를 시기한 주유는 한 가지 꾀를 냈다.
주유는 제갈공명에게 열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들어달라고 억지스런 부탁을 하였다. 열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든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사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들어내겠다고 장담하였다.
주유는 어이가 없었다. 제갈공명을 골려주려고 한 꾀인데,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가 싶어 속으로는 은근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유가 보기에 제갈공명은 죽기로 작정한 사람 같아 보였다. 주유는 제갈공명에게 군령장까지 쓰게 하여 만약 사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들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숙소로 돌아간 제갈공명은 태연하게 낮잠만 잤다. 그리고 약속 날짜가 되자 그는 배 스무 척과 군사 30명을 데리고 조조의 진지로 향했다. 이때 각각의 배에는 짚단이며 풀다발이 가득가득 실려 있었다.
한편 조조의 군사는 제갈공명의 배를 보자 일제히 화살을 퍼부었다. 화살을 짚단과 풀다발에 날아가 꽂혔다. 충분한 화살이 꽂혔다고 생각되자 제갈공명은 후퇴 명령을 내렸다.
주유가 군사를 시켜 스무 척의 배에 꽂힌 화살을 세어보니 10만 개를 채우고도 남았다.
정주영의 '유조선 공법'은 기상천외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제갈공명이 조조 군사로부터 하루아침에 10만 개의 화살을 얻어온 작전에 버금가는 일이다.
이러한 기발한 아이디어는 준비된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평소 생각을 집중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인 것이다. 정주영이나 제갈공명이나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일에 대한 집중력이 강하며, 마치 화살로 바위를 뚫는 듯한 그 강한 집중력이야말로 아이디어의 산실인 것이다.
복잡한 매듭을 푸는 방법은 오히려 단순할 수 있다. 복잡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복잡한 방식만 생각한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일일수록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아주 간단한 해결방법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단순한 매듭이 더욱 단단하게 묶여 있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 보지 않고 복잡함 자체에만 생각이 매달려 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아이디어는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데 숨어 있다.
* 전체는 단순화시켜 보고, 부분은 구체화시켜 보는 눈을 길러라! 전체와 부분의 관계 속에 아이디어는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