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를 보자.

서승희2008.10.07
조회8,053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중간고사를 보고 성적표가 나오던 날

두렵고 어두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27등...57명 중 27등을 했다.

내 인생 중 잊을 수 없는 숫자이기도하다.

반배치고사에서는 상위권이어서 학급 임원까지 맡았는데

27등이라니, 부모님과 선생님을 무척 실망시켰다.

성적표를 가지고 아빠 앞에 꿇어 앉아 아빠가 한숨을 푹푹내쉬는 것을 보며 철이 없었던 것인지 간이 배 밖으로 돌출했던 것인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그래도 내 뒤엔 30명이 있어..."

아빠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사람이 위를 보고 살아야지 아래를 보고 사냐?!"

 

나는 결국 중학교 3학년 중간고사에서는 반에서 5등까지 성적을 올렸고 그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아빠에게 들고 갔으나 아빠의 반응은 여전했다.

"수학이 이게 뭐냐? 머리 좋은 사람은 수학을 잘하는 법이야"

항상 위,위, 더 높이 더 높이, 더 빨리 더 빨리....

아마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부모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위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야말로 후진국 국민성의 일면이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결국 '자기 자신'이다.

흔히 한국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는 잔소리 중 하나가

"공부해서 남 주냐? 공부 좀 해라.제발"

인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사람은 위를 보면 불행해지고 아래를 보면 행복해진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만큼 메마르고 각박한 삶이 없다는 것!

위를 보면 그렇다.

3등은 2등을 보며 불안하고 시기심을 느낀다.

2등은 1등을 보며...

1등은 그 1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불면의 밤을 보낸다.

여유가 없고 긴장과 강팍함의 연속이다.

그들이 밤 잠을 못자면 자신의 등수에 연연해 하는 이유는?

단연, 자기 삶의 안락함과 행복이다.

그러나 미안한 이야기지만 행복은 그리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일류대 디자인과를 나와서 파슨스 스쿨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대기업 디자인 실장을 하다가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와 염오를 이기지 못해 자살한 이의 이야기를 안다.

그 뿐인가, 아무리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정상'을 향해 질주하다가도 건강에 이상신호 하나만 찾아오면 모든 상아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그들의 마음도 무너진다. 그들의 최후 선택은 대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아래를 보는 사람이 있다.

그네의 삶도 그닥 만만하거나 윤택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자신보다 더 못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향해 있다.

60만원 남짓 되는 월급중 3만원을 가슴아프게 떼어내어 모금을 하고 휴일엔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방문해 그들의 빨래며 밥이며

말동무도 되어 준다.

자신이 먹는 2천원짜리 밥에 감사기도를 드리며 이마저도 못먹는

북한 동포나 아프리카 난민을 위한 기도도 빼먹지 않는다.

그의 삶은 충만하다. 여유롭지 못하지만 그에게는 놀라운 자유와 능력이 있다. 매력적인 눈웃음, 투박하지만 뭐든 잘 고쳐내는 마이다스의 손,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아름다운 입술과 음성...

그는 신을 감동케 한다.

그 주변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한다.

그는 아래를 보는 사람이다.

늘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기에 쉬지 않고

또한 그들을 돌아보기를 쉬지 않는다.

자, 당신이 골라라.

극단적이 예이지만 탄탄대로 위만 바라보다 자살한 유망한 대기업 사원과 이 사람의 인생을!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질문은 가히 도전전이여야 하며 도발적이어야 한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인정하기 싫더라도 단 한번 뿐이며 또한 영원하지도 않다.

당신은 지구에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당신의 탐욕과 이기심과 절망의 쓰레기더미?

아니면 미덕과 소통과 베품의 보물?

선택은 당신의 몫이고

어디를 보는가도 당신의 의지에 달렸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단호하다.

그것은 인간의 참다운 삶에 대해 명확히 계시하고 있으며

결과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아무쪼록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둘러보며 자신의 것을 내어주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로써 무엇보다 그 자신이 행복해지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