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에서는 제 1경전만 인정하다 보니 16세기까지 보편적으로 믿어 오던 '연옥'교리가 갑자기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연옥'이란 '영원한 복을 누리는 천국과 악인들이 영원한 벌을 받는 지옥과의 사이에 중간 장소 또는 형태로서 작은 죄를 지은 상태로 죽은 사람이나 이미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주님의 공의를 완전히 보상하지 못하고 돌아간 영혼들이 정화되어 승천할 때까지 단련을 받게 되는 곳' 을 말한다.(p.71)
흔히 개신교 형제들은 연옥이 성서에 없는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이 옳다. 왜냐하면 그 교리가 들어있는 구약성서 마카베오서 상-하권을 모두 없애 버렸으니 성서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으며, 신약에서도 여러 곳에 암시되어 있으나 이를 구구각각 자유 해석하고 있으므로 그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것이다. 예수를 믿던 어떤 사람이 병상에서 잠시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화를 냈거나 남의 흉을 보며 욕을 했거나 예를 들어 '바보' 또는 '미친놈' 이라 하며 불같이 화를 내며 남을 미워하다가 죽었다면 이 영혼이 즉시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신념으로 왜 못가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또 그러므로 혹여는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바보 또는 미친놈이라고 하는 말도 많이 들리므로.
하지만 비록 예수를 믿었다고 하더라도 이 '미친놈'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대로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마태 5,22)수 밖에 없으며 '바보'라고 욕한 사람도 "중앙 법정에 넘겨질" (마태 5,22)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p.72)이다. 천국은 아무리 작은 죄와 흠이라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이에 대한 내용은 성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묵시 21,27)
비록 그 죽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생명의 책에 자기 이름이 올라 있다고 굳게 믿고 천국행을 확신했을지는 몰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그의 소망일 뿐이지 확약된 사향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공의(公義)가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죄 투성이의 영혼일지라도 육신을 떠난 그 순간 즉시 하느님 앞에 나아가 결백한 천사들의 대열에 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또 어떤 이는 죽기전에 죄사함 다 받고 와다고 항변할지는 모르나 그 사람이 죄사함 다 받았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그는 자기가 하느님으로 착각하는 것 뿐이다. 아니,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 뿐이다. (p.72)
그렇다고 소죄를 가진 영혼이 회개하지 않은 간음자나 살인자들과 같이 지옥 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것 또한 하느님의 공의(公義)와 인자(仁慈)용납할수 있는것은 아니므로 건전한 상식 판단으로라도 어떠한 종류의 중간의 공간이나 상태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신약 성서에도 하느님께서 각 사람의 행실대로, 즉, 순결과 착한 행실로 삶을 산 사람에게는 천국 영복을, 흉악하고 뉘우칠줄 모르는 죄인에게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작은 죄만 있는 영혼에게는 연옥 잠벌을 주신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자기 행적대로 갚아 주기 위해서 상을 가지고 가겠다" (묵시 22,12)
"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 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고 만일 그 집이 불에 타 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1고린 3, 14-15)
사도신경에 나오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모든 성도의 교통함을 믿으며) 라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또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불 속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이 지상에 살아있는 우리가 기도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수가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교리는 구약성서 마카베오 하권 12장 41절부터 45절 사이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으나 개신교에서는 마카베오서를 빼버렸으므로 확인할 바는 없다.
"그들은 숨은 일을 모두 드러내시는 주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 12, 41-45)
당시 유다인 사이의 전통적 관행인 사후 중간 장소 존재를 믿는 마음으로 하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행위에 대해서는 비난하시거나 꾸짖으신 적이 전혀 없다. 꾸짖으시기는 커녕 오히려 연옥의 존재에 대해 아주 똑똑히 말씀(p.75)하셨다.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 12,32) 라는 말씀은 내세에서도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는가?(p.75)
그곳은 천국에는 작은 죄라도 있는 상태로 들어갈 수 없으며 지옥은 그야말로 영벌(永罰) 이라 사죄란 있을수 없으므로 천국도 지옥이 아닌 중간 존재로 연옥은 "거기서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까지는 풀려나올 수 없는 곳' 으로 존재한다.
교부들의 증언(연옥에 관한) 은 너무도 많아서 유명한 것들 몇가지만 소개한다.
1세기: 성 야고보 사도의 경본, 성 마르코의 경본, 초대 교황 베드로의 경본에는 한결같이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이 실려 있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4세기: 성 에프렘은 "형제들이여, 나 죽은 뒤에 기도하러 모이거든 나에게는 향액을 주지 말고 기도로 도와 달다.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성인의 기도로 큰 이익을 얻는 법이다."(Apud Faith of Catholics Vol III. p.162)라고 하였다.
5세기: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사제인 아들에게 언제든지 주님의 제대에 설 때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한 유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 내 마음의 하느님이시여, 내 어머니 죄를 위해 주님께 간구하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상처의 구속 능력으로 말미암아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평안히 쉬게 하여 주소서. 주님, 또한 제 마음과 소리와 붓으로 봉사하는 내 형제들로 하여금 이 기도문을 읽을 때마다 주님 제대 앞에서 주님의 종 모니카를 기념하도록 볻돋아 주시옵소서" (Confessiones Book IX)(p.76)
연옥이 없다면 이들은 무엇때문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했겠는가? 이는 9세기 로마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간 정교회의 예절 경본에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이 있다는 사실로 다시 한번 증명된다.
이 교리를 부정하던 개신교에서도 다행히 최근 한 신학교에서 이 연옥 교리를 믿고 지지한다고 나서고 있다. 한 기독교 유선 TV방송 (CH42)에서 어떤 목사가 믿는 자의 심판과 불신자의 심판과의 차이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한 예가 있다.
"우선 불신자는 안 믿었으니 무조건 지옥이다. 그런데 믿는 성도들의 심판은 하느님 앞에 가서 그가 세상에서 한 모든 일을 셈 바쳐서 매우 잘한 이는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꾸지람을 듣는다"라고 했다.
이 목사는 자신이 벌써 하느님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모든 영혼의 천당과 지옥을 분류하였으나 그가 이미 연옥에 관한 교리를 인정한 것을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은자"는 주님과 함께 바로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영혼, 즉 "주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은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연옥 단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목사는 연옥의 존재를 함축한 성서 구절들을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다.(p.78)
"누가 너를 고소하여 법정으로 끌고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 넘기고 재판관은 형리에게 내어 주어 감옥에 가둘것이다." (마태 5,25)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유혹에서 건져내시고 악인들은 심판 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특히 육체의 더러운 욕망에 빠져 사는 자들과 하는님의 권위를 멸시하는 자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2베드2,9)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은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끝내 순종하지 않던 자들입니다." (1베드 3, 19-20)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가 죄짓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죽을 죄가 아니라면 하느님께 간구하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 죄인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사실 죽을 죄가 있습니다." (1요한 5,16)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16,27)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1고린토 3,13)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6)
"산 사람 모두에게 너그럽게 은덕을 베풀 것이며 죽은 사람에게까지도 은덕을 베풀어라" (집회 7,33) (p.80)
연옥이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이 죽음 속에서 맞는 하느님과의 해후의 순간으로서 정화되는 만남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p.80)
한 가지 분명한 문제는 연옥조차 갈 수 없다고 여겨지는 파문된 죄인이 아무 뉘우침도 없이 왜 제 2경전을 빼어 버렸나 하는 무서운 사실이다. 연옥이 있다고 믿는다 해서 모두 천당에 가는 것도 아니고, 연옥이 없다고 믿는다 해서 모두 지옥이 가는 것도 아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연옥이란 하느님께서 아주 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선하지도 않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 만드신 일종의 반지옥은 아니라는 것(p.80)이다.
우리 성교회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한다면 우리를 사랑하던 그들의 고통을 잊고 살수는 없으므로 죽은 이를 위해 기도 드리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위령기도, 호칭기도, 죽은 부모-형제-친척-은인을 위한 기도, 문상 때-성묘 때의 기도 등을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와 '식사 후 기도' 를 소개한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연옥(煉獄) 교리
갑자기 사라져 버린 연옥(煉獄) 교리
개신교에서는 제 1경전만 인정하다 보니 16세기까지 보편적으로 믿어 오던 '연옥'교리가 갑자기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연옥'이란 '영원한 복을 누리는 천국과 악인들이 영원한 벌을 받는 지옥과의 사이에 중간 장소 또는 형태로서 작은 죄를 지은 상태로 죽은 사람이나 이미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주님의 공의를 완전히 보상하지 못하고 돌아간 영혼들이 정화되어 승천할 때까지 단련을 받게 되는 곳' 을 말한다.(p.71)
흔히 개신교 형제들은 연옥이 성서에 없는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이 옳다. 왜냐하면 그 교리가 들어있는 구약성서 마카베오서 상-하권을 모두 없애 버렸으니 성서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으며, 신약에서도 여러 곳에 암시되어 있으나 이를 구구각각 자유 해석하고 있으므로 그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것이다. 예수를 믿던 어떤 사람이 병상에서 잠시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화를 냈거나 남의 흉을 보며 욕을 했거나 예를 들어 '바보' 또는 '미친놈' 이라 하며 불같이 화를 내며 남을 미워하다가 죽었다면 이 영혼이 즉시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신념으로 왜 못가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또 그러므로 혹여는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바보 또는 미친놈이라고 하는 말도 많이 들리므로.
하지만 비록 예수를 믿었다고 하더라도 이 '미친놈'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대로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마태 5,22)수 밖에 없으며 '바보'라고 욕한 사람도 "중앙 법정에 넘겨질" (마태 5,22)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p.72)이다. 천국은 아무리 작은 죄와 흠이라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이에 대한 내용은 성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묵시 21,27)
비록 그 죽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생명의 책에 자기 이름이 올라 있다고 굳게 믿고 천국행을 확신했을지는 몰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그의 소망일 뿐이지 확약된 사향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공의(公義)가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죄 투성이의 영혼일지라도 육신을 떠난 그 순간 즉시 하느님 앞에 나아가 결백한 천사들의 대열에 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또 어떤 이는 죽기전에 죄사함 다 받고 와다고 항변할지는 모르나 그 사람이 죄사함 다 받았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그는 자기가 하느님으로 착각하는 것 뿐이다. 아니,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 뿐이다. (p.72)
그렇다고 소죄를 가진 영혼이 회개하지 않은 간음자나 살인자들과 같이 지옥 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것 또한 하느님의 공의(公義)와 인자(仁慈)용납할수 있는것은 아니므로 건전한 상식 판단으로라도 어떠한 종류의 중간의 공간이나 상태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신약 성서에도 하느님께서 각 사람의 행실대로, 즉, 순결과 착한 행실로 삶을 산 사람에게는 천국 영복을, 흉악하고 뉘우칠줄 모르는 죄인에게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작은 죄만 있는 영혼에게는 연옥 잠벌을 주신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자기 행적대로 갚아 주기 위해서 상을 가지고 가겠다" (묵시 22,12)
"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 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고 만일 그 집이 불에 타 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1고린 3, 14-15)
사도신경에 나오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모든 성도의 교통함을 믿으며) 라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또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불 속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이 지상에 살아있는 우리가 기도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수가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교리는 구약성서 마카베오 하권 12장 41절부터 45절 사이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으나 개신교에서는 마카베오서를 빼버렸으므로 확인할 바는 없다.
"그들은 숨은 일을 모두 드러내시는 주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 12, 41-45)
당시 유다인 사이의 전통적 관행인 사후 중간 장소 존재를 믿는 마음으로 하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행위에 대해서는 비난하시거나 꾸짖으신 적이 전혀 없다. 꾸짖으시기는 커녕 오히려 연옥의 존재에 대해 아주 똑똑히 말씀(p.75)하셨다.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 12,32) 라는 말씀은 내세에서도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는가?(p.75)
그곳은 천국에는 작은 죄라도 있는 상태로 들어갈 수 없으며 지옥은 그야말로 영벌(永罰) 이라 사죄란 있을수 없으므로 천국도 지옥이 아닌 중간 존재로 연옥은 "거기서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까지는 풀려나올 수 없는 곳' 으로 존재한다.
교부들의 증언(연옥에 관한) 은 너무도 많아서 유명한 것들 몇가지만 소개한다.
1세기: 성 야고보 사도의 경본, 성 마르코의 경본, 초대 교황 베드로의 경본에는 한결같이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이 실려 있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4세기: 성 에프렘은 "형제들이여, 나 죽은 뒤에 기도하러 모이거든 나에게는 향액을 주지 말고 기도로 도와 달다.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성인의 기도로 큰 이익을 얻는 법이다."(Apud Faith of Catholics Vol III. p.162)라고 하였다. 5세기: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사제인 아들에게 언제든지 주님의 제대에 설 때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한 유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 내 마음의 하느님이시여, 내 어머니 죄를 위해 주님께 간구하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상처의 구속 능력으로 말미암아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평안히 쉬게 하여 주소서. 주님, 또한 제 마음과 소리와 붓으로 봉사하는 내 형제들로 하여금 이 기도문을 읽을 때마다 주님 제대 앞에서 주님의 종 모니카를 기념하도록 볻돋아 주시옵소서" (Confessiones Book IX)(p.76)연옥이 없다면 이들은 무엇때문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했겠는가? 이는 9세기 로마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간 정교회의 예절 경본에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이 있다는 사실로 다시 한번 증명된다.
이 교리를 부정하던 개신교에서도 다행히 최근 한 신학교에서 이 연옥 교리를 믿고 지지한다고 나서고 있다. 한 기독교 유선 TV방송 (CH42)에서 어떤 목사가 믿는 자의 심판과 불신자의 심판과의 차이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한 예가 있다.
"우선 불신자는 안 믿었으니 무조건 지옥이다. 그런데 믿는 성도들의 심판은 하느님 앞에 가서 그가 세상에서 한 모든 일을 셈 바쳐서 매우 잘한 이는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꾸지람을 듣는다"라고 했다.
이 목사는 자신이 벌써 하느님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모든 영혼의 천당과 지옥을 분류하였으나 그가 이미 연옥에 관한 교리를 인정한 것을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은자"는 주님과 함께 바로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영혼, 즉 "주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은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연옥 단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목사는 연옥의 존재를 함축한 성서 구절들을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다.(p.78)
"누가 너를 고소하여 법정으로 끌고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 넘기고 재판관은 형리에게 내어 주어 감옥에 가둘것이다." (마태 5,25)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유혹에서 건져내시고 악인들은 심판 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특히 육체의 더러운 욕망에 빠져 사는 자들과 하는님의 권위를 멸시하는 자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2베드2,9)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은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끝내 순종하지 않던 자들입니다." (1베드 3, 19-20)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가 죄짓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죽을 죄가 아니라면 하느님께 간구하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 죄인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사실 죽을 죄가 있습니다." (1요한 5,16)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16,27)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1고린토 3,13)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6)
"산 사람 모두에게 너그럽게 은덕을 베풀 것이며 죽은 사람에게까지도 은덕을 베풀어라" (집회 7,33) (p.80)
연옥이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이 죽음 속에서 맞는 하느님과의 해후의 순간으로서 정화되는 만남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p.80)
한 가지 분명한 문제는 연옥조차 갈 수 없다고 여겨지는 파문된 죄인이 아무 뉘우침도 없이 왜 제 2경전을 빼어 버렸나 하는 무서운 사실이다. 연옥이 있다고 믿는다 해서 모두 천당에 가는 것도 아니고, 연옥이 없다고 믿는다 해서 모두 지옥이 가는 것도 아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연옥이란 하느님께서 아주 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선하지도 않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 만드신 일종의 반지옥은 아니라는 것(p.80)이다.
우리 성교회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한다면 우리를 사랑하던 그들의 고통을 잊고 살수는 없으므로 죽은 이를 위해 기도 드리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위령기도, 호칭기도, 죽은 부모-형제-친척-은인을 위한 기도, 문상 때-성묘 때의 기도 등을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와 '식사 후 기도' 를 소개한다.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
○ 주님, 주님께서는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며
은혜를 갚으라 하시었나이다.
● 세상을 떠난 아버지(어머니)를 생각하며 기도하오니
세상에서 주를 섬기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랐던
아버지(어머니)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또한 저희는 아버지(어머니)를 생각하며
언제나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며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 아멘
식사 후 기도
† 전능하신 하느님,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 아멘
†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 이제로부터 영원히 받으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p.g.71~80
-주님 저를 가톨릭교회로 불러주심에 감사합니다-
김 안토니오 지음, 동진 A.(안토니오)TNP(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