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울지 않는다.

이상재2008.10.09
조회98

 

 

 

 

  다시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이터널 선샤인, 아무도 모른다, before sunrise & sunset,

  파이트  클럽, 파이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파인딩 포레  스트, 굿윌 헌팅, 피아니스트, 스노우 워커, 대부,

  무간도,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로져 등등...

  그리고 ‘소년은 울지 않는다’ 가 있다.

 

  영화는 분명 fiction이다. 사실에 바탕을 두었더라도 각색과

감독의 시선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로를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없다. 감독의 2시간짜리 짧은 영상속에 fiction을 관객이

읽을 뿐이다.

 

  흥미로운 주인공의 삶을 각색한 영화에 관객은 때론 희열을

느낀다. ‘에린 브로코비치’ ‘Catch me if you can' 작품이

대표적이다. 비상한 그들의 일대기에 그 어떤 위인보다 교훈과

대리만족을 얻는다.

 

  때론 세상에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실제 이야기가 영화가 되면

인간사의 회의를 느낀다.

‘아무도 모른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가 그렇다.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지? 이건 분명 영화야... 하지만

사실에 바탕을 둔 영화라면 그리고 그 영화가 현실속에 있을 법한 일이라면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인간사의 다양한 한면을 엿볼수 있는 영화 한편이 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슬프다 못해 처참하다. 경찰은 피해자인 그녀를 취조하듯 묻는 장면은 나를 주먹쥐게 만든다. 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여기를 떠나라고 한다.

 

주인공이 말한 여기는 어디일까? 그릇된 시선이 만무한 이곳이 아닐까?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마지막 여주인공은 환하게 웃고 있다. 이곳을 벗어나면 될거야 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앞을 볼수 없는 뿌연 고속도로 앞 모습은 관객이 만들어갈

 공간이다.

 만들 준비되었는가? 난 되어있지 않다.

 법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환경을 만들자. ‘아무도 모른다’처럼 될 수 있다.

 사실 소년은 목놓아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