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마흔일곱 번째 이야기 · 사랑

권구태200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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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마흔일곱 번째 이야기 · 사랑


너는 사전을 찾아보았니?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한 청년이 깊이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 청년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입을 열기 힘들어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떠보다가 주춤하기도 하고, 사이가 좋아졌다가 소원해졌다가 했다. 그들을 비웃지 말라. 아마도 첫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거절당하고 실패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청년은 정성들여 카드를 한 장 만들어 오랫동안 마음속에 숨겨왔던 말들을 썼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직접 그녀에게 카드를 건네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근심 끝에 그는 술을 조금 마셨다. 술기운에 약간의 용기가 나자 그녀를 찾아갔다. 여자가 문을 열자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취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술기운이 있는 얼굴을 보자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시간에 무슨 일 이니?”

“널 보러 왔지.”

“내가 뭐 볼게 있다고.”

그녀는 별로 내키지 않은 기색으로 그를 들어오게 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여전히 그는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뾰로통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물결이 가득 넘쳤다.

그들은 한참을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별로 안 좋았는지 말수가 아주 적었다.

테이블 위의 작은 시계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피곤해.”

여자는 천천히 허리를 펴면서 탁자 위의 책들을 정리하며 이만 가달라는 뜻을 나타냈다.

그 때 청년의 머리 속에서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따분한 척 하며 큰 사전을 펼쳤다가 닫고는 한쪽에 놓았다. 잠시 후, 그는 종이 위에 ‘罌’ 자를 쓰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참, 너 이 글자 어떻게 읽는 줄 아니?”

“‘잉(ying)' 이라고 읽지.” 그녀는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왜?”

“‘야오(yao)' 라고 읽는 거 아냐?” 그가 말했다.

“‘잉’ 이 맞아.”

“나는 ‘야오’ 라고 기억하는데. 지금까지 나는 이 글자를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분명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그녀는 쌀쌀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가 취했다고 생각했다.

청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다시 한번 “나는 분명 ‘야오’ 로 알고 있어.

못 믿겠다면 사전을 찾아 확인해봐. 자, 사전.”

그는 말을 약간 더듬고 있었다.

“필요 없어. 내일 다시 얘기하자. 이제 너도 집에 가서 쉬어.” 라고 말하며 일어섰다.

청년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사전 찾아봐 응?” 작은 소리로 말하는 그의 말투엔 간청의 느낌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가 정말 많이 취한 것 같았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면서 말했다. “그래 ‘야오’ 라고 읽는 거야.

네 말이 맞아. 이제 집에 돌아가서 쉬는 게 어때?”

“내가, 내가 틀렸어, 내가 틀렸다고!”

청년은 거의 눈물이 날 정도로 다급하게 말했다. “부탁이야. 사전을 찾아봐 응?”

여자는 터무니없이 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정말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취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화낼 거야. 그리고 오늘 이후로 널 다시 보지 않을 거야!”

“알았어. 갈게. 갈게.”

청년은 급히 일어나 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내가 간 뒤에 사전을 찾아봐, 알았지?”

“알았어.” 그녀는 정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청년은 문을 나섰다. 여자는 자려고 불을 껐다.

잠에 들려는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볍게 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세요?” 여자는 어둠 속에서 일어나 앉았다.

“사전은 찾아 봤니?” 창문 밖에서 들리는 것은 그의 목소리였다.

“미쳤어!” 여자는 중얼중얼 욕 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전 찾아 봤니?” 그가 또 물었다.

“집에 돌아가, 너는 어쩜 이렇게 고집스럽니!”

“사전 찾아 봤니?” 청년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물었다.

“찾아 봤어!” 여자는 큰 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네가 틀렸었어, 처음부터 끝가지 모두 네가 틀렸어!”

“나를 속이는 건 아니지?”

“아니야. 귀신이나 너를 속이지.”

“잘 자.” 이것이 그녀가 들은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그의 발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앉아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사전 찾아 봤니?”

그녀의 귓등에 맴도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불을 켜고 사전을 펼쳐 보았다.

‘罌’ 자가 있는 그 페이지에는 귀여운 카드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카드 위에는 매우 친숙한 글씨로 ‘나는 온 인생을 바쳐 너를 사랑하고 싶어,

허락해 주겠니?’ 라고 써있었다. 그녀는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내일 그를 찾아가 봐야지.”

그 날 밤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지만 청년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거절당했다고 여기고는 많은 술을 마셨다. 결국 진짜로 술에 취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쏟아 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 사전을 펴고 ‘罌’ 자를 찾았다. 사전의 주석은 이러했다.

‘양귀비 : 열매는 공같이 둥근 모양, 덜익었을 때 열매 속에 석회 장액(漿液)이 있는데, 이것은 아편을 만드는 원료이다.’ 양귀비는 매우 아름다운 꽃이면서 좋은 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목숨을 잃게 할 수 있는 독약이 되기도 한다.

 

사전을 찾아 봤니?

 

누군가가 당신에게 묻는다면 꼭 사전을 찾아봐라. 어쩌면 당신이 줄곧 맞는다고 여기던 어떤 글자에 대해 사실은 틀린 것이었거나, 아니면 알고 있건 것과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 삶에는 매우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있다. 한순간의 부주의는 눈앞에 있는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그리고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고 있다. 부주의함으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을 놓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