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그리고 절실함 - #2. 지윤

이힘찬200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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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그리고 절실함 - #2. 지윤 (그녀의 이야기)

 

 

 

지윤은 이제 남은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녀는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 한 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8시 50분.. 평소보다 20분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지윤은 오랜만에 입은 검은색 정장이 어색한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는, 다시 힘없이 걸었다.

 

‘이젠,, 내게 정말 아무도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골목길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

 

그리고 정류장까지 몇 걸음 앞두었을 때,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지윤은 포토그래퍼였다.


적어도 몇 개월 전까지는..

그녀의 아버지 역시, 유능한 사진작가였다.
그 시대 사람들 답지 않게

현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의 사진들이 인정 받기 시작할 쯔음,
지윤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그 때에,

안타깝게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금전적인 문제로
학업에 영향을 미치게 할 순 없다고,,
하루 종일 2개의 회사와 하나의 식당을 다니며 청소부로 일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그 작은 집을 지켰고, 지윤이의 학업을 지켰다.
그탓에 지윤이가 집에 있을 때에는 항상 혼자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기신 3대의 카메라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녀는 아버지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방과 후,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건물, 사람, 식물, 음식 가릴 것 없이,
그녀에게 작은 생각을 품어주는 것들은 모두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 하나 하나에 작은 의미를 담았다.

 

지윤은 어느새 주변 고등학교에까지

'예비 포토그래퍼 이지윤', 이라고 소문이 날정도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그녀의 어머니는 옆집 아주머니를 통해
지윤이가 공부보다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는 두 대의 카메라를 집어 던져 부숴버렸다.

 

‘니 아빠가,, 니 아빠가 뭐하다가 그렇게 됬는데!!!’

 

그 한마디 뿐이었다.


그 한마디로, 대학에서 사진과의 진학하려던 그녀의 꿈은 무너졌다.

그녀는 남아 있는 아버지의 카메라 한 대를 깊숙한 곳에 숨긴 채,
원하지도 않았던 국문학과로 입학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그녀의 재능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선택과목으로 사진과촬영 수업을 듣던 그녀는
교수님께 인정을 받고, 다시 사진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6개월 정도 후,
그녀는 잡지에 한 코너의 소개되었고,
또 다시 6개월 후에는,
잡지의 한 코너에 매달마다 사진과 글을 담게 되었다.

 

깊게 숨겨놓은 카메라는 잊은 채,
새로 구입한 카메라 2대를 갖고,
자신의 재능을 점점 발전시켜나갔다.

 

대학교 2학년 하반기가 되었을 때,
그녀는 1학년때 만난 사진과촬영 교수님과의 긴 얘기 끝에,
자신이 가려는 길과 관련이 없는 과, 그리고 학교를 포기했다.

 

‘어떻게 보낸 대학인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그녀의 결정을 못마땅해 했지만,
지윤의 확고한 눈빛에 백기를 들었다.


그 눈에서, 어쩌면 죽은 남편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지윤은 그렇게 대학을 포기한 채,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열중했고,
그녀는 어느새 사진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그런 포토그래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났다.

 

그녀가 겨울바람을 쐬며 바닷가를 걷고 있을 때,
얇은 스웨터 하나만을 걸친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큰 키에, 건장한 체격, 그리고 뚜렷한 이목구비-
마치, 모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였다.

그녀는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지윤은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는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걸린 커다란 카메라를 보고는,
‘카메라가 멋지네요’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어떤 사진을 좀 찍고 싶은데,, 잠시 모델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그는 그녀의 부탁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의 부탁대로 포즈를 취해주었고,
사진을 다 찍고난 후, 메일로 보내달라며 자신의 명함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현대자동차 김선근 대리.


‘어려보이는 외모였는데,,’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그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 그 메일로 그의 사진들을 보내주었고,
그것을 계기로 그들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는 시간이 빌때면 항상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녀가 사진 찍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그녀의 사진 속 모델이 되어주었고,
그녀가 취급하는 잡지에 등장할 정도로,
그는 지윤의 삶에 일부가 되어갔다.

 

그녀는 사진을 더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때로는 학생으로의 모습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때와 달리, 마음 먹은 대로 그저 찍고,
여유롭게 의미를 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지윤의 나이 스물 다섯.


사진으로 벌은 돈은 절대 받지 않겠다며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하며 몸을 괴롭히던 지윤의 어머니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 남편의 곁으로 갔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카메라와, 그녀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그, 그렇게 두가지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더욱 더 그 두가지에 매달렸다.

 

지윤의 나이 스물 여섯..


그녀는 그렇게 매달리던 두 가지중 다시 하나를 잃었다..


그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인해, 한 팔을 잃었다.

반듯한 얼굴에는, 평생 지우지 못할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그리고,,,,


더 이상 그녀의 모델이 되어주지도,
함께 걷지도 못할,,,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좌절하며 매달리던 나머지 하나,
그 카메라들을 모두 집어던져 부숴버렸다.

다 필요없다며,

내 인생은, 모두 엉망이라며..


지윤의 인생은 그렇게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매일 같이 병원에 찾아가 하루 종일 그의 곁을 지켰다.


늘 편한 복장으로, 그의 옆에서,
그가 내보내는 수치스러운 일들을 꾿꾿하게 치워주고, 그를 씻겨주었다.

 

매일 아침, 그녀는 출근 하듯이, 늘 같은 시각 88번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가 항상 비슷한 시각에 잠에서 깨어나기에,
그가 눈을 떳을 때,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병원에 다닌지 몇주 지났을 때,
그녀는 피로를 조절하지 못하고 늦잠을 자고 말았다.


급하게 옷을 걸쳐입고 달려가던 그는,
골목길을 벗어나다 한 소년과 부딪힐 뻔 했다.


그 소년 역시 지각을 했는지,
정류장 앞에 서있는 88번 버스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버스정류장에 다다르기 조금 전,
버스는 야속하게 먼저 떠나버리고 말았다.
지윤은 자신보다 조금 먼저 뛰어온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오른쪽 어깨에 걸린 커다란 카메라,
왼쪽 손에 들려있는 두꺼운 책.

 

‘학생이구나,, 그립네. 나도 아침마다 저렇게,,
무거운 카메라를 흔들어대며 뛰어가곤 했는데..’

 

그녀는 아주 잠깐이지만,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수줍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도 잠깐,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다시 받아들이며,
그 웃음을 날려 보냈다.


급하게 뛰어오다 마주친 첫 인상 때문인지,
그녀는 그 다음번에도, 또 그 다음번에도,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항상 그녀와 같은 버스를 탔다.

 

‘부지런한 학생이네...’

 

지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년을 볼 때마다,
자신의 어렸을 적이 떠오르는 탓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곤 했다.

 

그 만남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나온 날에는, 버스 한 두 개를 그냥 보내곤 했다.
그의 바쁜 등굣길을 보며 학생 때를 떠올리는 것이
하루의 시작인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우연한 만남이, 그녀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었기 때문에.

 

몇개월이 흘렀을까,
지윤은 피곤함을 띄어내고 싶어 병원을 나와 근처 카페로 갔던 날.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카페 안을 둘러보던 그녀는,
매일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는 그 소년을 보았다.

 

반대편 구석에서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연이란게 참...’

 

6개월이 흘렀다.

그녀의 얼굴은 야위어가고 있었다.


병원에 누워 있는 그의 눈에서,
삶에 대한 의지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기에.

 

10%로 안되는 그 의지가 0%가 되는 순간,,
그 순간 그녀는 정말 혼자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잔인할정도로 확실하게 느껴졌기에...

 

그리고,, 또 몇일이 더 흐르고,,
결국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눈물을 흘리며,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하루 종일 몇 십번, 몇 백번, 쉬지 않고 눈을 깜박이던,
그날 밤.. 그는 떠났다.

 

새벽 6시,, 그의 친구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그녀는,
두 시간이 넘도록 눈물을 쏟았다. 전화를 받은 그 자리에서..

 

8시 30분,, 평소 같으면 벌써 정류장에 나가 있을 시간.

하지만, 이제 눈을 뜨기 전에 가 있어야 할,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장롱 문을 열었다.


첫 인터뷰를 하고 난 후 사놓은 검은색 정장들이 서너개 걸려있었다.
지윤은 그중 가장 깔끔한 것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힘없이 정류장으로 걸어나갔다.

 

평소보다 한참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그리고,, 이젠 정말, 아무도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정류장 앞에 선채로 88번 버스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로 걸어가고 있을 때, 버스가 도착했다.


괴로움과 외로움은 극에 달했다.
피곤이 몰려와 그녀의 걸음을 삐뚤게 만들었다.

 

‘기대어 쉬고싶어.. 너무... 힘들어....’

 

버스에 올라탄 그녀의 눈에, 중간쯤에 앉은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늘 보던 사람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에 아주 작은 안심을 가져다 주었다.

 

지윤은 그의 옆으로 걸어가 안쪽에 앉았다.
그리고 창가에 머리를 기대었다.

 

‘차가워.....’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쉬고싶다’고 생각했다.


두 눈을 감았다. 팔짱을 낀채로,, 몸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버스가 흔들려,
몸이 옆에 앉은 소년쪽으로 쏠렸지만,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늘 혼자 앉은 채로, 차가운 창가에 기대었던 그녀는,
그 어깨가 왠지 따듯하다고, 그리고 푸근하다고 느꼈다.

 

괴로움과 외로움에 지친 그녀의 몸이, 그의 어깨에 기댄 것만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소년은 6개월이란 시간동안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심될 정도로,
그녀에게 있어 그 소년은 편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지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잠에 들었다.
10분쯤 흘렀을 때, 아주 잠깐 정신이 깨었다.
하지만, 그녀는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들썩이는 바람에
살짝 놀라 눈을 떴을 때,
그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한 아주머니가
짐을 두 손으로 든채,
힘겨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며 서있었다.

 

그가 일어나려는 순간,
지윤은 그의 팔을 꽈악 붙잡았다.

 

‘안되... 가지마요... 난.. 혼자에요...’

 

그녀는 그렇게 마음 속에 속삭이고 있었다.

소년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려,
그를 붙잡은 그녀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3 - '그와 그녀의 이야기'에서 계속..)

 


분명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주위에 그런 사람이 많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이 항상 내 곁에 있을 일은,,

 

거의 없다.

 

By. 나무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