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올려봅니다.. 바둑과 인생

유형민2008.10.12
조회129

인생경영

 

중국과 동구권 국가들은 바둑을 스포츠로 분류한다.

일본은 바둑을 예나 도로 간주한다.

 

 

(기력이 있다면 자세히 들여다 보시라 ㅋㅋ)

 

 

국제대회에서 판세가 벌어지면 일본기사는 빠르게 돌을 던지지만,

중국기사는 끝까지 두는 경우가 많다. 바둑에 대한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포츠이거나 예의 경지로 간주하건 ㅡ 바둑은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천변만화의 게임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다카 히데오가 격저높은 미학을 추구햇다 하더라도, 다케미아 마사키가 우주류를

창조했다 하더라도, 그저그런 평범한 실력의 기사였다면 그들의 기풍은 찬사받지 못햇으리라..

 

바둑에서 승부가 지니는 절대적인 의미를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강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조치훈의 스승이자 마지막 명인인 기타니 미노루가 남긴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 그리고 있는 혼인보 슈사이와 대국한 그 기타니 미노루이다

 

기타니는 어려서 괴동이라고 불리웠다.

괴상한 재주의 소유자라고 불릴 만큼 바둑의 천재였다.

살아있는 기성이라고 추앙받는 우칭위안과 더불어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신 포석의 장을 연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포석에는 천원이나 중앙을 두어오던 기존의 틀을 깨고

중앙과 변을 중시하였으며, 현대바둑은 이를 계승하여 귀-변-중앙을 중시하는 것이 자리잡는다.

 

기타니는 현대 바둑사의 큰 획을 긋는 기사였으나, 평생의 라이벌이며 스스로 한수 아래라고까지

여기던 우칭위안에게 치수가 고쳐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타이틀기전이 시작된 현대바둑에서는 무관의 제왕이었다.

 

그러나 바둑교육에 전념한 그가 임해봉 이시다 가토 다케미아 고바야시 조치훈을 키우며

일본 바둑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거장들을 키워냈다.

그는 제자들 모두가 신동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재능만으로는 최정상의 자리에 설 수 없음 또한 잘 알았다.

 

강자의 승리가아니라 승자가 진리인 것이다, 물론 승자는 강자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승부를 갈망하는 강한 승부욕, 그 상대가 누구라도 최선을 다하는 대국 자세,

마지막의 마지막 초읽기까지 모든 집중력을 사용하는 열망으로 둘러싸인 끈기를 교습하려

그가 제자를 키웠을 것이다.

 

 

기타니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한 인물이 조치훈이 아닐까 싶다

 

나는 목숨을 걸고 둔다

 

그의 치열함으로 점철된 철학에서는 every 한 수가 승부를 향한 층층계단이고

평범함을 거부하는 고뇌의 원자이다.

 

 

조치훈에게 있어 제한시간을 모두 소비하지 않는 바둑은 죄악ㅡ

제한시간8시간, 러닝타임 이틀을 소비하는 바둑에서조차

 

100수가 되지 않아 마지막 초읽기를 외줄타기한 그의 바둑으로부터

절대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제발 이 말을

 

라고 곡해하지 말아달라

 

라고 오역하지 말기를 바란다.

 

 

http://lilliput.tistory.com/182?srchid=BR1http%3A%2F%2Flilliput.tistory.com%2F182

 

 

 

 

 

 

 

 

 

 

 

 

 

 

 

 

 

 

 

 

 

 

 

  승부와 명예의 기로에서

승부, 과연 규정이 최선인가 ?!!


흔히, 바둑을 5천년 동양정신문화의 정수라고 한다. 특히, 중세부터 바둑의 전문가제도를 정착시킨 일본은 한,중 양국이 바둑을 스포츠로 전환시킨 최근까지도 '바둑은 예도(藝道)'라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바둑의 예와 도를 숭상하는 일본에서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었다. 이미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제26기 일본기성전 도전7번기 제5국이다.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당시 장면을 재현한다. 바둑은 흑1(실전 흑293)로 반패를 이으면서 사실상 끝났다. 더 이상의 유효착수는 없고 쌍방 집의 계산을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공배를 메우는 일만 남은 상황이다. 당연히 백2, 흑3, 백4, 흑5는 모두 승부와 무관한 공배메우기인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왕리청 9단이 백6에 몰았을 때 류시훈 7단이 단수를 받지 않고 엉뚱하게 흑7을 둔 것이다.


상황재연

흑7을 보고 잠시 손을 멈춘 왕9단, 입회인을 바라본다.
왕9단 : '(흑 여섯 점을)따내도 좋습니까?'

별 생각 없이 공배를 메우던 류7단, 깜짝 놀라며 항의한다.
류7단 : '(내가)293수의 시점에서 바둑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왕9단 : '(나는)듣지 못했는데요?'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한 입회인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9단은 대국을 일시 중단시키고 녹화된 비디오를 분석한다. 두 기사가 굳은 표정으로 대치한 가운데 초조한 시간이 흘러가고…. 1시간 뒤- 이시다9단 '비디오 판독 결과, 293수의 시점에서 쌍방이 종국에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 판정에 의해 대국이 재개되고 왕9단이 백8로 흑 여섯 점을 따낸다. 류 7단, 원망어린 눈으로 왕 9단을 바라보다가 묵묵히 돌을 거둔다.

결론부터 말하면, 입회인의 판정은 틀리지 않다.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내려진 판정은 지켜져야 한다. 이 어이없는 해프닝의 모든 원인과 책임은 류7단에게 있다. 종국의 명확한 합의 없이 혼자 '끝났다'고 생각한 것도, 단수에 몰린 돌을 보지도 않고 엉뚱한 공배를 메운 것도 경솔한 행동이었다.

류7단은 마지막까지 신중함을 지키지 못한 대가로 타이틀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1패를 안았다. 1승과 1패를 맞바꾸었으니 심리적으로는 2패를 당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까? 아니다. 판정은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이 과정은 뭔가 석연치 않다. 승부는 끝났지만 이대로 묻어두기에는 개운치 않은 '무엇'이 있다.

미묘한 종국의 기준

입회인은 '장면도 흑1의 시점에서 쌍방이 종국에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왕9단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과연 진실도 그런가? 장면도 흑1로 반패를 이은 뒤 더 이상 반상에는 유효착수가 없다. 유효착수가 없다면 더 이상 쌍방 집의 가감에 변화가 없으니까 사실상 종국이다(모든 대국을 기록하는 기보 역시 공배를 다 메운 상태가 아닌, 유효착수가 끝난 시점을 종국으로 하고 있음을 주지).

그리고 왕9단은 왜 흑7의 시점에서 손을 멈추고 입회인에게 '따내도 좋으냐?'고 물었을까? 자신의 주장대로 종국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그냥 흑 여섯 점을 따내면 될 것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 입회인에게 '따내도 좋으냐?'고 물었다는 사실은 이미 왕9단 스스로 종국상황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공배를 메우던 류7단이 흑7을 두었을 때 왕9단이 계속 다른 공배를 메웠더라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쌍방의 합의에 의한 종국상황이라면 공배를 메우는 순서를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류7단이 또 8의 곳을 이으면 그만이니까. 왕9단이 합의된 종국상황임을 부정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패배가 분명하지만 어떻게든 뒤집고 싶다는 것. 도전7번기에서 2승 3패와 3승 2패의 입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승자는 한 판의 여유를 갖게 되고 패자는 막판 벼랑에 몰린다. 게다가 5억원에 육박하는 거액의 상금과 이듬해 다시 도전7번기가 보장되는 타이틀홀더의 프리미엄까지 생각하면 그 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또 입회인 역시 종국이 명백한 상황에서 '종국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패자(이 부분이 중요하다. 과연, 왕9단이 승자였어도 그와 같은 이의를 제기했을지?)의 말에 이끌려 모호한 규정을 적용해 대국을 재개시킨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였을까? 대체로 규정이란, 최악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 최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앞뒤 정황을 미루어볼 때 이번 기성전 제5국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었던 실수를 규정의 올가미로 엮어 승리를 갈취한' 인상이 짙다. 그것도 왜 하필이면 '바둑의 성인[棋聖]'이라는 명칭을 가진 타이틀일까.

왕9단은 1승을 얻기 위해서 그윽한 위치에 있던 기성이라는 이름을 진흙탕으로 끌어내렸다. 아울러 프로라면, 더더욱 타이틀 홀더라면 기량은 물론 그 인품에 있어서도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서 경외의 눈길을 보내왔던 수많은 팬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다. 이번 대국에서 승자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는 있다. 이기고도 진 류7단은 뼈저린 실수를 거울삼아 다음을 기약하면 그뿐이지만 지고도 이긴 왕9단은 타이틀방어에 관계없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 기록이, 스스로 마음에 새긴 흉터가 부끄럽지 않다면 더 이상 기성은 없다.

2002-02-28 손종수 wbstone@baduk.or.kr

※관련글 : 승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 (문용직)

○... 이 사건의 발생은 2002년 2월 21일 제26기 일본 기성전 도전5국의 종국 무렵이었다. 글의 원제는 "승부, 과연 규정이 최선인가"이다.

●... 한국 바둑계에서는 대체로 류시훈 7단에 대해 동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프로기사들중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왕리청처럼 돌을 따냈을 것'이라는 의견도 없지는 않았다. 프로기사들의 경우 실전에서 공배를 메꾸는 순서도 실력이라는 것. 단수되는 곳과 단점이 있는 곳에 보강하는 것을 프로 입문전에 습관처럼 연습하게 된다고 하는데, 류7단의 실수가 어이없다는 반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왕리청 9단은 결국 '도전5국의 해프닝'을 분수령으로 제26기 일본 기성 타이틀을 지켰다. 왕 9단은 기성 방어에 성공한 후의 인터뷰에서 "(도전5국에서)따내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왕리청 본인은 승부에 대한 마음을 솔직히 밝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