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살면서 몇 살의 내 모습은 어떨까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스물 다섯과 스물 여섯이 큰 차이가 없듯이 특정한 나이에 내 인생이 놓인다 한들,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서 살짝 거리가 있는 그 때,
그 나이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은수의 모든 점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딱히 뭘 이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흘러드는 느낌이 그렇다. 나도 서른 두 살이 되면 결혼이 하고 싶어질까? ^^ 아니면, 이미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 몸을 담그고 있을까? 나의 서른 두 살이 궁금해 진다.
처음엔 솔직하고 섬세하면서도 현실적인 내용에 신나고 재밌게 읽다가 종반부로 갈수록 살짝 내용이 시시한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김영수의 실체가 드러날 때부터...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감각적인 글솜씨를 보인 작가의 글발에 반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세한 심리 묘사부터 범상치 않은 비유들. 만화책도 아닌데 깔깔깔 웃어 버렸다.^^
등은 연기하지 않는다. 타인의 등을 본다는 행위는 눈을 마주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어쩌면 그 사람 내면의 더욱 깊은 곳을 훔쳐보는 순간이다.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누군가와 영원을 기약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 여정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할 때보다 어쩌면 헤어질 때, 한 인간의 밑바닥이 보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끔은 행복하게 사랑하는 연인들보다 평화롭게 이별하는 연인들이 더 부럽다.
싸움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때, 잘못된 관점을 교정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을 내 힘으로는 죽어도 바꿀 수 없다는 확신이 들 때는 싸움 대신 외면을 택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오랫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달콤한 나의 도시 by 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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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결혼이라는 게 별거니? 이혼은 또 대수고?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인데. 정작 인간들은 그 속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꼼짝달싹 못 하는 모양새가 너무 우스워.
- 왜 아니겠는가. 지겹다. 지겨워서 까무러칠 것만 같다.
새로 산 하이힐을 절뚝거리며 첫 직장에 출근한 이래,
한 달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일요일 밤에는 과음을 삼갔고,
월요일 아침에는 지구의 자전이 멈추기를 바랐으며,
월요일 오후에는 아침에 바랐던 게 무엇이었는지도
까먹을 정도로 바빴다.
아침 아홉 시와 밤 아홉 시 사이에는 대변도 마렵지 않았다.
몸의 사이클조차 컨베이어 벨트의 나사처럼 팽팽히 조여져
살아왔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내 어릴 때의 꿈도 이렇게 지지한 사무원으로
늙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특별한 꿈이 있었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꿈, 간절히 이루고 싶은 미래.
헤엄쳐 닿고 싶은 기슭. 사람들은 모두 다 한 가지씩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듯 하다.
꿈은, 인간을 생에 가뿐히 헌신하도록 만드는 기적의 동력처럼
보인다. 단 한 사람, 나의 경우를 빼면 말이다.
도무지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내 청춘은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애저녁에 벌써 종 쳐버린 건가?
- 백수, 아니 '자연인'의 24시간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더디게
흐른다. 시간의 소비라는 행위만큼 주관적인 것이 또 있을까.
눈에 보이는 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을 그저 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누군가와 영원을 기약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 여정을 통과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할 때보다 어쩌면 헤어질 때,
한 인간의 밑바닥이 보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 24시간 함께 지내지만 정말이지 나는, 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객관적이고 가차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30대 여성
오은수는 어떤 모습일까.
가진 것- 입가의 팔자주름, 알량한 통장 잔고, 깔고 앉은 원룸
전세금, 반 의절 상태인 부모, '한심하게 살기 대회' 대표 선수 같은
친구들, 사랑에 관한 몇 가지 실속 없는 추억들.
못 가진 것 - 남편, 아이, 직장.
겨우 세 가지가 부족할 뿐인데, 왜 이렇게 처참한지 모를 일이었다.
- 그러나 점점 더 혼란스럽다. 나는 정말, 서른 두 살의 나이인가?
'서른 두 살 스러움'의 기준, '서른 두 살 적인 사고방식'의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는데?
한 개인이 일상의 지층을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에 처했을 때에
그런 소속 집단에 대한 선입견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소속 집단의 규범에 의지하여 머리가 빠개지도록 고민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에게 나는, 우주 속의 유일한 개체.
새끼발가락에 티끌만한 가시다 박힌대도 단독의 고통을
감내하며 작은 방 안을 홀로 뒹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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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 살, 서른 두 살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여지껏 살면서 몇 살의 내 모습은 어떨까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스물 다섯과 스물 여섯이 큰 차이가 없듯이 특정한 나이에 내 인생이 놓인다 한들,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서 살짝 거리가 있는 그 때,
그 나이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은수의 모든 점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딱히 뭘 이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흘러드는 느낌이 그렇다. 나도 서른 두 살이 되면 결혼이 하고 싶어질까? ^^ 아니면, 이미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 몸을 담그고 있을까? 나의 서른 두 살이 궁금해 진다.
처음엔 솔직하고 섬세하면서도 현실적인 내용에 신나고 재밌게 읽다가 종반부로 갈수록 살짝 내용이 시시한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김영수의 실체가 드러날 때부터...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감각적인 글솜씨를 보인 작가의 글발에 반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세한 심리 묘사부터 범상치 않은 비유들. 만화책도 아닌데 깔깔깔 웃어 버렸다.^^
등은 연기하지 않는다. 타인의 등을 본다는 행위는 눈을 마주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어쩌면 그 사람 내면의 더욱 깊은 곳을 훔쳐보는 순간이다.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누군가와 영원을 기약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 여정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할 때보다 어쩌면 헤어질 때, 한 인간의 밑바닥이 보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끔은 행복하게 사랑하는 연인들보다 평화롭게 이별하는 연인들이 더 부럽다.
싸움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때, 잘못된 관점을 교정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을 내 힘으로는 죽어도 바꿀 수 없다는 확신이 들 때는 싸움 대신 외면을 택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오랫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