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_샴푸

박정남2008.10.13
조회1,031

#1

화장실에 들어간다.

 

샤워기에 물을 튼다.

 

고단했던 하루... 이시간은 정말 행복이다.

 

따뜻한 물줄기가 내 머리카락 올 사이로 비스듬히 흘러내린다.

 

습관적으로 샴푸통의 머리를 꾹꾹 누른다.

 

' 아.... 샴푸...'

 

나와야 할 것이 나오질 않는다.

 

안타까운 마음에 샴푸통을 몇 차례 더 눌러보지만,

 

샴푸통은 허억 허억 하는 힘겨운 소리만 낼 뿐, 내놓아야할 것을 내놓지 않고 있다.

 

머리는 이미 젖어 마트까지 가기에는 꼬라지가 매우 부적합하다.

 

참자 내일 사야지.. 

 

벌써 일주일 째인데 내일은 꼭 사야지..

 

#2.

 

평소 마트를 자주가지 않는 나는 한번에 여러 개 사는 습관이 있다.

 

몇개월 전에도 마트에 갔다가 충동적으로 샴푸리필 2+1 행사에 낚여서 왕창 구매한 적이 있다.

 

샴푸리필 2개를 사면,  1개가 공짜.

 

사실 1개면 충분하지만, 혹시 나중에 모르니깐 2개를 더 산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왕창 사면, 좁은 내 방 구석에 놔둘 곳이 없다.

 

걸리적 거리니깐 깊숙한 곳에 놔두게 되고 한동안 까먹게 된다.

 

 

#3.

 

조금 전, 나에게 리필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기뻤다.

 

일주일동안 비누로 머리를 감았는데... 이제야 알다니...

 

머리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잠시후에 느낄 쾌적한 기분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샴푸통에 리필을 채워넣었다.

 

조금 오래된 탓인지, 약간 묽은 것 같기도 했다.

 

머리에서 계속 물이 떨어지고 있어서 리필 봉지를 다시 넣을 겨를 도 없이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4.

 

샤워기에 다시 물을 틀고 나는 샤워에 집중했다.

 

샴푸를 꾹꾹 눌러, 손에 묻히고, 머리에 발랐다.

 

비누로 머리를 감다가 오랜만에 샴푸로 머리를 감았더니

 

향기가 새롭게 느껴졌다.

 

 

 

머리를 다 감고 밖에 나왔다.

 

 

 

화장실 문앞 바닥에는

 

샤프란 한봉지가 찢겨진 채 널부러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