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찬송가 13장, 신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로 잘 알려진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멜로디-
Ludwig van Beethoven's symphony No.9 in D Minor, Op. 125 [Choral]
1. 귀에 잠시나마 익숙한 멜로디.. 왜?
1악장 ~ 4악장까지 음악의 거대한 구조물을 이루는 이 교향곡은 좀처럼 처음과 끝을 다 감상하는 이가 드물다. 1시간을 훌쩍 넘는 긴 연주 시간 덕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의 소리가 첨가된 마지막 4악장의 멜로디에 익숙하며, 그것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베토벤의 고향과 관련이 있는 바, 베토벤은 1770년 초기 독일의 수도 '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통틀어 보았을 때 오스트리아는 그의 음악적인 고향이기도 하다.
17세에 오스트리아 음악 여행을 통해 천재 음악가 모짜르트에게 '신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 시작하여 20대에 하이든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는 등 오스트리아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당시 독일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대패하여 실의에 빠진 상태였다.
이 때, 베토벤은 그의 9번 교향곡을 독일-프로이센 국왕에게 헌정하였다고 한다. 이에 당시 독일의 국민 시인 '실러'(괴퇴와 비슷하게 추앙받은 인물)의 詩에 곡을 붙여 실의에 찬 국민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
그것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도 불리웠고, 종종 교회에서(특히 기념일에 많이 부르는)도 불리우는 [실러의 송가]인 것을..(유럽의 민요나 가곡 등이 일반적으로 교회 성가에 주된 멜로디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귀가 원하는 [실러의 송가]는 예배시간의 평범한 목소리로 듣는 찬송가가 아닌..
잔뜩 긴장된 오케스트라의 프레스토 연주와 함께 테너 목소리로 시작하다가 빰~ 하고 웅장하게 터지는..
그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의 4색 합창이 아닐런지.
2. 200여년 후에 풀어보는 베토벤의 선물
20년 넘게 그가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할 때부터 줄곧 구상해 온 이 9번 교향곡 [합창]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적 위기가 한창 고조될 때 완성되었다.
중이염을 알아오던 베토벤은 30세 무렵 난청의 징조를 보였고, 40대 후반에 완전히 청력을 상실하였다고 한다. 귀가 먼지 5년만에 1824년 완성한 곡이 바로 9번 교향곡이다.
그가 사람의 목소리까지 모든 악기를 총동원하여 만들어낸 이 환상의 하모니는
결국 멜로디를 들어가면서가 아닌, 콩나물 머리와 기둥을 보고는 머리 속으로 이리 조합하고, 저리 조합하여 만든 음악적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 당시 교향곡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사람의 목소리까지 집어 넣어서 교향곡 중 단연 최고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당시로서는 기악과 성악을 같은 비중으로 두었던 최초의 심포니였기에 획기적인 곡이었다.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대단한 가치를 지닌 곡이었다고 한다. 악보로서는 처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는 등 역사상 최고의 음악 중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영화 [카핑 베토벤]은 교향곡 9번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9번 교향곡의 초연을 앞둔 베토벤은 자신의 상실된 청력 때문에 악보를 필사해줄 카피스트를 찾는데.. 음악적 재능이 보이는 '안나 홀츠'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이 여인과의 음악적 교감을 넘어서 영혼의 교감을 갖게 된다는.. 있음직한 픽션을 그리고 있다.
나는 잠시 떠올려본 이 영화 속 만남이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것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두루미의 관계가 아닐런지 모르겠다.
그 관계성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장면은..
두루미가 강마에의 찢어진 악보를 붙이는 도중에 지휘 연습에 몰두 중인 강마에를 보게 되고,
"왜요? 괜찮은 거 같은데..
아니.. 거기 .. 지금 방금 지휘하신 부분이요.. 좋다구요."
"머리 속으로 한 거..? 들렸다고 그게?"
"아니 뭐, 느낌상.."
"흠.. 어느 부분? 뭐가 들렸다는 거야?"
"거기.. 3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3/4부터 아니예요? 맞아요? 진짜 맞아요? 와- 신기하다. 우리 느낌이 통한거네요. 어머 어떻게.. 나 신끼 있나봐."
뭐 영화 설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귀가 멀어가는 두루미에게 유일하게 음악적 방향을 잡아준 강마에의 손짓은 결국 둘 사이의 교감 통로가 된 샘이다. 아마도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사랑의 감정으로 깊어지는 것 또한 영혼의 교감으로 발전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홍진아, 홍자람 자매 작가의 설정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
어찌 됐든.. 음악적 교감이란 너와 나 사이 영혼의 공통점을 찾아내주는..참으로 신비스러운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을 터-
아, 샛길로 들어선 9번 교향곡 이야기를 바로 잡자면..
베토벤이 이 곡을 완성하고, 지휘를 맡아 초연할 당시 귀가 완전히 멀었기 때문에 등 뒤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우뢰와 같은 기립박수 등 그 엄청난 감동의 순간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이끌어주어 뒤를 돌았을 때에서야 비로소 엄청난 기쁨과 환호를 보게 되었고, 자신 스스로도 감동과 감격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와 관련지어 또다시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두루미에게 했던 강마에의 충고를 떠올리게 되는데..
"뛰어들어. 호수 보이지? 퍼렇지? 아주 깊어. 끝도 없고, 게다가 먹통이야. 아무 소리도 안들려. 죽고 싶을거야. 아니 죽을지도 모르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을 수밖에 없는 거. 그게 바로 절망이고, 시련이고, 실감이야! 그걸 거쳐야만 네가 병 앞에 당당해질 수 있는 거고.."
베토벤은 이 먹통같은 호수에 빠져 죽음에 가까이 가서야 다시 살아나온 기적같은 음악가가 아닐런지..
그의 음악은 단순히 정서에 호소하는 감성적인 곡도 아니고, 다분히 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음악도 아니었으며, 그의 상황에서 나오는 절망과 분노만을 표현하는 곡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극복해낸 .. 뒤 환희를 표현하는 그의 노래, 교향곡 9번 [합창]에서
베토벤의 감동을 보았고, 고난을 극복해가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도 보게 된다.
바로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그토록 강마에의 징크스가 되어준 곡이 [합창]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것은 베토벤의 감동을 모두에게 전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자에게만 시련을 줍니다. 고로 우리는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이 대사가 말해주듯이
사실 [베토벤 바이러스]를 세밀하게 감상한 사람이라면
드라마 2회에서 두루미와 건우가 보여준 길거리 연주곡이 9번 교향곡 [합창]이었다는 것을,
강마에가 수면제를 먹고 자면서까지 듣고 있던 곡이 또한 [합창]이라는 점을 캐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합창]이 두루미의 청각장애, 김갑용 선생님의 치매, 금이간 지휘자(강마에)의 팔, 합창단 해산, 수제민들의 위협.. 모든 난관을 딛고 10회에 일어섰다.
모든 연주자들이 자신의 난관을 극복하고 반드시 훌륭히 연주해내겠다는 목표곡이 다름 아닌 [합창]이었다는 스토리 구조는.. 200여년 전 베토벤이 [합창]이라는 곡을 통해 우리에게 선사한 선물 꾸러미를 펼쳐보라는 작가의 계시이기도 한 셈이다.
3. 클래식은 네모다.
첫 회에서 두 강건우의 10년 전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클래식은 네모다. 뭐라고 생각하세요?"
"동그라미는 아니라고 봐."
기막힌 대답에 그 때부터 작은 건우는
"클래식은 개똥!이다" 라고 치부해버리고 클래식을 거부하게 된다.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재회한 그들의 대화는 조금 다르다.
"클래식은 뭐라고 생각하나?"
"클래식.. 아니 오케스트라는 사람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하모니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참신한 대답이 없나..?"
오디션장에서 보여주었던 두 건우의 대화 속에서 알 수 있듯이 한번 오케스트라를 경험한 건우에게 오케스트라는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그라미는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큰 건우가 원하는 클래식은 무엇일까?
큰 건우, 그의 클래식은 과연 무엇일까?
"그 때 제가 받던 그 위로를, 그 힘을! 여러분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합창]연주가 끝나갈 무렵 어느 수재민에게 했던 말이 오버랩되면서 그의 지휘는 장면을 보는 모든 이의 가슴에 위로를 주고 있다.
아직도 땀을 흩뿌리며 열성을 다 해 지휘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케스트라는.. 클래식은.. 음악은.. 어떤 이에겐 행복일 수도, 어떤 이에겐 위로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중요한 것은 음악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하모니라는 점-
며칠 전, 지휘자의 곡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정도에 따라 지휘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20분의 곡이 어떤 지휘자에겐 25분으로 표현되고, 어떤 지휘자에게는 15분이면 충분한 곡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고 한다. 낭만파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감정표현이 중요시 되어 연주 시간이 배나 늘어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는데..
그 만큼 클래식은 감상하고, 표현하는 개인의 기호에 맞게 180도 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래서 강마에의 표현처럼 음악에서 내가 느낀 위로를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베토벤 바이러스] 10회에 나온 석란시향 오케스트라의 [합창]은 어땠을까?
우리 국민들에게 클래식에 대한 저변을 넓혀줬다고 확신하는 약 10분간의 치열한 연주씬-
"아빠는 감동받았다"
어느 아버지의 기립박수처럼,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만들어주는 오케스트라 연주씬에 넋을 뺄 뿐이다.
9번 교향곡의 비밀
구찬송가 13장, 신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로 잘 알려진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멜로디-
Ludwig van Beethoven's symphony No.9 in D Minor, Op. 125 [Choral]
1. 귀에 잠시나마 익숙한 멜로디.. 왜?
1악장 ~ 4악장까지 음악의 거대한 구조물을 이루는 이 교향곡은 좀처럼 처음과 끝을 다 감상하는 이가 드물다. 1시간을 훌쩍 넘는 긴 연주 시간 덕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의 소리가 첨가된 마지막 4악장의 멜로디에 익숙하며, 그것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베토벤의 고향과 관련이 있는 바, 베토벤은 1770년 초기 독일의 수도 '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통틀어 보았을 때 오스트리아는 그의 음악적인 고향이기도 하다.
17세에 오스트리아 음악 여행을 통해 천재 음악가 모짜르트에게 '신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 시작하여 20대에 하이든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는 등 오스트리아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당시 독일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대패하여 실의에 빠진 상태였다.
이 때, 베토벤은 그의 9번 교향곡을 독일-프로이센 국왕에게 헌정하였다고 한다. 이에 당시 독일의 국민 시인 '실러'(괴퇴와 비슷하게 추앙받은 인물)의 詩에 곡을 붙여 실의에 찬 국민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
그것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도 불리웠고, 종종 교회에서(특히 기념일에 많이 부르는)도 불리우는 [실러의 송가]인 것을..(유럽의 민요나 가곡 등이 일반적으로 교회 성가에 주된 멜로디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귀가 원하는 [실러의 송가]는 예배시간의 평범한 목소리로 듣는 찬송가가 아닌..
잔뜩 긴장된 오케스트라의 프레스토 연주와 함께 테너 목소리로 시작하다가 빰~ 하고 웅장하게 터지는..
그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의 4색 합창이 아닐런지.
2. 200여년 후에 풀어보는 베토벤의 선물
20년 넘게 그가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할 때부터 줄곧 구상해 온 이 9번 교향곡 [합창]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적 위기가 한창 고조될 때 완성되었다.
중이염을 알아오던 베토벤은 30세 무렵 난청의 징조를 보였고, 40대 후반에 완전히 청력을 상실하였다고 한다. 귀가 먼지 5년만에 1824년 완성한 곡이 바로 9번 교향곡이다.
그가 사람의 목소리까지 모든 악기를 총동원하여 만들어낸 이 환상의 하모니는
결국 멜로디를 들어가면서가 아닌, 콩나물 머리와 기둥을 보고는 머리 속으로 이리 조합하고, 저리 조합하여 만든 음악적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 당시 교향곡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사람의 목소리까지 집어 넣어서 교향곡 중 단연 최고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당시로서는 기악과 성악을 같은 비중으로 두었던 최초의 심포니였기에 획기적인 곡이었다.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대단한 가치를 지닌 곡이었다고 한다. 악보로서는 처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는 등 역사상 최고의 음악 중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영화 [카핑 베토벤]은 교향곡 9번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9번 교향곡의 초연을 앞둔 베토벤은 자신의 상실된 청력 때문에 악보를 필사해줄 카피스트를 찾는데.. 음악적 재능이 보이는 '안나 홀츠'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이 여인과의 음악적 교감을 넘어서 영혼의 교감을 갖게 된다는.. 있음직한 픽션을 그리고 있다.
나는 잠시 떠올려본 이 영화 속 만남이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것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두루미의 관계가 아닐런지 모르겠다.
그 관계성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장면은..
두루미가 강마에의 찢어진 악보를 붙이는 도중에 지휘 연습에 몰두 중인 강마에를 보게 되고,
"왜요? 괜찮은 거 같은데..
아니.. 거기 .. 지금 방금 지휘하신 부분이요.. 좋다구요."
"머리 속으로 한 거..? 들렸다고 그게?"
"아니 뭐, 느낌상.."
"흠.. 어느 부분? 뭐가 들렸다는 거야?"
"거기.. 3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3/4부터 아니예요? 맞아요? 진짜 맞아요? 와- 신기하다. 우리 느낌이 통한거네요. 어머 어떻게.. 나 신끼 있나봐."
뭐 영화 설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귀가 멀어가는 두루미에게 유일하게 음악적 방향을 잡아준 강마에의 손짓은 결국 둘 사이의 교감 통로가 된 샘이다. 아마도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사랑의 감정으로 깊어지는 것 또한 영혼의 교감으로 발전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홍진아, 홍자람 자매 작가의 설정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
어찌 됐든.. 음악적 교감이란 너와 나 사이 영혼의 공통점을 찾아내주는..참으로 신비스러운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을 터-
아, 샛길로 들어선 9번 교향곡 이야기를 바로 잡자면..
베토벤이 이 곡을 완성하고, 지휘를 맡아 초연할 당시 귀가 완전히 멀었기 때문에 등 뒤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우뢰와 같은 기립박수 등 그 엄청난 감동의 순간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이끌어주어 뒤를 돌았을 때에서야 비로소 엄청난 기쁨과 환호를 보게 되었고, 자신 스스로도 감동과 감격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와 관련지어 또다시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두루미에게 했던 강마에의 충고를 떠올리게 되는데..
"뛰어들어. 호수 보이지? 퍼렇지? 아주 깊어. 끝도 없고, 게다가 먹통이야. 아무 소리도 안들려. 죽고 싶을거야. 아니 죽을지도 모르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을 수밖에 없는 거. 그게 바로 절망이고, 시련이고, 실감이야! 그걸 거쳐야만 네가 병 앞에 당당해질 수 있는 거고.."
베토벤은 이 먹통같은 호수에 빠져 죽음에 가까이 가서야 다시 살아나온 기적같은 음악가가 아닐런지..
그의 음악은 단순히 정서에 호소하는 감성적인 곡도 아니고, 다분히 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음악도 아니었으며, 그의 상황에서 나오는 절망과 분노만을 표현하는 곡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극복해낸 .. 뒤 환희를 표현하는 그의 노래, 교향곡 9번 [합창]에서
베토벤의 감동을 보았고, 고난을 극복해가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도 보게 된다.
바로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그토록 강마에의 징크스가 되어준 곡이 [합창]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것은 베토벤의 감동을 모두에게 전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자에게만 시련을 줍니다. 고로 우리는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이 대사가 말해주듯이
사실 [베토벤 바이러스]를 세밀하게 감상한 사람이라면
드라마 2회에서 두루미와 건우가 보여준 길거리 연주곡이 9번 교향곡 [합창]이었다는 것을,
강마에가 수면제를 먹고 자면서까지 듣고 있던 곡이 또한 [합창]이라는 점을 캐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합창]이 두루미의 청각장애, 김갑용 선생님의 치매, 금이간 지휘자(강마에)의 팔, 합창단 해산, 수제민들의 위협.. 모든 난관을 딛고 10회에 일어섰다.
모든 연주자들이 자신의 난관을 극복하고 반드시 훌륭히 연주해내겠다는 목표곡이 다름 아닌 [합창]이었다는 스토리 구조는.. 200여년 전 베토벤이 [합창]이라는 곡을 통해 우리에게 선사한 선물 꾸러미를 펼쳐보라는 작가의 계시이기도 한 셈이다.
3. 클래식은 네모다.
첫 회에서 두 강건우의 10년 전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클래식은 네모다. 뭐라고 생각하세요?"
"동그라미는 아니라고 봐."
기막힌 대답에 그 때부터 작은 건우는
"클래식은 개똥!이다" 라고 치부해버리고 클래식을 거부하게 된다.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재회한 그들의 대화는 조금 다르다.
"클래식은 뭐라고 생각하나?"
"클래식.. 아니 오케스트라는 사람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하모니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참신한 대답이 없나..?"
오디션장에서 보여주었던 두 건우의 대화 속에서 알 수 있듯이 한번 오케스트라를 경험한 건우에게 오케스트라는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그라미는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큰 건우가 원하는 클래식은 무엇일까?
큰 건우, 그의 클래식은 과연 무엇일까?
"그 때 제가 받던 그 위로를, 그 힘을! 여러분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합창]연주가 끝나갈 무렵 어느 수재민에게 했던 말이 오버랩되면서 그의 지휘는 장면을 보는 모든 이의 가슴에 위로를 주고 있다.
아직도 땀을 흩뿌리며 열성을 다 해 지휘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케스트라는.. 클래식은.. 음악은.. 어떤 이에겐 행복일 수도, 어떤 이에겐 위로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중요한 것은 음악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하모니라는 점-
며칠 전, 지휘자의 곡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정도에 따라 지휘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20분의 곡이 어떤 지휘자에겐 25분으로 표현되고, 어떤 지휘자에게는 15분이면 충분한 곡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고 한다. 낭만파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감정표현이 중요시 되어 연주 시간이 배나 늘어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는데..
그 만큼 클래식은 감상하고, 표현하는 개인의 기호에 맞게 180도 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래서 강마에의 표현처럼 음악에서 내가 느낀 위로를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베토벤 바이러스] 10회에 나온 석란시향 오케스트라의 [합창]은 어땠을까?
우리 국민들에게 클래식에 대한 저변을 넓혀줬다고 확신하는 약 10분간의 치열한 연주씬-
"아빠는 감동받았다"
어느 아버지의 기립박수처럼,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만들어주는 오케스트라 연주씬에 넋을 뺄 뿐이다.
베토벤 : 환희의 송가 - L.V. Beetho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