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

추지연200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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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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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15세기에 세종 임금이 창제한 한국인 최초의 문자체계이며, 한자는 중국의 한족이 만든 문자다.’이는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오늘날의 움직일 수 없는 상식이다.

따라서‘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상식에서 벗어난 엉뚱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따돌림을 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인간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천동설(天動說)은 중세까지 서양사회를 지배한 움직일 수 없는 상식이었다. 즉 오늘날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한자에 대한 상식도 무지와 오류, 그리고 역사 왜곡에 의해 빚어진 잘못된 믿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중국과 한국의 옛 역사를 심도 있게 연구한 몇몇 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먼저 한국 학자들의 주장부터 소개한다.

‘한국인의 조상인 동이족은 아득한 옛날부터 중국 대륙에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고대 문명뿐 아니라 중국문자인 한자 역시 그들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 사전 사화』의 저자인 대만의 서량지 선생은 이렇게 주장한다.

‘중국 오제시기(요, 순 임금이 다스리던 시대 : 4500~5000여년 전)의 대표적인 임금인 고양 임금과 고신임금 그리고 순임금은 검은 질그릇과 세석기 문화로 대변되는 동이족의 군장이었다. 만주 일대와 산동지방 그리고 한반도에서 발굴되는 그 세석기 문화이다. 그리고 고대 중국의 청동기 문명을 대표하는 상나라 역시 동이족의 국가였다.’

고대 중국의 청동기에 새겨져 있던 문자를 30여년 간 연구하여『금문신고(金文新考)』라는 방대한 저술을 낸 중국의 낙빈기(1917~1994) 선생은 이렇게 단언한다.

‘중국 땅엔 오제시기 이전부터 근본적으로 혈통과 언어가 상이한 양대 종족이 살고 있었다. 신농 씨로 대표되는 양족(洋族 : 陽族)과 곰족(熊族), 호족(虎族)의 연합체인 황제족이 그들이다. 이들 중 양족은 오제시기부터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진입했고 미미하나마 청동 야련기술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족은 아직도 채집 수렵위주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진 종족이었다. 따라서 청동기 문명과 중국문자는 양족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중국의 상고사는 공자가 꾸며낸 만이활하설(蠻夷猾夏設)에 따라 한족(漢族) 위주의 역사로 왜곡되었다. 즉 중국과 한국의 상고사를 왜곡시킨 원흉은 바로 그토록 추앙받아온 공자이다.’

고고학적 자료와 그 당시의 기록이기도 한 청동기에 새겨져 있던 문자를 읽은 후에 내린 두 사람의 주장은 이긴 자의 기록일 뿐인 정통 역사서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다. 더욱이 앙소와 용산 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동이(東夷)문화 흔적과 인골(북방 몽골리안의 뼈)이 위 두사람의 주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엄연한 여러 증거자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과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자료 불충분이란 모호한 답변만을 하며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이제 필자는 그 어느 누구도 부정 못할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여 그동안 외면만 일삼아 온 여러 학자들의 답변을 기다리겠다.

문자는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표음문자 뿐 아니라 그림을 나타내는 상형표의 문자 역시 쓰이고 있는 언어를 전달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그러므로 상형표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한자에는 그 당시 쓰이고 있던 언어와 인간들의 생활 모습이 담겨져 있다. 부언하면 문자는 문자가 만들어질 그 당시의 언어뿐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상 마저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1. 문자와 언어와의 관계

말, 양, 토끼 등의 짐승은 이들의 모양을 그려낸 상형문자가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인간 가까이에 있었으며 그런 이름으로 불리어 졌다. 따라서 말의 형상을 그린 馬 자에‘마(ㄹ)’, 크고 구부러진 뿔 두 개를 지닌 양의 특징을 그린 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에 [양], 두 귀가 툭 튀어 나온 토끼의 특징을 그린 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 (兎의 갑골문)자에‘토’라는 독음이 붙어 있는 것은 그 당시 통용되고 있던 언어에 따라 문자의 독음이 붙게 된다는 평범하고도 간단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문자에 붙어 있는 독음 즉 말, 양, 토끼 등의 말이 우리말인가 아니면 한족(漢族)의 언어였던가를 밝혀낸다면 누가 중국 문자를 만들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 문자에 반영된 생활상

① 여(女) : 이 글자의 고체는 젖가슴이 큰 사람이 꿇어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 자였다. 따라서 이 글자가 그려질 당시엔 여성들의 일반적인 좌식(坐食)은 꿇어앉는 것임을 알 수 있다.

② 부(夫) : 지아비로 읽히는 이 글자는 네 활개를 벌리고 서 있는 큰사람(大)의 머리에 비녀가 가로 꽂혀 있는 형상이다. 바로 혼인한 남자는 머리에 비녀를 꽂는 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③ 예(禮) : 예의 뜻으로 쓰이는 글자다.‘제사상(示) + 풍(豊)’의 구조다. 풍(豊)은 제기(豆) 위에 음식이 가득 차려진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따라서 예(禮)는 제사지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④ 보(保) : 보살피다는 뜻이다. 옛 글자는 등에 업은 아이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 아래와 같은 그림이다. 등에 아이를 업고 보살피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반영된 글자이다.
 
                                    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


⑤ 수(樹) : 나무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 이 글자의 고체는 아래와 같다.

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두손( 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으로 제기인 두(豆)를 들고 나무(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곁으로 다가가는 그림이다. 바로 나무를 제사지냄 또는 나무 밑에 차려진 제사단에 음식을 올려놓고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⑥ 존(尊) : 존경하다의 뜻이다. 고체는 술그릇을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따라서 술을 올림이 최상으로 받드는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⑦ 단(檀) : 향나무, 박달나무(자작나무과에 속함)로 읽히는 글자다.‘나무 + 단(亶)’의 구조다. 단(亶)은 높이 쌓여진 제단을 상형한 글자다. 바로 나무 옆에 제단을 쌓고 제사지내던 풍속이 이 글자가 생겨날 당시까지는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문자를 통해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알이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하고픈 것은 ④, ⑤, ⑦ 항의 글자이다. 아이를 업고 보살피며 자작나무 밑에서 하늘 제사를 올렸던 북방 몽골리안의 옛 풍속이 글자가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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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한국인의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필자약력]

부산에서 태어나 열두살 때부터 무술수련과 역학(易學)을 공부했다.

부산 伽倻동에서 20여 년간 무술수련원을 운영했다. 이때부터 고대 금석문(金石文)과 갑골문(甲骨文)을 연구했고, 한글학회 와 한배달운동(고대사 되찾기 운동)에 발 담기도 했다.

현재까지 역학(易學)과 문자(한자, 한글)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간간이 역사소설을 쓰고 있다. 천고의 비밀, 측자법과 성명학, 역사소설 金人, 한밝 신사주학 上,下권, 한자로 풀어보는 한국고대 신화 등의 저서가 있다.

장편역사소설 ‘아침의 땅(神市)’ 을 집필중.


한밝명리학회 회장 金龍吉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