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잘나가던 전직 DJ이었던 이성욱, 성대현, 박철우는 R.ef 라는 이름으로 가요톱텐이라는 당시 최고의 음악프로램에서 화려하게 등장한다. 지금은 전설이 된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당대 최고의 트랜드였던 '룰라', 국내 R&B 열풍의 효시가 되었던 '솔리드' , 국내 앨범판매의 기네스 보유자 '김건모' 와 같은 당대 최고의 아이콘들이 즐비했던 춘추전국시대와도 같은 시기, 그 시기 많은 가수들이 앨범 발매시기를 서로 눈치보며 고요한 시점을 틈타 고요속의 외침을 하고야 만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1990년대 중반부는 춘추전국시대였다. 국내가요의 최전성기라고 할수 있었을 만큼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하루 아침에 생겨났지만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한 그룹들도 태반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자자, 어스, 비비, 아이돌, OPPA, Fan club, TNB, 이글파이브, 유비스, 써클, 고구려 등이 있다. 그 중 R.ef 는 그들이 은퇴하는 1998년 까지 꾸준한 활동을 통해 많은 팬들과 많은 곡들을 팬들에게 남겨주었다 (얼마전에는 KBS 불후의 명곡에서 'R.ef' 특집도 방영)
Rave Effect 라는 말의 준말로 R.ef 라는 그룹명을 만들고 이름에서도 묻어나듯 그들이 추구한 음악은 Rave 였다. 여기서 Rave라는 것을 음악적 장르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간단하게 그저 트랜스, 테크노, 일렉트로닉이 가미된 전자음악의 보다 상위 카테고리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 하다.
가요톱텐를 통해 '고요속의 외침' 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들은 그 후 가파르게 인기상승곡선을 그리더니 당당히 1위 자리에 안착한다. 그 후 그들 후속곡이었던 '이별공식', '상심' 으로 연타석 홈런을 치게 되는데 90년대 당시 단 한장의 앨범으로 3곡이나 가요톱텐에서 1위를 수상했던 최초의 그룹이기도 했다. 특히 상심의 경우는 통기타 연주의 발라드버젼과 강한 비트와 전자바이올린이 가미된 댄스리믹스 버젼으로 나뉘어지는데 대중들에게 폭팔적인 사랑을 받게 되자 그 뒤 2집, 3집에도 '상심' 의 모티브를 잇게 된다.
그렇게 1년 뒤 96년 4월, 그들은 '찬란한 사랑'을 타이틀로 한 2집을 발표하게 된다. 이곡은 앞서 말한 '상심' 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으로 이 곡 또한 그들이 추구했던 Rave의 요소를 기본으로 제작되었다. 고요속의 외침과 비슷한 강한 일렉트로닉 풍의 전자 음악으로서 보컬이었던 이성욱의 폭팔적인(?)초반 나레이션이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1집 당시, '고요속의 외침' 의 강한비트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후 '이별공식' 의 비교적 가벼운 댄스곡의 성향을 후속곡으로 정하는 전략을 통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들은 2집에서도 또한 '찬란한 사랑' 이라는 다소 무거운 사운드로 대중들을 사로잡은 후 '마음 속을 걸어가' 를 후속곡으로 발표하면서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R.ef 의 저력을 확인시키게 된다.
2집의 활동이 끝나자 마자 다음 앨범작업을 재개한 그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2.5집이라는 용어로 또 하나의 다른 앨범을 발표한다. 0.5 집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던(마케팅에서도 한발 앞섰던) 그들이었기에 2.5집이라는 넘버를 단 그들의 앨범은 대중들에게 호기심과 새로움을 선사하면서 2.5집의 타이틀 곡 '가을의 기억' 역시 많은 대중들에게 1996년 그들의 타이틀 처럼 가을의 기억으로 남게된다.
부지런한 이들은 이듬해 곧바로 '심연' 을 타이틀로 3집을 발표하게 된다. '심연' 또한 '상심' 의 연장에 있는 곡으로 곡 초반부에는 아예 '상심' 의 곡 일부가 샘플링이 되어 나온다. 이 곡의 경우는 여태껏 그들이 해왔던 음악적 색깔에 당시 유행하던 힙합적 요소들을 가미하면서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그들의 기본코드를 대중들에게 새롭게 어필하게 된다.
하지만 3집이 발표된 당시, 잇따른 전설의 아이돌 그룹(?)의 탄생으로 그들의 위치가 약간 흔들거리게 된다. 바로 젝스키스, H.O.T, S.E.S, 핑클 등의 등장이었다. 그래서일까, 3집의 경우 전의 앨범들과는 달리 그리 폭팔적인(?) 사랑은 받지 못하게 되지만 어쨌든 그들의 명맥은 유지해나가게 된다.
마지막이 될것을 염려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팬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서 였을까? 그토록 그들이 추구해왔던 유로풍의 하우스, 즉 레이브 정신을 가장 잘 소화해냈던 4집 앨범을 팬들에게 선물한 뒤 돌연 해체를 선언하게 된다. 타이틀 곡이었던 'Never Ending story' 에서는 그들이 가지려했고 그들이 만들고 싶어했던 모든 사운드들이 들어있는 듯 했고 후속곡이었던 '귀머거리 하늘' 는 그들의 음악의 완성이며 R.ef 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곡이 되었다.
당시 음악적 경향의 흐름을 보았을때 이런 테크노, 하우스, 트랜스적 요소를 만지는 음악을 했다는 것은 굉장한 센세이션이었다. 물론 수많은 댄스그룹들이 나오긴 했지만 분명 이들은 흔해빠진 그런 그룹들과는 사뭇 달랐다. 1집부터 4집까지 쭉 이어져온 앨범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고요속의 외침' 사운드가 '귀머거리 하늘' 로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그 당시 이런 전자음악을 대중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그룹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당시 힙합, R&B 등 외국에서 들어온 수많은 음악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음악을 일일히 알아보기 힘들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된다. 허나 R.ef 는 그런 많은 장르의 음악들의 홍수속에서 꿋꿋이 그들의 Rave 정신을 대쪽 선비들 처럼 지켜냈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을 대중적으로 소화를 시켜냈다는 것에 박수를 쳐줄만 했던 것이다.
요즘에 와서야 음악시장 자체가 워낙 전문화가 되어 다양한 장르들 중 한가지만 고집하는 뮤지션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 당시의 음악시장은 하나의 공장이었다. 기획사가 가수들을 대중들의 취향에 따라 찍어내기만 했을뿐 가수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는건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건모 역시 김창완이라는 프로듀서에 의해 거의 만들어진 가수였다. 물론 R.ef 역시 기획사에 따라 움직였지만 그들은 해체하는 그날까지 그들이 원했던 음악만 고집을 했다. 그리고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R.ef 가 자칫 한낱 추억의 그룹으로만 남겨지기에는 개인적으로 너무 강한 그룹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R.ef_ 추억의 그룹에 대한 진부한 잡담
1995년 잘나가던 전직 DJ이었던 이성욱, 성대현, 박철우는 R.ef 라는 이름으로 가요톱텐이라는 당시 최고의 음악프로램에서 화려하게 등장한다. 지금은 전설이 된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당대 최고의 트랜드였던 '룰라', 국내 R&B 열풍의 효시가 되었던 '솔리드' , 국내 앨범판매의 기네스 보유자 '김건모' 와 같은 당대 최고의 아이콘들이 즐비했던 춘추전국시대와도 같은 시기, 그 시기 많은 가수들이 앨범 발매시기를 서로 눈치보며 고요한 시점을 틈타 고요속의 외침을 하고야 만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1990년대 중반부는 춘추전국시대였다. 국내가요의 최전성기라고 할수 있었을 만큼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하루 아침에 생겨났지만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한 그룹들도 태반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자자, 어스, 비비, 아이돌, OPPA, Fan club, TNB, 이글파이브, 유비스, 써클, 고구려 등이 있다. 그 중 R.ef 는 그들이 은퇴하는 1998년 까지 꾸준한 활동을 통해 많은 팬들과 많은 곡들을 팬들에게 남겨주었다 (얼마전에는 KBS 불후의 명곡에서 'R.ef' 특집도 방영)
Rave Effect 라는 말의 준말로 R.ef 라는 그룹명을 만들고 이름에서도 묻어나듯 그들이 추구한 음악은 Rave 였다. 여기서 Rave라는 것을 음악적 장르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간단하게 그저 트랜스, 테크노, 일렉트로닉이 가미된 전자음악의 보다 상위 카테고리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 하다.
가요톱텐를 통해 '고요속의 외침' 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들은 그 후 가파르게 인기상승곡선을 그리더니 당당히 1위 자리에 안착한다. 그 후 그들 후속곡이었던 '이별공식', '상심' 으로 연타석 홈런을 치게 되는데 90년대 당시 단 한장의 앨범으로 3곡이나 가요톱텐에서 1위를 수상했던 최초의 그룹이기도 했다. 특히 상심의 경우는 통기타 연주의 발라드버젼과 강한 비트와 전자바이올린이 가미된 댄스리믹스 버젼으로 나뉘어지는데 대중들에게 폭팔적인 사랑을 받게 되자 그 뒤 2집, 3집에도 '상심' 의 모티브를 잇게 된다.
그렇게 1년 뒤 96년 4월, 그들은 '찬란한 사랑'을 타이틀로 한 2집을 발표하게 된다. 이곡은 앞서 말한 '상심' 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으로 이 곡 또한 그들이 추구했던 Rave의 요소를 기본으로 제작되었다. 고요속의 외침과 비슷한 강한 일렉트로닉 풍의 전자 음악으로서 보컬이었던 이성욱의 폭팔적인(?)초반 나레이션이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1집 당시, '고요속의 외침' 의 강한비트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후 '이별공식' 의 비교적 가벼운 댄스곡의 성향을 후속곡으로 정하는 전략을 통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들은 2집에서도 또한 '찬란한 사랑' 이라는 다소 무거운 사운드로 대중들을 사로잡은 후 '마음 속을 걸어가' 를 후속곡으로 발표하면서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R.ef 의 저력을 확인시키게 된다.
2집의 활동이 끝나자 마자 다음 앨범작업을 재개한 그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2.5집이라는 용어로 또 하나의 다른 앨범을 발표한다. 0.5 집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던(마케팅에서도 한발 앞섰던) 그들이었기에 2.5집이라는 넘버를 단 그들의 앨범은 대중들에게 호기심과 새로움을 선사하면서 2.5집의 타이틀 곡 '가을의 기억' 역시 많은 대중들에게 1996년 그들의 타이틀 처럼 가을의 기억으로 남게된다.
부지런한 이들은 이듬해 곧바로 '심연' 을 타이틀로 3집을 발표하게 된다. '심연' 또한 '상심' 의 연장에 있는 곡으로 곡 초반부에는 아예 '상심' 의 곡 일부가 샘플링이 되어 나온다. 이 곡의 경우는 여태껏 그들이 해왔던 음악적 색깔에 당시 유행하던 힙합적 요소들을 가미하면서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그들의 기본코드를 대중들에게 새롭게 어필하게 된다.
하지만 3집이 발표된 당시, 잇따른 전설의 아이돌 그룹(?)의 탄생으로 그들의 위치가 약간 흔들거리게 된다. 바로 젝스키스, H.O.T, S.E.S, 핑클 등의 등장이었다. 그래서일까, 3집의 경우 전의 앨범들과는 달리 그리 폭팔적인(?) 사랑은 받지 못하게 되지만 어쨌든 그들의 명맥은 유지해나가게 된다.
마지막이 될것을 염려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팬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서 였을까? 그토록 그들이 추구해왔던 유로풍의 하우스, 즉 레이브 정신을 가장 잘 소화해냈던 4집 앨범을 팬들에게 선물한 뒤 돌연 해체를 선언하게 된다. 타이틀 곡이었던 'Never Ending story' 에서는 그들이 가지려했고 그들이 만들고 싶어했던 모든 사운드들이 들어있는 듯 했고 후속곡이었던 '귀머거리 하늘' 는 그들의 음악의 완성이며 R.ef 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곡이 되었다.
당시 음악적 경향의 흐름을 보았을때 이런 테크노, 하우스, 트랜스적 요소를 만지는 음악을 했다는 것은 굉장한 센세이션이었다. 물론 수많은 댄스그룹들이 나오긴 했지만 분명 이들은 흔해빠진 그런 그룹들과는 사뭇 달랐다. 1집부터 4집까지 쭉 이어져온 앨범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고요속의 외침' 사운드가 '귀머거리 하늘' 로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그 당시 이런 전자음악을 대중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그룹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당시 힙합, R&B 등 외국에서 들어온 수많은 음악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음악을 일일히 알아보기 힘들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된다. 허나 R.ef 는 그런 많은 장르의 음악들의 홍수속에서 꿋꿋이 그들의 Rave 정신을 대쪽 선비들 처럼 지켜냈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을 대중적으로 소화를 시켜냈다는 것에 박수를 쳐줄만 했던 것이다.
요즘에 와서야 음악시장 자체가 워낙 전문화가 되어 다양한 장르들 중 한가지만 고집하는 뮤지션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 당시의 음악시장은 하나의 공장이었다. 기획사가 가수들을 대중들의 취향에 따라 찍어내기만 했을뿐 가수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는건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건모 역시 김창완이라는 프로듀서에 의해 거의 만들어진 가수였다. 물론 R.ef 역시 기획사에 따라 움직였지만 그들은 해체하는 그날까지 그들이 원했던 음악만 고집을 했다. 그리고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R.ef 가 자칫 한낱 추억의 그룹으로만 남겨지기에는 개인적으로 너무 강한 그룹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