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엄마 찾아 삼만 리’의 기본 모티브에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녹인 영화로, 관습적인 전개는 실망스러우나 신파스러운 제목과는 반대로 넘쳐나는 남미 특유의 낙천성과 자유로움은 인상적인 미덕이다.
아홉 살 멕시코 소년 까를리토스는 매주 일요일 공중전화를 통해 미국에서 일하는 엄마와 이야기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까를리토스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직접 엄마를 찾으러 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은 ‘엄마 찾아 삼만 리’의 기본 모티브에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녹인 영화다. 주인공 소년 까를리토스는 ‘LA, 도미노피자 건너 버스정류장 옆 공중전화 박스’라는 희미한 단서를 쫓아 국경을 넘고, 이민국과 경찰을 피해 엄마를 찾는다. 감독은 주인공이 미국 대륙을 횡단할 때 그와 함께 미국 사회의 내부적인 문제도 가로지르겠다는 의도를 곳곳에서 분명히 한다.
엄마는 불법체류자로 신고당할까 고용주에게 반항도 한 번 못 하고, 소년의 여정을 도와주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소년은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슈퍼맨 인형을 야구방망이로 부수고, 영화는 ‘슈퍼맨은 시민권자도 아니면서 경찰 행세를 하네’란 자막을 내건 노래를 틀며 미국의 영웅을 조롱한다. 반복 재생되는 정치적 메시지는 설득력은 있지만 노골적이고 투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종국에 와서 그런 이슈는 동화적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희석된다. 특히 까를리토스가 천신만고 끝에 엄마와 재회하는 장면은 LA를 순간 환상적인 공간과 마법의 시간 속에 가둔다. 모험에 동승하는 나쁜 멕시코인과 선한 미국인, 무책임한 아버지와 거칠지만 헌신적인 아저씨 등의 다양한 군상은 사랑과 화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잘 상징한다. 관습적인 전개는 실망스러우나 신파스러운 제목과는 반대로 넘쳐나는 남미 특유의 낙천성과 자유로움은 인상적인 미덕이다.
언더 더 쎄임 문 (2007)
장르 : 드라마
감독 : 패트리시아 리건
주연 : 아드리안 알론소, 케이트 델 카스틸로, 아메리카 페레라
남미 특유의 낙천성과 자유로움
2008.10.10 / 박홍식 기자
은 ‘엄마 찾아 삼만 리’의 기본 모티브에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녹인 영화로, 관습적인 전개는 실망스러우나 신파스러운 제목과는 반대로 넘쳐나는 남미 특유의 낙천성과 자유로움은 인상적인 미덕이다.
아홉 살 멕시코 소년 까를리토스는 매주 일요일 공중전화를 통해 미국에서 일하는 엄마와 이야기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까를리토스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직접 엄마를 찾으러 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은 ‘엄마 찾아 삼만 리’의 기본 모티브에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녹인 영화다. 주인공 소년 까를리토스는 ‘LA, 도미노피자 건너 버스정류장 옆 공중전화 박스’라는 희미한 단서를 쫓아 국경을 넘고, 이민국과 경찰을 피해 엄마를 찾는다. 감독은 주인공이 미국 대륙을 횡단할 때 그와 함께 미국 사회의 내부적인 문제도 가로지르겠다는 의도를 곳곳에서 분명히 한다.
엄마는 불법체류자로 신고당할까 고용주에게 반항도 한 번 못 하고, 소년의 여정을 도와주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소년은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슈퍼맨 인형을 야구방망이로 부수고, 영화는 ‘슈퍼맨은 시민권자도 아니면서 경찰 행세를 하네’란 자막을 내건 노래를 틀며 미국의 영웅을 조롱한다. 반복 재생되는 정치적 메시지는 설득력은 있지만 노골적이고 투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종국에 와서 그런 이슈는 동화적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희석된다. 특히 까를리토스가 천신만고 끝에 엄마와 재회하는 장면은 LA를 순간 환상적인 공간과 마법의 시간 속에 가둔다. 모험에 동승하는 나쁜 멕시코인과 선한 미국인, 무책임한 아버지와 거칠지만 헌신적인 아저씨 등의 다양한 군상은 사랑과 화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잘 상징한다. 관습적인 전개는 실망스러우나 신파스러운 제목과는 반대로 넘쳐나는 남미 특유의 낙천성과 자유로움은 인상적인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