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계약 中.. - 마지막부분

이지현2008.10.21
조회208
100일계약 中.. - 마지막부분

“해인언니... 또 배달 있는데...”

 

 


“휴우.. 오늘 따라 더 바쁘네..”

 

 


“그러게. 음.. 여기 아까 동욱이가 배달 간 곳인 것 같은데...

짜장면이 너무 짜서 못 먹겠다나? 짜장이 무슨 간장인 것 같다고

새로 가져오래. 주방장님이 실수를 하셨나봐..

동욱이 방금 나갔으니까, 언니가 여기 배달가야겠다.”

 

 


“어딘데?”

 

 


“현대아파트 3층 15호.”

 

 

 

 

 

 

무표정이었던 내 얼굴이 순간 뺨이라도 맞은 듯 창백해졌다.

 

 

 

 

 

 

“어? 어디라고??”

 

 


“현대아파트 3층 15호. 뭘 놀래?”

 

 


“어? 아..아니...”

 

 

 

 

 

 

새로 짜장면을 받아들곤, 난 쿵쾅대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으며 스쿠터에 올라탔다.

 

 

벌써.. 새 사람이 살고 있는 건가...

왜 하필이면 오늘 그 곳에 배달 나가야하는 거지..?

가면 어제 생각날 것 같아 싫은데...

 

 

 

 

 

 


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3층 15호 앞에 조용히 섰다.

벨을 누르면 하원이가 나올 듯 했다.


큭.. 강해인, 또 바보 같은 상상한다.


...난 고개를 숙인 채 힘겹게 벨을 눌렀다.

 

 

 

 

 


털컥.

 

 

 

 

 


문이 열리자마자 난 철가방에서 짜장면을

꺼내어 고개를 숙인 채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주방장님이 실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난 허리를 구부려 사과를 한 후,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내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짜장면을 건네주었다.

 

남자는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잘 안 보였지만

그가 이상한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원이가 더 이상 없다는 외로움에 난 바보같이 눈물이 났다.

 

 

 

 

 

 


“저한테 죄송해요?”

 

 


“네? 아..네...”

 

 


“정말 죄송해요?”

 

 


“네...”

 

 


“정말 정말 죄송해요?”

 

 

 

 

 


남자의 물음에 내 가슴을 아프게 쓸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

 

"너 나한테 미안해?"

 


"응? 으..응..-_ㅜ"

 


"정말 미안해?"

 


"응..."

 


"정말 정말 미안해?"

 


"응!!!"

......................... . .. .

 

 

 

 

하원이와 내가 엉뚱한 100일 계약을 시작했던 그 날 같았다.

갑자기 밀려오는 슬픔에,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추억에,

난 나도 모르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그 말만 내뱉은 채, 난 철가방을 들곤 도망치다시피 아파트를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난 계단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 또 바보짓 했나봐, 신하원.

보고 싶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벌써부터 보고 싶어..!

 

서로 떨어져있으면 상처가 더 빨리 회복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네가 떠나고 나니까 나 너 없으면 안 되겠다는 걸 느꼈어.

다시 네가 돌아온다면 절대로 안 놔줄 거야.

 

 

하원아..!! 보고 싶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어...

 

 

 

 

 


[100] 100년 계약

 

 

 

 

 

띠리리링~ 삐용삐용~ 일어나요~ 일어나요~ 띠리리링~ 삐용..


딱!!

 

 

 

 

 

 

이불속에 폭 묻혀있던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침대머리맡에 올려둔 알람시계를 껐다.

 

아직도 지구 표면위에 검은 보자기가 덥혀져있는 걸로 봐,

내가 일어날 때는 분명 아니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2시였다.

7월 5일 오전 12시.

 

 

 

그렇다. 100일 계약이 만기 되는 날,

오늘이 바로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내 두 손위에 편히 누워있던 알람시계 위로

차가운 눈물 두 방울이 동시에 떨어졌다.

 

 

 

 

 

 


“100일이야, 하원아.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100일이 벌써 와버렸다, 그치?

너 그날 내 속 벅벅 긁어댔었잖아, 기억나?

니가 그랬었지? 호박에도 최선을 다해 줄그으면 수박이 될 수 있다고?

얼굴 반반한 애들은 콧대만 높아서 이렇게 엉뚱한 계약 안 할 거라고?

솔직히 내가 장우진 같은 앨 이 기회 아니면 언제 한번 사귀어보겠냐고?

가게, 가게 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협박이나 하고...”

 

 

 

 

 

 

어느새 내 알람시계는 눈물로 흥건히 젖기 시작했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해, 바보야.

미친 듯이 괴로웠고, 아팠고, 상처받았고, 상처 줬지만...

사랑이란 걸 배웠잖아.

사랑이란 건.. 거창하지 않은 것 같아.

소리 없이 내 곁에 늘 맴돌다가 어느 순간 안녕..

하며 인사를 하는 게 사랑인지.. 정말 몰랐어.

오래된 친구처럼 말이야.”

 

 

 

 

 

 

난 어린아이처럼 거칠게 한 손으로 눈물을 쓱 훔쳐냈다.

 

 

 

 

 


“오늘은 100일이다!! 나 웃을게, 알겠지? 오늘 뭐할까..?

도시락 싸들고 삼촌이랑 같이 병실에서 맛있는 거 먹을까?

아님 연희랑 외식할까? 짜장면, 짬뽕, 탕수육, 양장피, 깐풍기...

그런 것들 잔뜩 시켜놓고 배 터질 때까지 먹을까?

아니면...... 예전에 너랑 갔던 그 아이스링크에 갈까?”

 

 

 

 

 

 


혼자 바보처럼 피식피식 웃던 난,

알람시계를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곤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뭘 하든 오늘만은 웃으면서 행복하게 지낼게. 너두 행복해야 돼.”

 

 

 

 


....................

 

 

 

 


“짜장면 30그릇 배달이요??”

 

 

 

 

 

 

토요일 오전 12시.

갑작스러운 배달 주문에 내 턱은 쭉 빠져버렸다.


전화로 주문을 받은 예라는 어깨를 으쓱했고

주인아저씨도 약간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셨다.

 

 

 

 

 

 


“한국대 학생들인가 본데 무슨 동아리 모임이 있나봐?

한국대 캠퍼스로 짜장면 30그릇 배달하라는데?”

 

 


“종강했는데 무슨 동아리 모임이 있겠어요. 누가 장난치는 게 아닐까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주문을 받았으니까 준비해야지.

해인이 학생이 수고 좀 해야겠네. 한꺼번에 30그릇 배달할 수 있겠지?”

 

 


“네... 그건 뭐 문제가 안 되지만...”

 

 

 

 

 

 

주인아저씨는 급히 주방에 들어가셨고,

남은 나와 예라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난 아무래도 장난 전화 같단 말이야.”

 

 


“아냐, 언니. 목소리 들어보니깐 그럴 사람 같지는 않았어.

진짜 대학생 목소리던데?”

 

 


“야, 대학생 목소리가 따로 있냐.-_-”

 

 


“아가씨, 여기 단무지 하나요!”

 

 


“네~!!”

 

 

 

 

 

 

의자위에 축 늘어져있던 예라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난 가까운 곳에 놓여있던 잡지를 들어

후덥지근한 날씨를 이기려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후,

짜장면 30그릇은 준비됐고, 난 여전히 미심쩍은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스쿠터위에 느리게 올라탔다.

 


스쿠터 바퀴가 땅위에 빠르게 돌며 뿌연 먼지를 일으켰다.

헬멧은 또 왜 이리 뜨거운 건지, 머리에 불이 붙는 듯 했다.

 

 

 

 


손목 심줄이 터질 만큼 무거운 철가방을 낑낑 이곤,

난 열려있는 정문을 통해 한국대 캠퍼스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캠퍼스 향기가 내 주위를 감돌았다.

 

 

 

 


장난일 거라 굳게 믿었던 내 추측은,

캠퍼스 한쪽에 30명 남짓 돼 보이는 학생들을 발견하자

일순간 증발해버렸다.

 

 

 

 


정말 무슨 동아리 모임이 있는 듯, 아님 동아리 파티가 있는 듯

학교 축제 때나 볼 수 있었던 소무대가 한 구석에 셋업 돼 있었다.

 

 

 

이마를 간질이는 땀방울들을 닦아낼 새도 없이,

난 빠른 속도로 학생들을 향해 걸어갔다.

 

 

 

 

 

 

 

“어!! 얘들아, 짜장면 배달 왔다~!!”

 

 

 

 

 


내 앞에 처음으로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문정헌이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 모인 학생들...

거의가 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포브 멤버들 .. 윤선배, 다경언니, 보배, 재우선배..

내 가장 친한 친구 연희.. 그리고 강현오빠와 오랜만에 보는 현영빈까지..!!

 

많이 사람들 앞에서 난 내 모습에 초라함을 느끼며 철가방을 열었다.

 

 

 

 

 

 


“해인이 열심이다!”

 

 


“와, 짜장면 맛있겠다! 나 양 제일 많은 걸로..!”

 

 


“민보배, 너 볼살 터진다-_-”

 

 

 

 

 

 

음식을 향해 서슴없이 달려드는 보배의 볼을

현영빈이 귀여운 듯 잡아당겼다.

 

 

뭐야, 내가 못 본 사이에 새로운 커플이 탄생한 거야?

 

 

 

 


난 한 손으로 땀이 닦아내며 짜장면을 향해 달려드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자자!! 먹기 전에 빨랑 계산이나 하셔들. 나 더워죽겠단 말야.”

 

 


“저.. 저기 해인아....”

 

 

 

 

 


날 바라보며 겸연쩍은 듯 씨익 웃으며 정헌이가 다가왔다.

머뭇머뭇하는 그의 행동이 내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저.. 미안한데... 짜장면 30그릇... 그게....

솔직히 우리가 지금 돈이 없거든?

오랜만에 모여서 다음 학기 행사에 대해 토론하는데...

먹을 건 없고.. 또 배는 고프고.... 하하...”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미안해, 해인아. 니가 일하는 곳이니깐.. 외상 되지 않을까?”

 

 


“문정헌, 너 지금 장난하지?

여기 30명이나 있는데, 어떻게 한 사람도 돈이 없을 수가 있어?”

 

 


“아하하... 그...그게.... 미안하게 됐다, 해인아.

그.. 그 대신!! 이거 받아!!”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던 정헌이,

주머니에서 하얀 꽃 한 송이를 꺼내들었다.

 

 

 

 

 

 


“야!! 진짜 장난해 지금?”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진 내가 빽 소리치자,

주위에 모여 있던 아이들도 하나같이 겸연쩍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꽃 한 송이씩을 꺼냈다.

 

 

 

 

 

 


“미안해, 해인아..!! 돈이 없어서 그래..!!”

 

 


“이해하지, 강해인? 강해인 성격 좋은 거 빼면 시체잖아~”

 

 


“사랑한다!!”

 

 


“미안해, 잘 먹을게.”

 

 


“꽃 예쁘지? 기분 풀어.”

 

 

 

 

 

 


어느덧, 오색가지 꽃 30송이가 내 품에 한 아름 안겨졌다.

폭발 일보직전이었던 난, 생글생글 웃는 뻔뻔스러운

얼굴들 위로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무대위에서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던

누군가가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꽃 안 줘도 돼. 저 사람 일하는 식당에서

어제 나한테 무슨 간장 같은 짜장면 배달했었어.!!”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느라 소리치는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어제 봤던 남색 모자만은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폭탄에 불은 붙여졌고, 난 품에 안긴 30송이의 꽃들을

더욱더 꽉 안으며 무대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걸어갔다.

 

 

 

 

 

 

“이봐요!!! 그건 어제 사과 했었잖아요!!!

새 음식 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음식 같곤 제가 사과를 못 받겠다면요?”

 

 


“..시..실수였잖아요!! 죄송하다고 사과드렸잖아요!!”

 

 


“그 정도론 안 되겠다면요?”

 

 


“..그..그럼 뭘 원하는데요!! 우씨, 제가 어떡하면 되겠어요...!!!”

 

 

 

 

 

 


그러자 그가 마이크를 고쳤는지 마이크를 통해

더 우렁차진 목소리를 내뿜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제 얼핏 보았던 뿔테 안경은 없었다.

순간, 내 심장은 멈춰버렸다.

 

 

 

 

 

 

 

“저랑 계약을 맺어주세요.”

 

 

 

 

 

 


내 다리는 후들후들 거리기 시작했고, 입은 바싹바싹 말라갔다.

힘을 잃어버린 내 두 팔은 품에 안겨있던 30송이의 꽃들을 놓아버렸다.


오색가지 꽃송이들은 한 순간 눈송이처럼 허공을 떠돌았다.

 


계약서를 또박또박 읽는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다시 마이크를 통해 들려왔다.

 

 

 

 

 

 

 

“신하원과 강해인은 양자간에 아래와 같이 100년 계약을 체결한다.

 

제 1 조 [계약의 목적]


신하원과 강해인은 100년 동안 함께 산다.

 

 

제 2 조 [보수]


신하원은 강해인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다 해준다.

 

 

제 3 조 [상여금]


모든 일은 신하원이 맡아서한다. 강해인은 일하길 원하면 일하고, 쉬길 원하면 쉴 수 있다.

 

 

제 4 조 [성실의무]


신하원은 강해인 명령과 지휘에 따라서 성실하게 종사한다.

 

 

제5 조 [해지]


한번 계약은 영원한 계약. 절대 계약은 해지할 수 없다.

 

 

이상의 계약을 증명하기 위해 본 서 2통을 작성하여,

각자 서명날인한 다음 각각 1통을 보관한다.

 

 

2003년 7월 5일


성명: 신 하 원


성명: 강 해 인“

 

 

 

 

 

 

 


손에 쥐어져있던 계약서를 다 읽은 그...

바로 하원이, 날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말도 안돼... 니가 왜 여기 있어? 이거 꿈이지.. 이거 꿈이지?

 

 

 

 

 

 

 

“여기 30명의 증인들 있죠? 자.. 사인해주시겠어요?”

 

 

 

 

 

 


하원인 방금 피어나는 어린 꽃봉오리처럼 활짝 웃고 있었지만,

난 폭풍이 몰아치는 가을밤처럼 눈물을 쏟고 있었다.

 

 

하원이 맞구나. 너, 신하원 맞구나.

그럼 어제 아파트에서 본 사람도 너였구나.. 왜 말하지 않았어!!

 

 

 

 

 

 


“바보.. 나쁜 놈... 배신자.. 멍청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날,

무대위에서 하원이가 창백한 얼굴로 바라봤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아이들은 모두 숨죽이고 있었다.

 

 

 

 

 

 


“흐으윽.. 떠나지도 않았으면서.. 으흑.. 나 속여먹고...

바보... 멍청이.. 재밌었어?! 재밌었냐고.. 흐으윽.. 으으..어어엉...”

 

 

 

 

 

 

난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하원이를 향해 소리쳤다.

 

 

 

 

 

 


“사인하라고? 싫어!! 절대 안 해!! 절대 못해!!

날 속여먹는 애를.. 어떻게 믿어..!!!”

 

 

 

 

 

 


난 몸을 휙 돌려 아이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했고,

하원인 무대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그래! 니가 순순히 받아드릴 애가 아니지.

나도 별 기대는 안 걸었어. 넌 항상 그런 애였으니까.

계약? 그래! 안 해도 그만이야!”

 

 

 

 

 

 

하원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난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쏟았다.


뭐하는 거니, 강해인?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너 하원이 많이 보고 싶어 했잖아..

그러면서 왜 지금 아닌 듯 화만 내고 있는 거야?

 

 


우릴 둘러싼 아이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다음 순간, 빠르게 쫓아온 하원이가 뒤에서 날 잡아 돌렸다.

그리곤 매서운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며 내뱉었다.

 

 

 

 

 

 

 

“계약하기 싫다고? 알았어,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지.

나도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었어. 그래. 그렇게 정 계약하기 싫다면...”

 

 

 

 

 

 

툭!! 하는 소리가 순간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순간 숨을 훅! 하고 들이마셨다.

...하원이가 내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 나와 결혼해줘...”

 

 

 

 

 

 

 


눈물로 범벅이 돼 있던 내 얼굴이

순간 이상하게 찌그러지더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우우우우~~!!!!”

 

 

 

 

 

 

아이들의 환성이 폭죽이 터지듯 경쾌하게 터졌고,

난 환하게 웃고 있는 하원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라며.”

 

 


“그만큼 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는 거지.”

 

 


“호박이라서 줄그어야 된다며.”

 

 


“너 호박이 수박보다 더 좋은 거 몰라?

호박으론 전도 붙여먹고, 호박죽도 끓여먹고,

반찬으로 볶아먹기도 하지만 수박으론 기껏해야

화채밖에 못 만들잖아.”

 

 

 

 

 

 


이리저리 둘러대는 하원이를 보며

난 바보같이 여태껏 울고 있었다는 걸 잊은 듯 피식 웃었다.

하원인 애가 타는 듯 무릎을 꿇은 채로 내게 말했다.

 

 

 

 

 

 


“결혼해줘, 해인아. 나 너 없인 못 살아.”

 

 


“......”

 

 


“제발...”

 

 

 

 

 

 

난 입을 삐쭉거렸다.

 

 

 

 

 

 

“싫어. 사귀어보기도 전에 결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어?...”

 

 


“사귀고.... 결혼해..^^”

 

 

 

 

 

 

내 말 한마디에 하원인 세상이 바뀐 듯

눈이 부신 미소를 머금더니 휙 뛰어올라 날 와락 껴안았다.

 

 

 

 

 

 

“고마워..!! 사랑해, 강해인!!!!”

 

 


“그 말 같곤 표현이 안 된다며.”

 

 


“어쩔 수 없는 언어의 한계 아니겠어?”

 

 

 

 

 

 

피식 웃는 내 입술위에 하원이가 짧게 입 맞췄다. 그리곤...

 

 

 

 

 

 


“꺄아아악!!! 신하원, 뭐하는 거야!!!”

 

 

 

 

 


..예전에도 한번 그랬듯이 날 쌀자루처럼 어깨에 짊어지곤 소리쳤다.

 

 

 

 

 

 

“자자!! 애들아 수고했다!! 남은 정리도 부탁해!!”

 

 

 

 

 

 

아등바등 대는 날 들곤 냅다 뛰는 하원이를 향해 강현오빠가 소리쳤다.

 

 

 

 

 

 

“아, 신하원 저 새끼! 사람 생고생 시키네.

아, 안되겠다. 무대도 셋업 된 김에 고백이나 해야겠다.”

 

 

 

 

 

 


강현오빠가 무대에 총알같이 튀어 올라가더니

마이크를 붙잡곤 냅다 소리 질렀다.

 

 

 

 

 

 


“우연희!!!! 미안해!!!! 나한테 돌아와줘!!! 내가 잘못했어!!!”

 

 

 

 

 

 

그때, 갑자기 무척이나 낯익은 얼굴이 학교 어디에선가 튀어나왔다.

 

바로 내 동생 강해준!!!

뭐야, 쟤가 여기 왜 있는 거야?

어디 숨어 있었던 거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해준이 역시 무대위로 올라가더니

강현오빠의 손에서 마이크를 낚아챘다.

 

 

 

 

 

 


“연희누나!!! 저 누나 진짜 많이 좋아해요!!!

그러니까 저 형한테 돌아가지 마세요!!”

 

 


“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은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피도 안 마르긴! 형 눈엔 내 머리에 피가 있어요?”

 

 


“이 콩알만 한 자식이..!!”

 

 


“콩알은 무슨.. 형 키나 봐요,170되요?”

 

 


“민강현 선배! 강해준! 둘 다 그만해!!!”

 

 

 

 

 

 

강현오빠와 해준이의 목소리를 연희의 하이 톤 목소리가

단숨에 삼켜버렸다. 날 아직도 짊어지곤 뛰는 하원이가 쿡 웃으며 속삭였다.

 

 

 

 

 

 


“뭐야, 저기도 삼각관계가 시작되는 거야?”

 

 

 

 

 

 

학교를 벗어나서도 하원인 날 내려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다들 이상한 눈빛으로 우릴 멀뚱멀뚱 쳐다봤다.

 

 

 

 

 

 


“신하원, 이제 그만 내려줘!!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 그래. 실컷 보라 그래. 어차피 보라고 하는 짓이니깐.”

 

 


“뭐??”

 

 


“강해인이 내꺼 된 거 세상에 알리는 중이다.!! 너, 한눈팔기만 해!!”

 

 

 

 

 

 

난 하원이를 따라 쿡쿡 웃기 시작했고,

기차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린 여태까지 흘렸던 눈물을

묻어줄 만큼의 웃음을 쏟아냈다.

 


..기차에 올라타 우린 빈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하원인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

 

 

 

 

 


“도망치기만 해.”

 

 


“치면?”

 

 


“죽어버릴 거야.”

 

 


“하.. 너 의처증 걸리기만 해봐.

큭... 근데 갑자기 기차엔 왜 탔어? 우리 어디 가는 거야?”

 

 


“100일 여행.”

 

 


“어디로?”

 

 


“발 닿는 데로.”

 

 


“우린 그럼 사귀기로 한 날 100일 여행을 가는 거네?”

 

 


“큭.. 그렇네. 그래도 어때, 남들보다 특이하고 좋잖아~”

 

 

 

 

 

 

난 조심스레 하원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하원이의 빠르게 뛰는 심장고동소리가 어깨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왜 안 떠났어?”

 

 


“내가 널 두고 어딜 가, 바보야. 가면 신하원이 아니지, 안 그래?

네가 잡아주지 않아도 내가 널 놓아주지 않을 거야.”

 

 


“..어제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말하려고 했는데 니가 먼저 울면서 가버렸잖아. 얼마나 당황했는데...”

 

 

“......”

 

 


“고마워, 강해인. 이젠 그 아이스링크에 다시 갈 수 있겠어.”

 

 

 

 

 

 

 

난 고개를 들어 선하게 웃는 하원이를 따사롭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원이가 차츰 내게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아깐 날 속으로 사모하는 수많은 여자애들이 울까봐 제대로 못했어.”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기도 전에 하원이의 입술이 따뜻하게 내게 와 닿았다.

사람들이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리자, 내가 부드럽게 하원이를 밀어냈다.


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근데 나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 넌 내 첫 키스고 첫사랑인데.. 난 뭐야.”

 

 

 

 

 


내가 입을 삐쭉거리며 말하자 하원이가 놀란 듯 환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네 첫사랑이야?!”

 

 


“치..-_-..”

 

 


“진짜? 야~ 숨 막힌다.. 이거.. 너무 행복한 거 아냐?”

 

 

 

 

 

 

내가 짐짓 팔짱을 끼고 계속 입을 삐쭉거리자,

하원이가 내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손해 보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의 말에 난 정면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따뜻한 하원이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부풀어 올렸다.

 

 

 

 

 

 

 


“..넌 내 마지막 키스고 마지막 사랑이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