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김형석200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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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일본 사가현 국제심포지움- “거제와 서불 장생불로초” 주제발표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2008년 10월 21일 (화) 23:49:48김영완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와현-일본 야메시 자매결연 통한 교류확대 계기마련
기원전 221년. 오랜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더 넓은 중국대륙을 통일한 진나라는 복속된 제후들의 반란, 민심의 동요 등을 막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을 실시했다. 그 중심에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있었다.

기나긴 분열 시대를 거치는 동안 명멸했던 수많은 제후국끼리의 많은 교류와 합종연횡으로 인해 전국시대는 전 대륙의 특색이 고루 섞이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기인이사들이 등장하고 문화와 정보의 교류를 통해 통일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강력한 법치를 근본으로 했던 진시황은 분서갱유로 대변되는 사상탄압과, 자신이 이룬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기위해 만리장성, 아방궁 등 대공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시황의 욕망은 영원히 권력의 정점에 서고 싶은 불노불사였다.

통일제국의 방사로 알려진 서불(서복. 중.일 등은 본명으로 알려진 서복으로 통칭해 사용하고 있다)은 절묘한 시대 상황과 진시황의 절대적 권능을 의지해 지금 시대에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동남 동녀 삼천(동남동녀 삼천은 당시 수도이던 서안 지방의 사람들이 아닌 서안과 멀리 떨어진 곤명지방의 사람들을 차출하므로서 이러한 대규모 인원의 이동을 다른 제후들에게 눈속임을 했다는 설이 중국에서는 전해지고 있다)과 대 선단을 이끌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이른바 ‘불노초’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 한.중.일 삼국의 여행지 여기저기에 불노초의 전설과 일화를 남겨놓았다.

특히 한국은 서불이 진시황에게 불로초의 존재를 장담한 삼신산이 있다고 믿었던 곳으로 내륙과 해안 여러 곳에 서불의 전설을 남기고 있다. 2000여 년 전의 전설은 현재에 소중한 관광자원으로 다시 살아나 중국의 서불기념관과 일본 야매시 사가시의 서불공원 등은 엄청난 시설과 규모로 서불에 대한 깊은 관심도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서귀포시는 정방폭포의 서불과차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현대식 서불기념관을 완공, 일본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있다. 거제시의 해금강과 일운면 와현(臥峴)은 거제의 서불전설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와현은 지난 2003년 9월12일, 태풍 ‘매미’로 인해 온 마을이 폐허로 변한 곳이다. 거제시는 태풍 복구공사를 시작하면서 이주단지를 건설하고 와현 해수욕장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그 옛날 서불이 와현에 유숙했다는 “서불유숙지” 란 기념비를 세웠다.

일본 후코오카 야매시(八女市)는 동남산에 동남동녀상과 서불공원이 소재하고 있으며 서불과 관련된 기념제를 수십년간 계속해오고 있는 곳으로 서불에 관한 높은 관심으로 관련 연구가 활발한 곳이다. 야매시 동남산 견미성지보존회의 熊谷恒樹회장과 일행들은 서불유숙지 기념비관련 기사(본보 2007년 6월)를 접하고 와현을 방문, 와현과 야매시의 교류를 제안하고 일본에서 열리는 서불관련 국제 심포지움에 거제쪽 참여를 제의하는 등 적극성을 보여왔다.

2008년 10월11일 일본 후코오카에서 사가서복회 주최로 개최된 국제심포지움에 능곡 이성보 선생이 ‘거제에서의 서불과 장생불로초’란 제목의 주재를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켜 전설과 일화로만 머물던 거제의 서불 이야기가 국제적인 조명을 받게된 것이다.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이무홍 거제서불유숙지연구회장(중앙)과 일본 사가현 관계자들또한 와현 마을도 전 일운면번영회 사무국장을 지낸 이무홍씨가 ‘거제서불유숙지 연구회’(회장 이무홍)을 결성해 국제심포지움 참석과 한국,일본 중국 등과 연계된 체계적인 서불 관련 사업을 펼치기로 하는 등 발빠른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련의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오는 10월 25일 일본 야매시의 2차 방문단 40여명이 와현을 방문해 양측의 교류를 확인하는 조인식을 가지기로 해 와현마을은 그 준비에 여념이 없다. 관광거제의 또 다른 소중한 자원으로 거듭 날수 있는 서불은 중국에서만 출생지인 산서성, 출발지인 산동성, 배를만든 장소로 알려진 절강성 등과 서불이 최후로 정착했던 일본 후코오카를 비롯한 20여 곳이 서불의 여정지와 항해에 지친 일행이 쉬어가던 수 많은 장소 등 관련 지역의 인구만 해도 수억이 넘고있다.

지금 거제 어딘가에 있을수도 있는 서불이 찾던 불로장생초. 불노초를 찾는 마음으로 귀한 관광자원을 찾아 개발하는것이 글로벌 관광, 포시즌 관광을 위한 노력이 될수 있다고 하겠다.


                             거제도에서의 徐巿과 不老長生草 
                                                         능곡    이 성 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전 거제문협회장)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능곡 이성보씨
-머리말-
서불에 관해서는 국제 학술회의에서 많은 연구결과가 발표된 줄 알고 있으나 대한민국 거제도와의 연관에 대해서는 단지 스처 지나갔다는 정도로 밖에 알려지지 않아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과 비교적 사실에 근접한 서불과 거제도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제봉(雨祭峯)과 서불과차(徐巿過此)
거제도의 해금강은 대한민국 40곳의 명승(名勝)가운데 두 번째로 지정(1971년 3월 23일)된 곳이다. 거제 해금강의 본래 명칭은 칡섬이라 일컽는 갈도(葛島)였다. 풍광이 빼어나 강원도 해금강에 견주어 그 아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사진1 갈도(해금강사진) 름다움이 손색이 없다 하여 보는 이들이 해금강이라 부른데서 연유한다.

이 해금강의 서쪽 500여M 거리에 우제봉이라 이름하는 바위산이 있는데 해금강 못지 않은 절경이다.해금강 마을의 땅끝(串)에 해당하는 우제봉의 절벽아래에 “徐巿過此”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글자가 새겨진 부분이 1957년의 사라호 태풍때 떨어져 나갔다 하기도 하고 이끼가 끼어 잘 보이지 않는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우제봉은 해발 150여M에 이르지만 글씨가 새겨진 곳은 해발 100여M가 되는 곳으로 깎아지른 절벽이다. 선편을 이용해 절벽아래로 접근하여 보면 아직도 글씨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현재 서불과차(徐巿過此)란 글씨는 남해의 흔적을 기준으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제봉의 글씨는 규모나 크기로 미루어 남해의 서불과차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의 웅장한 규모이다.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사진2 (우제봉사진) 이 우제봉을 해금강 마을 주민들은 “서가람산(徐伽籃山)”이라 부르고 있는데 “伽藍”이란 승려가 불도를 닦는 집을 일컽는 말로서 절경에 반한 서불이 은둔한 곳이란 전설이 곁들어 있다. 우제봉이란 기우제를 올린 곳으로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면 영험이 있었다는 촌노들의 전언이다. 또한 해금강 마을에서 정동쪽, 즉 해금강의 북단에 커다란 바위섬이 있는데 사자를 닮았다 하여 사자암이라 부르고 있다. 해금강과 사자암 사이에 해와 달이 떠 오르는 광경은 매우 아름다워 日月觀岩 이라 하기도 한다. 해금강 마을의 노인들은 이 사자암을 옛적엔 굴레섬이라 했다고 전한다. 굴레는 그네의 사투리로 서불이 해금강의 천년송이 있던 바위와 사자암에 그네를 타고 노닐었다고 해서 굴레섬이라 하였단다.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사진3 (사자바위) 우제봉과‘서불과차’‘해금강’‘굴레섬’‘서가람산’ 등을 미루어 보면 서불이 거제도에 상당기간 머물었다고 짐작할수 있는 근거가 되며 갈도(葛島)인 해금강의 칡 넝쿨을 이용하여 우제봉의 절벽에다 ‘서불과차’를 새겼을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臥峴과 徐巿留宿地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시 와현리의 본래 이름은 ‘누우래’였다. 거제도의 동남단에 위치한 쥐부리끝(鼠咡末)의 안쪽으로 풍랑때 일본 선박들이 대피하던 곳이라 전한다. 이 와현은 해수욕장으로 이름난 곳인데 2003.9.12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매미’가 와현마을을 휩쓸어 버렸다. 주민들을 마을의 해안 뒤편으로 이주시키고 3년여에 걸친 공사끝에 해변을 정비하여 공원을 만들어 ‘매미공원’이라 하였는데 그 한 켠에 크다란 자연석으로 된‘徐巿留宿地“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사진4 (서불유숙지표지석) 이 표지석을 세운 이는 ‘徐巿留宿地 硏究會’ 李武弘(67세)회장이다. ‘徐巿留宿地’란 서불이 유숙한 곳으로 해금강에서 동북쪽으로 12Km정도 떨어진 해안마을로 육안으로 해금강을 또렷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서불이 활동했던 진나라 시대에 있어 한반도 주변 해역의 황해는 바람과 조류에 의존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은 산둥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서해안 변산반도 쪽으로 항해하여 바람이나 조류에 의하여 서해에서 남해안의 부안이나 완도 쪽으로 항해가 가능하였을 것이고 남해안으로 진입한 선박은 이 지역에서 우세한 조류(낙조시: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름 창조시: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름)에 의해 남해도를 거쳐 거제도 해금강, 와현에 도착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사진5(해류도) ‘누우래’는 ‘눕다’에서 파생된 말로 유숙을 의미하는데 서불의 유숙으로 ‘누우래’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 났다고 구전되고 있다. 쥐부리끝(鼠咡末)과 와현마을의 중간지점에 공고지(鞏串)가 있고 건너편에 내도(內島)가 있다. 공고지와 내도에 신석기 후기 단계의 유적인 공고지유적(遺蹟)과 내도패총(內島貝塚)이 산재된것으로 미루어 누우래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徐巿과 不老長生草
칡이 많아 갈도(葛島)라 했던 해금강엔 巨濟三蘭이라 칭하는 ‘春蘭’‘風蘭’‘石斛’을 비롯하여 620여종의 아열대 식물이 자생하는 곳인데 여기서 주목할 식물은 石斛이다.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사진6 (석곡) 석곡(石斛)은 오늘날 동양란 중 덴드로비움속(Dendrobium屬)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석곡은 예로부터 금생(禁生)임란(林蘭) 등으로 불리운 생약(生藥)으로서의 한약재(漢藥材)였다. 석곡은 本草學의 고전인 本草綱目에 의하면 “석곡의 맛은 달고 평이하며 독이 없다. 주로 중초(中焦)가 상하였을 때와 각기를 없애고 하기(下氣)에도 쓰여지며 오장(五臟)허로(虛勞), 여위고 지친 것을 보하며 음을 강하게 한다. 정력(精力)을 증가 시켜주며 신체가 허약하여 피와 진액(津液)과 기력이 끊기거나 부족하면 이를 보완하여 준다. 위를 편하게 하고 피부의 나쁜 열과 땀띠, 다리와 무릎이 아프거나 차갑고 각기로 인해 약해지는 것을 쫓아 내는데 오래도록 복용할진대 장(腸)과 위(胃)를 두텁게 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몸이 가벼워 지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두려움을 없애 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깊은 산중에서 도(道)를 닦던 스님들이 석곡의 줄기를 햇볕에 말려 차(茶)로 마셨다고 전하며 이 차를 마시면 오래 산다고 하여 일본에서는 장생란(長生蘭)으로 부르는데 석곡의 끈질긴 생명력에서 유래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석곡의 자생지였던 해금강엔 풍란과 석곡이 도배하듯 널려 있었으나 지금은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쳐해있다. 또한 해금강에는 예로부터 진귀한 식물들이 자생했다는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일례로 해금강 절벽에 천년묵은 동삼인 더덕(沙蔘)이 있었는데 천년이나 된 더덕은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또는 짐승으로 변하기도 하는 등 자유자재로 변신했다는 갈곳리 천년더덕이란 전설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굴레섬에다 그네를 만들어 노닐었을 서불이 진귀한 전설속의 약재를 찾는 노력을 기울여 어떤 불로장생초를 얻었는지는 모르나 장생란으로 불리는 석곡 또한 채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맺는 말-
서불은 항로마다 족적을 남겼다. ‘서불과차’란 글씨가 새겨진 것으로 전해오는 지명만 해도 여러곳이다. 서해안 부안의 적벽강, 남해 상주리 석각,통영매물도의 글생이굴(書刻洞), 거제 해금강 등에다 ‘서불과차’란 글씨를 바위에다 새겨 놓았다. 서불이 유숙한 곳인 ‘누우래’에다 서불유숙지연구회는 ‘서불기념전시관’을 건립하여 서불을 기념하고자 하고 있다.
 "거제의 서불"이 세계무대로 나서다 사진7 (서불기념관예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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