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오씨 (寶城吳氏) 부위공파 27세 손

오정균200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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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 : 오나라 오

丁 : 곧을 정

均 : 고를 균

 

뜻 : 곧게 자라라 

 

도 시조 : 오 첨(武惠公)

시조 : 오 현필(오 첨의 24세손)

 

보성 오씨 부위공파 27세손

 

 

제 목 : 뿌리를 찾아서...

 

삼황오제

 

삼황(태희복희,염제신농,황제 헌원)

오제(소호금천,전욱고양,제곡고신.제요 도당,제순유우)

 

   ①배달국倍達國의 5대 환웅 태우의太虞儀(즉위 BC 3512)는 12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다의발多儀發은 대통을 이어 6대 환웅이 되고 그중 막내인 태호복희는 중원으로 진출, 현 하남성의 진陳에 도읍하여 문명을 개척하였다.

②배달국 8대 환웅 안부련安夫連(즉위 BC 3240)의 신하로서 소전少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강수姜水(섬서성 기산현岐山縣)에서 군軍을 감독하던 직책에 있었다. 소전은 웅씨熊氏족의 지류로서 배달국에서 대대로 우가牛加의 직책으로 주곡主穀을 관장하던 고시씨의 먼 후손이라고 한다. 이 소전의 아들이 염제신농이며 중원의 남방으로 진출하여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게 된다.

 

③염제신농의 아버지인 소전의 후손 지파중에 공손公孫이라고 있었는데 공손의 후손중에 황제헌원黃帝軒轅(BC 2692~2592)이 나왔다. 황제헌원은 배달국의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치우천왕蚩尤天王 이라고도 함)과의 수차례에 걸쳐 전쟁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뿌리를 캐보면 결국 같은 동족간의 전쟁이었을 뿐이다.

 

④삼황三皇이후의 오제五帝는 그 근원이 모두 삼황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다음과 같다.

▲ 소호금천 : BC 2598 ~ BC 2514

▲ 전욱고양 : BC 2513 ~ BC 2436 ; 황제헌원의 손자

▲ 제곡고신 : BC 2435 ~ BC 2365 ; 황제훤원의 증손자

▲ 제요도당 : BC 2357 ~ BC 2258 ; 요임금이라고도 함.

요임금 25년에 단군 왕검 조선 건국.

▲ 제순유우 : BC 2255 ~ BC 2208 ; 순임금이라고도 함.

 

⑤순임금의 뒤를 이어 순임금때 치수에 공이 큰 우禹가 제위를 이어 받아 하夏나라를 세웠다. 이때부터 하나라(BC 2183 ~ BC 1752)는 왕조를 세습하기 시작하여 17대에 걸쳐 약 400여년 존속하였다.

 

⑥하나라의 마지막 왕은 폭군으로 이름 높은 걸桀인데, 걸왕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인물이 성탕成湯이라는 제후였다. 성탕의 조상은 [설]이며 [설]은 황제헌원의 증손자인 [제곡고신]의 아들이다. [설]은 순임금과 하나라 우임금때 상商이라는 곳의 제후로 봉해졌고 그의 후손인 성탕成湯이 걸왕을 내몰고 단군조선 13대 흘달屹達의 조력을 받아 걸왕을 축출하고 은殷(商)나라를 건국하였다. 은나라는 BC 1600년경에 창건하여 BC 1050년까지 약 600여년간 존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實證 한단고기]가 인용한 <단군세기>나 <규원사화>에 의하면 13대 단군 갑오 16년(BC 1767년)에 은나라 탕왕湯王의 하나라 정벌 기록이 있어 건국연대 및 멸망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오제五帝중 제곡고신의 여러 부인들중 강원姜嫄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이 부인의 아들이 후직后稷이며, 후직의 후손들이 중원의 서쪽으로 진출하여 융적戎狄(견이를 일컫는 말이며 서쪽에 살았다고 하여 서이西夷(서쪽의 오랑캐:중국사대주의적 관점 호칭)라고도 함)과 섞여 살았다고 한다. 후직의 후손중에 은나라 말기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있었으며 고공단보의 손자가 서백 창이고, 서백 창의 아들이 단군조선의 조력으로 은나라의 마지막 왕 폭군 주왕紂王을 몰아내고 주周나라를 건국한 무왕武王이다.

 

오제중 '제곡고신' 후손중 고공 단보 의 아들 서백창 이 은나라를 멸망 시킨 주나라의 무왕이다

여기서 주나라의 태왕(太王)인 고공단보(古公亶父)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장자가 오태백(吳太伯), 차자가 중옹(仲雍)이고 막내가 계력(季歷)이었다. 그 중 계력이 가장 덕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 고공단보가 계력을 후계로 되었다 그래서 오태백은 아버지의 명으로 오씨성을 하사받고 오나라로 갔다

 그렇게 대가 이어 오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와신상담 의 주인공이신 오나라 왕...

마지막왕 부차 월나라 구천 에 멸망 당해 우리 해동 왕국 오씨 성은 해외로 퍼지게 됬다 >>> 신라 

 

황제 헌원(치우천왕蚩尤天王) >>> 제곡고신 >>>

1. 설 >>> 성탕(은나라 창건) >>> 주왕

2. 고공단보 >>> 서백창(무왕,은나라 멸, 주나라 창건) >>> 오태백, 중옹, 계력

>>> 계력(후계자), 오태백(오나라 창건)

고대 중국 양자강 부근 연릉 사람인 태백이 세운 오(吳)나라의 부차(마지막 왕) >>>

그의 손자 루양 >>>

천자로 부터 오씨 성을 하사 받고 오나라의 왕이 되어 이때부터 오씨가 생겼다. >>> 

오씨의 비조(鼻祖)는 태백왕의 25세인 오기(초나라 제상)의 45세손[오 첨(武惠公)] >>>

둘째 아들  응(應)만 남고 오 첨, 첫째 아들 등은 신라에서 다시 중국으로 감 >>>

[오 첨(武惠公)의 11세 손] : 오희(吳禧) >>> 3남1녀

1 녀 (고려 태조 왕비인 장화황후)

아 들 (고려 제2대 임금 : 혜 종)

[오 첨(武惠公)의 18세 손] : 오 연총(고려 예종때 원수 윤관과 부원수로써 여진 정벌(1216년(고종3)) 하였으며, 관직 : 중서시랑평장사 시호는 문양공(文襄公)) 그 공으로 보성군에 봉해졌다. >>>

[오 첨(武惠公)의 23세 손]오 수권(吳守權) : 오 연총(문양공)의 6세손] >>>

세 아들(큰 아들 부터) 현보(字:應夫), 현좌(字:應儒), 현필(字:應男) 3형제 각각

해주 오, 동복 오, 보성 오 씨로 분관 >>> 그 이후로 吳씨의 수많은 분관

 

분관)

보성오씨에서 분관오씨는 4개의 본

오숙부와 둘째 아들 오양의 후손은 보성오씨(寶城吳氏)를 계승했으며,
세째 아들 오원(吳元)은 화순오씨(和順吳氏)로,
넷째아들 오광휘(吳光輝)는 함양오씨(咸陽吳氏)로 분관했다.

 

분관) 

오현필(吳賢弼)의 둘째아들 오양의 6세손 오사염 >>>

둘째아들 오천우(吳天佑)는 장흥오씨(長興吳氏)로 각각 분관하였다.

 

현재 吳 씨 분포 : 吳 씨에는 고창, 군위, 나주, 낙안, 동복, 보성, 연일, 울산, 장흥, 전주, 평해,

함양, 함평, 해주, 화순, 흥양 오씨가 있음.

 

吳氏의 유래및 비조(鼻祖) 오첨(吳瞻)

 

오씨 성의 기원은 고대 중국 양자강 부근 연릉 사람인 태백이 세운 오(吳)나라에 부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손자 루양이 천자로 부터 오씨성을 하사 받고 오나라의 왕이 되어 이때부터 오씨가 생겼다.
우리나라 오씨의 비조(鼻祖)는 태백왕의 25세인 오기(초나라 제상)의 45세손이 신라 지증왕 때인 서기 500년에 중국에서 신라로 건너온 오첨(武惠公)이며, 왕명으로 김종지(金宗之)의 따님을 아내로 맞이하여 2남 1녀를 두고 함양에서 21년을 사시다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셨는데, 이때 두 아드님 중에 둘째 아들 응(應)이 어려서 따라가지 못하고 함양에 남아서 살았다.
비조 첨의 11孫인 吳禧는 3남1녀를 두셨는데 따님께서 고려 태조 왕비인 장화황후가 되고 禧는 國舅(국구)가 되어 다련군에 封君(태조4년 921年)되었으며, 장화왕후의 아드님이 고려 제2대 임금인 혜종이시다.
또한 다련군의 세 아드님 相은 금성백(錦城伯), 桓은 수양백(首陽伯), 檢은 천령백(天嶺伯)에 봉해졌다. 그 후 첨의 18세손인 연총이 고려 예종때 원수 윤관과 부원수로써 여진을 정벌하였으며, 관직이 중서시랑평장사 이르렀고, 시호는 문양공(文襄公)으로 文武에 걸쳐 나라에 충성하였으며, 吳氏 가문을 가장 높였다. 고려시대에는 公(우측 문양공 영정)을 중시조로 여겼고, 조선 초기까지는 수양오씨(首陽吳氏)라 하였다.

 

보성오씨(寶城吳氏)

 

[유래]

시조 오현필(자는 응남, 호는 성제)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이다. 그는 1216년(고려 고종 3년)에 계단을 토평한 공으로 보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본관을 보성으로 하였다.
보성 오씨에서 분관된 오씨는 4개의 본이 있는데 첫째 아들 오숙부와 둘째 아들 오양의 후손은 보성 오씨를 계승했으며, 셋째 아들 오원은 화순 오씨로, 넷째 아들 오광휘는 함양 오씨로 분관 했으며,
오현필의 둘째 아들 오양의 6세손 중권은 흥양 오씨로, 오현필의 6세손 오사염의 둘째 아들 오천우는 장흥으로 각각 분관하였다.

- 오현필의 묘소는 충남 공주군 장기면 신관리 취리산에 있다.

 

항렬표 (부위공파,양무공파 : 양무공파는 생략)

 

부위공파

 

21세 : 상(相), 응(應), 환(煥), 종(宗)

22세 : 선(先), 재(在), 형(亨)

23세 : 계(啓), 현(鉉), 석(錫)

24세 : 호(鎬), 준(俊), 영(永), 연(淵)

25세 : 영(永), 식(植), 수(秀)

26세 : 세(世), 병(炳), 희(熙)

27세 : 균(均)

28세 : 진(鎭)

29세 : 영(泳)

30세 : 근(根)

31세 : 훈(勳)

32세 : 중(重)

33세 : 선(善)

34세 : 원(源)

35세 : 래(來)

36세 : 열(烈)

37세 : 달(達)

38세 : 종(鍾)

 

양무공파(21세~46세 생략)

 

인구 분포 : [인구] 52,543명이 있다.(1985년 당시 인구 총 조사 자료 토대)

 

 

결론 :

중국에서 건너왔다길래 오씨가 짱께 구나... 자기 비하만 했다... 결과적으로

단군의 후손이란 사실에 새삼 내뿌리가 자랑스럽다 나의 존재 ^^

사진은 보성 녹차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