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벌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종아리 몇대 그 벌이 아니라 윙윙거리는 우리의 일꾼, 벌 말이다. 사실상 한번도 벌에 쏘여 본 적이 없어서리 얼마나 아플 지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만, 어렸을 적 벌통 잘못 건들려서 된통 벌에 쏘인 친구 녀석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 지라 대충 상상되는 엄청났을 고통때문에, 가능하면 벌들과는 가까이 안하려고 하는 나다. 특히나 기분 좋은 봄날 소풍이랍시고 나왔는 데, 달콤 쥬스 통에 목메고 달려드는 벌들 때문에 살짝꿍 짜증났던 경우를 다들 한번씩은 겪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벌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든 적이 있었으니, 바로 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였다. 무심코 보기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벌들의 위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가 저지른 일때문에 안타깝게 사라져 가고 있는 벌, 그 벌들이 왜 사라져 가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어질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흔히들 벌하면 꿀 만드는 일 열심히 하는 곤충 정도로 알고 있지만, 벌이 우리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지대하다. 세상에는 곤충의 도움없이는 수분이 불가능한 식물들이 많은 데, 벌은 그 중 상당수의 수분을 도와 주고 있는 고마운 일꾼이다. 이들 충매화에는 과실수나 야채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벌들에 의한 수분은 인간의 먹이사슬에까지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왜 벌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까하고 연구하고 있는 데,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변화시킨 자연이었다는 결론으로 모아지고 있다. 우선적을 대부분의 과학자는 단순히 우리가 치고 있는 농약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몇년동안 의도적으로 농약사용을 줄여보기로 했다. 그런데, 벌들의 건강상태나 인구밀도에는 큰 진전이 없어 보였다. 벌이 점점 줄어 드는 이유가 단순히 농약에만 있지 않고, 영양실조가 더 큰 이유라는 새로운 학설에 세계의 전문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플렌테이션 타입 농장의 경우, 몇백 에이커에 몇몇 한정되어 있는 과실수만 심어 놓기 때문에 그 주위에 사는 벌들은 어쩔 수 없이 몇 안되는 종류만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시골 벌들보다는 도시에서 양봉되어지는 벌들이 더 건강할 뿐 아니라, 꿀도 더 상급으로 나온단다. 도시의 경우, 시골보다는 좀더 다양한 꽃들과의 만남이 가능하고 오히려 시골보다 농약의 피해가 덜하기 때문이란다. 그러한 추세에 맞추어 파리나 일부 유럽도시들의 아파트 위에 때아닌 양봉붐이 일어나고 있다나?
우리의 벌들이 우리가 벌린 일들 때문에, 시들시들 영양실종까지 걸리고 있다는 데, 그렇다면 벌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날이 온다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상상에 맡길 필요도 없이 중국 일부 지역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벌이 사라진지 수년이 되는 중국의 한 지역에서는 과수원의 과실수 수분작업을 벌이 아닌 사람이 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건비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몇백명의 인원을 차로 실어다가 일일이 꽃 하나하나에 수분을 해 주어야 한다면 그 인건비가 엄청날 것이다. 결과도 벌들만은 못해서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란다. 단순히 머나먼 이국땅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간과할 일이 아닌 듯 싶다.
- 닭 깃털로 하는 인공 수분, 그렇게 해서 한사람이 하루에 수분할 수 있는 나무의 수는 고작 30여 그루. 벌떼가 하루에 무료로 수분할 수 있는 꽃은 3백만개가 넘는다. 만약에 미국에 있는 과수원 나무들을 인공으로 수분하자면 90조 달러가 들 것이라고 한다. -
2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 (미국에서 작년 10월에 Sliense of the Bees라는 제목으로 "Nature"의 한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다. 프로그램을 보고 싶으시다면, http://www.pbs.org/wnet/nature/episodes/silence-of-the-bees/full-episode/251/)를 보고 떠오른 표현은 바로 ‘인과응보’였다. ‘인과응보’를 영어로 표현하면,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이 딱 그에 부합한다. 내가 좋게 했으면 좋게 한 만큼, 나쁘게 했으면 나쁘게 한 만큼, 뿌린 만큼 고스란히 거둔다는 이 표현은 서양에서도 많이 쓰인다. 고스란히 다 돌아오니 늘 잘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요새 특히나 마음에 많이 와 닿는 이유는 자연을 향해 저질러진 우리의 만행들이 이제 서서히 우리에게 다 돌아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드물게 접했던 이상기후들이나 하나 둘 씩 사라져 가는 이름 모를 곤충들이나 동식물들이 왜 그런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이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있는 가 하면 괴상스럽게 변해 버린 세균들로 인해 인류 전체가 공포에 떨기도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자연을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양 그렇게 행세했었는 데, 이제 그에 대한 보답이 하나 둘씩 돌아오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인류의 자손들이 어쩌면 더욱 망가져 있는 대자연을 물려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미안함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 관심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사라져 가는 곤충 하나에도 어쩔 줄 모르고 인과응보에 혹독히 당하고 있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77호]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 꽃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는 벌, 그런 벌이 없다면? -
이번에는 벌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종아리 몇대 그 벌이 아니라 윙윙거리는 우리의 일꾼, 벌 말이다. 사실상 한번도 벌에 쏘여 본 적이 없어서리 얼마나 아플 지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만, 어렸을 적 벌통 잘못 건들려서 된통 벌에 쏘인 친구 녀석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 지라 대충 상상되는 엄청났을 고통때문에, 가능하면 벌들과는 가까이 안하려고 하는 나다. 특히나 기분 좋은 봄날 소풍이랍시고 나왔는 데, 달콤 쥬스 통에 목메고 달려드는 벌들 때문에 살짝꿍 짜증났던 경우를 다들 한번씩은 겪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벌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든 적이 있었으니, 바로 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였다. 무심코 보기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벌들의 위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가 저지른 일때문에 안타깝게 사라져 가고 있는 벌, 그 벌들이 왜 사라져 가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어질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흔히들 벌하면 꿀 만드는 일 열심히 하는 곤충 정도로 알고 있지만, 벌이 우리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지대하다. 세상에는 곤충의 도움없이는 수분이 불가능한 식물들이 많은 데, 벌은 그 중 상당수의 수분을 도와 주고 있는 고마운 일꾼이다. 이들 충매화에는 과실수나 야채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벌들에 의한 수분은 인간의 먹이사슬에까지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왜 벌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까하고 연구하고 있는 데,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변화시킨 자연이었다는 결론으로 모아지고 있다. 우선적을 대부분의 과학자는 단순히 우리가 치고 있는 농약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몇년동안 의도적으로 농약사용을 줄여보기로 했다. 그런데, 벌들의 건강상태나 인구밀도에는 큰 진전이 없어 보였다. 벌이 점점 줄어 드는 이유가 단순히 농약에만 있지 않고, 영양실조가 더 큰 이유라는 새로운 학설에 세계의 전문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플렌테이션 타입 농장의 경우, 몇백 에이커에 몇몇 한정되어 있는 과실수만 심어 놓기 때문에 그 주위에 사는 벌들은 어쩔 수 없이 몇 안되는 종류만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시골 벌들보다는 도시에서 양봉되어지는 벌들이 더 건강할 뿐 아니라, 꿀도 더 상급으로 나온단다. 도시의 경우, 시골보다는 좀더 다양한 꽃들과의 만남이 가능하고 오히려 시골보다 농약의 피해가 덜하기 때문이란다. 그러한 추세에 맞추어 파리나 일부 유럽도시들의 아파트 위에 때아닌 양봉붐이 일어나고 있다나?
우리의 벌들이 우리가 벌린 일들 때문에, 시들시들 영양실종까지 걸리고 있다는 데, 그렇다면 벌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날이 온다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상상에 맡길 필요도 없이 중국 일부 지역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벌이 사라진지 수년이 되는 중국의 한 지역에서는 과수원의 과실수 수분작업을 벌이 아닌 사람이 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건비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몇백명의 인원을 차로 실어다가 일일이 꽃 하나하나에 수분을 해 주어야 한다면 그 인건비가 엄청날 것이다. 결과도 벌들만은 못해서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란다. 단순히 머나먼 이국땅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간과할 일이 아닌 듯 싶다.
- 닭 깃털로 하는 인공 수분, 그렇게 해서 한사람이 하루에 수분할 수 있는 나무의 수는 고작 30여 그루. 벌떼가 하루에 무료로 수분할 수 있는 꽃은 3백만개가 넘는다. 만약에 미국에 있는 과수원 나무들을 인공으로 수분하자면 90조 달러가 들 것이라고 한다. -
2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 (미국에서 작년 10월에 Sliense of the Bees라는 제목으로 "Nature"의 한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다. 프로그램을 보고 싶으시다면, http://www.pbs.org/wnet/nature/episodes/silence-of-the-bees/full-episode/251/)를 보고 떠오른 표현은 바로 ‘인과응보’였다. ‘인과응보’를 영어로 표현하면,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이 딱 그에 부합한다. 내가 좋게 했으면 좋게 한 만큼, 나쁘게 했으면 나쁘게 한 만큼, 뿌린 만큼 고스란히 거둔다는 이 표현은 서양에서도 많이 쓰인다. 고스란히 다 돌아오니 늘 잘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요새 특히나 마음에 많이 와 닿는 이유는 자연을 향해 저질러진 우리의 만행들이 이제 서서히 우리에게 다 돌아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드물게 접했던 이상기후들이나 하나 둘 씩 사라져 가는 이름 모를 곤충들이나 동식물들이 왜 그런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이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있는 가 하면 괴상스럽게 변해 버린 세균들로 인해 인류 전체가 공포에 떨기도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자연을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양 그렇게 행세했었는 데, 이제 그에 대한 보답이 하나 둘씩 돌아오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인류의 자손들이 어쩌면 더욱 망가져 있는 대자연을 물려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미안함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 관심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사라져 가는 곤충 하나에도 어쩔 줄 모르고 인과응보에 혹독히 당하고 있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