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이필립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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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뤼순 감옷 특별 감왕에 수감 되어 있을때

지바 도시치 라는 일본 간수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일본군 이였던 그도 일본 발전의 중심 인물 이라고 믿었던,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를 처단 한 안중근에 대한 적대감이 앞섰는데

그러나 지바는 가끔씩 휴식 시간에 안중근 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안중근 이라는 인물이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죠.

더욱이 조선인으로써 이토를 처단해야 했던 여러 가지 이유를 듣고 자신의 조국,

일본이 큰 잘못을 했다는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당신 나라의 독립을 방해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 합니다,

일본인의 한사람으로 사과 드리고 싶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그 말이 진심이라고 느꼈죠.

"그 말을 정중히 받아드리겠소, 일본인, 더구나 군인인 당신이 그 같은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역사의 흐름 개인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건지도 모르오, 그러나 나의 이번 거사가 가까운 장래, 아니 먼 장래 일지도 모르지만 대한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 하는 계기가 될것으로 기대 하고 있소이다"

간수는 더욱이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사형시간 1910년 3/26 이 왔고, 아침 8:55 안중근은 지바에게

종이 와 붓, 먹을 가져오게 하여서 '위국헌신 군인본분' 이라는 글을 써서 건네주었대요.

그것은 안중근 스스로 자신이 독립군 이라는 자부심 과 더불어 일본군 지바에게 주는

진정한 장부의 길을 알려주는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간수는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에 감탄하여 주기마다 제사를 올렸으며 자신이죽을때

자식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제사를 올려달라고 당부 한 후 죽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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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안중근의사를 모신 일본의 절

미디어다음 세계엔 .일본방 펌

일본 미야기현에 있는 대림사(大林寺, 다이린지)라는 절에 갔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얼핏 보기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작고 아담한 시골의 절입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다른절과 마찬가지로 법당의 한가운데에는 본존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그런데 그 왼쪽에는 좀 특이한 제단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가 볼까요.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오른쪽에 모셔진 분은 안중근 의사,

왼쪽에 모셔진 분은 치바 토시치氏 부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안중근 의사의 위패가 왜 일본의 절에 모셔진 것일까요.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 갇혔을 때, 일본군 헌병이었던 치바 토시치氏라는 분이 그곳에 근무했다고 합니다. 그도 처음에는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안중근 의사가 동양 평화를 갈구하는 굳은 의지와 높은 인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에 두 분은,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형수와 감옥 간수, 가톨릭 신자와 불교도라는 장벽을 넘어 서로 존경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결국 교수형으로 짧은 생애를 마칩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으로 치바 토시치氏에게 "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 위해서 몸을 바침은 군인의 당연한 일이다)라고 쓴 필묵을 선물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었습니다. 독립군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면서도,  항상 포로들은 인도적으로 살아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그 때문에 때로는 일본군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받아 피해를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맞서 싸운다 하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마구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그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긴 정치가일 수도 있겠으나, 이웃나라에게는 침략자나 다름없었고, 동양의 평화를 해치는 그를 부득이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눈물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치바 토시치氏는 군대에서 제대한 뒤, 고향 센다이에서 철도원으로 일하면서도, 평생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시며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타국의 사형대에서 숨져 간 젊은 영혼을 위로하려는 것일까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민요 "아리랑"이 걸려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절 마당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필을 새긴 소박한 추모비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안중근 의사의 추도식이 열린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세월이 흘러 치바 토시치氏도 세상을 떠나고, 이렇게 절 뒷편에 모셔졌습니다.

이젠 두 분이 저 하늘에서 다시 만나 동양의 평화를 기원하고 계시겠죠.



불행한 역사는 불과 백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높은 신념, 그 한국인 청년 사형수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우정을 나누었던 치바 토시치氏, 그리고 그 인연을 지금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유족과 대림사 관계자 여러분들.

몇몇 정치인들의 옳지 않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한일 우호는 이러한 분들의 노력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괜히 폐를 끼친 것 같아 사양하려 했으나 "멀리 한국에서 왔으니 식사라도 하고 가라"는, 절에 계시는 아주머니의 상냥한 권유를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윽고 내 오신 맛있는 냉중화비빔면(冷やし中華, 히야시추카). 시골 절의 푸근한 인심은 한국이건 일본이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를 지키는 일본인 간수
진입로에 있는 표시판입니다.

절 바로 옆에는 토호쿠 신칸센이 놓여 있습니다. 낭만적인 기차길 옆 오막살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시간마저 멈춘듯한 조용한 시골 마을의 정적을 깨뜨리는,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21세기 첨단기술의 집합체 신칸센 고속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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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고맙고..꼭 읽어 보세요 그냥 내려서 댓글다시지 말고.. 아리랑을보니 또 짠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