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모모야마[桃山] 후기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오사카성[大阪城]·구마모토성[熊本城]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으로 꼽힌다. 나고옥(那古屋)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이마가와씨[今川氏]가 1521년부터 1528년까지 쌓은 성인데, 몇 년 뒤 폐허가 된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천하통일을 이룩한 후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1610년부터 다시 축조해 1612년 완성하였다. 이후 1867년 에도막부[江戶幕府] 시대가 끝날 때까지 오와리[尾張] 도쿠가와 집안의 성으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본성인 대천수각(大天守閣)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1959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한 것이다.
성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천수각으로, 본성인 대천수각과 보조 건물인 소천수각으로 구분된다. 둘 사이는 다리[橋臺]로 연결되어 있다. 대천수각은 원래 5층이었으나, 복원하면서 지하 1층, 지상 7층으로 지어졌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도쿠가와 가문의 유물을 비롯해 나고야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1,100여 점의 다양한 문화재급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천수각 지붕의 용마루 끝에 얹은 금으로 만든 샤치호코(머리는 호랑이,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모양을 한 장식물)는 성과 함께 나고야의 상징물로 여겨질 만큼 유명하다. 소천수각은 2층 건물로 대천수각과는 달리 소박하고 아담하다.
그 밖에 정문, 중요문화재인 서남쪽의 망루대(望樓臺)와 오노테 니노문[表二之門], 벚나무로 가득한 정원 니노마루[二之丸] 등도 볼 만하다. 나고야 어느 곳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으며, 12월 29일부터 1월 1일까지 나흘을 제외하고는 연중 문을 연다. 개관 시간은 9시부터 16시 30분까지이며, 성 전체를 둘러보는 데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지난 1월달에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와서도, 첫날에 보았던 나고야성의 이미지는 여행 마지막 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성이라는 이유일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유에서인지,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역사의 산물을 보면, 그 감흥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일본의 역사만해도 여러 방면으로 접할 수 있는 재미난 옛날 이야깃거리이기때문에, 특히 일본열도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머무르게 될 3人.
左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右
<naver 이미지 발췌>
에 얽힌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에, 나고야성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특별한 것이었다.
*울지않는 새에 관한 고사*울지않는 새에 관한 고사
일본사람들이 꼽는 일본의 3대 영웅인 이 세사람의 성격에 비유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새가 울지 않을때 세 사람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9;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9;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9;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든다.&#-9;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9;울지 않는 새라면 울때까지 기다린다.&#-9;
울지 않는 새라면 이용가치가 없으므로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노부나가는 성격 급하고, 극단적인 현실주의자의 표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자의 시대적 필요성에의해, 그는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선구자, 혁명가로서의 역할을 역사속에서 충분히 해내었다.
임진왜란 <일본의 경우: 분로쿠노 에키> 으로 우리나라사람에게 다른 두 사람보다 더 극명하게 다가오는 인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는 새를 울게 만들 정도로, 히데요시의 경우는 계략에 매우 능해서 적의 행동까지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임진왜란의 경우도 일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활시위를 대외적인 곳으로 돌려, 내부의 단결을 도모했던 히데요시의 책략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로인해 조선만 피봤지만,>
울지 않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는 이에야스의 경우는 처음에는 노부나가와 동맹관계였으나 노부나가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굴욕을 참고 휘하의 장수가 되었던 것과 노부나가의 부하에 불과했던 히데요시 밑에서 자신의 시기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을 비유한다. 그래서 세인들은 그를 평하기를 대기만성형 인물이다라고 한다. 그 오랜 기다림끝에 1603년, 에도막부를 열어 일본열도를 안정시켰고, 이는 1868년의 메이지이신까지 260여년의 평화를 주었다.
<물론 쇄국정책이라, 이 것이 과연 일본 측면에서 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에야스에 의해 재축조된 나고야성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 1610년부터 기존의 성을 다시 축조하여 1612년에 완공한 것이 바로 이 나고야성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아이치현의 미카와[三河] 출신의 사람으로, 어린 시절에 이마가와씨[今川氏]의 인질로 붙잡혀서, 온갖 곤욕을 치루었다고 한다. 이마가와씨[今川氏]가 1521년부터 1528년까지 쌓은 성이 바로 나고야성의 전신이었고, 전후 폐허로 남겨진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축조한 것이다.
이에야스의 출신 지역을 상징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시절 이마가와씨의 인질로서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에야스에의해 재축조된 나고야성은 이제는 나고야의 상징물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고야성의 오후..
*나고야성의 오후..
필자가 나고야성에 도착했을 당시는 오후 4시경. 하늘은 이미 해질녘으로 가는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나고야성 맞은편 주차장에서 나고야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다리가 놓여져있다. 나고야성은 2단 해자로 둘러져 있는 규모가 굉장히 큰 성이기 때문에, 적군이 쳐들어오기 쉽지 않은 구조였겠거니 생각했다.<에도시대에는 큰 전쟁이 없었겠지만..>
이 다리 밑으로 나있는 해자가 외성 주변을 벵 돌고있는 첫번째 해자이겠다.<상단 맨왼쪽사진>
나고야성은 4시반부터 출입이 통제가 된다. 나고야성 뿐만아니라, 일본에 있는 대부분의 문화재 이용시간이 4시반으로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에 오사카성에 다녀왔을 때도, 4시반이 넘어서 오사카성안의 박물관을 못 들어갔었다.
<지금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이런 문화재 관리 시스템과 겨누어보았을 때, 숭례문의 화재와 연관되어 마음한켠이 쓰라려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나고야성의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을 볼 수 있고, 그 주변에 벵 둘러져있는 두번째 해자또한 볼 수 있었다. 내성 주변으로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산책로 안쪽에는 작은 집이 있었는데, <상단 두번째사진>그 용도는 잘 모르겠다. 옛날부터 보존되어 온 거주지일까나?
일본은 고양이를 신으로 여기는 나라라서 그런지, 나고야성의 공원에도 고양이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 나라에서는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인 것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필자의 동생입니돠>
*나고야성 박물관의 조금은 비뚫어진 감상법..
나고야성의 내부역시 박물관의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유물과, 나고야성의 축조과정등이 자세히 설명되어있었다. 시간상 이때에 나고야성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였는데, 우리의 가이드는 일행을 이끌고, 출구쪽으로 거꾸로 들어가버렸다. 덕분에, 출구쪽부터 거꾸로 나고야성 박물관을 감상하게 되었다. 최상층부에는 나고야성의 주변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나고야성에서 바라보는 나고야라는 도시는, 일본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일본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치고는, 도시특유의 분주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냥 조용했다. 한국인의 멋드러진 기록하는 근성에 힘입어, No camera를 그냥 무시한 체, 박물관의 내부 모습을 사진에 남겨왔다. <일부 사진을 찍어도 되는 point도 있다.>
저 익살스런 포즈로 돌을 끌어당기는 모습의 사진은 나름 관광객들로 하여금 체험을 하랍시고 만들어놓은 축조과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겠다. 상단우측의 사진은 일본 3대영웅의 초상을 그려놓고, 일본어로 장황하게 설명을 해놓은 곳이었는데, 아마 저 사진의 주인공은 오다 노부나가 일 것이다.
<사진 속의 설명문구가 희미해서 도저히 못 알아보겠음>
상단의 큰 사진은 당시의 시대상을 나타내는 저자거리? 를 형상화 해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민속박물관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과 유사했다. 하단좌측의 사진은 박물관 출구에 나열되어 있는 멋드러진 붓글씨들이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시라나이.,ㅡ,.ㅡ
걸어 들어 온 곳으로 다시 나가니까, 경찰아저씨들이 출구앞을 지키고 있더외다. 절대 부동의 자세로,,.,. <바로 자신 뒤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모를 정도로.>
나고야성을 나올 때, 하늘은 매우 인상적인 색을 연출했다.
햇빛을 받아 따스함이 감도는 나고야성을 뒤로 한 체, 발걸음을 옮긴다.
놀라운 사실은 저 대천수각 주변으로 둘러져있는 해자 아래에는 사슴이 산다는 사실. ㅎㅎ 그 곳에서 사슴을 방목하는 일본인들의 센스가 작은 웃음을 자아 낼 따름이다.
바깥 쪽 성곽위에는 갈대를이 어린아이의 고운 머리숱마냥 부스스하게 나있었다. 하늘을 빗질하는 것일까?
이날 하늘은 여러겹의 얇은 구름을 널어 놓았다. 구름 저 너머로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가 있었는지, 작은 비행구름도 볼 수 있었다.
나고야의 하늘은 그렇게 조용히 배웅을 해 주고 있었다.
노을이 지는 나고야성은 빠져나왔지만, 드디어 일본의 3대 성을 다 보았구나!~ 라는 감격에서는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었던 날이었다.
나고야 성,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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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모모야마[桃山] 후기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오사카성[大阪城]·구마모토성[熊本城]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으로 꼽힌다. 나고옥(那古屋)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이마가와씨[今川氏]가 1521년부터 1528년까지 쌓은 성인데, 몇 년 뒤 폐허가 된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천하통일을 이룩한 후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1610년부터 다시 축조해 1612년 완성하였다.
이후 1867년 에도막부[江戶幕府] 시대가 끝날 때까지 오와리[尾張] 도쿠가와 집안의 성으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본성인 대천수각(大天守閣)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1959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한 것이다.
성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천수각으로, 본성인 대천수각과 보조 건물인 소천수각으로 구분된다. 둘 사이는 다리[橋臺]로 연결되어 있다. 대천수각은 원래 5층이었으나, 복원하면서 지하 1층, 지상 7층으로 지어졌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도쿠가와 가문의 유물을 비롯해 나고야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1,100여 점의 다양한 문화재급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천수각 지붕의 용마루 끝에 얹은 금으로 만든 샤치호코(머리는 호랑이,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모양을 한 장식물)는 성과 함께 나고야의 상징물로 여겨질 만큼 유명하다. 소천수각은 2층 건물로 대천수각과는 달리 소박하고 아담하다.
그 밖에 정문, 중요문화재인 서남쪽의 망루대(望樓臺)와 오노테 니노문[表二之門], 벚나무로 가득한 정원 니노마루[二之丸] 등도 볼 만하다. 나고야 어느 곳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으며, 12월 29일부터 1월 1일까지 나흘을 제외하고는 연중 문을 연다. 개관 시간은 9시부터 16시 30분까지이며, 성 전체를 둘러보는 데는 1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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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네이버 백과사전에 기록된 나고야성에 관한 설명이다.
지난 1월달에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와서도, 첫날에 보았던 나고야성의 이미지는 여행 마지막 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성이라는 이유일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유에서인지,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역사의 산물을 보면, 그 감흥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일본의 역사만해도 여러 방면으로 접할 수 있는 재미난 옛날 이야깃거리이기때문에, 특히 일본열도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머무르게 될 3人.
左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右
<naver 이미지 발췌>
에 얽힌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에, 나고야성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특별한 것이었다.
*울지않는 새에 관한 고사*울지않는 새에 관한 고사
일본사람들이 꼽는 일본의 3대 영웅인 이 세사람의 성격에 비유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새가 울지 않을때 세 사람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9;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9;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9;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든다.&#-9;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9;울지 않는 새라면 울때까지 기다린다.&#-9;
울지 않는 새라면 이용가치가 없으므로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노부나가는 성격 급하고, 극단적인 현실주의자의 표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자의 시대적 필요성에의해, 그는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선구자, 혁명가로서의 역할을 역사속에서 충분히 해내었다.
임진왜란 <일본의 경우: 분로쿠노 에키> 으로 우리나라사람에게 다른 두 사람보다 더 극명하게 다가오는 인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는 새를 울게 만들 정도로, 히데요시의 경우는 계략에 매우 능해서 적의 행동까지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임진왜란의 경우도 일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활시위를 대외적인 곳으로 돌려, 내부의 단결을 도모했던 히데요시의 책략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로인해 조선만 피봤지만,>
울지 않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는 이에야스의 경우는 처음에는 노부나가와 동맹관계였으나 노부나가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굴욕을 참고 휘하의 장수가 되었던 것과 노부나가의 부하에 불과했던 히데요시 밑에서 자신의 시기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을 비유한다. 그래서 세인들은 그를 평하기를 대기만성형 인물이다라고 한다. 그 오랜 기다림끝에 1603년, 에도막부를 열어 일본열도를 안정시켰고, 이는 1868년의 메이지이신까지 260여년의 평화를 주었다.
<물론 쇄국정책이라, 이 것이 과연 일본 측면에서 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에야스에 의해 재축조된 나고야성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 1610년부터 기존의 성을 다시 축조하여 1612년에 완공한 것이 바로 이 나고야성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아이치현의 미카와[三河] 출신의 사람으로, 어린 시절에 이마가와씨[今川氏]의 인질로 붙잡혀서, 온갖 곤욕을 치루었다고 한다. 이마가와씨[今川氏]가 1521년부터 1528년까지 쌓은 성이 바로 나고야성의 전신이었고, 전후 폐허로 남겨진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축조한 것이다.
이에야스의 출신 지역을 상징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시절 이마가와씨의 인질로서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에야스에의해 재축조된 나고야성은 이제는 나고야의 상징물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고야성의 오후..
*나고야성의 오후..
필자가 나고야성에 도착했을 당시는 오후 4시경. 하늘은 이미 해질녘으로 가는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나고야성 맞은편 주차장에서 나고야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다리가 놓여져있다. 나고야성은 2단 해자로 둘러져 있는 규모가 굉장히 큰 성이기 때문에, 적군이 쳐들어오기 쉽지 않은 구조였겠거니 생각했다.<에도시대에는 큰 전쟁이 없었겠지만..>
이 다리 밑으로 나있는 해자가 외성 주변을 벵 돌고있는 첫번째 해자이겠다.<상단 맨왼쪽사진>
나고야성은 4시반부터 출입이 통제가 된다. 나고야성 뿐만아니라, 일본에 있는 대부분의 문화재 이용시간이 4시반으로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에 오사카성에 다녀왔을 때도, 4시반이 넘어서 오사카성안의 박물관을 못 들어갔었다.
<지금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이런 문화재 관리 시스템과 겨누어보았을 때, 숭례문의 화재와 연관되어 마음한켠이 쓰라려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나고야성의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을 볼 수 있고, 그 주변에 벵 둘러져있는 두번째 해자또한 볼 수 있었다. 내성 주변으로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산책로 안쪽에는 작은 집이 있었는데, <상단 두번째사진>그 용도는 잘 모르겠다. 옛날부터 보존되어 온 거주지일까나?
문득 들었던 생각에,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은둔했던, 융중의 작은 서가의 아담함이 느껴졌었다.
일본은 고양이를 신으로 여기는 나라라서 그런지, 나고야성의 공원에도 고양이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 나라에서는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인 것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필자의 동생입니돠>
*나고야성 박물관의 조금은 비뚫어진 감상법..
나고야성의 내부역시 박물관의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유물과, 나고야성의 축조과정등이 자세히 설명되어있었다. 시간상 이때에 나고야성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였는데, 우리의 가이드는 일행을 이끌고, 출구쪽으로 거꾸로 들어가버렸다. 덕분에, 출구쪽부터 거꾸로 나고야성 박물관을 감상하게 되었다. 최상층부에는 나고야성의 주변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나고야성에서 바라보는 나고야라는 도시는, 일본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일본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치고는, 도시특유의 분주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냥 조용했다. 한국인의 멋드러진 기록하는 근성에 힘입어, No camera를 그냥 무시한 체, 박물관의 내부 모습을 사진에 남겨왔다. <일부 사진을 찍어도 되는 point도 있다.>
저 익살스런 포즈로 돌을 끌어당기는 모습의 사진은 나름 관광객들로 하여금 체험을 하랍시고 만들어놓은 축조과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겠다. 상단우측의 사진은 일본 3대영웅의 초상을 그려놓고, 일본어로 장황하게 설명을 해놓은 곳이었는데, 아마 저 사진의 주인공은 오다 노부나가 일 것이다.
<사진 속의 설명문구가 희미해서 도저히 못 알아보겠음>
상단의 큰 사진은 당시의 시대상을 나타내는 저자거리? 를 형상화 해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민속박물관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과 유사했다. 하단좌측의 사진은 박물관 출구에 나열되어 있는 멋드러진 붓글씨들이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시라나이.,ㅡ,.ㅡ
걸어 들어 온 곳으로 다시 나가니까, 경찰아저씨들이 출구앞을 지키고 있더외다. 절대 부동의 자세로,,.,. <바로 자신 뒤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모를 정도로.>
나고야성을 나올 때, 하늘은 매우 인상적인 색을 연출했다.
햇빛을 받아 따스함이 감도는 나고야성을 뒤로 한 체, 발걸음을 옮긴다.
놀라운 사실은 저 대천수각 주변으로 둘러져있는 해자 아래에는 사슴이 산다는 사실. ㅎㅎ 그 곳에서 사슴을 방목하는 일본인들의 센스가 작은 웃음을 자아 낼 따름이다.
바깥 쪽 성곽위에는 갈대를이 어린아이의 고운 머리숱마냥 부스스하게 나있었다. 하늘을 빗질하는 것일까?
이날 하늘은 여러겹의 얇은 구름을 널어 놓았다. 구름 저 너머로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가 있었는지, 작은 비행구름도 볼 수 있었다.
나고야의 하늘은 그렇게 조용히 배웅을 해 주고 있었다.
노을이 지는 나고야성은 빠져나왔지만, 드디어 일본의 3대 성을 다 보았구나!~ 라는 감격에서는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