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의 시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한국현대시를 이야기할 수 없다. 청마는 한국현대시의 거대한 옥토다. 이 옥토 위에서 우리의 현대시는 비로소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마가 첫시집 『청마시초』을 낸 1932년은 일제강점기 시대로, 그때까지만 해도 경성방송국에서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교대로 방송하고 있었다. 이러한 어둠의 시대에 우리의 민족어로 시를 쓴 청마는 어두운 밤하늘의 별빛과 같은 존재였다. 그 시대에 호남에 미당이 있었다면 영남에는 청마가 있었다. 미당이 청마보다 7년 정도 연배가 아래고 등단 시기도 4년 정도 아래지만 당시 두 시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시에 영호남을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1953년에 발간된 『예루살렘의 닭』 첫 쪽에는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정주’라는 구절이 실려 있다. 또 그 이듬해 『청마시집』에 게재된 ‘소식’이라는 시의 부제 또한 ‘정주형(廷柱兄)에게’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당시 청마와 미당은 서로 각별히 시적 친분을 나눈 것으로 짐작된다.
청마는 60세 되던 1967년 2월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그 이듬해 1968년에는 김수영 시인 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그것도 똑같이 버스에 치여 사망함으로써 한국시단의 가슴은 더욱 아팠다.) 마침 올해(2008년)는 청마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청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천여 편이 넘는 그의 시 중에서 100편을 골라 시선집을 묶는 것은 그 의의가 무척 크다 하겠다. 청마는 40여년 시작활동을 통해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집을 발간했다. 오늘처럼 출판문화가 꽃피지 않은 때에 이처럼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왕성한 창작의욕에 불탄 시인이었는가를 잘 알 수 있는 사항이다. 그는 1957년에 발간한 『제9시집』 후기에서 “시집을 아홉 권이나 내다니! 생각하면 내가 나의 인생에 대해서 너무나도 다변하였음을 새삼스리 스스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곧 “이 다변벽(多辯癖)이 결국은 (중략) 장차 커다란 침묵을 위한 배설임을 스스로 믿는 바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장차 커다란 침묵’이란 시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의 세계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한다. “나의 이 글들이 언제나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식 없고 장식 없는 진실을 오직 밑바닥하고 우러나온 것이었고 보니 이제야 그 진실을 내 자신 마지막 증거할 때가 이르고 있음을 나는 지금 곰곰이 깨쳐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데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청마는 당대에는 드문 다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평소 시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듯하다. 1947년에 발간된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 서문에 보면 “저는 시인이 아닙니다. (중략) 어찌 사슴이 초식동물이 되려고 애써 풀잎을 씹고 있겠습니까. 시는 항상 불가피한 존재의 숙명에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시인임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인임을 강조한 역설적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또 “어찌 시인이 시를 일부러 낳으려고 애를 써야 하겠습니까. 참아서 능히 견딜만하거든 아예 붓대를 들지 아니하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불행을 하나이라도 덜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청마의 시작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청마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려서, 즉 ‘분뇨하듯이’ 자연스럽게 생태적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청마는 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탄생되는 것으로 여겨 시적 기교나 조작에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청마의 시를 읽으면 물 흐르는 모습이 보이거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시의 물은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이라기보다 계곡을 타고 우렁차게 내려오는 폭포의 물이자 바닷물이다. 바닷물이라 하더라도 해변의 절벽에 철석거리는 물이라기보다 망망대해를 넘실대는 파도와 같은 거대한 물이다. 시에서 물의 이미지는 보통 여성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청마의 경우에는 물의 이미지를 통해 남성적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그의 ‘물’에 여성성이 부재돼 있는 것은 아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 같이 가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 전문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성이 드러나 있으며, 독자들은 그의 여성성에 더 마음을 빼앗긴다. 청마의 시는 물의 이미지를 통해 사랑에서 오는 고통의 깊이에까지 도달해 있다. 청마는 ‘불굴의 생명 의지를 노래한 남성적 시인’이기도 하지만 진실한 사랑을 노래한 모성적 시인이기도 하다. 그리움을 노래한 그의 또 다른 시를 보자.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전문
이 얼마나 섬세한 여성성이 바탕이 된 시인가. 아마 청마에게 이런 여성적 이미지가 없었다면 그의 남성적 이미지가 어쩌면 초라해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여성성이 있기 때문에 그의 남성성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님을 향한 ‘그리움의 깃발’이 공중에 펄럭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 깃발은 모성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깃발이다. 물론 청마의 ‘깃발’은 본질적으로 남성적 이미지를 지닌 깃발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자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닳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깃발」 전문)’에서처럼 남성적 호소력이 드높다. 그러나 이 시에서 ‘그리움’이 여성성이라면 ‘깃발’은 남성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여성성과 남성성의 절묘한 조화가 청마시의 특장점이다. 이러한 특장점의 바탕 위에서 ‘꽃등인양 창 앞에 한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적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로 시작되는 「춘신(春信)」과 같은 명시가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님에 대한 청마의 이러한 ‘그리움’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특히 병든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은 애절하다.
아픈가 물으면 가늘게 미소하고 아프면 가만히 눈감는 아내 한떨기 들꽃이 피었다 시들고 지고 한 사람이 살고 병들고 또한 죽어가다. 이 앞에서는 전주우(全宇宙)를 다하야도 더욱 무력한가 내 드디어 그대 앓음을 나누지 못하나니 가만히 눈감고 아내여 (중략) 그대 만약 죽으면 - 이 생각만으로 가슴은 슬픔에 즘생 같다 -「병처(病妻)」 부분
병든 아내를 바라보는 청마의 마음이 이토록 절절하다. 이는 청마의 남성적 시세계 속에 여성적 시세계가 숨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청마는 ‘사랑’에 관한 시를 당대의 다른 시인에 비해 비교적 많이 쓴 편에 속한다. 사랑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그리움과 기다림, 만남과 이별, 기쁨과 고통, 절망과 희망, 행복과 불행 등이 그의 시속에 절절한 배경을 이룬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홍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나와 나의 애뜻한 연분도 한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전문
이 시는 사랑을 노래한 청마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시를 읽으면 일상의 바쁜 걸음을 멈추고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청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그렇게 편지를 쓰던 우리 자신들의 모습도 겹쳐진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 것이 이 시를 관통하는 청마의 목소리다. 사랑을 주지 않고 받기만 하는 이는 행복하지 않다. 사랑은 주고 희생함으로써 완성되는 모성적 본질을 지녔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이별의 편지를 쓰는 순간을 노래한 것 같으나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과 그리움에 대한 희구를 나타내고 있다. 청마는 시선집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후기에서 “인간이 그의 이성(異性)을 사랑한다는 자체가 벌써 나위없는 자연의 일”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극히 사랑함은 바로 자연 속에 동화되는 일임에 틀림없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통한 이 자연속의 동화는 곧 영원에의 동화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사랑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함이란 그 자신이 자기완성을 완수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제가 인간으로서의 완성으로 이끌린다는 사실은 얼마나 우주의 기미(機微)하고도 오묘한 섭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랑이란 그 자체의 근원이 사랑하는 사람인 대상이나 그 어느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하는 자신 쪽에 있는 것이며 그의 자신의 내부에서 어쩔 수 없이 우러나는 희구의 발현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나 자신의 희구! 그렇습니다. 처음, 나 자신의 영혼의 어쩔 수 없는 그 희구가 나의 육신을 이루었고 다음 나의 사랑하는 이를 이루었고 그 다음으로 여기에 엮은 이 시편들을 이루어 떨어뜨린 것입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보지 않은 자에게 어찌 하늘나라가 있을 수 있으며 그 거룩한 문을 두드릴 자격이나마 가졌겠습니까.” 청마의 사랑은 이성적 사랑을 지향하되 그 바탕은 기독교적 사랑에 두는 부분이 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보지 않은 자에게 어찌 하늘나라가 있을 수 있으며 그 거룩한 문을 두드릴 자격이나마 가졌겠습니까”라고 하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청마시를 관류하는 종교적 색채가 있다면 불교적 색채보다는 기독교적 색채가 더 강하다. 「복수(復?)」 「예루살렘의 닭」 「교회당」「부활」「미사의 종」「통곡」「성령수태(聖靈受胎)」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청마시에는 성서의 내용이 시의 은유물이나 은유의 상황으로 나타난 경우가 많다. 아마 청마는 성서를 통독한 듯하고 성서의 정신에 은연중 내면적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의 닭」은 베드로가 새벽닭이 울기 전에 스승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배반하는 성서의 이야기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성령수태」는 성모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복수」는 처형당하기 전에 입고 있던 예수의 옷을 로마병사들이 제비뽑기를 해서 가져가는 ‘마가복음 15장 26절’의 이야기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 특히 「예루살렘의 닭」에서는 ‘위선이 선을 능욕하는’ ‘악에 가담한’ 자신을 자책하며 ‘눈물로서 벼개를 적시우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 베드로의 존재와 화자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청마의 모습이 무척 뼈아프다. 그러나 「교회당」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날카롭게 드러나 있다. ‘까마득히 보좌에는 닳을 길 없는, 위선과 거짓으로, 말 없으매 우겨 떠받힌 고독한 집이여!’라고 표현함으로써 교회당을 위선과 거짓의 집으로 파악한다. 진실과 정의와 사랑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집이어야 할 교회가 그렇지 못한 데에 대한 시인의 분노와 질책은 뜨겁다. 청마는 1959년에 발간한 시선집 『동방의 느티』 후기에서 “나의 사유하는 데 있어 전후가 모순되는 점이 흔히 없지가 않은데 예를 들면 신의 존재를 생각하는데도 어디서는 범신적(汎神的)이었던가 하면 또 어떤 데서는 유일신적(唯一神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내가 철학자도 아니요 종교가도 아니요 어디까지나 느낌을 바탕으로 해서 직관하고 사유함으로써 부득이 결과되는 것이니 양해있기를 바란다” 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청마시집』의 ‘서(序)에 대하여’에서 보다 확실한 종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영혼불멸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영혼불멸을 믿지 못한다. 진실인즉 인간은 영혼불멸이 아니므로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는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착각하고 자위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의 존재는 인정한다. 내가 인정하는 신이란 오늘 내가 있는 이상의 그 어떤 은총을 베풀며 베풀 수 있는 신이 아니라 이 시공과 거기 따라 존재하는 만유(萬有)를 있게 하는 의지 그것인 것이다. 나의 신은 형상도 없는 팽배 모호한 존재이다. 목적을 갖지 않은 허무의 의사(意思)이다. (중략) 나의 사유 중에 편린이나마 신의 은총을 인정하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나의 목숨에 오불관언(吾不關焉)한 이 신의 냉혹에 대한 나의 비굴한 나머지의 아첨밖에 아님을 자백해둔다.” 신앙에 대한 청마의 이러한 글은 확신에 찬 글이라기보다는 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면서도 모순과 갈등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청마는 애련(愛戀)에서 오는 고통과 그 고통에서 오는 삶의 허무함을 그래도 신앙의 힘에 의지하거나 극복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자연을 노래하고 예찬한 범신론적 시인이기도 하지만 유일신의 존재를 고뇌한 기독교적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흔히 청마를 ‘생명의 시인’이라고 평한다. 시집 『생명의 서』 발간 이후 청마에게는 ‘생명’이 그를 나타내는 상징어가 되었다. 청마의 ‘생명’은 청마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통해 볼 때 사랑에 그 기원이 있다. 청마의 시는 생명의 시이자 동시에 사랑의 시이다. 청마시의 상징인 ‘깃발’ 또한 생명의 깃발이면서 동시에 사랑과 그리움의 깃발이다. 청마는 「뉘가 이 기(旗)를 들어 높이 퍼득이게 할 것이냐」에서 ‘이 모질고 슬픈 인류의 마음을/ 햇빛 같이 깨우칠 기(旗)를/ 높이 높이 들어 퍼득일 때는’ ‘진실로 시방 이 때이다’라고 갈파하고 있다. 청마의 이러한 생명의 시학은 사회와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로 확대된다. 「그래서 너는 시를 쓴다?」에서는 ‘서울 상도동 산번지’ ‘내 딸년이 사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시화화하고 있다. ‘한 굶주린 젊은 어머니가 밥 달라고 보채는 어린 것을 독기에 받쳐 목을 졸라 죽였다’는 현실을 몰라라 하는 우리 사회와 시인 자신에 대해 ‘너는 시랍시고 문학이랍시고 이 따위를 태연히 앉아 쓴단 말인가’하고 질책하고 성찰한다. 시집 『보병과 더불어』는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구체적으로 직접체험하면서 쓴 시로 깊고 거친 전쟁의 숨소리가 생생하다. 청마의 이러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은 4?19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동아일보에 자유를 노래 부르지 못하고 땅에 묻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비참함을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로 절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청마는 「석굴암대불」 등 우리의 문화유산을 탁월하게 시로 형상화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문학적 삶에 영향을 끼친 이들을 위한 시를 애정 어린 눈길로 남기기도 했다. ‘-생떽쥐베리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열애」, ‘베토벤 상(像)’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사람을 보라」, ‘이중섭 화(畵) 달과 까마귀에’라는 부제가 붙은 「괴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청마시에는 한국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전통적 서정시들이 많으나 이 글에서 일일이 다 짚어볼 수가 없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청마시를 처음 읽었다.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꺼나’로 시작되는 「울릉도」, ‘목놓아 터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눈감고 않았느니/ 천년을 차거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로 시작되는 「석굴암대불」이나 「깃발」 등이 바로 그러한 시다. 그리고 경주에 갈 때마다 불국사 부근, 석굴암 오르는 길가 시비에 새겨진 「바위」를 읽고 또 읽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청마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 한국현대시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청마를 기리는 마음 크다. 이 글은 청마시 100편을 선정하고 엮으면서 느껴진 독후감 성격의 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시선집을 통해 청마시가 독자들에게 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고 노래한 청마는 지금쯤 한 개 바위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그런 바위가 되어 있으리라.
*거제시문화예술재단 기획으로 교보문고에서 발간한 청마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 중에서(자료제공/거제문화예술회관).
영원히 펄럭이는 그리움의 깃발
영원히 펄럭이는 그리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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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시인)
청마 유치환의 시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한국현대시를 이야기할 수 없다. 청마는 한국현대시의 거대한 옥토다. 이 옥토 위에서 우리의 현대시는 비로소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마가 첫시집 『청마시초』을 낸 1932년은 일제강점기 시대로, 그때까지만 해도 경성방송국에서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교대로 방송하고 있었다. 이러한 어둠의 시대에 우리의 민족어로 시를 쓴 청마는 어두운 밤하늘의 별빛과 같은 존재였다. 그 시대에 호남에 미당이 있었다면 영남에는 청마가 있었다. 미당이 청마보다 7년 정도 연배가 아래고 등단 시기도 4년 정도 아래지만 당시 두 시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시에 영호남을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1953년에 발간된 『예루살렘의 닭』 첫 쪽에는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정주’라는 구절이 실려 있다. 또 그 이듬해 『청마시집』에 게재된 ‘소식’이라는 시의 부제 또한 ‘정주형(廷柱兄)에게’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당시 청마와 미당은 서로 각별히 시적 친분을 나눈 것으로 짐작된다.
청마는 60세 되던 1967년 2월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그 이듬해 1968년에는 김수영 시인 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그것도 똑같이 버스에 치여 사망함으로써 한국시단의 가슴은 더욱 아팠다.) 마침 올해(2008년)는 청마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청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천여 편이 넘는 그의 시 중에서 100편을 골라 시선집을 묶는 것은 그 의의가 무척 크다 하겠다.
청마는 40여년 시작활동을 통해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집을 발간했다. 오늘처럼 출판문화가 꽃피지 않은 때에 이처럼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왕성한 창작의욕에 불탄 시인이었는가를 잘 알 수 있는 사항이다. 그는 1957년에 발간한 『제9시집』 후기에서 “시집을 아홉 권이나 내다니! 생각하면 내가 나의 인생에 대해서 너무나도 다변하였음을 새삼스리 스스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곧 “이 다변벽(多辯癖)이 결국은 (중략) 장차 커다란 침묵을 위한 배설임을 스스로 믿는 바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장차 커다란 침묵’이란 시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의 세계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한다. “나의 이 글들이 언제나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식 없고 장식 없는 진실을 오직 밑바닥하고 우러나온 것이었고 보니 이제야 그 진실을 내 자신 마지막 증거할 때가 이르고 있음을 나는 지금 곰곰이 깨쳐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데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청마는 당대에는 드문 다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평소 시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듯하다. 1947년에 발간된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 서문에 보면 “저는 시인이 아닙니다. (중략) 어찌 사슴이 초식동물이 되려고 애써 풀잎을 씹고 있겠습니까. 시는 항상 불가피한 존재의 숙명에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시인임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인임을 강조한 역설적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또 “어찌 시인이 시를 일부러 낳으려고 애를 써야 하겠습니까. 참아서 능히 견딜만하거든 아예 붓대를 들지 아니하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불행을 하나이라도 덜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청마의 시작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청마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려서, 즉 ‘분뇨하듯이’ 자연스럽게 생태적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청마는 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탄생되는 것으로 여겨 시적 기교나 조작에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청마의 시를 읽으면 물 흐르는 모습이 보이거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시의 물은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이라기보다 계곡을 타고 우렁차게 내려오는 폭포의 물이자 바닷물이다. 바닷물이라 하더라도 해변의 절벽에 철석거리는 물이라기보다 망망대해를 넘실대는 파도와 같은 거대한 물이다. 시에서 물의 이미지는 보통 여성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청마의 경우에는 물의 이미지를 통해 남성적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그의 ‘물’에 여성성이 부재돼 있는 것은 아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 같이 가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 전문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성이 드러나 있으며, 독자들은 그의 여성성에 더 마음을 빼앗긴다. 청마의 시는 물의 이미지를 통해 사랑에서 오는 고통의 깊이에까지 도달해 있다. 청마는 ‘불굴의 생명 의지를 노래한 남성적 시인’이기도 하지만 진실한 사랑을 노래한 모성적 시인이기도 하다. 그리움을 노래한 그의 또 다른 시를 보자.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전문
이 얼마나 섬세한 여성성이 바탕이 된 시인가. 아마 청마에게 이런 여성적 이미지가 없었다면 그의 남성적 이미지가 어쩌면 초라해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여성성이 있기 때문에 그의 남성성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님을 향한 ‘그리움의 깃발’이 공중에 펄럭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 깃발은 모성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깃발이다. 물론 청마의 ‘깃발’은 본질적으로 남성적 이미지를 지닌 깃발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자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닳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깃발」 전문)’에서처럼 남성적 호소력이 드높다. 그러나 이 시에서 ‘그리움’이 여성성이라면 ‘깃발’은 남성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여성성과 남성성의 절묘한 조화가 청마시의 특장점이다. 이러한 특장점의 바탕 위에서 ‘꽃등인양 창 앞에 한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적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로 시작되는 「춘신(春信)」과 같은 명시가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님에 대한 청마의 이러한 ‘그리움’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특히 병든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은 애절하다.
아픈가 물으면 가늘게 미소하고
아프면 가만히 눈감는 아내
한떨기 들꽃이 피었다 시들고 지고
한 사람이 살고 병들고 또한 죽어가다.
이 앞에서는 전주우(全宇宙)를 다하야도 더욱 무력한가
내 드디어 그대 앓음을 나누지 못하나니
가만히 눈감고 아내여
(중략)
그대 만약 죽으면 -
이 생각만으로 가슴은 슬픔에 즘생 같다
-「병처(病妻)」 부분
병든 아내를 바라보는 청마의 마음이 이토록 절절하다. 이는 청마의 남성적 시세계 속에 여성적 시세계가 숨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청마는 ‘사랑’에 관한 시를 당대의 다른 시인에 비해 비교적 많이 쓴 편에 속한다. 사랑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그리움과 기다림, 만남과 이별, 기쁨과 고통, 절망과 희망, 행복과 불행 등이 그의 시속에 절절한 배경을 이룬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홍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나와 나의 애뜻한 연분도
한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전문
이 시는 사랑을 노래한 청마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시를 읽으면 일상의 바쁜 걸음을 멈추고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청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그렇게 편지를 쓰던 우리 자신들의 모습도 겹쳐진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 것이 이 시를 관통하는 청마의 목소리다. 사랑을 주지 않고 받기만 하는 이는 행복하지 않다. 사랑은 주고 희생함으로써 완성되는 모성적 본질을 지녔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이별의 편지를 쓰는 순간을 노래한 것 같으나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과 그리움에 대한 희구를 나타내고 있다. 청마는 시선집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후기에서 “인간이 그의 이성(異性)을 사랑한다는 자체가 벌써 나위없는 자연의 일”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극히 사랑함은 바로 자연 속에 동화되는 일임에 틀림없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통한 이 자연속의 동화는 곧 영원에의 동화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사랑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함이란 그 자신이 자기완성을 완수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제가 인간으로서의 완성으로 이끌린다는 사실은 얼마나 우주의 기미(機微)하고도 오묘한 섭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랑이란 그 자체의 근원이 사랑하는 사람인 대상이나 그 어느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하는 자신 쪽에 있는 것이며 그의 자신의 내부에서 어쩔 수 없이 우러나는 희구의 발현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나 자신의 희구! 그렇습니다. 처음, 나 자신의 영혼의 어쩔 수 없는 그 희구가 나의 육신을 이루었고 다음 나의 사랑하는 이를 이루었고 그 다음으로 여기에 엮은 이 시편들을 이루어 떨어뜨린 것입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보지 않은 자에게 어찌 하늘나라가 있을 수 있으며 그 거룩한 문을 두드릴 자격이나마 가졌겠습니까.”
청마의 사랑은 이성적 사랑을 지향하되 그 바탕은 기독교적 사랑에 두는 부분이 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보지 않은 자에게 어찌 하늘나라가 있을 수 있으며 그 거룩한 문을 두드릴 자격이나마 가졌겠습니까”라고 하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청마시를 관류하는 종교적 색채가 있다면 불교적 색채보다는 기독교적 색채가 더 강하다. 「복수(復?)」 「예루살렘의 닭」 「교회당」「부활」「미사의 종」「통곡」「성령수태(聖靈受胎)」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청마시에는 성서의 내용이 시의 은유물이나 은유의 상황으로 나타난 경우가 많다. 아마 청마는 성서를 통독한 듯하고 성서의 정신에 은연중 내면적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의 닭」은 베드로가 새벽닭이 울기 전에 스승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배반하는 성서의 이야기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성령수태」는 성모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복수」는 처형당하기 전에 입고 있던 예수의 옷을 로마병사들이 제비뽑기를 해서 가져가는 ‘마가복음 15장 26절’의 이야기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
특히 「예루살렘의 닭」에서는 ‘위선이 선을 능욕하는’ ‘악에 가담한’ 자신을 자책하며 ‘눈물로서 벼개를 적시우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 베드로의 존재와 화자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청마의 모습이 무척 뼈아프다. 그러나 「교회당」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날카롭게 드러나 있다. ‘까마득히 보좌에는 닳을 길 없는, 위선과 거짓으로, 말 없으매 우겨 떠받힌 고독한 집이여!’라고 표현함으로써 교회당을 위선과 거짓의 집으로 파악한다. 진실과 정의와 사랑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집이어야 할 교회가 그렇지 못한 데에 대한 시인의 분노와 질책은 뜨겁다.
청마는 1959년에 발간한 시선집 『동방의 느티』 후기에서 “나의 사유하는 데 있어 전후가 모순되는 점이 흔히 없지가 않은데 예를 들면 신의 존재를 생각하는데도 어디서는 범신적(汎神的)이었던가 하면 또 어떤 데서는 유일신적(唯一神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내가 철학자도 아니요 종교가도 아니요 어디까지나 느낌을 바탕으로 해서 직관하고 사유함으로써 부득이 결과되는 것이니 양해있기를 바란다” 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청마시집』의 ‘서(序)에 대하여’에서 보다 확실한 종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영혼불멸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영혼불멸을 믿지 못한다. 진실인즉 인간은 영혼불멸이 아니므로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는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착각하고 자위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의 존재는 인정한다. 내가 인정하는 신이란 오늘 내가 있는 이상의 그 어떤 은총을 베풀며 베풀 수 있는 신이 아니라 이 시공과 거기 따라 존재하는 만유(萬有)를 있게 하는 의지 그것인 것이다. 나의 신은 형상도 없는 팽배 모호한 존재이다. 목적을 갖지 않은 허무의 의사(意思)이다. (중략) 나의 사유 중에 편린이나마 신의 은총을 인정하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나의 목숨에 오불관언(吾不關焉)한 이 신의 냉혹에 대한 나의 비굴한 나머지의 아첨밖에 아님을 자백해둔다.”
신앙에 대한 청마의 이러한 글은 확신에 찬 글이라기보다는 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면서도 모순과 갈등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청마는 애련(愛戀)에서 오는 고통과 그 고통에서 오는 삶의 허무함을 그래도 신앙의 힘에 의지하거나 극복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자연을 노래하고 예찬한 범신론적 시인이기도 하지만 유일신의 존재를 고뇌한 기독교적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흔히 청마를 ‘생명의 시인’이라고 평한다. 시집 『생명의 서』 발간 이후 청마에게는 ‘생명’이 그를 나타내는 상징어가 되었다. 청마의 ‘생명’은 청마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통해 볼 때 사랑에 그 기원이 있다. 청마의 시는 생명의 시이자 동시에 사랑의 시이다. 청마시의 상징인 ‘깃발’ 또한 생명의 깃발이면서 동시에 사랑과 그리움의 깃발이다. 청마는 「뉘가 이 기(旗)를 들어 높이 퍼득이게 할 것이냐」에서 ‘이 모질고 슬픈 인류의 마음을/ 햇빛 같이 깨우칠 기(旗)를/ 높이 높이 들어 퍼득일 때는’ ‘진실로 시방 이 때이다’라고 갈파하고 있다.
청마의 이러한 생명의 시학은 사회와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로 확대된다. 「그래서 너는 시를 쓴다?」에서는 ‘서울 상도동 산번지’ ‘내 딸년이 사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시화화하고 있다. ‘한 굶주린 젊은 어머니가 밥 달라고 보채는 어린 것을 독기에 받쳐 목을 졸라 죽였다’는 현실을 몰라라 하는 우리 사회와 시인 자신에 대해 ‘너는 시랍시고 문학이랍시고 이 따위를 태연히 앉아 쓴단 말인가’하고 질책하고 성찰한다.
시집 『보병과 더불어』는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구체적으로 직접체험하면서 쓴 시로 깊고 거친 전쟁의 숨소리가 생생하다. 청마의 이러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은 4?19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동아일보에 자유를 노래 부르지 못하고 땅에 묻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비참함을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로 절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청마는 「석굴암대불」 등 우리의 문화유산을 탁월하게 시로 형상화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문학적 삶에 영향을 끼친 이들을 위한 시를 애정 어린 눈길로 남기기도 했다. ‘-생떽쥐베리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열애」, ‘베토벤 상(像)’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사람을 보라」, ‘이중섭 화(畵) 달과 까마귀에’라는 부제가 붙은 「괴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청마시에는 한국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전통적 서정시들이 많으나 이 글에서 일일이 다 짚어볼 수가 없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청마시를 처음 읽었다.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꺼나’로 시작되는 「울릉도」, ‘목놓아 터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눈감고 않았느니/ 천년을 차거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로 시작되는 「석굴암대불」이나 「깃발」 등이 바로 그러한 시다. 그리고 경주에 갈 때마다 불국사 부근, 석굴암 오르는 길가 시비에 새겨진 「바위」를 읽고 또 읽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청마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 한국현대시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청마를 기리는 마음 크다. 이 글은 청마시 100편을 선정하고 엮으면서 느껴진 독후감 성격의 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시선집을 통해 청마시가 독자들에게 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고 노래한 청마는 지금쯤 한 개 바위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그런 바위가 되어 있으리라.
*거제시문화예술재단 기획으로 교보문고에서 발간한 청마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 중에서(자료제공/거제문화예술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