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절두산성지 도보 관광!

오정미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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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역사 지리학 수업 과제를 위해 서울 시청에서 주관하는 서울도보관광에 가기로했다.

망원정→한강→양화나루•잠두봉 유적•절두산 기념관→양화진 외인묘지

2시간 30분의 코스!!

아침 10시에 만나서 한강을 거느면서 우리 유적을 알아가는 쏠쏠한 재미가 색달랐다!

 

 

망원동의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그것은 한강변에 위치한 망원정이라는 정자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망원정은 조선시대 세종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원래의 이름은 희우정이었다. 현재도 정자의 현판에는 당시의 이름인 희우정이라는 한자가 쓰여 있다. 효령대군은 한강의 풍광이 몹시 뛰어났던 언덕에 정자를 짓고 시와 사색에 잠기길 좋아했지만 그때껏 정자에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희우정이란 명칭이 생긴 것은 세종 때라고 한다.

 이곳을 찾은 세종이 주변의 농사 현황을 살펴보았는데 당시 가뭄 때문에 작황이 좋지 않게 될 것을 매우 걱정했다. 세종은 가뭄이 오래되는 것을 근심스레 여기며 하늘로 고개를 올려봤는데 마침 단비가 쏟아져서 너른 들판을 시원하게 적셨다.

그리하여 세종이 그 비를 기뻐했고 그 정자 이름을 기쁠 희자와 비 우자를 써서, 희우정이라고 명명한 것이었다. 그 후로로 세종은 농사일을 살피기 위하여 희우정에 이따금씩 방문했다.
  

현재 망원정은 일제시대에 불타서 없어진 것을 다시 복원해 놓은것이라고 들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잘 보존이 안되어 망치되고 있다는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재에 조금만 관심을 갖어준다면 조금더 정자의 이름처럼 볼거리가 많은 정자가 되었을텐데...

 

다음코스는.... 정겨운 한강!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에 이어 한반도에서 네 번째로 긴 강(497.5㎢)이며, 유연면적 26,219㎢로 남한 면적의 27%를 차지하는 한강은 수도 서울을 탄생시킨 모태이며,

천만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젖줄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절두산 성지와 잠두봉! 

 

절두산은 조선조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가을두(加乙頭), 잠두봉(蠶頭峰 지세가 누에의 머리와 비슷함에서 연유)이라고 불렀다.『실록』에도 세종 때 이곳이 가을두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원래 우리말의 들머리 즉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잠두봉은 양화진의 동쪽 언덕에 있었는데 도 이 양화진 나루터에는 한강을 통해서 각 지방에서 조세곡 수송선과 어물,채소 등을 실은 배가 드나들었다.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배는 최고의 교통수단이었고, 또한 양화진 주변은 잠두봉과 어울려 이름난 승경으로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이 뱃놀이를 즐기면서 시를 지었던 풍광이 수려한 곳이었다.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

절두산 이라는 명칭을 가진 이유!  1866년 병인박해로 로즈 제독이 프랑스 함대를 이끌고 1866년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침입을 하였는데, 당시 조선은 신앙의 자유는 없었지만 프랑스에서 입국한 선교사들에 의해 천주교가 전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자들은 교통과 군사의 주요한 땅인 양화진이 서양의 세력에 의해 더렵혀진 것이 천주교인들 때문이니 천주교인들의 피로써 오욕을 씻고자 이곳을 천주교인들의 머리를 자리는 참수형 집행지로 택하였다. 1866년 10월 22일 황해도 사람으로 시흥 봉천동에서 잡혀온 이의송(프란치스코)과 그의 아내 김엇분(마리아), 아들 붕익(바오로)이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절두산 성지 기념관>

 

기념관의 설계는 산의 모양을 조금도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공모하여 서울대 미대 교수인 이희태(李喜泰)씨의 설계가 채택되었다. 이 건축설계도는 순교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한국적인 토착성과 전통적인 고유미를 살리는 데 역점을 두어 설계되었다. 후에 이 설계도는 세계 건축 설계 콘테스트에 출품되어 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궁궐의 기둥과 같은 화랑의 원주, 옛 초가집 지붕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내린 추녀, 조상들이 쓰던 갓 모양을 하고 있는 성당의 천개, 이런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옛 정취와 포근한 정감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성당의 평면은 부채살형으로써 초점인 제단에서의 성찬과 말씀이 반사되어 바깥 세계로 퍼져 나가 모든 인간에게 전해지는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천주교 박해때 사용했던 고문 도구들....

 

양화진 외인묘지

 

 

현재 이곳에는 450여 명의 유해가 묻혀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연세대학을 세운 H.G.언더우드의 부인 L.S.홀튼 여사와 그 아들 원한경박사 부부, 배재학당을 세운 H.G.아펜젤러 2세(배재학당 제5대교장)와 딸 A.아펜젤러(이화여전 초대교장), 제중원과 기독교서회를 세운 J.W.헤론과 평양 선교의 개척자 W.J.홀 및 그의 부인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맹인학교를 세우고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세운 L.S.홀, 숭실대학 설립자 W.M.베어드의 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외국인들의 묘지가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산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개신교에서는 1984년 개신교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곳에 한국선교기념관을 세움으로써 개신교 성지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이렇게 2시간 30분의 여정의 서울도보관광을 마쳤다. 가이드님인 정희조님과 함께 서울 주요 문화유적들을 자세히 설명도 듣고 아침의 상쾨한 공기도 마시고, 천주교 박해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된 알찬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홍보가 부족하여 서울 도보관광을 찾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점.

내 블로그를 통해 도보 관광이 조금이나마 홍보가 됐으면 좋겠다!! ㅎㅎ

 

도보관광 싸이트

http://www.visitseoul.net/visit2006/index_ver2.html

 

총 10개지역 12개 코스가 있답니다.

3일전에 인터넷 예약을 하시면 꽁자!로 유익한 서울 문화관광을 하실수 있어요!

다음주에는 친구와 함께 전통 한옥들이 모여있는 북촌관광을 하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