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에 관한 멋진 글들을 많이 알고 있다. 또 그런 글들에 걸맞는 아름다운 길들을 많이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길들의 이름과 사연과 글들을 모두 합친다 해도 "지리산길"이라는 이 한마디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지리산"은 내게 있어 그냥 산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하다고할 만한 기억이 있는 곳 또한 아니다. 그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힘들면 가고 싶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곳이기도 하고, 넉넉히 앉아 몇날이고 눈물 흘리고 싶은 곳이다. 세상이 만만하게 보이던, 그래서 끊임없는 고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스무살 내내 그렇게 지리산을 다녔다.
세상이 더 이상 만만해 보이지 않던 서른즈음, 백무동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산행을 끝으로 나는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두해전 지리산 종주길에 올랐다. 종주길 동안 산을 걷는 일과 사진을 찍는 것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 흔한 산행후기 조차 남기지 못하고 몇장의 사진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지리산”은 그렇게 또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내게 있어 “길”은 소통, 그 이상을 의미한다. 어디론가 가야할 때 걷는 “길”이거나, 세상과 나를 이어 주는 “”길”이라든가, 그런 “길”만이 아니라 “길”은 내 삶의 목표이자 그 삶 자체이다. 나만이 아니라 결국 우리에게 “길”이란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걷다 어디론가로 가는 “길” 본연의 의미 그 자체다.
몇주 전 텔레비전을 보다 “지리산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되었다. 세상에 “지리산길”이라니…. “길”과 “지리산”이 만난 “지리산길”이 되었다. 아득하게 심연에서 “가고 싶다, 가야해”라고 나즈막하지만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날 이후로 열병을 앓았다. 마음은 이미 그 길 위에 있었다.
이제 총구간 320km 지리산둘레길 중 1,2구간 22km와 인월안내센터에서 매동마을 까지 9km가 개통되었다고 한다. 개통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왠지 기대된다. 저 길이 다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한없이 걷다 보면 어디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첫 출발선에 투명한 웃음으로 서 있을 것 같다. 이왕이면 세상이 너무 만만해 보여 시시했던 그 시절이었으면 좋겠다.
“지리산길”은 인월에서 시작된다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지리산길 안내센터가 있다. 인월터미날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400여미터를 지나면 사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300여미터를 더 가다 우측을 보면 다소곳한 모습의 지리산길 안내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걸어야할 길은 시작된다.
안내센터에서 친절한 길 안내를 받고, 자료를 얻어 나와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100여미터를 가면 추성회관이 나오고 그 곳에서 매동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면 여정이 시작된다. 10월22일부터는 안내센터에서 매동마을까지 9km길이 새로 열렸다고 하니 일정이 허락한다면 그냥 걸어도 좋을 일이다.
매동마을, 소나무향에 취하다
소나무 향기가 이토록 절절한 곳을 다녀본 기억이 없다. 편리를 위한 콘크리트 마을길이 다소 아쉬웠지만 이는 시골길하면 무조건 흙길을 연상하는 도시인의 감성일터, 솔잎으로 가득한 마을 뒷산길은 길의 운치와 향, 그리고 마음 편안함은 그 무엇과도 비할 바가 아니다. 마을의 생김새가 매화꽃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매동마을이라고 한단다.
중황, 상황마을, 다랑논 축대돌이 경이롭다
매동마을 소나무길을 1시간가량 걸어 지나고 나면 중황, 상황마을 산길로 이어진다. 다랑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마을 할머니들이 운영하시는 간이주점을 만날 수 있는데 그냥 지나치면 두고두고 미련이 남는 곳이다. 파전이나 도토리묵에 동동주 한 잔 하고갈 일이다.
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자리잡은 좁고 긴 논인 다랑논은 척박한 지형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으니 산을 깍고 모양을 만드는 일이 농사일의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경사진 비탈을 깍아 평지를 만들고, 아래와 위의 경계를 돌로 축대를 쌓아 만들고, 물길을 만드는 일을 몇해동안 했을 것이다. 비로소 땅이 생겨나고, 길이 생겨나면 비지땀을 거두고 씨를 뿌려 수확을 했을 것이다.
크고 작은 돌로 쌓여진 잘생긴 다랑논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람의 힘이 아니고서는 저 큰 돌들을 운반할 방법이 없었을 시절,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느껴져서다. 그런 논들이 묵답이 되어 가고 있단다. 사람은 도시로 도시로 가고 더 이상 땅에서 먹고살 사람이 없어지면서 그저 사진 한 장의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
등구재,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목
중황, 상황마을 논과 산길을 지나면 등구재가 나온다. 등구재는 남원과 함양을 잇는 고개인데, 짐작대로 숱한 사연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등구재 오르는 길이 제법 숨 가쁘다. 누군가가 절절한 사연을 안고 올랐을 이 길을 나는 가쁜 숨으로 대신하다. 지리산길은 3개도, 5개시군과 100여개의 마을이 이어지는 길이고, 등구재는 그 첫 관문과도 같은 곳이어서 각별하다. 전라북도 남원군과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등구재에서 남은 길을 조망해 본다.
창원마을, 사람을 꿈꾸게 하는 마을
등구재를 넘어 40여분, 창원마을 당산나무를 만날 수 있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목에 친절하게도 당산나무로 가는 길표시가 있다. 당산나무는 마을을 넉넉하게 접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처음 발딛은 지리산골 마을이 낯설만도 한데 당산나무의 친숙함이 원래 그 마을에 살았던 것 처럼 느껴지게 한다. 지천에 널린 감나무, 소담스럽게 펴 오르는 군불 연기, 돌담집, 개짖는 소리, 이 모든 장치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꿈꾸게 한다.
금계마을, 인심 넉넉한 정겨움이 가득한 마을
중황마을에서부터 시작된 마을길은 창원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산길로 바뀐다. 이 산길을 따라 40분을 가다보면 금계마을에 닿게 된다. 원래 징검다리 마을이라 해서 “노디목”이라 불리웠던 이 마을은 지금은 몇 채의 팬션과 10여채의 집으로 이루워진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만난 “나마스떼”라는 팬션의 표지판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미뤄 짐작케 해준다. 표지판에 쓰인 글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힘든 길 편안히 쉬어 가란다. 딱히 감동스러울 것까지야 없을 이 말이 묘한 울림을 주는 것은 이 마을의 정겨운 기운과 어우러진 탓일 것이다. 더불어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그 기운이 칠선계곡을 타고 흘러 이곳 금계마을에 머무는 탓이다.
첫날, 매동마을에서 시작한 길이 금계마을을 지나 의탄마을에서 멈췄다. 10km쯤 걸었는데 4시간여가 소요되었다. 비교적 여유롭게 길을 걸었고, 마음 속에는 뭉클함이 가득하다.
의탄마을에서 숙소를 정한 후 밥을 지어 먹는다. 늦은 시간이라서인지 원래 그런것이지 이곳 민박숙소에서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니 미리 준비해간 식량과 취사도구를 늘어놓고 밥을 지어 먹는다. 저녁8시경, 산골의 저녁은 덧없이 무료하기만 하다. 일찍 취침자리에 들었다. 내일 만날 무수한 길들이 머리 속을 지나 다닌다.
[80호][지리산길] 소년, 길에서 길을 만나다 - 1편
“지리산길”은 메타포로 시작된다
나는 길에 관한 멋진 글들을 많이 알고 있다. 또 그런 글들에 걸맞는 아름다운 길들을 많이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길들의 이름과 사연과 글들을 모두 합친다 해도 "지리산길"이라는 이 한마디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지리산"은 내게 있어 그냥 산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하다고할 만한 기억이 있는 곳 또한 아니다. 그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힘들면 가고 싶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곳이기도 하고, 넉넉히 앉아 몇날이고 눈물 흘리고 싶은 곳이다. 세상이 만만하게 보이던, 그래서 끊임없는 고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스무살 내내 그렇게 지리산을 다녔다.
세상이 더 이상 만만해 보이지 않던 서른즈음, 백무동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산행을 끝으로 나는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두해전 지리산 종주길에 올랐다. 종주길 동안 산을 걷는 일과 사진을 찍는 것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 흔한 산행후기 조차 남기지 못하고 몇장의 사진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지리산”은 그렇게 또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내게 있어 “길”은 소통, 그 이상을 의미한다. 어디론가 가야할 때 걷는 “길”이거나, 세상과 나를 이어 주는 “”길”이라든가, 그런 “길”만이 아니라 “길”은 내 삶의 목표이자 그 삶 자체이다. 나만이 아니라 결국 우리에게 “길”이란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걷다 어디론가로 가는 “길” 본연의 의미 그 자체다.
몇주 전 텔레비전을 보다 “지리산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되었다. 세상에 “지리산길”이라니…. “길”과 “지리산”이 만난 “지리산길”이 되었다. 아득하게 심연에서 “가고 싶다, 가야해”라고 나즈막하지만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날 이후로 열병을 앓았다. 마음은 이미 그 길 위에 있었다.
이제 총구간 320km 지리산둘레길 중 1,2구간 22km와 인월안내센터에서 매동마을 까지 9km가 개통되었다고 한다. 개통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왠지 기대된다. 저 길이 다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한없이 걷다 보면 어디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첫 출발선에 투명한 웃음으로 서 있을 것 같다. 이왕이면 세상이 너무 만만해 보여 시시했던 그 시절이었으면 좋겠다.
“지리산길”은 인월에서 시작된다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지리산길 안내센터가 있다. 인월터미날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400여미터를 지나면 사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300여미터를 더 가다 우측을 보면 다소곳한 모습의 지리산길 안내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걸어야할 길은 시작된다.
안내센터에서 친절한 길 안내를 받고, 자료를 얻어 나와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100여미터를 가면 추성회관이 나오고 그 곳에서 매동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면 여정이 시작된다. 10월22일부터는 안내센터에서 매동마을까지 9km길이 새로 열렸다고 하니 일정이 허락한다면 그냥 걸어도 좋을 일이다.
매동마을, 소나무향에 취하다
소나무 향기가 이토록 절절한 곳을 다녀본 기억이 없다. 편리를 위한 콘크리트 마을길이 다소 아쉬웠지만 이는 시골길하면 무조건 흙길을 연상하는 도시인의 감성일터, 솔잎으로 가득한 마을 뒷산길은 길의 운치와 향, 그리고 마음 편안함은 그 무엇과도 비할 바가 아니다. 마을의 생김새가 매화꽃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매동마을이라고 한단다.
중황, 상황마을, 다랑논 축대돌이 경이롭다
매동마을 소나무길을 1시간가량 걸어 지나고 나면 중황, 상황마을 산길로 이어진다. 다랑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마을 할머니들이 운영하시는 간이주점을 만날 수 있는데 그냥 지나치면 두고두고 미련이 남는 곳이다. 파전이나 도토리묵에 동동주 한 잔 하고갈 일이다.
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자리잡은 좁고 긴 논인 다랑논은 척박한 지형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으니 산을 깍고 모양을 만드는 일이 농사일의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경사진 비탈을 깍아 평지를 만들고, 아래와 위의 경계를 돌로 축대를 쌓아 만들고, 물길을 만드는 일을 몇해동안 했을 것이다. 비로소 땅이 생겨나고, 길이 생겨나면 비지땀을 거두고 씨를 뿌려 수확을 했을 것이다.
크고 작은 돌로 쌓여진 잘생긴 다랑논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람의 힘이 아니고서는 저 큰 돌들을 운반할 방법이 없었을 시절,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느껴져서다. 그런 논들이 묵답이 되어 가고 있단다. 사람은 도시로 도시로 가고 더 이상 땅에서 먹고살 사람이 없어지면서 그저 사진 한 장의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
등구재,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목
중황, 상황마을 논과 산길을 지나면 등구재가 나온다. 등구재는 남원과 함양을 잇는 고개인데, 짐작대로 숱한 사연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등구재 오르는 길이 제법 숨 가쁘다. 누군가가 절절한 사연을 안고 올랐을 이 길을 나는 가쁜 숨으로 대신하다. 지리산길은 3개도, 5개시군과 100여개의 마을이 이어지는 길이고, 등구재는 그 첫 관문과도 같은 곳이어서 각별하다. 전라북도 남원군과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등구재에서 남은 길을 조망해 본다.
창원마을, 사람을 꿈꾸게 하는 마을
등구재를 넘어 40여분, 창원마을 당산나무를 만날 수 있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목에 친절하게도 당산나무로 가는 길표시가 있다. 당산나무는 마을을 넉넉하게 접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처음 발딛은 지리산골 마을이 낯설만도 한데 당산나무의 친숙함이 원래 그 마을에 살았던 것 처럼 느껴지게 한다. 지천에 널린 감나무, 소담스럽게 펴 오르는 군불 연기, 돌담집, 개짖는 소리, 이 모든 장치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꿈꾸게 한다.
금계마을, 인심 넉넉한 정겨움이 가득한 마을
중황마을에서부터 시작된 마을길은 창원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산길로 바뀐다. 이 산길을 따라 40분을 가다보면 금계마을에 닿게 된다. 원래 징검다리 마을이라 해서 “노디목”이라 불리웠던 이 마을은 지금은 몇 채의 팬션과 10여채의 집으로 이루워진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만난 “나마스떼”라는 팬션의 표지판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미뤄 짐작케 해준다. 표지판에 쓰인 글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힘든 길 편안히 쉬어 가란다. 딱히 감동스러울 것까지야 없을 이 말이 묘한 울림을 주는 것은 이 마을의 정겨운 기운과 어우러진 탓일 것이다. 더불어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그 기운이 칠선계곡을 타고 흘러 이곳 금계마을에 머무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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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매동마을에서 시작한 길이 금계마을을 지나 의탄마을에서 멈췄다. 10km쯤 걸었는데 4시간여가 소요되었다. 비교적 여유롭게 길을 걸었고, 마음 속에는 뭉클함이 가득하다.
의탄마을에서 숙소를 정한 후 밥을 지어 먹는다. 늦은 시간이라서인지 원래 그런것이지 이곳 민박숙소에서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니 미리 준비해간 식량과 취사도구를 늘어놓고 밥을 지어 먹는다. 저녁8시경, 산골의 저녁은 덧없이 무료하기만 하다. 일찍 취침자리에 들었다. 내일 만날 무수한 길들이 머리 속을 지나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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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길 제1구간 : 매동마을~의탄마을(10km) 일정 정리
07:00 서울 마포구 성산동, 집을 나서다
08:20 동서울터미날에서 백무동행(인월에서 내린다) 버스를 타다
사람이 많아서 9시표를 발행받았다 대기자로 등록, 8시20분 첫차를 탔다.
12:20 인월에 도착했다. 단풍놀이철이라 전용차선도 막힌다.
점심을 먹고 지리산길 안내센터를 찾아갔다
13:30 인월 지리산길 안내센터 도착
13:50 추성회관 앞 매동마을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나가는 자가용이 아무 이유없이 차를 세워 태워다 주었다
14:06 매동마을회관 앞에 도착
14:20 매동마을 뒤산 등구재로 가는 이정표를 만나다
15:07 중황마을 뒷산에 도착하다
15:17 마을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주막에 도착하다
파전에 동동주 맛이 쏠쏠하다
16:10 등구재를 넘다
16:43 창원마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쉬다
17:57 금계마을 나마스떼팬션에서 물을 마시다
18:20 의평마을 추성골 가든에서 숙박을 하다
20:00 밥 먹고, 텔레비전 보다 잠이 들다.
1일차 일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