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할 때 강스파이크를 위해 폼나게 다리를 올렸으나 이미 지나간 발 위로 공이 떨어질 때(높이도, 시차도 안맞는다), 분명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앞서 달리는 사람의 뒷모습만 감상하고 있을 때 ... .
무슨 이야기냐고? 한마디로 나이가 들었다는 이야기다. 세상사 한 번쯤 되짚어 보아도 좋을 나이가 되었고, 남긴 족적이 무엇 보다 두려운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삶의 여정, 길에 무엇을 남겨 놓고 왔는지 혹시 부끄러운 한 때를 남겨 놓은 것은 아닌지 항상 걱정스럽다. 그래서 길에 나서면 무엇보다 우선 앞 뒤 좌우를 살피게 된다.
그럼에도 마음은 항상 처음 길에 나섰을 때 그대로다. 철없는 어른인게다. 그러나 몸 따로 생각 따로, 그런 어리숙함이 싫지 않다. 나이에 걸맞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신중하고 또 신중해지라는 말일텐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빤해 보이면 지극히 무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사는 것도 때때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때때로 무엇인가를 잃어 버린다. 그것은 순수함일 수도, 사랑일 수도, 명예나 돈일 수도 있고, 혹은 정말 시시
한 무엇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잃어버리고 난 후의 상실감을 우리는 절망이라 부른다. 길은 대체로 그 절망의 시작과 끝에 위치한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나락의 경계에 서 있다면 길을 떠나는게 좋다. 그 길에서 만난 새로운 길이 나락의 경계에 서 있던 당신을 나락의 저편으로 옮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 건너에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면 우리는 절망으로 부터 한 걸음을 더 내디뎌 타자와의 소통에 보다 관대해 진다. 그래서 길은 항상 끝나는 지점으로 부터 새롭게 시작 되고 따라서 길에서 길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리산길에서 어떤 길을 만나게 될까 혹은 만났을까...
*****
이틀째, 의중마을에서 잠을 자고, 이른 아침 일어나 따뜻한 물에 밥 불려 먹고 주섬주섬 행장을 꾸려 다시 길로 나섰다. 집을 떠나 길에서 만24시간이 지났다. 난 물 위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 길 아닌 길들이 길 위로 교차된다.
의중마을에서 벽송사로 가는 길, 마땅한 표지판이 없어 숲길이 아닌 도로길을 따라 벽송사로 갔다. 아마 의탄교를 건너 마을입구에서 좌측 의중마을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 가는 길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숲길도 좋지만 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길도 나쁘지 않다. 더운 열기도 없고 계곡 물소리 들으며 걷는 길이 고즈넉하다. 이른 아침이거나, 날씨가 꾸물꾸물한 날이라면 도로길을 권하고 싶다. 의중마을 길에서는 당산 숲길과 대나무 숲길이 운치가 있다고 한다.
의중마을을 지나는 도로 옆 계곡 빨래터에 주인도 없이 빨래감이 댕그러니 남아 있다. 어느 아낙네가 두고 갔을까? 예상치 못한 풍경에 생경하기도 하고 한편 반갑기도 하다. 이방인의 눈에는 모든게 회상기억 장치다. 이른 아침 찬기운이 현실감각을 일깨워 준다.
도로를 따라 30여분, 추성마을 입구가 나오고 벽송사, 서암정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길로 오르면 벽송사, 서암정사 길이다. 안내표지판이 맞은편 석상이 인상적이다.
서암정사, 벽송사는 꼭 들려 보아야 할 곳이다. 벽송사는 그 역사적 의미가 녹녹하지 않고, 서암정사는 절의 꾸밈이 독특한 곳이다.
서암정사는 꾸밈이 화려하다. 입구의 돌비석과 암벽에 튀어 나올 듯 조각된 사천왕으로 부터 시작하여, 자연동굴인 듯 꾸며진 입구하며, 석굴암과 극락정토를 연상하듯 만들어진 연못과 석굴암 주변이 사뭇 특이하다. 심산유곡을 다니며 수행중이던 원웅스님이 지리산골에 묻힌 수많은 6.25전쟁 원혼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우고, 직접 석상을 세기는 불사를 하였다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느 절에서 보기 힘든 독특함이 있지만 필자의 취향은 아니다. 건축물은 본래의 기능이 주변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벽송사는 빨지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다는 매우 특이한 이력으로 인해 전체가 소실되고, 재건축 되었다고 한다. 원래 벽송사는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큰스님 108분이 각성을 한 수행처라 하여 백팔조사행화도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서산대사를 3대조사로 모시고 있는 유서가 매우 깊은 사찰이다. 그러나 새로 건축하여서 인지 세월이 느껴지지 않아 생경하다.
벽송사에서 송대마을로 가는 길은 험하다는 안내가 여러 곳에 있다. 등산길 입구에는 아에 위험하니 노약자와 어린이는 돌아가시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안내서에도 난이도 상이라고 표기 되어 있다. 막상 올라보니 다소 경사가 있고, 비탈진 외길이 있어 위험요소가 있지만 걱정할 만큼은 아니다. 위험하다는 경고문구 탓인지 첫구간과 달리 걷는 분들을 보기가 힘들다.
안내 현수막이 있는 곳으로 부터 30여분을 오르면 경사구간은 끝나고 소나무, 참나무 숲길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800고지를 넘어서면 마지막 빨지산이 살았다는 사연 많은 신선굴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송대마을까지는 돌들이 많은 하산길이다. 그렇다고 너덜길은 아니어서 걷기에 그리 큰 불편함은 없다.
사람길을 가로질러난 멧돼지길(추측이다)이 왠지 정겹다. 곧게 뻗고, 잘 닦여진 길만 보다 먹이를 찾아 산비탈을 따라 부산스럽게 움직였을 법한 멧돼지길을 보니 산짐승에 대한 경계심이 생기기 보다는 마치 큰 발견을 한 것인양 가슴이 뛴다.
다소 지리한 하산길에서 송대마을 우측으로 난 임도가 보인다. 어떤 길은 보이고 어떤 길은 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우리의 미래와 닮았다. 저 임도를 따라 1시간30분여를 더 가면 오늘 목적이 송전마을(세동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집에도 길이 놓여 있다. 길은 어디로든 통해 있지만 또 경계로 나뉘어 막혀 있기도 하다. 그래서 길은 문을 통해 소통되고 이어진다.
송대마을은 뭐랄까 폐광촌 같은 느낌이다. 기도하는 곳들이 몇곳 있고,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 식당과 그리고 몇채의 가옥, 빨지산 루트 안내소가 전부인 곳이어서 그런지 마을 전체가 횡랑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곳에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마을의 분위기를 이렇게 느끼게 만드는 원흉은 빨지산 토벌 루트 안내소라고 하는 황당한 건물이지 않나 싶다. 이미 사회적으로 빨지산이나 6.25전쟁에 대한 인식들이 많이 바뀌었다. 타도해야할 적이라는 생각에서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그렇다. 민초들이야 뜻한 바 있어 빨지산이 되었다기 보다는 우연적인 요소가 더 많이 작용했으리라. 마치 자다 일어나 보니 국군이 되어 있거나 혹은 빨갱이가 되어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지리산은 강요된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가진 민초들으 사연이을 여느 곳 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고, 지리산길은 그런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 치유하는 소통을 위한 길인데 그런 길에 우스꽝스러운 건물이 있다니 왠지 슬프다. 하긴 냉전과 반공의 시대를 살았던 유물로써 보전된다면 되어야할 일이기도 하지만...
그 나저나 입구의 무장공비 밀납인형은 없애든지 보수를 하든지 해야겠다. 의도된 바인지 아닌지 모를 일이나 흉물스럽기 그지 없다.
송대마을을 지나 임도를 따라 1시간30분여를 걸어야 송전마을(세동마을)이 나온다. 이 길은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길이다. 군데군데 억새길이 운치가 있다. 개인적인 바램은 무엇인가 이 길에 묻혀 있을 이야기들을 보여 주는 안내판들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첫날 길과 달리 벽송사에서 세동마을까지 길은 대부분 산길과 임도인데 다소 민밋하기 때문이고, 아는 것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임도를 따라 1시간여를 걷다 보면 너럭바위와 언뜻 보아도 세월이 느껴지는 소나무가 나온다. 꼭 쉬어 갈 곳이다. 너럭바위에 앉으면 멀리 오늘 종착지인 용유교가 마치 영화 "콰이강의 다리"처럼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솔잎이 그득 쌓여 있는 곳에 자리 틀고 앉아 긴 숨 고르기에 좋은 장소다.
걷기가 다소 지루해질 무렵이면 2구간 끝인 송전마을(세동마을)이 나온다. 마을 회관에 "송전마을"이라 현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송전마을이라 해야 옳을 터인데 왜 세동마을이라 안내하는지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송전마을은 참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올망졸망 사이좋게 붙어 있는 집들 하며,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그런지 포근하고 아늑하다. 임도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이 있다. 라면을 파는데 무척이나 맛있을 것 같으나 차를 타는 시간이 불안해 머물 여유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꼭 들려 보시라.
송전마을은 버스가 들어 오지 않는다. 서울을 갈려면 마천으로 가야 하는데 대략 30여분을 걸어서 용유교가 있는 모전마을까지 가야 한다. 모전마을로 가는 길은 평탄한 시멘트 길이다. 길가로 펴 있는 꽃들과 나무들이 제법 모양을 갖추고 있어 나름 운치가 있다. 오래 걸어 피곤해서 이 길을 피하고 싶다면 송전마을 입구에서 마천택시를 부르면 된다. 남원까지 4만원이니 마천까지는 아마 만원이내면 가지 않을까 싶다(이건 순전히 추측일뿐이다).
의중마을에서 출발해서 6시간여만에 용유교에 도착했다. 마천으로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임도에서 잠깐 보았던 젊은
연인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산골에 와서 넉넉하게 나눔을 즐기는 그들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인다. 서울에서 왔고,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 갈 요량이란다.
시골버스라 도착예정시간 전후로 10분쯤은 예사라 하나 30여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젊은 연인은 기차를 예매해 놓아 시간에 초초해 한다. 좀더 편할 요량으로 그 연인들을 핑계삼아 함께 택시를 불러 타고 남원으로 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기차가 입석뿐이란다. 다시 택시를 타고 터미날로 와서 2시40분발 우등버스를 탔다. 물론 남원에 왔으니 택시기사님이 추천한 식당에서 추어탕 한 그릇 했다.
[81편][지리산길] 소년, 길에서 길을 만나다 - 제2편
족구할 때 강스파이크를 위해 폼나게 다리를 올렸으나 이미 지나간 발 위로 공이 떨어질 때(높이도, 시차도 안맞는다), 분명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앞서 달리는 사람의 뒷모습만 감상하고 있을 때 ... .
무슨 이야기냐고? 한마디로 나이가 들었다는 이야기다. 세상사 한 번쯤 되짚어 보아도 좋을 나이가 되었고, 남긴 족적이 무엇 보다 두려운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삶의 여정, 길에 무엇을 남겨 놓고 왔는지 혹시 부끄러운 한 때를 남겨 놓은 것은 아닌지 항상 걱정스럽다. 그래서 길에 나서면 무엇보다 우선 앞 뒤 좌우를 살피게 된다.
그럼에도 마음은 항상 처음 길에 나섰을 때 그대로다. 철없는 어른인게다. 그러나 몸 따로 생각 따로, 그런 어리숙함이 싫지 않다. 나이에 걸맞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신중하고 또 신중해지라는 말일텐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빤해 보이면 지극히 무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사는 것도 때때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때때로 무엇인가를 잃어 버린다. 그것은 순수함일 수도, 사랑일 수도, 명예나 돈일 수도 있고, 혹은 정말 시시
한 무엇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잃어버리고 난 후의 상실감을 우리는 절망이라 부른다. 길은 대체로 그 절망의 시작과 끝에 위치한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나락의 경계에 서 있다면 길을 떠나는게 좋다. 그 길에서 만난 새로운 길이 나락의 경계에 서 있던 당신을 나락의 저편으로 옮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 건너에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면 우리는 절망으로 부터 한 걸음을 더 내디뎌 타자와의 소통에 보다 관대해 진다. 그래서 길은 항상 끝나는 지점으로 부터 새롭게 시작 되고 따라서 길에서 길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리산길에서 어떤 길을 만나게 될까 혹은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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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의중마을에서 잠을 자고, 이른 아침 일어나 따뜻한 물에 밥 불려 먹고 주섬주섬 행장을 꾸려 다시 길로 나섰다. 집을 떠나 길에서 만24시간이 지났다. 난 물 위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 길 아닌 길들이 길 위로 교차된다.
의중마을에서 벽송사로 가는 길, 마땅한 표지판이 없어 숲길이 아닌 도로길을 따라 벽송사로 갔다. 아마 의탄교를 건너 마을입구에서 좌측 의중마을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 가는 길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숲길도 좋지만 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길도 나쁘지 않다. 더운 열기도 없고 계곡 물소리 들으며 걷는 길이 고즈넉하다. 이른 아침이거나, 날씨가 꾸물꾸물한 날이라면 도로길을 권하고 싶다. 의중마을 길에서는 당산 숲길과 대나무 숲길이 운치가 있다고 한다.
의중마을을 지나는 도로 옆 계곡 빨래터에 주인도 없이 빨래감이 댕그러니 남아 있다. 어느 아낙네가 두고 갔을까? 예상치 못한 풍경에 생경하기도 하고 한편 반갑기도 하다. 이방인의 눈에는 모든게 회상기억 장치다. 이른 아침 찬기운이 현실감각을 일깨워 준다.
도로를 따라 30여분, 추성마을 입구가 나오고 벽송사, 서암정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길로 오르면 벽송사, 서암정사 길이다. 안내표지판이 맞은편 석상이 인상적이다.
서암정사, 벽송사는 꼭 들려 보아야 할 곳이다. 벽송사는 그 역사적 의미가 녹녹하지 않고, 서암정사는 절의 꾸밈이 독특한 곳이다.
서암정사는 꾸밈이 화려하다. 입구의 돌비석과 암벽에 튀어 나올 듯 조각된 사천왕으로 부터 시작하여, 자연동굴인 듯 꾸며진 입구하며, 석굴암과 극락정토를 연상하듯 만들어진 연못과 석굴암 주변이 사뭇 특이하다. 심산유곡을 다니며 수행중이던 원웅스님이 지리산골에 묻힌 수많은 6.25전쟁 원혼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우고, 직접 석상을 세기는 불사를 하였다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느 절에서 보기 힘든 독특함이 있지만 필자의 취향은 아니다. 건축물은 본래의 기능이 주변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벽송사는 빨지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다는 매우 특이한 이력으로 인해 전체가 소실되고, 재건축 되었다고 한다. 원래 벽송사는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큰스님 108분이 각성을 한 수행처라 하여 백팔조사행화도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서산대사를 3대조사로 모시고 있는 유서가 매우 깊은 사찰이다. 그러나 새로 건축하여서 인지 세월이 느껴지지 않아 생경하다.
벽송사에서 송대마을로 가는 길은 험하다는 안내가 여러 곳에 있다. 등산길 입구에는 아에 위험하니 노약자와 어린이는 돌아가시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안내서에도 난이도 상이라고 표기 되어 있다. 막상 올라보니 다소 경사가 있고, 비탈진 외길이 있어 위험요소가 있지만 걱정할 만큼은 아니다. 위험하다는 경고문구 탓인지 첫구간과 달리 걷는 분들을 보기가 힘들다.
안내 현수막이 있는 곳으로 부터 30여분을 오르면 경사구간은 끝나고 소나무, 참나무 숲길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800고지를 넘어서면 마지막 빨지산이 살았다는 사연 많은 신선굴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송대마을까지는 돌들이 많은 하산길이다. 그렇다고 너덜길은 아니어서 걷기에 그리 큰 불편함은 없다.
사람길을 가로질러난 멧돼지길(추측이다)이 왠지 정겹다. 곧게 뻗고, 잘 닦여진 길만 보다 먹이를 찾아 산비탈을 따라 부산스럽게 움직였을 법한 멧돼지길을 보니 산짐승에 대한 경계심이 생기기 보다는 마치 큰 발견을 한 것인양 가슴이 뛴다.
다소 지리한 하산길에서 송대마을 우측으로 난 임도가 보인다. 어떤 길은 보이고 어떤 길은 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우리의 미래와 닮았다. 저 임도를 따라 1시간30분여를 더 가면 오늘 목적이 송전마을(세동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집에도 길이 놓여 있다. 길은 어디로든 통해 있지만 또 경계로 나뉘어 막혀 있기도 하다. 그래서 길은 문을 통해 소통되고 이어진다.
송대마을은 뭐랄까 폐광촌 같은 느낌이다. 기도하는 곳들이 몇곳 있고,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 식당과 그리고 몇채의 가옥, 빨지산 루트 안내소가 전부인 곳이어서 그런지 마을 전체가 횡랑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곳에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마을의 분위기를 이렇게 느끼게 만드는 원흉은 빨지산 토벌 루트 안내소라고 하는 황당한 건물이지 않나 싶다. 이미 사회적으로 빨지산이나 6.25전쟁에 대한 인식들이 많이 바뀌었다. 타도해야할 적이라는 생각에서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그렇다. 민초들이야 뜻한 바 있어 빨지산이 되었다기 보다는 우연적인 요소가 더 많이 작용했으리라. 마치 자다 일어나 보니 국군이 되어 있거나 혹은 빨갱이가 되어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지리산은 강요된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가진 민초들으 사연이을 여느 곳 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고, 지리산길은 그런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 치유하는 소통을 위한 길인데 그런 길에 우스꽝스러운 건물이 있다니 왠지 슬프다. 하긴 냉전과 반공의 시대를 살았던 유물로써 보전된다면 되어야할 일이기도 하지만...
그 나저나 입구의 무장공비 밀납인형은 없애든지 보수를 하든지 해야겠다. 의도된 바인지 아닌지 모를 일이나 흉물스럽기 그지 없다.
송대마을을 지나 임도를 따라 1시간30분여를 걸어야 송전마을(세동마을)이 나온다. 이 길은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길이다. 군데군데 억새길이 운치가 있다. 개인적인 바램은 무엇인가 이 길에 묻혀 있을 이야기들을 보여 주는 안내판들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첫날 길과 달리 벽송사에서 세동마을까지 길은 대부분 산길과 임도인데 다소 민밋하기 때문이고, 아는 것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임도를 따라 1시간여를 걷다 보면 너럭바위와 언뜻 보아도 세월이 느껴지는 소나무가 나온다. 꼭 쉬어 갈 곳이다. 너럭바위에 앉으면 멀리 오늘 종착지인 용유교가 마치 영화 "콰이강의 다리"처럼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솔잎이 그득 쌓여 있는 곳에 자리 틀고 앉아 긴 숨 고르기에 좋은 장소다.
걷기가 다소 지루해질 무렵이면 2구간 끝인 송전마을(세동마을)이 나온다. 마을 회관에 "송전마을"이라 현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송전마을이라 해야 옳을 터인데 왜 세동마을이라 안내하는지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송전마을은 참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올망졸망 사이좋게 붙어 있는 집들 하며,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그런지 포근하고 아늑하다. 임도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이 있다. 라면을 파는데 무척이나 맛있을 것 같으나 차를 타는 시간이 불안해 머물 여유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꼭 들려 보시라.
송전마을은 버스가 들어 오지 않는다. 서울을 갈려면 마천으로 가야 하는데 대략 30여분을 걸어서 용유교가 있는 모전마을까지 가야 한다. 모전마을로 가는 길은 평탄한 시멘트 길이다. 길가로 펴 있는 꽃들과 나무들이 제법 모양을 갖추고 있어 나름 운치가 있다. 오래 걸어 피곤해서 이 길을 피하고 싶다면 송전마을 입구에서 마천택시를 부르면 된다. 남원까지 4만원이니 마천까지는 아마 만원이내면 가지 않을까 싶다(이건 순전히 추측일뿐이다).
의중마을에서 출발해서 6시간여만에 용유교에 도착했다. 마천으로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임도에서 잠깐 보았던 젊은
연인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산골에 와서 넉넉하게 나눔을 즐기는 그들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인다. 서울에서 왔고,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 갈 요량이란다.
시골버스라 도착예정시간 전후로 10분쯤은 예사라 하나 30여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젊은 연인은 기차를 예매해 놓아 시간에 초초해 한다. 좀더 편할 요량으로 그 연인들을 핑계삼아 함께 택시를 불러 타고 남원으로 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기차가 입석뿐이란다. 다시 택시를 타고 터미날로 와서 2시40분발 우등버스를 탔다. 물론 남원에 왔으니 택시기사님이 추천한 식당에서 추어탕 한 그릇 했다.
서울에 오니 저녁 7시경. 8시경 집에 오다.
*****
가슴 떨리던 "지리산길"을 꿈꾸는 듯 다녀 왔다.
과거로 가는 기차를 탄 것 같았다.
걷는 동안 길에서 많은 길들을 보고, 만났다.
그 길은 과거로 부터 이어지는 것, 오늘 비로서 시작되는 것,
또 보고 듣지 못한 길들이다.
길에서 길을 만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소년이었다.
*****
지리산길 제2구간 : 의중마을~송전마을(세동마을)~용유교(12km) 일정 정리
+ 보다 자세한 지리산길과 마을에 대한 소개는 공식홈페이지를 방문하시는게 좋겠다.
http://www.trail.or.kr
06:00 일어나 씻고, 비상식으로 아침을 해결하다
07:00 숙소를 출발, 벽송사를 향해 가다
07:40 의중마을을 출발해 도로 길을 따라 추성마을에 도착하다.
의중마을 당산길을 따라 숲길도 좋지만 이른 아침이라면 도로길도 좋다.
08:10 서암정사를 보다.
08:50 벽송사에 도착.
09:10 벽송사를 떠나 산길 위험 경고판이 있는 곳에 도착
10:40 송대마을에 도착하다.
빨지산 소탕작전 루트 안내소 구경하다.
11:10 임도를 따라 송전마을로 가다
12:00 소나무가있는 너럭바위 에 서다
12:20 송전마을 입구 라면집에 도착
13:05 송전마을을 출발해 모전마을 용유교에 도착, 버스를 기다리다
택시 타고 남원으로 와서 14:30분 차를 타고 강남터미널에 19:00경 도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