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단상(斷想)

정세교20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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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에 대한 단상(斷想) 
                        - 자살을 줄이기 위하여 -


최진실이라는 유명 여배우가 자살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 간다. 특히 그녀의 자살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자살 이후 많은 유명인사들이 그녀의 자살에 대하여 한 마디씩 한다는 것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자살했을 겨우 신문의 사회면 귀퉁이나 방송의 아주 짧은 시간을 차지하고 곧바로 잊혀지게 마련이다. 유독 그녀의 자살에 대하여 많은 유명인사들이 한 마디씩 하는 것은 그녀의 자살 이후 그를 본 딴 모방자살이 이어질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그녀의 자살 이후 몇 건의 자살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모방자살인지 아닌지는 자살한 사람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일이므로 성급한 판단은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고 최진실 씨를 비난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절대로 자살자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 자살하면 안 된다. 부모님은, 자식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자살은 무책임한 처사다. 자살은 순간적인 충동에 의하여 저지른 일이니 숨 한번 크게 들이키면 자살을 피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교회나 절을 찾아 상담을 해 보아라.' 등등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세월은 흘러간다. 흐르는 세월은 망각을 낳는다. 그러나 망각 속에서도 빛나는 죽음이 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자살한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열사,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할복자살한 서울대생 김상진 열사, “내가 죽음으로써 나의 결백을 주장하겠다!”며 자살을 택한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얼마나 억울했으면 자신의 생각을 죽음과 바꾸려 했을까? 그 사람들 이 사회에 대하여 얼마나 분노했으면 자살을 택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사람들의 자살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10년간 1,282건의 자살 원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20.8%), 심리불안(20.6%) 등 정신과 및 정신과 관련 질환으로 인한 자살이 41.4%였다. 그러나 이 조사는 자살이 이루어지고 난 뒤 가족들을 인터뷰해 간접 조사한 것이므로 실제 정신질환 때문에 자살한 사람은 더 많을 것으로 전문의들은 보고 있다. 또 자살자들이 선택한 장소는 집과 그 주변이 57.4%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박형민 연구원은 “이 같은 행동은 자살자가 목숨을 끊는 순간에도 누군가 자신의 자살을 말려 주기를 원하는 심리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병은 우울증. 우울증 환자의 약 80%가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진표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증상이 조금씩 좋아질 때 오히려 자살률이 높다. 우울증이 너무 심하면 자살을 하고 싶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힘이 없는데, 증상이 호전되면 자살을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의 활동성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코올은 우울증, 인격 장애 등과 더해져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정신과 질환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살자의 약 50%가 술에 취한 상황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자살을 실행하기 전 자살자의 약 75%가 주변에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등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 자살 가능성이 큰 정신분열병이나 우울증 환자의 가족들은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대화나 설득만으로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 환자의 자살을 막기는 어렵기 때문에 약물치료 등 전문의의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은 자살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최후의 탈출구지, 최선의 해법이 아님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자살자의 80% 정도는 주위 사람에게 자살의사를 넌지시 표현하거나 직접적으로 밝힘으로써 ‘구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의 위험 징후는 아래의 12가지이다.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자살 위험을 염두에 두고 전문적인 도움을 청하는 등 조처를 취하는 것이 좋다.

① 과거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② 극도로 우울하고 불안해하며 지쳐 있다.
③ 자신의 죽음이 가족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부쩍 늘었다.
④ 자살할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
⑤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다 갑자기 차분해지고 편안해 한다.

⑥ 최근 가족의 죽음이나 건강 상실 등 힘든 일이 있다.
⑦ 가족 중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있다.
⑧ 삶의 무가치성을 강조하며 의기소침해 한다.
⑨ 식사, 성, 수면 등 생물학적 욕구가 현저히 줄었다.
⑩ 알코올 의존이 있다.

⑪ 별거나 이혼, 사별로 혼자 살고 있다.
⑫ 평소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아낌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분당 서울대병원 정신과 하규섭 교수는 “주위 사람이 자살의사를 넌지시 또는 직접적으로 내비치면 피하지 말고 자살의 동기와 방법 등을 꼬치꼬치 캐물어 자살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정서적으로 공감해 준 뒤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평가해 주면 자살 결심을 돌이키는 경우가 많다. 또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당사자에겐 자살기도가 병의 결과임을 설명하고 전문의와 상담하고 약물 치료를 받도록 권유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자살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즉시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전우택 교수는 정신질환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치료 가능한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며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 게 아니라 뇌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감소해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므로 반드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급성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결심은 수 시간 내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므로 응급 입원의 대상이 된다며 입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혼자 내버려두지 말고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자살을 못 하게 말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 최진실 씨의 경우에도 자살을 하기 전 절친하게 지내던 메이크업 담당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잡지사 기자에게는 “힘들다. 죽을 거야. 너한테 마지막으로 전화하는 거야. 우리 애들 크는 거 잘 지켜봐라.”면서 심경을 고백한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정황이 맞다면 전문가들이 지적한 ‘자살 암시’가 최씨에게도 있었던 셈이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진표 교수는 “최씨는 최근 대중들로부터 마치 자신이 ‘사채업자’처럼 오해받는 것이 매우 큰 정신적 충격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근거 없는 사실에 대해 언어적 공격을 받으면서 억울함과 함께 극심한 우울감과 분노를 갖게 된 상황이 자살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자살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최씨가 그동안의 사건으로 심신이 괴롭고 지친 상태에서 자살 당일 술을 마신 것은 최씨에게 자살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상승작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모든 현상을 자살한 사람의 탓으로 돌리면 간단하다. 죽은 놈이 잘못이라고.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듣기 거북한 말로 고 최진실 씨를 욕하고 있었다. 내가 왜 그렇게 욕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자기를 슬프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 이상 재미있는 드라마를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또 한 마디 덧붙였다. 돈 많이 벌었고, 얼굴도 예쁜 그녀가 자살할 정도면 이 세상 사람들 반은 자살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그 사람 나보다 한 살 연상이지만 그 잘 생긴 면상에 침을 뱉어 주고 싶었다.

그 사람은 세상을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지 참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옛날 맹자님은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고 주장하셨다. 그게 바로 성선설이다. 착한 마음 중의 하나가 ‘측은지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불쌍한 것을 보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어 저절로 도와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천사와 같은 선한 마음과 악마와 같은 악한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생각이다. 내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고 최진실 씨의 죽음을 앞에 두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천사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이와 반면에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그녀를 후련하게 비난하는 것은 악마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악마는 달콤한 말로써 사람을 유혹한다. 당장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악마의 말 가지고는 자살이라는 현상을 절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간 고 최진실 씨의 자살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우리 사회에서 자살 현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나는 자살한 사람의 책임을 탓하기 전에 우리 사회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살한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조금 더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토록 자살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는데 그 신호를 무시해 버린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다시 한번 고 최진실 씨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