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시작

정건희200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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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23일 워싱턴DC에서 마틴루터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님의 연설이 있었습니다.

그 연설에서의 바로 그 ‘꿈’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미국의 대선후보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당신 킹 목사님의 연설문을 들여다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받든다"는 신념의 분명한 의미를 드높일 날이 올 거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주지사가 늘 연방 정부의 조처에 반대할 수 있다느니,

연방법의 실시를 피부로 한다느니 하는 말만 하는 앨라배마 주가 변하여,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자매처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꿈입니다.

 

그땐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할 날입니다.

"나의 조국은 자유의 땅,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에서 자유가 노래하게 하라"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유의 종소리를 모든 마을, 모든 부락,

모든 주와 도시에서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날, 신의 모든 자손들,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교도들,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자유, 평등, 평화…….

사람이라면 가져야할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매우 합당한 가치이나 실현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절대강국이라 하는 미국에서조차도 완전한 자유와 평등은 요원한 과제였습니다.

인종적 약자라 여겼던 흑인이 미국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40여 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연설문을 다시 보게 됩니다.

 

 

원문: http://www.youthauto.net/zboard/view.php?id=cultur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4

 

 

  

마틴루터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 1963년 8월 23일 / 워싱턴DC

 

우리 역사에서 자유를 위한 가장 훌륭한 시위가 있던 날로 기록될 오늘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백 년 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상징적인 자리의 주인공(주: 에이브러햄 링컨)인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 해방령에 서명했습니다. 이 중대한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시들어가고 있던 수백만 흑인들에게 희망의 횃불로 다가왔습니다. 그 선언은 오랜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즐겁고 새로운 날들의 시작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백년 후, 우리는 흑인들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백년이 지났어도 흑인들은 여전히 인종 차별이라는 속박과 굴레 속에서 비참하고 불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이 지났어도 흑인들은, 이 거대한 물질적 풍요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빈곤의 섬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이 지났어도 흑인들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끔직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국가로부터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할 시기에 온 것입니다.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헌법과 독립선언에 훌륭한 표현들을 써넣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미국인들이 상속하게 되어 있는 약속어음에 서명했습니다.

 

이 어음은 모든 인간에게 삶과 자유, 행복 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분명한 것은 미국이 유색 인종 시민들에 대해서는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는 대신 흑인들에게 "잔액 부족"이라고 찍혀서 돌아오는 부도 수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은행이 파산했다고 믿는 것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있는 위대한 기회의 금고에 예치금에 충분치 않다고 믿으라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 수표를 - 우리가 요구하는 충분한 자유와 정의의 보장을 우리에게 줄 - 지불받으러 온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위급함을 미국인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냉정을 되찾으라는 사치스러운 말을 들을 여유도, 점진주의의 진정제를 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이순간이 바로 어둡고 의진 인종 차별의 계곡에서 벗어나 햇살 환히 비추는 인간 평등의 길에 들어설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줄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나라를 인간 불평등의 모래 위에서 형제애의 단단한 바위 위로 올라서야 할 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긴박성을 간과하고, 흑인들의 결의를 과소평가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에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흑인들의 정당한 불만이 표출되는 이 무더운 여름은 자유와 평등의 상쾌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만일 이 나라가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면. 흑인들이 좀 진정을 하고 자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례하게 일깨워지게 될 것입니다. 흑인들이 시민의 권리를 부여받기 전에는 미국에 휴식도 평온도 없을 것입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밝은 날이 오기 전엔 이 나라의 기반을 뒤흔드는 폭동의 소용돌이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의의 궁전으로 이르는 따뜻한 분계선에 선 여러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정당한 위치를 찾을 때까지는, 나쁜 행동을 해서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입니다. 비탄과 증오로 가득 찬 술잔을 들이키는 것으로 자유를 향한 갈증을 달래려하지 맙시다.

 

우리는 위엄과 원칙이 있는 높은 곳을 향한 우리의 투쟁을 영원히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의적인 항거가 물리적인 폭력으로 변질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 또다시, 우리의 물리적인 힘이 영혼의 힘과 맞닿을 수 있는 위대한 언덕에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 흑인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저 새롭고도 훌륭한 투쟁 정신이 모든 백인들의 불신을 받는 데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백인들이 증명하듯이 , 우리의 많은 백인 동지들을 그들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과 이어져 있으며, 그들의 자유가 우리의 자유와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혼자서만 걸어갈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앞으로 행진한다는 맹세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권 운동가들에게 "언제가 만족하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흑인들이 경찰의 무지막지한 폭력의 공포에 희생되고 있는 한, 우리에게 만족이란 없습니다. 흑인들이 여행하다가 피곤에 지쳤을 때 고속도로변의 모텔이나 시내의 호텔에서 방을 구할 수 없는 한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이 이주한다고 해야, 고작 작은 게토(주: 독일 나치가 유태인들을 몰아넣었던 집단 거주지)에서 더 게토로 가는 것이 전부일 때, 우리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미시시피의 흑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뉴욕의 흑인들이 투표를 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니오, 아니오,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냇물처럼 흐르고, 공의가 강물같이 흐를 때까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주: 구약성경 아모스5:24).

 

저는 여러분들 중 어떤 사람이 재판을 받다가 여기 오게 되었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은 좁은 감옥예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유를 추구하다가 도리어 기소되어 두들겨 맞거나, 경찰의 야만스런 폭력에 고통받는 지역에서 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창의적인 고통을 겪는 베테랑들입니다. 그런 고생들이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계속 일 하십시오.

 

미시시피로 돌아가십시오, 앨라배마로 돌아가십시오,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돌아가십시오, 조지아로 돌아가십시오, 루이지애나로 돌아가십시오, 우리들의 북부 도시 슬럼가와 게토로 돌아가십시오, 어떻게든 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젓이라고 믿고 돌아가십시오. 이제 절망의 계곡에서 뒹굴지는 맙시다. 나는 오늘 여러분께, 동지들에게 말합니다.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꿈이 있습니다. 이 꿈은 아매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받든다"는 신념의 분명한 의미를 드높일 날이 올거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주지사가 늘 연방 정부의 조처에 반대할 수 있다느니, 연방법의 실시를 피부한다느니하는 말만 하는 앨라배마주가 변하여,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 자매처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펴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 보는. 이것의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제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갈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절망의 산을 개척하여 희망의 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이 나라의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을 형제애의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땐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할 날입니다. "나의 조국은 자유의 땅,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에서 자유가 노래하게 하라"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의 종소리가 뉴 햄프셔의 거대한 언덕에서 울려퍼지게 합시다. 자유의 종소리가가 뉴욕의 큰 산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의 종소리가 펜실베이니이아의 앨러게니 산맥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의 종소리가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 산맥에서도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의 종소리가 켈리포니아의 굽이진 산에 울려 퍼지게 합시다. 이것 뿐 아닙니다. 자유의 종소리가 조지아의 스톤 산에서도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의 종소리가 테네시의 룩아웃 산에서도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의 종소리가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에서도 울려 퍼지게 합시다. 모든 산으로부터 자유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우리가 자유의 종소리를 모든 마을, 모든 부락, 모든 주와 도시에서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날, 신의 모든 자손들,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교도들, 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