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동주, 와신상담 (고우영 열국지 中) 지난 편지에서는 오자서와 오왕 합려가 초나라를 정벌했던 얘기를 해드렸습니다.그런데 그 둘이 초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던 그 타이밍에오나라 옆에 있던 월나라라는 작은 나라에서 갑자기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주력군대가 자리를 비웠으니 한번 싸워볼 만하다 느꼈었던 모양입니다.그래서 오자서와 오왕 합려는 초나라를 완전 작살내기 일보 직전에 귀국해야 했습니다.그 일로 인해서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오월동주(吳越同舟: 원수지간)는 그때 만들어진 말입니다. 열받은 오왕 합려는 당장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짓밟으려 합니다.그러나 월나라에는 범려라는 천재 군사가 있어 오나라 군대는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싸움에서 크게 패했고, 설상가상으로 오왕 합려는 전쟁터에서 사망하게 됩니다.합려는 죽기 직전 아들 부차(십팔사략에서는 아들, 열국지에서는 손자라고 나오네요)를 불러“부차야. 너는 월왕 구천이 나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깁니다. 합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부차는 침대에 가시나무를 깔고 3년 동안 그 위에서 잤습니다. (와신)그리고 신하들을 시켜 자신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부차야. 너는 월왕 구천이 나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라고 소리치게 했습니다.복수심이 약해지지 않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3년 뒤 오자서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기어이 월나라를 작살냅니다. 회계산이라는 곳에서 포로가 된 월왕 구천을 두고 오자서는 죽여서 후환을 없애라고 조언하지만, 오왕 부차는 승리에 들떠서인지 자만심이 생겨 그를 죽이지 않고 대신 노예로 삼습니다. 그래서 월왕 구천은 풀을 베는 노예가 되고 왕비는 마구간에서 말똥을 치우게 됩니다.월왕 구천은 식사 때마다 쓰디 쓴 돼지의 쓸개를 혀로 핥아먹으며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상담)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아서 2~3년간 정말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월나라에서는 최고의 미녀 ‘서시’를 보내고 각종 진귀한 보물까지 바치며 월왕 구천의 구명활동을 합니다.그리고 월왕 구천은 속내를 숨기기 위해 오왕 부차가 아플 때 병세를 알아본답시고 그의 대변까지 먹습니다.결국 긴장감이 풀린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을 석방하고 월나라로 돌려보냅니다.오자서는 이에 대해 불같이 반대했는데, 그 일로 미움을 사 결국 자결을 명 받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습니다. 오와 부차는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식사 때마다 쓸개를 핥으며 20년간 부지런히 복수의 힘을 길렀습니다.그러다 오자서가 왕의 미움을 사 결국 죽었다는 얘기를 듣자 크게 기뻐하며 바로 군사를 일으킵니다.그리고 이번에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가볍게 박살냅니다. 오왕 부차는 이제 자신의 포로이자 노예였던 월왕 구천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차는 신하를 보내 노예가 되겠으니 목숨을 살려달라 구걸해봤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결국 부차는 자신이 죽게 만든 오자서처럼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합니다.저승 가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면서 헝겊으로 얼굴을 감싸고 말입니다. 가시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쓰디 쓴 쓸개를 핥아먹는다.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입니다. 월왕 구천이 회계산(자신이 포로가 된 곳)의 굴욕을 씻었다 해서 회계지치(會稽之恥)라고도 합니다. 1
[김성민의 인문학편지 19]오월동주, 와신상담 (고우영 열국지 中)
오월동주, 와신상담 (고우영 열국지 中)
지난 편지에서는 오자서와 오왕 합려가 초나라를 정벌했던 얘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둘이 초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던 그 타이밍에
오나라 옆에 있던 월나라라는 작은 나라에서 갑자기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주력군대가 자리를 비웠으니 한번 싸워볼 만하다 느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자서와 오왕 합려는 초나라를 완전 작살내기 일보 직전에 귀국해야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원수지간)는 그때 만들어진 말입니다.
열받은 오왕 합려는 당장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짓밟으려 합니다.
그러나 월나라에는 범려라는 천재 군사가 있어 오나라 군대는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싸움에서 크게 패했고, 설상가상으로 오왕 합려는 전쟁터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합려는 죽기 직전 아들 부차(십팔사략에서는 아들, 열국지에서는 손자라고 나오네요)를 불러
“부차야. 너는 월왕 구천이 나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깁니다.
합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부차는 침대에 가시나무를 깔고 3년 동안 그 위에서 잤습니다. (와신)
그리고 신하들을 시켜 자신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부차야. 너는 월왕 구천이 나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라고 소리치게 했습니다.
복수심이 약해지지 않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3년 뒤 오자서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기어이 월나라를 작살냅니다.
회계산이라는 곳에서 포로가 된 월왕 구천을 두고 오자서는 죽여서 후환을 없애라고 조언하지만,
오왕 부차는 승리에 들떠서인지 자만심이 생겨 그를 죽이지 않고 대신 노예로 삼습니다.
그래서 월왕 구천은 풀을 베는 노예가 되고 왕비는 마구간에서 말똥을 치우게 됩니다.
월왕 구천은 식사 때마다 쓰디 쓴 돼지의 쓸개를 혀로 핥아먹으며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상담)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아서 2~3년간 정말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월나라에서는 최고의 미녀 ‘서시’를 보내고 각종 진귀한 보물까지 바치며 월왕 구천의 구명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월왕 구천은 속내를 숨기기 위해 오왕 부차가 아플 때 병세를 알아본답시고 그의 대변까지 먹습니다.
결국 긴장감이 풀린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을 석방하고 월나라로 돌려보냅니다.
오자서는 이에 대해 불같이 반대했는데, 그 일로 미움을 사 결국 자결을 명 받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습니다.
오와 부차는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식사 때마다 쓸개를 핥으며 20년간 부지런히 복수의 힘을 길렀습니다.
그러다 오자서가 왕의 미움을 사 결국 죽었다는 얘기를 듣자 크게 기뻐하며 바로 군사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가볍게 박살냅니다.
오왕 부차는 이제 자신의 포로이자 노예였던 월왕 구천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차는 신하를 보내 노예가 되겠으니 목숨을 살려달라 구걸해봤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차는 자신이 죽게 만든 오자서처럼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합니다.
저승 가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면서 헝겊으로 얼굴을 감싸고 말입니다.
가시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쓰디 쓴 쓸개를 핥아먹는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입니다.
월왕 구천이 회계산(자신이 포로가 된 곳)의 굴욕을 씻었다 해서 회계지치(會稽之恥)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