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성의 성의식 문제제기(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윤나리20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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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 여성 스스로 성정체성을 찾아나서야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는 1991년 만들어졌지만 마치 100년 전의 시대차이가 나는 느낌의 영화였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가해 남성의 혀를 깨물어 자신을 보호했다고 해서 벌을 받는다는 우스운 설정은 1988년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말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성의식은 이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최근 성의식은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 ‘원나잇 스탠드’의 확산, ‘미혼모 문제’, 대학생 동거의 일반화, 동성애 등 호주제폐지를 끝끝내 반대하셨던 어르신들은 뒷목을 잡으실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성의식 확산을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생각은 없다. 가치기준에 따라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목하고 싶은 것은 성이 더이상 쉬쉬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여성들의 성을 무척이나 나쁘고, 감춰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성이 성 욕구를 표출하면, ‘요부’, ‘악녀’ 등으로 여성을 매도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수절을 해야 올바른 여성이라는 웃지 못 할 관습까지 만들어냈다. 수절한 여성에게는 ‘열녀문’까지 주고, 대대로 칭송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정작 남성들은 어떠했는가? 남성이 수절했다고 ‘열남문’을 하사했나? 아니면 남성들이 성 욕구를 표출하면 ‘나쁜X'가 되었냐는 말이다. 물론 아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지금까지도 조선시대의 잔재들이 우리 사회에 혼재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잔재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임정희(원미경 분)가 성폭력을 당한 뒤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 변호사(이경영 분)가 하는 말이 대표적이다. “본 법정은 정조를 보호받아야 마땅한 사람만을 보호합니다.”라는 말이다. 도대체 그 보호받아야 마땅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으로 삼는가? 창녀일지라도 성폭행을 당했다면, 상대 가해자는 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여성이 이혼하고, 과거 ‘술집에 있었다’라는 이유로 그 여자에게 가해진 폭력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는 무엇 때문인가?

영화 속 임정희는 이혼을 하고 술집을 나간 경험도 있지만 자신의 몸, 특히 ‘정조관념’이 뚜렷한 여성이다. 아이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술집에 나가서도 ‘몸’을 버리지 않았고 시누이(진희진 분)와 함께 술집에 가서도 다른 남자의 접근을 거부한다. 특히 시누이의 통정장면을 엿보고 놀라 도망치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임정희의 시누이는 남편이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와 함께 어울려 진한 춤을 추고, 결국 통정까지 한다. 그러다 임정희의 시누이 역시 성폭력을 당한다. 문제는 우리가 외간 남자를 한사코 거부한 여성 ‘임정희’의 성폭력은 인정하고 동정하지만, 남자와 진하게 춤추고 놀던 시누이의 성폭행은 그냥 간과하고 넘어간다는 점이다. 시누이는 성행위를 분명히 거부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시누이를 폭행하고 강제로 성행위를 한다. 강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상대방의 동의없이 성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시누이 역시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시누이는 그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자기 스스로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외간 남자와 노는 그 행위가 ‘나쁜 여자’라는 개념을 심어주고 있다. 나쁜 여자의 정조와 인간성은 무시해도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남성의 경우는 어떨까? 시누이를 성폭력했던 남성은 과연 총각이었을까? 아내가 있는 남성이 다른 여성과 놀고 성행위를 하는 행동을 우리 사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구조는 다르다. 특히 여성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자궁’을 가지고 있기에 특히 성을 단순히 욕정으로 취부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행위로서의 ‘sex'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성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또 여성과 남성을 바라보는 인식에서 그것이 달라야 하는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유독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행동과 없는 행동을 구분 지으려고 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인정하되, 한 인간이라는 가치는 동등한 것이다. 여성을 성적인 잣대로 구분해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성적인 행동과 양식은 여성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시대가 변했다. 그러나 여성을 평가하는 가치는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인정하되, 인간이라는 동등한 본질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원나잇 스탠드’, 음란물의 범람 등의 성에 대한 사회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순결’과 ‘수절’이라는 억압된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본질적 의미와 진정한 인간의 진정한 ‘행복 찾기’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서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 사람들의 시선으로 우리나라를 볼 수 있어 유명해진 ‘미수다’의 한 외국 출연자의 말이 인상 깊다. “한국 사람들이 오히려 외국 사람들보다 더 물란한 것 같아요”라는 말이었다. 외국 여성들은 처음 본 남성과 쉽게 성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외국 여성들은 성적인 행위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엄격한 자기 기준이 있는 것이다.

서구 사상의 영향으로 우리는 현재 가치가 뒤범벅된 시대에 살고 있다. 조선 시대의 유교적 가치와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이 뒤섞여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뒤범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때에 창의적이고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통해 진정한 행복찾기를 실현해 나아가야 한다. 이에 사회적인 환경을 탓하기 이전에 여성들 스스로가 과거 악습에 영향받지 않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자신의 성적 가치관을 확립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