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김수경2008.11.07
조회81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기욤 뮈소

 

 

다시 집어든 기욤 뮈소의 작품..

늘 그러하듯 밑바닥 생활을 하던 이들의 '인간승리'와 인간승리를 이뤄낸 이들의 '희생적인 생활', 더불어 그들의 기묘한 '우연의 연속'과 속죄 해야할 사안들에 대한 '속죄' 혹은 '용서', '운명'이라 생각하며 모든 일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마지막으로 기막힌 '반전'까지...

늘 그렇게 뻔한 소설이라고, 그래서 중고등학교때 유행처럼 번졌던 '하이틴 로맨스'-난 한번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정도의 소설이라고 치부하면서도 일단 집어들면 거의 순식간에 다 읽어버린다..  ㅎㅎㅎㅎ

 

그의 책 표지에는 여러가지 서평들이 조금씩 곁들여져 있는데 빠지지 않는 글귀가 바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식의 서평이 늘 들어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매번 유치해, 뻔해, 다 알고 있었어, 라고 생각하지만 재밌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들면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

마지막이 너무 궁금하기 때문에......

이것 역시 작가의 능력이리라...  ^-^

 

일설하고...

소설은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외과의사 엘리엇..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갔던 그가 우연한 기회로 살려준 소녀의 할아버지로부터 얻은 알약 10개..

그 알약 10개를 얻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2006년의 예순살 엘리엇과 1976년의 서른살 엘리엇..

이야기는 그 두 엘리엇 사이를 오고가며 주변의 이야기들을 풀어간다..

 

예순살의 엘리엇은 맘속에 품은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었다..

바로 너무나 사랑했지만 지켜주지 못했던, 그래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일리나를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늘 곁에 있어주리라 믿었던 연인을 허망하게 잃은 엘리엇에게 그때의 기억은 늘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그에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알약이 주어지면서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서른살의 혈기 왕성한 엘리엇과 세상을 어느만큼 살아 낸 예순살의 엘리엇은 때론 동지로 때론 반목하는 라이벌(?)로 마주하게 되고 급기야 일리나를 살아나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일리나가 살아나면서 '나비효과'처럼 작은 파장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되돌아 오게 된다...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엘리엇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더 재미있었던 것은 1976년이 배경인 서른살의 엘리엇 이야기였다..

당시 이야기들이 글로써 보여지는 내용들은 무척 재밌었다..  ^-^

무엇보다 30년후 미래를 궁금해하는 엘리엇과 예순살의 엘리엇의 대화..

 

- 어떻습니까, 그 시대는?

- 2006년 말인가?

-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 지금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어.

- 동서 냉전은 어떻게 됐죠?

- 끝난 지 오래됐다네.

- 누가 이겼죠?  러시아와 우리 중에서?

- 처음부터 이기고 지는 문제는 아니었어.

- 제3차 세계 대전은 없었나요? 핵전쟁도?

- 그래. 하지만 새로운 문제들이 많이 등장했지.

 환경문제, 세계화문제, 테러문제, 9.11의 갖가지 후유증들.

- 미래의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듣죠?

- 수도 없이 많지만 비틀즈만한 게 없지.

- 비틀즈는 재결합했습니까?

- 못했어. 이제는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게 되었네.

 존 레논은 암살당했고, 조지 해리슨은 죽었다네.

- 폴 맥카트니는?

- 그 사람은 아주 쌩쌩하게 활동하고 있지.

 

 

책을 읽는 동안 잠깐씩 추억에 젖게 하는 대화들이 오고가기도 하고 상황 설명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 옛날 1970년대의 이야기들이 그립기도하고 당시의 모습 그대로 세월만 흘러갔다면 어떨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처럼 휙휙 세상이 변하고 환경오염에 찌들어 버린 것 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말이지... ^^)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나 사랑하는 그들이었지만 결국 사랑의 결실(?)은 맺지도 못하고 서로 계속 어긋나기만 해서 '둘이 함께 늙어가기'를 꿈꿨던 엘리엇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각자의 생활에 열중하며 오해 아닌 오해 속에서 서로를 그리워만 하면서 노년을 맞게 된다는 점이었다..

중간에 우여곡절들이 많았지만 자고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곁에 머물며 함께 생활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하며 함께 노여워하며 그렇게 함께 늙어가야 하는 법인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그런 해피엔딩은 아니다..

최소한 엘리엇과 일리나는 좀더 일찍 만났어야 했다..  ^^

 

 

 

 

 

 

 

엘리엇은 정신없이 서류를 뒤지면서 지난 세 달간 벌어진 일들의 의미를 분석해보려고 애썼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는데, 운명은 오히려 그를 혹독하게 짓밟았다. 자유롭게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운명에 영향을 미칠 힘이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환상이었는지 명백히 인정해야만 했다. 실제로 인간의 운명은 미리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아무리 싸워도 불가항력인 일들이 있는 것이다. 죽음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미래란 점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미 나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과거, 현재, 미래는 숙명이라는 끔찍한 이름 앞에 처절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P. 254

 

 

우리에게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기 때문이다.

 

P.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