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알것같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았다. 그게 그녀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서로 알아갈 수록 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고, 마치 원래부터 알고있었던 기분마저 들었다. 왠지모를 친숙함. 그런 허울좋은 베일에 가려서 우린 정작 중요하고 커다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내게 말했었다. 나를 만난 후에 자신은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난 그 말이 너무 기분 좋았고 기억에 남았다. 다른 사람을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이고, 그 굉장한 일을 해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외로움을 벗어나게 해준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일이 전부 나에게 커다란 축복과 칭찬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다가온 그녀의 칭찬의 말은 가슴속에 깊숙히 자리잡아 언제고 떠나지않을것만 같다. 그 말은 언제나 현재에 존재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떠나서 과거 속에 존재하고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녀가 했던 그 말은 나와 함께 현재를 살고있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잊혀지고 그녀에 대한 실존적인 의미조차 사라져버리고 나면 그 말도 과거의 산물이 되어 순식간에 함께했던 시간을 바리바리싸들고 과거의 단어로 흩어져버리겠지만, 일단 지금은 나와함께 현재를 거닐고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그녀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기는 하지만.
그녀가 없는 세상은 언제나와 변함없다. 그저 똑같은 모습 똑같은 하루 속을 살고있는 내가 겪는 사건들만이 변화할 뿐. 본질적인 문제는 변함없다. 사람들이 언제나 '그냥 그래'라고 말하는 그런 느낌 그대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있다. 그저 '그녀'가 없을 뿐이다. 난 그렇게 만났다, 그녀가 없는 세상을. 내가 이전에 살던 세상은 그녀가 있던 세상이었다. 내가 말하는 세상은 언제나 그녀를 포함하고있는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세상이었는데, 그녀가 떠나간 순간부터 그녀는 그 세상에서 제외되었다. 아니, 그녀 스스로가 선택해서 나가버렸다. 자신이 나의 세상에 연관된 현재의 존재임을 거부하고 스스로 과거를 향해 걸어갔다. 그래서 현재의 나에겐 아무리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보아도 닿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보려 노력해봐도 뒷모습밖엔 보이지않는다. 현재의 내가 아무리 뒷걸음질쳐도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동일시 될 수 없듯이 말이다.
역시나 내가 그녀를 알것같이 느꼈던 것은 아무 의미도 같지 못했다. 초반의 몇주를 제외하고는 전혀 긍정적인 기능조차 하질 못했다. 어떤 모호한 미래가 어느정도 짐작이 되는 것 뿐이었다. 서로의 정신적인 공통점과 사고의 소통은 그 순간에 현재를 윤택하게 해주고 서로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 같고 마치 우리가 운명적인 만남을 하고있다는 듯한 착각을 주지만, 정작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서로의 소통이 주는 착각을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헤어진 후에는 아주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접근이 가능하다) 그녀의 전이나 후에 다른 어떤 여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어쩌면 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서로 영혼이 일치함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일치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존재와 나의 존재는 서로 동떨어져있고, 완벽하게 다른 차원 다른 우주에 있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는 나를 인식하지 조차 못했고, 서로 인정하지도 교류하지도 어떤 소통따위조차 없었다.
존재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가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문제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녀와의 추억을 갖고있고 우리가 서로 사랑했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기억의 존재가 다른 객체에게 존재 이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갖게하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또한 그런 객체의 본질적 의미를 부여하는 기억의 기능이 기억에게 본질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서로의 존재론적인 상호 보완이 서로 실재實在하게 해준다.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 존재자체는 실재하지않는다. 존재함으로서 나는 나를 거부하고 내가 나로 인정받는 것을 부인한다. 난 세상의 어디와도 동떨어진 그저 존재자체로서의 나만이 기능하고있다. 하지만 그녀와의 추억,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에서의 내가 덧입혀지고 기억되고 의미를 부여받음으로 난 실재한다. 그렇게 세상은 만들어진다. 내 주변의 사물에 이름이 생기고 건물이 세워지고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땅이 내 몸을 세운다.
이제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만남으로 그녀는 외로움과 헤어졌고, 그녀와 헤어짐으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또다른 추억을 현재로 가져와 커다란 기억의 짐을 짊어지며 걷다보면, 언젠가 그녀의 얼굴이 툭하며 발치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해준 칭찬의 말이 현재의 내가 짊어진 추억의 짐 속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동안은, 쉽게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애틋하지조차 않았던 이별을 떠올리기보단 그녀라는 의미가 나에게 주던 웃음 한방울을 기억하겠다, 바람을 바람이라 부를 수 있음을 감사하며.
그녀와 나의 추억에대한 ○○○적인 접근
왠지 알것같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았다. 그게 그녀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서로 알아갈 수록 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고, 마치 원래부터 알고있었던 기분마저 들었다. 왠지모를 친숙함. 그런 허울좋은 베일에 가려서 우린 정작 중요하고 커다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내게 말했었다. 나를 만난 후에 자신은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난 그 말이 너무 기분 좋았고 기억에 남았다. 다른 사람을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이고, 그 굉장한 일을 해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외로움을 벗어나게 해준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일이 전부 나에게 커다란 축복과 칭찬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다가온 그녀의 칭찬의 말은 가슴속에 깊숙히 자리잡아 언제고 떠나지않을것만 같다. 그 말은 언제나 현재에 존재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떠나서 과거 속에 존재하고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녀가 했던 그 말은 나와 함께 현재를 살고있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잊혀지고 그녀에 대한 실존적인 의미조차 사라져버리고 나면 그 말도 과거의 산물이 되어 순식간에 함께했던 시간을 바리바리싸들고 과거의 단어로 흩어져버리겠지만, 일단 지금은 나와함께 현재를 거닐고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그녀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기는 하지만.
그녀가 없는 세상은 언제나와 변함없다. 그저 똑같은 모습 똑같은 하루 속을 살고있는 내가 겪는 사건들만이 변화할 뿐. 본질적인 문제는 변함없다. 사람들이 언제나 '그냥 그래'라고 말하는 그런 느낌 그대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있다. 그저 '그녀'가 없을 뿐이다. 난 그렇게 만났다, 그녀가 없는 세상을. 내가 이전에 살던 세상은 그녀가 있던 세상이었다. 내가 말하는 세상은 언제나 그녀를 포함하고있는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세상이었는데, 그녀가 떠나간 순간부터 그녀는 그 세상에서 제외되었다. 아니, 그녀 스스로가 선택해서 나가버렸다. 자신이 나의 세상에 연관된 현재의 존재임을 거부하고 스스로 과거를 향해 걸어갔다. 그래서 현재의 나에겐 아무리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보아도 닿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보려 노력해봐도 뒷모습밖엔 보이지않는다. 현재의 내가 아무리 뒷걸음질쳐도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동일시 될 수 없듯이 말이다.
역시나 내가 그녀를 알것같이 느꼈던 것은 아무 의미도 같지 못했다. 초반의 몇주를 제외하고는 전혀 긍정적인 기능조차 하질 못했다. 어떤 모호한 미래가 어느정도 짐작이 되는 것 뿐이었다. 서로의 정신적인 공통점과 사고의 소통은 그 순간에 현재를 윤택하게 해주고 서로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 같고 마치 우리가 운명적인 만남을 하고있다는 듯한 착각을 주지만, 정작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서로의 소통이 주는 착각을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헤어진 후에는 아주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접근이 가능하다) 그녀의 전이나 후에 다른 어떤 여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어쩌면 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서로 영혼이 일치함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일치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존재와 나의 존재는 서로 동떨어져있고, 완벽하게 다른 차원 다른 우주에 있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는 나를 인식하지 조차 못했고, 서로 인정하지도 교류하지도 어떤 소통따위조차 없었다.
존재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가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문제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녀와의 추억을 갖고있고 우리가 서로 사랑했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기억의 존재가 다른 객체에게 존재 이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갖게하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또한 그런 객체의 본질적 의미를 부여하는 기억의 기능이 기억에게 본질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서로의 존재론적인 상호 보완이 서로 실재實在하게 해준다.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 존재자체는 실재하지않는다. 존재함으로서 나는 나를 거부하고 내가 나로 인정받는 것을 부인한다. 난 세상의 어디와도 동떨어진 그저 존재자체로서의 나만이 기능하고있다. 하지만 그녀와의 추억,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에서의 내가 덧입혀지고 기억되고 의미를 부여받음으로 난 실재한다. 그렇게 세상은 만들어진다. 내 주변의 사물에 이름이 생기고 건물이 세워지고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땅이 내 몸을 세운다.
이제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만남으로 그녀는 외로움과 헤어졌고, 그녀와 헤어짐으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또다른 추억을 현재로 가져와 커다란 기억의 짐을 짊어지며 걷다보면, 언젠가 그녀의 얼굴이 툭하며 발치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해준 칭찬의 말이 현재의 내가 짊어진 추억의 짐 속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동안은, 쉽게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애틋하지조차 않았던 이별을 떠올리기보단 그녀라는 의미가 나에게 주던 웃음 한방울을 기억하겠다, 바람을 바람이라 부를 수 있음을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