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긍정

박성열2008.11.10
조회177

 

 

 

 삶이 지지부진하고 눅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큼직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의 생기가 야금야금 갉아먹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 그럴 때 우리에게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구원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겠지만, 느글거리는 현실을 한 순간 뒤엎음으로써 스스로의 영혼을 풍성히 살찌워가는 우리의 능력은 주목해 볼 만할 것 같다. 그 능력은 우리 모두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조금 구체화해서 말하자면 '생명력' 정도가 적당할 듯싶다.

 

 그 능력은 순간적이며, 예술가들의 영감처럼 오고가는 경로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능력이 발휘되면  세상은 반짝, 환해진다. 이 능력을 알게 모르게 감지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기가 잔잔하게 요동치는데,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교감이자 소통이다. 친구 잉잉씨가 좋아하는 김연수의 어구처럼,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능력이 추구하는 그대로다.

 

 이 능력은 한두 시간 지나면 잊혀질 정도로 너무도 사소한 데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 능력의 원천이야말로 삶의 단단한 내공이다. 어지간한 인생살이로는 세상을 환하게 만들 수 없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줄 수 없다. 이 능력은 "종종 사람이나 장소의 허세를 뚫고 들어가 진짜 모습을 드러내주는" 위트를 요체로 하지만, 순간의 기지 혹은 철저한 계산으로 이뤄진 단순한 유머와는 다르다. 이 능력에는 한 사람의 인간성의 무늬가 은은하게 배어있다.   

 

 자, 그렇다면 이 능력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몇 가지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따스한 가을햇발에 빛나는 조약돌 같은 영화 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랫가사.

 

 "너는 가끔씩 연인이고 언제나 친구야

  뭔가에 중독되는 게 최신 유행이지

  사람들이 너에게서만 보는 걸 나는 보지 않아

  여기는 교회고 여기는 뾰족탑이야

  우리는 못생긴 사람치고는 귀여워

  사람들이 너에게서만 보는 걸 나는 보지 않아…"

 

 "못생긴 사람치고 귀엽다"는 말은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힘겨운 '노정'을 끝마친 고등학생 주노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담담히 부르는 이 노래를 들을라치면, 우리는 은근슬쩍 지긋지긋하고 너절한 세상만사와 다시한번 맞설 배짱을 품게 되는 것이다. '스타일'이란 말을 함부로 쓰지 말지어다, 적어도 주노 정도의 밝고 강인한 책임감을 갖고 세상과 맞섰을 때에, 그에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는 상찬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노가 그렇게 '스타일리쉬'하게 살 수 있었던 건 결국 주위 사람들의 따스한 배려와 믿음 덕분이었다.) 

 

 이 능력에 관해서는, 요절한 일본의 연출가 데라야마 슈지의 에 등장하는 에세이 한 토막도 인용할 수 있다.

 

 지도리(千鳥) 거리의 어느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카운터 한쪽 구석에서 남녀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점점 목소리가 커져갔다.

 "내가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이에요. 당신이 내 서방이라도 돼요?"

 "서방은 아니지만 생활비는 꼬박꼬박 대주고 있잖아."

 "뭐예요? 그깟 푼돈 몇 푼 주는 주제에…."

 "난 단지 네가 그저께 밤에 어디에 갔는지 묻는 거야. 내게도 그럴 권리쯤은 있는 거 아냐?"

 사내가 목소리를 높이더니, 갑자기 여자의 멱살을 잡았다.

 "야, 어서 바른 대로 말해! 또 그 회사원 놈하고 호텔에 간 거지?"

 곧이어 짝 하고 여자의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녜요, 아니란 말예요!"

 여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오셀로처럼 질투심에 불타 있는 사내는 또다시 여자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바텐더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바텐더는 무슨 생각에선지 갑자기 레코드를 트는 것이었다. 하타케야마의 노래였다.

 

 당신은 이 세상에 무엇하러 오셨나요

 여자 꽁무니만 쫓지 말고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려

 큰인물이 되어주세요

 

 노래가 끝날 즈음, 주위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던 손님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이쯤 되자 여자를 때리던 사내도 그 노래의 가사가 자신의 활극을 빗댄 것임을 깨달았는지 겸연쩍은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다.

 이 바텐더도 필시 유행가형 인간이었으리라. 그의 행동은 에리히 캐스트너의 을 연상하게 하는 세련된 대처였다.

 

 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함부로 싸우지 않으며, 마치 물처럼 유순하고 담백하게 처신한다. 이들은 자기정체성이 뚜렷하고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번잡하게 마찰을 일으킬 필요도 없고, 소심하게 두리번거리거나 머뭇거리지 않으며 다만 나서야 할 때 확실히 나선다. 그러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장 명민하게 세상을 껴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도덕경의 다음과 같은 글귀를 몸소 실천한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입을 다물고, 문을 꽉 닫습니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신비스런 하나됨(玄同)'입니다." 

 

 몇달 전 KBS의 팀에서 강남구 구룡마을 판자촌에 갔는데, 말하는 품새가 시원시원하고 성미 좋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이제 3일을 다 채우고, PD가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집에 갔던 차에 할머니가 과일 먹고 가라고 손에 사과를 들고 계셨나보다. PD가 며칠간 짧은 정도 들었고 앞으로의 팍팍한 생활도 걱정되어 "할머니, 이제 날도 더워지고 혼자 지내기 괜찮으시겠어요?" 운운하는 인사치레의 말을 여쭙자 그 할마시, PD를 빤히 쳐다보더니 하는 말씀. "잔소리 말고 먹기나 해라." 그리고 참으로 정곡을 찌른 이 말씀으로 카메라 주위의 사람들 다들 편안히 웃자, 이어서 할마시, "…살면 다 살게 마련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할마시와의 이 정담이 자막과 함께 이날 방송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씬이었다. 

 

 

 이런 것들 말고도, 이 능력과 관련된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고 또 우리 주위에서도 이 능력이 슬쩍슬쩍 드러나는 섹시하기 그지없는 순간이 간혹 있기 마련이다. 내가 하고싶은 '즉흥연기' 컨셉은 이런 순간들에 주목하고 그것을 스테이지 위로 끌어내는 작업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이 능력의 근저에 놓여있는 열쇠말이 바로 이다. 삶은 별 수 없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 자기 자신을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 어린아이처럼 매 순간순간 느끼고 보고 만지고 약동하라… 그렇게 살아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면, 또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토머스 모어처럼 죽기 직전 단두대 위에서 "내 수염은 잘리지 않도록 조심하슈. 그건 죄가 없으니"라고 농을 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