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도 가을이고, 가을의 쓸쓸하고 우수어리고 사색적인 분위기가 끌리기도 했다. 진지하고 생각 많아 보이는 외양 탓인지 남들도 그러더라. 군대에서 닉네임을 정할 때 '추남(秋男)'으로 뽑히기도 했다.ㅋㅋ 뜨문뜨문 이성(異性)에게 '가을과 어울리는 남자'라고 불리우면 속으로 혼자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의 계절을 겨울로 바꿔타려고 한다.
가을은 묘한 이미지의 계절이다. 가을의 최대 행사는 풍성한 수확일 것인데, 우리가 흔히 '가을' 하면 떠올리는 느낌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는 가을에 여러 가지 매력있는 키워드들, 이를테면 고독, 성숙, 낭만, 고요, 그리움, 추억…등등을 갖다붙이길 좋아한다. 수확의 풍요로움을 직접 겪어보지도 못한 애송이 도시촌놈들이 더 극성일 것이다.
가을은 뭇 생명들의 소멸을 찬찬히 보여주는데, 이는 다분히 계산적이다. 스러져가는 것을 애도하지는 못할 망정 음흉스런 전략으로 뻔뻔하게 '전시'하다니…. 가을은 아닌 척 하면서 제 자랑에 열심인 계절인 것이다. 가을은 자신이 화려한 것을 알면서 소박한 인물인 양 연기하는 헐리우드 여배우를 닮았다. 무대장치 또한 쏠쏠히다. 높고 푸른 하늘, 투명하고 선선한 공기, 울긋불긋한 단풍, 길가에 쌓인 낙엽…. 사람들은 가을이 수줍은 듯 드러내보이는 풍경에 환호한다.
가을은 이렇듯 처세에 능란하지만, 알고보면 제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과도기적인 계절이다. 가을은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속이 비어있는 자신의 공허함을 진한 단풍색으로 겨우 숨긴다. 그래야만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러므로 가을의 멋은 가을의 약함이다. 가을은 알게 모르게 관객에게 의존하는 불쌍한 계절이다. 제 자신의 진짜 풍성한 가치는 보려고도 하지 않는.
자, 이에 비해서 겨울은 어떤가?
겨울은 가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계절이다. 겨울은 멋을 모르고, 덧없는 멋 따위를 얼굴 애리는 추위로 한방에 날려버린다. 겨울은 삶이 관광이나 광고 같은 것이 아니라 결국 고통과 단련과 '견뎌냄'의 연속이라는 진실, 자신에게 주어진 아픔의 몫을 외로이 뚫고 나감으로써 비로소 한 사람의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는 진실을 직시하게 한다. 겨울은 가을처럼 의존적이지 않고 자족하며, 생명의 죽음을 가을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자신 안에 깊숙이 감춰준다. 그럼으로써 생명의 부활을 자신 안에 잉태한다.
크리스마스를 보라. 동방박사들이 짜증나는 열대야에 모기가 극성인 여름밤이나, 낙엽들이 부스럭대는 밍숭맹숭한 가을밤에 별들의 계시를 읽고 아기 예수를 찾아갔을 리 만무하다. 생명의 기운이 언 땅 속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저 겨울밤이야말로, 동방박사들의 험난한 여정과 갓 태어난 예수에 대한 경배을 빛내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겨울에는 원형적인 힘이 있다. 고랭지의 추위를 겪어낸 꽃이 한층 그윽한 색과 향기를 품어내듯, 혹한은 사람을 강인하고 굳건하게 만든다. 그리고 온갖 장식들과 곁가지들이 다 쳐내진 겨울의 잔혹함 속에서― 동화와 추억의 세계가 펼쳐진다. 마치 신화 속 영웅들을 찬미하는 서사시처럼, 성냥팔이 소녀의 아름다운 환상처럼. 어릴 적 손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으며 이불 속에서 뒹굴던 겨울밤의 기억, 찹쌀떡 장수의 긴긴 메아리, 눈 펑펑 쏟아지던 밤 친구들과의 눈싸움의 추억 등등― 이런 장면들은 누군들 그리워하고 있지 않으랴? 영화 의 여주인공이 매미울음 요란한 산속에서 "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쓰"를 외친 것은 아니었고, 의 남녀가 맨바닥을 뒹굴면서 명장면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양희은이 부른 란 노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길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엔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가을과 겨울
지금까지 '내 계절' 하면, 언제나 가을을 꼽았다. 나도 그랬고 남도 그랬다.
내 생일도 가을이고, 가을의 쓸쓸하고 우수어리고 사색적인 분위기가 끌리기도 했다. 진지하고 생각 많아 보이는 외양 탓인지 남들도 그러더라. 군대에서 닉네임을 정할 때 '추남(秋男)'으로 뽑히기도 했다.ㅋㅋ 뜨문뜨문 이성(異性)에게 '가을과 어울리는 남자'라고 불리우면 속으로 혼자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의 계절을 겨울로 바꿔타려고 한다.
가을은 묘한 이미지의 계절이다. 가을의 최대 행사는 풍성한 수확일 것인데, 우리가 흔히 '가을' 하면 떠올리는 느낌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는 가을에 여러 가지 매력있는 키워드들, 이를테면 고독, 성숙, 낭만, 고요, 그리움, 추억…등등을 갖다붙이길 좋아한다. 수확의 풍요로움을 직접 겪어보지도 못한 애송이 도시촌놈들이 더 극성일 것이다.
가을은 뭇 생명들의 소멸을 찬찬히 보여주는데, 이는 다분히 계산적이다. 스러져가는 것을 애도하지는 못할 망정 음흉스런 전략으로 뻔뻔하게 '전시'하다니…. 가을은 아닌 척 하면서 제 자랑에 열심인 계절인 것이다. 가을은 자신이 화려한 것을 알면서 소박한 인물인 양 연기하는 헐리우드 여배우를 닮았다. 무대장치 또한 쏠쏠히다. 높고 푸른 하늘, 투명하고 선선한 공기, 울긋불긋한 단풍, 길가에 쌓인 낙엽…. 사람들은 가을이 수줍은 듯 드러내보이는 풍경에 환호한다.
가을은 이렇듯 처세에 능란하지만, 알고보면 제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과도기적인 계절이다. 가을은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속이 비어있는 자신의 공허함을 진한 단풍색으로 겨우 숨긴다. 그래야만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러므로 가을의 멋은 가을의 약함이다. 가을은 알게 모르게 관객에게 의존하는 불쌍한 계절이다. 제 자신의 진짜 풍성한 가치는 보려고도 하지 않는.
자, 이에 비해서 겨울은 어떤가?
겨울은 가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계절이다. 겨울은 멋을 모르고, 덧없는 멋 따위를 얼굴 애리는 추위로 한방에 날려버린다. 겨울은 삶이 관광이나 광고 같은 것이 아니라 결국 고통과 단련과 '견뎌냄'의 연속이라는 진실, 자신에게 주어진 아픔의 몫을 외로이 뚫고 나감으로써 비로소 한 사람의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는 진실을 직시하게 한다. 겨울은 가을처럼 의존적이지 않고 자족하며, 생명의 죽음을 가을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자신 안에 깊숙이 감춰준다. 그럼으로써 생명의 부활을 자신 안에 잉태한다.
크리스마스를 보라. 동방박사들이 짜증나는 열대야에 모기가 극성인 여름밤이나, 낙엽들이 부스럭대는 밍숭맹숭한 가을밤에 별들의 계시를 읽고 아기 예수를 찾아갔을 리 만무하다. 생명의 기운이 언 땅 속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저 겨울밤이야말로, 동방박사들의 험난한 여정과 갓 태어난 예수에 대한 경배을 빛내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겨울에는 원형적인 힘이 있다. 고랭지의 추위를 겪어낸 꽃이 한층 그윽한 색과 향기를 품어내듯, 혹한은 사람을 강인하고 굳건하게 만든다. 그리고 온갖 장식들과 곁가지들이 다 쳐내진 겨울의 잔혹함 속에서― 동화와 추억의 세계가 펼쳐진다. 마치 신화 속 영웅들을 찬미하는 서사시처럼, 성냥팔이 소녀의 아름다운 환상처럼. 어릴 적 손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으며 이불 속에서 뒹굴던 겨울밤의 기억, 찹쌀떡 장수의 긴긴 메아리, 눈 펑펑 쏟아지던 밤 친구들과의 눈싸움의 추억 등등― 이런 장면들은 누군들 그리워하고 있지 않으랴? 영화 의 여주인공이 매미울음 요란한 산속에서 "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쓰"를 외친 것은 아니었고, 의 남녀가 맨바닥을 뒹굴면서 명장면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양희은이 부른 란 노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길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엔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이리하여 나의 계절을 이제 겨울로 갈아치웠고,
2008년의 가을도 이젠 다 갔는데….
모니터 앞에서 퀭한 나를 비웃듯 모기떼들 오늘따라 극성이다, 극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