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북한산이라고 부르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과 교감하고 또 시대사와 연관지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는듯 하다.
고서에 나오는 삼각산(북한산)
[삼국사기] 제사지에 의하면, 이때의 이름은 부아악(負兒岳)이다.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부아악(負兒岳)은 인수봉(仁壽峰)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그래서 "인수봉은 삼각산의 제1봉"이 된다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 시조 온조왕 기사(記事)를 보면,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온조(溫祚) 형제가 졸본부여에서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지금의 서울인 한산(漢山)에 이른 후, 그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하여
부아악(負兒岳)에 올라서 살만한 땅을 살펴보았다.
서기555년 신라 진흥왕이 삼각산을 국경으로 삼는다는 순수비(巡狩碑)를 비봉(碑峰)
에 세우고, 한강 이북지역을 행정구역상 북한산주(北漢山州)로 지명하고, 명산대천의 하나로서 소사(小祀)를 지냈다.
[고려]
도선국사는 이 산에 기도처를 정하여 도선암이란 초가(草家)암자를 짓고 지극한 정성
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갈 새나라가 일어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감응이 있어 남쪽 봉우리에 올라서서 살펴보니, 송악(지금의 개성)
일대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어 장차 도읍이 될 대명당(大明堂)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이름하여 '나라를 바라보았다'는 뜻으로 국망봉(國望峰)이라
하였으며, 도선(道詵)은 왕건의 부친 왕융을 만나 새 왕조 출현을 암시했다.
솔깃한 왕융은 매우 기뻐하면서 "새 왕조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물었다.
도선이 "천년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송악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삼각산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는 황급히 "아, 아니오. 삼각산에 막혀 500년
가오리다" 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려(高麗)는 474년만에 멸망해 한양에 도읍지를
넘겨야 했다.
*국망봉은 지금의 만경대를 말한다!
[고려사] 서희전(徐熙傳)에 의하면, 서희가 성종에게 아뢴 말 중에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라고 한 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삼국시대 이래
부아악이라고 불리어 오던 산명이 고려시대부터 삼각산으로 불리어지기 시작하였
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확고히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조선시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북한지] [대동지지] 등의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모두 한결같이 삼각산(三角山)으로 기록하였고, 인수·백운·만경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三)개의 뿔(角)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또한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이루고 있는 그 모양이 세 개의 뿔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세 뿔'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세 뿔'이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삼각산'이나 '서울'의
어원이 되었다.
'세 뿔'을 한자(漢字)로 쓰면, 세(서) → 삼(三)과 뿔 → 각(角)이 되어서
'삼각산'(三角山)으로 되어지고,
'세(석 서)뿔'이 '셔불(세불)' = 불 = 울 곧 '서불→서울'로 되어졌다는 설이 있다.
정도전은 이미 삼각산에 올라 남쪽 양지 바른 곳을 바라보며 마음 속에 이곳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읍지를 바라보았다 하여 망경대(望京臺)라는 봉우리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그의 주장대로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짓게 됨으로서 또 한번
건국의 구심점을 삼각산에 두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신증동국여지승람]등 대부분의 조선시대 지리서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화산(華山) 화악(華岳) 또는 중악(中岳)으로 소개되어 있다.
[삼국사기]에서 '진흥왕 16년 10월에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彊域)을 획정(劃定)하였다'고 한 기록이나, 비봉(碑峰)의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진 '북한산주(北漢山州)'라고 새겨진 것 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 14년(BC.5)에 한강 이남으로 천도한 뒤 한강 이북
의 한산마을을 '북쪽 한산'이란 의미로 북한산(北漢山)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어 마을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북한산'이 고려시대부터 천여 년 간 사용해온 '삼각산'이란 본래의 산 이름을 제치고
일반화 된 것은 1915년에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금서룡(今西龍)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는 삼각산의 유적을 조사하고 그 보고서의 명칭을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북한산은 경성의 북방에 솟아 있는 조선의 명산으로, 이 산은 일명 삼각산으로도 일컫고 달리 화산 또는 화악이란 이름도 있다'고 기록한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일제시대]
우리나라를 점령한 일본은 민간인도 거주하지 않고 군인도 없는 곳에 일본 헌병대를
주둔하게하고 삼각산을 점령하였다.
모든 사찰을 불태웠으며 1927년에는 민족정기의 훼손을 목적으로 쇠난간을 설치하고철심까지 박았다고 한다.
그것의 철거는 1980년에야 모두 철거 되었다.
조선 말기 고종의 재임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국호를 바꾸었으나 일본의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 이어 1910년에 합방조약을 강제로 체결함으로써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때 천도교의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선생은 얼굴에 노기를 감추지 못한 채 천도교 중앙총부 직원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사대아부(事大阿附)는 비자주성(非自主性)이요, 파벌독재(派閥獨裁)는 비민주성(非民主性)이요, 훼예모욕(毁譽謀辱)은 비민족성(非民族性)이니 이상은 3대 망국근성이니라. 앞으로 국권회복(國權回復)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될 터이니 내 반드시 10년 안에 국권회복을 이루어 놓으리"고 선언하고 조국광복을 위한 구상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이것은 후일 3.1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동남아의 여러나라들의 독립운동에 선두에서 모범을 보인 예가 되었다.
삼각산VS북한산
삼각산 VS 북한산
시대에 따라 많은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삼국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횡악(橫岳)이라고도 이름하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삼각산(三角山)·화산(華山)·화악(華嶽)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북한산이라고 부르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과
교감하고 또 시대사와 연관지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는듯 하다.
고서에 나오는 삼각산(북한산)
[삼국사기] 제사지에 의하면, 이때의 이름은 부아악(負兒岳)이다.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부아악(負兒岳)은 인수봉(仁壽峰)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그래서 "인수봉은 삼각산의 제1봉"이 된다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 시조 온조왕 기사(記事)를 보면,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온조(溫祚) 형제가 졸본부여에서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지금의 서울인 한산(漢山)에 이른 후, 그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하여
부아악(負兒岳)에 올라서 살만한 땅을 살펴보았다.
서기555년 신라 진흥왕이 삼각산을 국경으로 삼는다는 순수비(巡狩碑)를 비봉(碑峰)
에 세우고, 한강 이북지역을 행정구역상 북한산주(北漢山州)로 지명하고, 명산대천의 하나로서 소사(小祀)를 지냈다.
[고려]
도선국사는 이 산에 기도처를 정하여 도선암이란 초가(草家)암자를 짓고 지극한 정성
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갈 새나라가 일어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감응이 있어 남쪽 봉우리에 올라서서 살펴보니, 송악(지금의 개성)
일대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어 장차 도읍이 될 대명당(大明堂)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이름하여 '나라를 바라보았다'는 뜻으로 국망봉(國望峰)이라
하였으며, 도선(道詵)은 왕건의 부친 왕융을 만나 새 왕조 출현을 암시했다.
솔깃한 왕융은 매우 기뻐하면서 "새 왕조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물었다.
도선이 "천년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송악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삼각산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는 황급히 "아, 아니오. 삼각산에 막혀 500년
가오리다" 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려(高麗)는 474년만에 멸망해 한양에 도읍지를
넘겨야 했다.
*국망봉은 지금의 만경대를 말한다!
[고려사] 서희전(徐熙傳)에 의하면, 서희가 성종에게 아뢴 말 중에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라고 한 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삼국시대 이래
부아악이라고 불리어 오던 산명이 고려시대부터 삼각산으로 불리어지기 시작하였
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확고히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조선시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북한지] [대동지지] 등의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모두 한결같이 삼각산(三角山)으로 기록하였고,
인수·백운·만경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三)개의 뿔(角)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또한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이루고 있는 그 모양이 세 개의 뿔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세 뿔'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세 뿔'이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삼각산'이나 '서울'의
어원이 되었다.
'세 뿔'을 한자(漢字)로 쓰면, 세(서) → 삼(三)과 뿔 → 각(角)이 되어서
'삼각산'(三角山)으로 되어지고,
'세(석 서)뿔'이 '셔불(세불)' = 불 = 울 곧 '서불→서울'로 되어졌다는 설이 있다.
정도전은 이미 삼각산에 올라 남쪽 양지 바른 곳을 바라보며 마음 속에 이곳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읍지를 바라보았다 하여 망경대(望京臺)라는 봉우리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그의 주장대로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짓게 됨으로서 또 한번
건국의 구심점을 삼각산에 두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신증동국여지승람]등 대부분의 조선시대 지리서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화산(華山) 화악(華岳) 또는 중악(中岳)으로 소개되어 있다.
[삼국사기]에서 '진흥왕 16년 10월에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彊域)을 획정(劃定)하였다'고 한 기록이나, 비봉(碑峰)의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진 '북한산주(北漢山州)'라고 새겨진 것 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 14년(BC.5)에 한강 이남으로 천도한 뒤 한강 이북
의 한산마을을 '북쪽 한산'이란 의미로 북한산(北漢山)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어 마을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북한산'이 고려시대부터 천여 년 간 사용해온 '삼각산'이란 본래의 산 이름을 제치고
일반화 된 것은 1915년에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금서룡(今西龍)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는 삼각산의 유적을 조사하고 그 보고서의 명칭을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북한산은 경성의 북방에 솟아 있는 조선의 명산으로, 이 산은 일명 삼각산으로도 일컫고 달리 화산 또는 화악이란 이름도 있다'고 기록한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일제시대]
우리나라를 점령한 일본은 민간인도 거주하지 않고 군인도 없는 곳에 일본 헌병대를
주둔하게하고 삼각산을 점령하였다.
모든 사찰을 불태웠으며 1927년에는 민족정기의 훼손을 목적으로 쇠난간을 설치하고철심까지 박았다고 한다.
그것의 철거는 1980년에야 모두 철거 되었다.
조선 말기 고종의 재임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국호를 바꾸었으나 일본의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 이어 1910년에 합방조약을 강제로 체결함으로써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때 천도교의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선생은 얼굴에 노기를 감추지 못한 채 천도교 중앙총부 직원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사대아부(事大阿附)는 비자주성(非自主性)이요, 파벌독재(派閥獨裁)는 비민주성(非民主性)이요, 훼예모욕(毁譽謀辱)은 비민족성(非民族性)이니 이상은 3대 망국근성이니라. 앞으로 국권회복(國權回復)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될 터이니 내 반드시 10년 안에 국권회복을 이루어 놓으리"고 선언하고 조국광복을 위한 구상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이것은 후일 3.1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동남아의 여러나라들의 독립운동에 선두에서 모범을 보인 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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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삼각산(북한산)을 자치단체에서 서로의 주장을 하고있다.
요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름이 무엇이건
그것은 중요치 않으며 지금의 산을 아끼고 잘 보살펴 후대에 물려주는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싶다.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는 그 산을 그 명산을두고 이름이 어떻네~ 일제의 잔재가
어떻네~를 논한다는것 자체가 마음에 안든다.
역사적으로 입증이 다 되어있는 것을 두고
방구가 맞다~ 뽕이 맞다~를 논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좀더 훼손을 줄이면서
시민들이 더 충분히 즐길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게 어떤가~라고 반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