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호]마르코 폴로와 콜럼버스를 만나다

김안나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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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어린 시절.

“안나야, <엄마 찾아 삼만리> 한다!”

엄마가 나를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목청 높여 주제가를 따라 불렀다.

 

아득한 바다 저 멀리. 산 설고 물길 설어도.

나는 찾아가리. 외로운 길 삼만리.

바람아, 구름아. 엄마 소식 전해다오.

엄마가 계신 곳 예가 거긴가.

엄마 보고 싶어. 빨리 돌아와줘요.

아~ 외로운 길. 가도가도 끝없는 길 삼만리.

 

-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제가

 

보고픈 엄마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나는 마르코의 담대한 용기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가혹한 시련이 찾아올 때면 내 친구의 일처럼 소리 내어 펑펑 울기도 했다.

푸르른 바닷물이 보석을 뿌려놓은 듯 눈부시게 반짝이며 넘실대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아름답던 마르코의 고향은 어린 나에게는 갈 수 없는 만화 속 세상인줄로만 알았다. 그런 곳이 밀라노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제노바라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내가 동경하던 그 곳에 유년 시절 소중한 내 추억의 편린을 안고 여행을 떠난다.

 

  # 산 로렌조 대성당 가는 길

  제노바의 피아짜 프린치뻬(Piazza Principe) 역을 나오자마자 콜럼버스의 동상이 보인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선뜻 가겠다고 나선 호기심과 열정으로 충만했던 탐험가 콜럼버스. 우리는 영미식 발음대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라고 하지만 동상에는 그의 본명인 크리스토포로 콜롬보(Cristoforo Colombo)로 새겨져 있다.

 

 

 콜럼버스의 동상을 뒤로 하고 10분쯤 걸었을까? 강렬한 짙은 빨강을 휘감은 건물이 눈에 띈다. 가리발디길(Via Garibaldi) 입구에 있는 팔라쪼 로쏘(Palazzo Rosso: 붉은 궁전)이다. 그러고 보니 마르코의 성은 로씨(Rossi)다. 우리나라의 김씨처럼 흔한 성인 로씨는 이탈리아어로 빨간색을 뜻하는 로쏘(Rosso)의 복수형이다.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벌써 산 로렌조 대성당(Cattedrale di San Lorenzo)에 도착해버렸다.

 


 

좁은 길 사이로 살짝 살짝 감질나게 보이던 검은색과 흰색의 줄무늬 대리석 건물이 내 앞에 위용을 드러냈다. 산 로렌조 성당은 교황 젤라시오 2세가 성 로렌조에게 바치기 위해 지은 성당으로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건축되었다. 내부 장식들도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양식 등 다양한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색색의 빛깔들이 어두운 성당 바닥에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세례자 요한에게 바쳐진 예배당이 화려하기 그지 없다. 세례자 요한이 제노바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1098년 세례자 요한의 재를 이 곳으로 갖고 온 이후부터라고 한다. 예배당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박물관이 나오는데 이 박물관에서는 최후의 만찬에 사용되었다는 성배도 볼 수 있다.

성당 밖으로 나와 고딕 양식의 세 개의 문 중, 오른쪽 문 옆 조각들을 찬찬히 훑기 시작했다. 성당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 이야기에 얽힌 조각을 찾기 위해서이다. 성당 건축 공사가 막바지로 접어들 즈음 공사에 참여했던 조각가들 중 한 명이 자신이 사랑하던 개를 잃어버려 그 개를 기억하기 위해 조그맣게 개를 조각해 넣었다고 한다. 잘 보이는 곳에 있다는데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코 앞에 리모컨을 두고도 못 찾는 내겐 ‘개 조각 찾기’는 너무 고난이도 미션이었나 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젠 콜럼버스의 집으로 가본다.

 

 

# 호기심과 열정의 바다 사나이

성당 이름을 딴 산 로렌조 길을 따라가다보니 소프라나 문이 보인다. 문을 나서자마자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이탈리아와 제노바 기를 휘날리고 있다. 직사각형의 건물 입구로 들어가면 한 명이 겨우 통과할만한 좁은 통로가 있다. 그 통로를 따라 몇 발자국 옮기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오고, 계단 뒤쪽에 있는 공간은 직물공이셨던 콜럼버스 아버지의 작업 공간이다. 입구 옆 작은 공간은 상점으로 사용하였고 2, 3층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콜롬버스는 1451년에 제노바 근교에서 태어나 3살 때 이 곳으로 이사 와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아니 오히려 부족했던 그에게 무엇이 그를 바다 저 편으로 이끌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했을까? 지구는 평평한 땅이라 끝까지 가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며, 그곳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공포와 미신이 난무했던 그 시대에 말이다.

제노바의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 이전 그리스인과 포니키아인들이 지중해를 누비며 교역하던 시절부터 시작된다. 11세기에는 상인과 귀족의 단결로 자치도시를 만들었고,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소아시아와 동 지중해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 원정을 통해 전쟁 특수를 누리며 베네치아와 함께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2, 13세기에는 많은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였고, 상업, 금융,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중해는 물론 내륙으로도 영토확장을 해서 12세기부터 500년 동안 지속된 역사 속 황금기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가 살던 시대, 제노바는 지중해 일대를 군림하던 해양 도시국가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당시 바다에서 바라본 제노바의 인상은 오늘날의 뉴욕쯤 되지 않을까 한다. 제노바에는 5층짜리 건물들이 해변을 따라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는데, 이 정도 높이의 건물이 있는 도시는 유럽에서 많지 않았다.

 


 

오늘날 바다에서 보는 제노바는 건물들이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 복잡하고, 무질서한 도시처럼 보이는데 혼란함 속에도 한때 크게 번영하던 도시 국가였음을 증명해주는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특히 항구 주변의 해변 길에는 번영하던 해상 공화국의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 산 죠르지오 은행 건물이 먼저 눈에 띈다. 이 은행은 세계 최초의 은행 가운데 하나로, 15세기 때부터 이곳이 본부가 되어 제노바의 식민지를 경영했다. 이 건물의 지하는 13세기에 감옥으로 사용되었는데, 1298년 제노바 함대가 베네치아 함대를 격파했을 때 마르코 폴로가 포로로 수감되었다. 그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감옥 동료인 루스티첼로에게 동방 여행 중에 보고 들은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전해들은 루스티첼로에 의해 저술된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방견문록’이다.

 이 동방견문록은 서양인들에게 동양을 알리는 가교가 된 것은 물론 콜럼버스가 지중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울타리 밖으로 과감히 뛰쳐 나갈 수 있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첫째는 삶에, 모든 일에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성 친구에게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정말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봐, 이건 불가능해! 이건 안 돼! 안 돼!’라고 할 때 ‘아니, 난 그런 식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하겠어’라고 자유롭게 결정을 내리려면 능력이 있어야만 됩니다.”

- 렌조 피아노 (Renzo Piano, 1937~ )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제노바 출신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대학 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콜럼버스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칠 줄 모르는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렌조 피아노의 말에 껄껄걸 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심금을 울리던 기억의 단편을 찾아 떠나온 제노바에서 지중해의 강자로서 군림하던 과거와 이탈리아 제 1의 항구로서 교역의 중심지이자 뜨거운 태양이 푸른 바다의 싱그러움과 잘 어울리는 관광 도시로서의 현재를 보았다. 여기에 내 작은 친구 마르코와 마에스트로 렌조 피아노. 그리고 콜럼버스의 호기심과 열정을 이어받은 제노베제(Genovese: 제노바 사람)들이 제노바의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