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에 학생들과 쫑파티 중 먼저 가는 여학생에게 선생님이 한 말. ‘See you later.’
영어를 잘 못하는 그 여학생은 'See you later'를 헤어질 때 관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다음에 보자'라는 문자 그대로 해석을 했다는, 그래서 '다음 언제?'라는 뜻으로 'When?'이라 반문했고, 당황한 선생님은 'Uhm... tomorrow?'라고 대답해서 데이트가 시작됐다는.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했을 때, 내가 ‘그래’라고 한 말을 ‘세계여행 가자는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이야.’로 받아들일 줄을 몰랐지. 진정. 메신저로 얘기할 때, 가만히 보고 있기 뭐해서 다른 일 하며 '응'이라고 써놓듯, 그냥 한 말이었어.
모든 상황이 그저 장난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여행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번 생각해봐. 1년 여행하고 와서의 삶을. 아니 1년 후까지 갈 것도 없고 떠나기 전까지 생길 갖가지 번거로운 일들을.
당장 우리의 집은 어떻게 할거야? 전세 기간 만료도 안되어서 나가면 복비도 우리가 내야 한다는데. 차는 어떻게 할거고? 산지 1년 밖에 안된 새 차인데 팔거야? 몇 개 안되지만 내가 하나하나 고른 우리의 세간 살림들은 어쩌지?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하지? 한참 돈 벌 나이에 나가서 놀겠다는 우리를 이해하실까? 여행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지? 전세 빼면 그 돈으로 다 대출금 갚아야 하는데, 무슨 돈으로 여행을 할까? 나는 지금 잠도 못자며 끝없는 물음표와 싸우고 있는데 어쩜 저리 행복한 모습으로 잠을 잘 수 있는 거지?
이런 마음으로 자현이 나를 바라보았다는 사실, 심지어 자현이 고민을 했다는 사실조차 맹세코 전혀 몰랐다.
하긴, 설혹 알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정말 하고 싶다, 내 뜻을 이해하고 따라줬으면 좋겠다'라는 '굉장히 논거가 취약한 설득' 이외에는 없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자현은 스스로 자신을 설득할 거리를 찾았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의 어머니는
궁지에 몰리는 마지막 순간에는 버릇처럼 책을 떠올리는 사람이다.
술만 마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남편은 '정신분열증의 이해와 치료'를,
학창 시절 가출을 한 딸은 문제아이 다루는 교육론을, 살인미수로 잡혀
간 아들은 형법에 관련된 책을 읽게 했다.
세계 여행을 떠나자는 철없는 남편은 자현에게 책을 찾아 읽게 만들진 않았지만,
평상 시 같으면 스쳐지나갔을 책이 자현 마음 속에 큰 의미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 책이 바로 김한길의 '눈뜨면 없어라'이다.
나는 김한길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가져온 '여자의 남자' 1권부터 3권까지,
1교시부터 야간 자율학습시간까지 선생님 눈을 피해 책상 서랍에 넣고 하루만에 다 읽었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아까웠고, 도시락 까먹는 시간마저도 아까울 정도로 사로잡았던 책이다.
우습게도 그렇게 재밌게 읽었던 책의 저자가 '눈뜨면 없어라'라는 책을 썼는지조차 몰랐다.
책은 김한길의 스물 아홉 시절을 담고 있다.
미국으로 도미한 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이야기,
사랑하던 두 남녀가 부부가 되어 서로에게 적응하는 이민기이다.
자현이 스스로 찾은 설득거리는 책의 본문이 아닌 작가 후기에 나온다.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난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 집 앞에 서는 거에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대를 사줬다고 해도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에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려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anyway,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의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이혼에 성공.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
나중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금을 희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이 말은 지금 쓰지 않고 절약해서 저금을 조금씩 해야 나중에 목돈이 생기고,
이 돈을 쓰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가정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 방법으로 정말 행복해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중을 위해 미루고 미루다가 쓸만큼 돈이 모이니
갑자기 병이 나거나, 배우자가 바람을 필 수도 있다.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서 큰 기쁨과 비싼 행복을 맞을 수도 있지만,
당시 내게 필요했던 답은 지금의 작은 즐거움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자현은 김한길의 '작가 후기'에서 내가 원하는 길을 찾은 것 같다.
자현은 수잔에게 말했다.
이글이 제 결정에 결정적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정말 지금 제상황에 적절한 인용구가 되어버렸습니다. 구태여 책장의 모서리를 왜 접어 놓았던 것인지 그 책을 집어든 순간에 접혀있던 그 페이지가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미 마음은 여행을 가는 것으로 맘을 정해 놓은 뒤 이 글을 읽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마음을 비우니, 모든 것이 행복하고 감사해졌습니다. 혼자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저와 꼭 가고 싶다는데. 다른 여자랑도 아니구. 갔다와도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겠지. 날 굶기기야 하겠어?
지금 누려야할 것들은 지금 누리려고 합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15개월여의 여행 후엔 속된 말로 "개털" 되겠지요...^^;; 그래도 웃을 수 있을거예요~
자현은 완전 설득이라기 보다는 설득 반, 포기 반의 상태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Our Kiss Story] No.3 눈뜨면 없어라.
자기가 여행을 떠나자고 했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지.
Yes! Why Not!
그런데 왜 그런 말 있잖아.
의미를 전달한다기 보다는 추임새 같은 말.
전에 자기가 나한테 해준 얘기 기억나?
자기 영어 선생님이 여자친구랑 사귀게 된 계기.
월말에 학생들과 쫑파티 중 먼저 가는 여학생에게 선생님이 한 말.
‘See you later.’
영어를 잘 못하는 그 여학생은 'See you later'를 헤어질 때 관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다음에 보자'라는 문자 그대로 해석을 했다는,
그래서 '다음 언제?'라는 뜻으로 'When?'이라 반문했고,
당황한 선생님은 'Uhm... tomorrow?'라고 대답해서 데이트가 시작됐다는.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했을 때, 내가 ‘그래’라고 한 말을
‘세계여행 가자는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이야.’로 받아들일 줄을 몰랐지. 진정.
메신저로 얘기할 때, 가만히 보고 있기 뭐해서 다른 일 하며 '응'이라고 써놓듯,
그냥 한 말이었어.
모든 상황이 그저 장난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여행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번 생각해봐.
1년 여행하고 와서의 삶을.
아니 1년 후까지 갈 것도 없고 떠나기 전까지 생길 갖가지 번거로운 일들을.
당장 우리의 집은 어떻게 할거야?
전세 기간 만료도 안되어서 나가면 복비도 우리가 내야 한다는데.
차는 어떻게 할거고? 산지 1년 밖에 안된 새 차인데 팔거야?
몇 개 안되지만 내가 하나하나 고른 우리의 세간 살림들은 어쩌지?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하지? 한참 돈 벌 나이에 나가서 놀겠다는 우리를 이해하실까?
여행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지? 전세 빼면 그 돈으로 다 대출금 갚아야 하는데, 무슨 돈으로 여행을 할까?
나는 지금 잠도 못자며 끝없는 물음표와 싸우고 있는데 어쩜 저리 행복한 모습으로 잠을 잘 수 있는 거지?
이런 마음으로 자현이 나를 바라보았다는 사실, 심지어 자현이 고민을 했다는 사실조차 맹세코 전혀 몰랐다.
하긴, 설혹 알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정말 하고 싶다, 내 뜻을 이해하고 따라줬으면 좋겠다'라는 '굉장히 논거가 취약한 설득' 이외에는 없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자현은 스스로 자신을 설득할 거리를 찾았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의 어머니는
궁지에 몰리는 마지막 순간에는 버릇처럼 책을 떠올리는 사람이다.
술만 마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남편은 '정신분열증의 이해와 치료'를,
학창 시절 가출을 한 딸은 문제아이 다루는 교육론을, 살인미수로 잡혀
간 아들은 형법에 관련된 책을 읽게 했다.
세계 여행을 떠나자는 철없는 남편은 자현에게 책을 찾아 읽게 만들진 않았지만,
평상 시 같으면 스쳐지나갔을 책이 자현 마음 속에 큰 의미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 책이 바로 김한길의 '눈뜨면 없어라'이다.
나는 김한길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가져온 '여자의 남자' 1권부터 3권까지,
1교시부터 야간 자율학습시간까지 선생님 눈을 피해 책상 서랍에 넣고 하루만에 다 읽었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아까웠고, 도시락 까먹는 시간마저도 아까울 정도로 사로잡았던 책이다.
우습게도 그렇게 재밌게 읽었던 책의 저자가 '눈뜨면 없어라'라는 책을 썼는지조차 몰랐다.
책은 김한길의 스물 아홉 시절을 담고 있다.
미국으로 도미한 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이야기,
사랑하던 두 남녀가 부부가 되어 서로에게 적응하는 이민기이다.
자현이 스스로 찾은 설득거리는 책의 본문이 아닌 작가 후기에 나온다.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난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 집 앞에 서는 거에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대를 사줬다고 해도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에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려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anyway,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의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이혼에 성공.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
나중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금을 희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이 말은 지금 쓰지 않고 절약해서 저금을 조금씩 해야 나중에 목돈이 생기고,
이 돈을 쓰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가정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 방법으로 정말 행복해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중을 위해 미루고 미루다가 쓸만큼 돈이 모이니
갑자기 병이 나거나, 배우자가 바람을 필 수도 있다.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서 큰 기쁨과 비싼 행복을 맞을 수도 있지만,
당시 내게 필요했던 답은 지금의 작은 즐거움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자현은 김한길의 '작가 후기'에서 내가 원하는 길을 찾은 것 같다.
자현은 수잔에게 말했다.
이글이 제 결정에 결정적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정말 지금 제상황에 적절한 인용구가 되어버렸습니다.
구태여 책장의 모서리를 왜 접어 놓았던 것인지 그 책을 집어든 순간에 접혀있던 그 페이지가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미 마음은 여행을 가는 것으로 맘을 정해 놓은 뒤 이 글을 읽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마음을 비우니, 모든 것이 행복하고 감사해졌습니다.
혼자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저와 꼭 가고 싶다는데. 다른 여자랑도 아니구.
갔다와도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겠지. 날 굶기기야 하겠어?
지금 누려야할 것들은 지금 누리려고 합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15개월여의 여행 후엔 속된 말로 "개털" 되겠지요...^^;;
그래도 웃을 수 있을거예요~
자현은 완전 설득이라기 보다는 설득 반, 포기 반의 상태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현 역시 반짝이는 눈으로 여행 준비를 함께 했던 것 같다.
김한길 전 의원이 '그 순간'을 만들어주었음을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눈뜨면 없어라'를 통해 떠날 용기를 얻은 우리의 여행은 눈뜨면 새로움으로 가득했고,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온지 1년도 훌쩍 지난 어느 아침,
눈을 뜨니 여행둥이 방맹이가 우리 사이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