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여기는 한 예술가가 존재한다면 그는 다름아닌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우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us Mozart)일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길었지만 그가 서명할때 그리스식 이름인 테오필루스를 프랑스식으로 표기한 'Amade'라고 했고 후의 사람들은 이것을 라틴어 표기로 바꾸어 아마데우스라고 불렀다. 또한 음악사의 역사를 새롭게 바꾼 예술가가 존재한다면 그는 '루트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ven)'일 것이다. 이 둘은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들이었으며, 음악의 역사 중 가장 유명한 작곡가일 것이다.
둘은 같은 고전시대에 살았으며 음악의 중심지인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또한 모짜르트와 베토벤은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때부터 음악활동을 해왔다. 물론 어렸을때는 모짜르트의 재능이 더 뛰어났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토벤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모짜르트와 같이 되게 하려고 혹독하게 베토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하지만 모짜르트는 이미 6살때 작곡을 할 정도로 음악에 매우 천재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동시대에 살았던 그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매우 달랐다.
먼저 모짜르트는 타고난 천재였지만 베토벤은 모짜르트처럼 뛰어난 천재는 아니었다.
모짜르트는 정말 천재라 불릴만큼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네살때 피아노를 배웠고 6살때는 작곡을 하게 되어 교황앞에서 연주하고, 미사를 드리러 갔다가 그곳에서 한번 들은 성가를 따서 악보로 옮겨적은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베토벤은 모짜르트처럼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다. 베토벤은 11살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에 모짜르트처럼 어렸을때의 전적이 화려하지는 않다.
두번째로 모짜르트는 짧은 인생을 살았고 많은 곡을 남겼지만 베토벤은 오래 살았고 모짜르트처럼 많은 곡을 남기지 않았다.
모짜르트는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수의 곡을 남겼다. 모짜르트는 곡을 매우 빨리썼다고 한다. 교향곡 하나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일뿐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항상 머릿속에서 음악을 생각했다고 한다. 당구를 칠 때도, 내기를 할때도, 밥을 먹고 잠을 잘때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음악이 떠 나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다 정리 한 후 그리고는 오선지에 옮겨적었다. 그랬기 때문에 빨리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영화 [볼프강아마데우스 모짜르트] 에서도 마지막 곡을 쓸때 그는 살리에르에게 음을 지시하고 살리에르는 그것을 받아적는다. 그것만 봐도 그의 이러한 생활을 알 수 있다.
반면 베토벤은 60살 가까이를 살았다. 모짜르트의 거의 두배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곡은 모짜르트보다 적다. 하지만 그는 곡을 쓸때 최고의 곡을 쓰기 위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곡은 정말 주옥같은 곡들이 많다. 하나하나 다 유명한 곡들 뿐이다. 극단적인 예로 베토벤은 생애동안 바이올린 협주곡을 하나밖에 쓰지 않았지만 그 협주곡은 아직까지도 제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이다. 또한 그가 남긴 현악 사중주 곡은 4개밖에 없지만 네곡 다 매우 유명하다.
세번째로 모짜르트는 그리 화려한 인생을 살지 않았지만 베토벤의 인생은 매우 화려했다.
모짜르트는 짧은 생애를 살았고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 졌지만, 낭비벽과 술을 너무 좋아한 탓에 그의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다. 돈을 많이 받았지만 항상 받는 것 보다 많이 썼고, 유명해 졌지만 너무 겸손하지 못해서 항상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반면 베토벤은 모짜르트보다 뒤늦게 인정받은 대신에 그의 생애는 매우 화려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았고, 칭송을 받았다. 극적인 예화로 그가 괴테와 같이 길을 걸어가고 있을때 사람들이 그들에게 환호를 하자 베토벤은 괴테에게 "이 박수갈채는 나를 위한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오." 라고 했다고 할 정도였다.
네번째로 모짜르트는 사교성이 좋았지만 베토벤은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좋아하지 않앗다.
모짜르트는 매우 사교적이었고 활발했다. 사교계에 끼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때문에 사교적이지 못했고 사람들과의 어울리는 자리를 피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서 그는 원래 자신은 매우 사교적이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귀가 들리지 않은 후 부터는 그것을 들키기 싫어 사람들을 피해다녔고, 안들리는 만큼 짜증을 냈기 때문에 자신을 사람들이 포악하다고 여긴다며 슬퍼했다.
다섯번째로 모짜르트는 쉽고 발랄한 음악을 많이 썼지만 베토벤은 웅장하고 복잡하다.
모짜르트의 작품은 매우 발랄하고 듣기 쉽다. 또 악보도 단순하다. 태아음악으로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아름다운 느낌의 곡을 많이 썼다.
반면 베토벤의 곡은 매우 복잡하고 웅장하다. 그는 낭만시대의 시초라고 불릴 만큼 곡의 형식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고 듣기 쉬운 화성이나 음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차이점이 있는 이유는 둘이 같은 시대를 살기는 했으나 살던 세계가 달랐기 때문이다. 똑같은 고전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모짜르트는 베토벤보다 20년 정도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고전주의 초기에 속하는 작곡가이고, 베토벤은 고전주의 후기, 낭만주의 초기에 속하는 작곡가이다.
초기 고전주의 시대에는 살롱 문화가 발전해 있어 아마추어들도 쉽게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매우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후기 고전주의 시대에는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이 아니라,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곡을 쓰기를 베토벤은 원했다.
모짜르트는 타고난 천재였고 베토벤은 그의 장애를 극복하고 노력해서 된 천재였다.
하지만 모짜르트는 단지 그 시대에 음악을 즐겼고, 그 시대에 음악을 발전시킨 만면, 베토벤은 후기 고전주의 시대를 열었고 초기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다. 현재음악사에서 베토벤의 업적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음악문화를 변화시켰으며 지금의 교향곡의 형식을 정했고 후대의 모든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세기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음악의 혁명가 루트비히 반 베토벤
세기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음악의 혁명가 루트비히 반 베토벤
모든 사람들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여기는 한 예술가가 존재한다면 그는 다름아닌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우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us Mozart)일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길었지만 그가 서명할때 그리스식 이름인 테오필루스를 프랑스식으로 표기한 'Amade'라고 했고 후의 사람들은 이것을 라틴어 표기로 바꾸어 아마데우스라고 불렀다.
또한 음악사의 역사를 새롭게 바꾼 예술가가 존재한다면 그는 '루트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ven)'일 것이다.
이 둘은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들이었으며, 음악의 역사 중 가장 유명한 작곡가일 것이다.
둘은 같은 고전시대에 살았으며 음악의 중심지인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또한 모짜르트와 베토벤은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때부터 음악활동을 해왔다. 물론 어렸을때는 모짜르트의 재능이 더 뛰어났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토벤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모짜르트와 같이 되게 하려고 혹독하게 베토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하지만 모짜르트는 이미 6살때 작곡을 할 정도로 음악에 매우 천재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동시대에 살았던 그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매우 달랐다.
먼저 모짜르트는 타고난 천재였지만 베토벤은 모짜르트처럼 뛰어난 천재는 아니었다.
모짜르트는 정말 천재라 불릴만큼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네살때 피아노를 배웠고 6살때는 작곡을 하게 되어 교황앞에서 연주하고, 미사를 드리러 갔다가
그곳에서 한번 들은 성가를 따서 악보로 옮겨적은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베토벤은 모짜르트처럼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다. 베토벤은 11살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에 모짜르트처럼 어렸을때의 전적이 화려하지는
않다.
두번째로 모짜르트는 짧은 인생을 살았고 많은 곡을 남겼지만 베토벤은 오래 살았고 모짜르트처럼 많은 곡을 남기지 않았다.
모짜르트는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수의 곡을 남겼다. 모짜르트는 곡을 매우 빨리썼다고 한다. 교향곡 하나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일뿐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항상 머릿속에서 음악을 생각했다고 한다. 당구를 칠 때도, 내기를 할때도, 밥을 먹고 잠을 잘때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음악이 떠
나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다 정리 한 후 그리고는 오선지에 옮겨적었다. 그랬기 때문에 빨리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영화 [볼프강아마데우스 모짜르트]
에서도 마지막 곡을 쓸때 그는 살리에르에게 음을 지시하고 살리에르는 그것을 받아적는다. 그것만 봐도 그의 이러한 생활을 알 수 있다.
반면 베토벤은 60살 가까이를 살았다. 모짜르트의 거의 두배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곡은 모짜르트보다 적다. 하지만 그는 곡을 쓸때 최고의 곡을 쓰기 위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곡은 정말 주옥같은 곡들이 많다. 하나하나 다 유명한 곡들 뿐이다. 극단적인 예로 베토벤은 생애동안 바이올린 협주곡을
하나밖에 쓰지 않았지만 그 협주곡은 아직까지도 제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이다. 또한 그가 남긴 현악 사중주 곡은 4개밖에 없지만 네곡 다 매우 유명하다.
세번째로 모짜르트는 그리 화려한 인생을 살지 않았지만 베토벤의 인생은 매우 화려했다.
모짜르트는 짧은 생애를 살았고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 졌지만, 낭비벽과 술을 너무 좋아한 탓에 그의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다.
돈을 많이 받았지만 항상 받는 것 보다 많이 썼고, 유명해 졌지만 너무 겸손하지 못해서 항상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반면 베토벤은 모짜르트보다 뒤늦게 인정받은 대신에 그의 생애는 매우 화려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았고, 칭송을 받았다. 극적인 예화로 그가 괴테와
같이 길을 걸어가고 있을때 사람들이 그들에게 환호를 하자 베토벤은 괴테에게 "이 박수갈채는 나를 위한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오." 라고 했다고 할 정도였다.
네번째로 모짜르트는 사교성이 좋았지만 베토벤은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좋아하지 않앗다.
모짜르트는 매우 사교적이었고 활발했다. 사교계에 끼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때문에 사교적이지 못했고 사람들과의 어울리는 자리를 피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서 그는 원래 자신은 매우 사교적이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귀가 들리지 않은 후 부터는 그것을 들키기 싫어 사람들을
피해다녔고, 안들리는 만큼 짜증을 냈기 때문에 자신을 사람들이 포악하다고 여긴다며 슬퍼했다.
다섯번째로 모짜르트는 쉽고 발랄한 음악을 많이 썼지만 베토벤은 웅장하고 복잡하다.
모짜르트의 작품은 매우 발랄하고 듣기 쉽다. 또 악보도 단순하다. 태아음악으로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아름다운 느낌의 곡을 많이 썼다.
반면 베토벤의 곡은 매우 복잡하고 웅장하다. 그는 낭만시대의 시초라고 불릴 만큼 곡의 형식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고 듣기 쉬운 화성이나 음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차이점이 있는 이유는 둘이 같은 시대를 살기는 했으나 살던 세계가 달랐기 때문이다. 똑같은 고전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모짜르트는 베토벤보다 20년 정도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고전주의 초기에 속하는 작곡가이고, 베토벤은 고전주의 후기, 낭만주의 초기에 속하는 작곡가이다.
초기 고전주의 시대에는 살롱 문화가 발전해 있어 아마추어들도 쉽게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매우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후기 고전주의 시대에는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이 아니라,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곡을 쓰기를 베토벤은 원했다.
모짜르트는 타고난 천재였고 베토벤은 그의 장애를 극복하고 노력해서 된 천재였다.
하지만 모짜르트는 단지 그 시대에 음악을 즐겼고, 그 시대에 음악을 발전시킨 만면, 베토벤은 후기 고전주의 시대를 열었고 초기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다. 현재음악사에서 베토벤의 업적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음악문화를 변화시켰으며 지금의 교향곡의 형식을 정했고 후대의 모든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